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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평점 :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자신이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잊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만 들려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가 터질 것 같이 긴박한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당신에게 그 이야기가 시시할 수 있고 벅차서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그 사이 어딘가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 가치를 모를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이 있었어.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잊고 지내고 있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맞아 나도 그런 순간이 있었어
지난 토요일 점쟁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내가 아빠에게 많은 것들을 받았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냈다. 참 많이 미워하고 멀리했던 사람이었다. 절대 한자리에 오래 있기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렸듯이 나 역시 그를 내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아팠고 어쩌면 이 순간들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순간 있었다.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건 나는 그 생각을 오래하지 않았다.
미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관계가 끝날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극이 싫었고 슬픔이 싫었고 불편함이 싫었다.
그런 일들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고 누군가가 내 앞길에 놓인 여러 불편한 것들을 치워주길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무슨 근자감이었는지 나는 내가 평탄할거라고 믿고 있었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아프고 입원했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고 항암을 하는 동안에도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내 삶에는 비극은 없다고 믿었다. 아니 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나와 친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애물들을 치워주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그의 인생관에 전혀 맞지 않았음에도 어쩔 수 없이 부모라는 입장에서 혹은 아내의 간절한 바람으로 그 짓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아니 나는 모르지 않았다. 알았지만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점쟁이는 나의 그런 운이 이제 다 했고 이제는 내가 가진 운명으로 살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많이 외로울 것이고 힘들 것이고 계속 베풀기만 해야한다고
내가 베푼다는 건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받은 것이 없는 사람은 줄 것도 없다.
내가 많이 주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만큼 많이 받아서 채운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니 마음이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아낌없이 주었던 사람이 이제 없구나 라는 사실을 그가 돌아가시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와 내가 가진 이야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가 태어났을 무렵이 마침 퇴근 이후여서 삼남매중에 유일하게 부친이 와서 태어난 나를 보았고 안았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내가 기억할 턱이 없다)
이촌동 살 때 밤에 몹시 아팠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의사에게 가기 위해 그의 등에 업힌 기억이 있다. 그는 절대 자식이나 손자들을 안거나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날을 어쩔 수 없이 당신이 업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의 성정에 늦은 시간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내의 성화에 혹은 아픈 딸을 위해서 딸을 업고 남의 집에 민폐를 끼치러 가는 그 길이 얼마나 아득하고 부대꼈을까
언니가 친구들이랑 놀러가서 삐진 나를 데리고 미술관에 함께 갔던 기억도 있다. 언니는 어쩌면 놀러 간게 아니라 학교 숙제로 미술관에 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아무튼 별 일도 아닌 일로 삐진 나를 엉겁결에 떠맡은 그와의 외출이 내키지 않은 내가 함께 미술관에 갔다.
어쩌면 엄마는 그렇게 둘을 짝지워 내 보내고 편안한 저녁시간을 가질 속셈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 많이 어색했다. 그와 나 단 둘이 뭔가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극사실화에 놀라는 나에게 좋은 그림이란 사실과 똑같은 것에 있지 않다는 그의 설명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 그 설명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또 잘난척 하네 아는 척 하는 하는 마음으로 들었던 그 마음도 기억한다. 그리고 서점에서 책을 사주었고 (그 책 제목은 80일간의 세계일주였다.) 그리고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고 돌아왔다. 도저히 둘이서 함께 무얼 먹는게 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언의 공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부산에 가서 둘이서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때도 대화는 별로 없었다.
수술 이후 서울 북촌길을 걸으면서 그가 그 근처에서 입주 가정교사를 했던 일들을 들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 주인집에서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을 때 따라갔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인집에서 무슨 생각으로 서울대에 다니던 입주가정교사를 데리고 미국으로 함께 가자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가족을 두고 따라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시골에 있는 가족을 두고 나만 생각하고 그냥 훌쩍 떠났다면 그는 자유롭고 좀 더 홀가분하지 않았을까
외롭고 내성적이고 공부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 그려졌다.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없지 않았을텐데.. 그때 그냥 그렇게 충동적인 결정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고리타분한 그의 성정에 외국 생활이 맞지 않고 뻔뻔하지도 못해서 외롭고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가 늘 하는 말처럼 공부를 잘해서 마침 사법시험이 되어서 남들이 우러러 보는 직업을 가져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고 그냥 직장생활을 했다면 참 많이 힘들었을 성격이었다고
혼자 잘해해는 일들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그리고 적당히 존경받고 거리감을 둬도 되는 일 그 일이 정말 그에게는 천성이었을까
혼자 공부하고 혼자 즐거워하는 모습들도 기억한다.
그렇게 외롭고 고독하고 내성적인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주었던 여러 가지들 기억들 돈, 시간, 추억, 여러 가지 감정들
정말 좋았어 아직도 그리워 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일상에서 잊고 살았고 내 삶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러나 점차 그도 참 많이 노력하고 애썼구나 라는 건 알 수 있다.
그렇게 자기 가족을 챙기고 다시 처자식을 챙기는 일
그의 어깨에 오종종 올라있는 열명이 넘는 가족들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
그가 도망가지 않아서. 묵묵히 견뎌주어서 그만큼 나머지 가족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 말이었구나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그의 나이를 지나가면서 무조건 당연한 일은 없다는 걸 세삼 깨닫는다.
처음 이 책은 지루했다.
청소도우미가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그냥 반납할까 고민도 했다. 왜 이 이야기가 페이지터너라고 불릴만큼 재미있다고 한 걸까? 외국과 우리 정서가 다른 탓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하나씩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점차 나도 빠져든다.
처음 내가 매력을 느낀 건 캐리루이즈의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 런던 극장가를 걷던 캐리루이즈는 야구방망이를 든 갱단에게 공격받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눈 앞에 펼쳐진 그 끔찍한 광경을 제외하면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캐리루이즈는 가방을 뒤져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물건을 꺼냈는데 알고 보니 하비 니콜스 백화점 회원카드였다. 그녀는 그 얇은 플라스틱 카드를 높이 쳐든 채 “경찰이다” 라고 외치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갱단은 도망쳤지만 그 전에 야구방망이로 그녀의 옆통수를 후려쳤다. 그 충격으로 캐리루이즈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젊은 의사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극장에서 쏟아져 나온 관걕 중 하나였고 이제 관객드은 쓰러진 두 사람 주위를 에워ᄊᆞ고 있었다.
“자기야 난 그때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간 줄 알았어. 그이는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긴 남자였거든 그런 남자가 내 손을 잡으면서 괜찮을 거라고 날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야” “ 그이 말이 맞았어 나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이의 손을 꼭 잡았더니 50년이 지난 후에도 난 그 손을 잡고 있었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이의 손을 잡고 있었지 암튼’
누군가 자신의 손을 잡아준 것이 언제인지 제니스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주인공을 찾아서)
(누구나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베키의 이야기는 실화인가요?“ 그녀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심사숙고했고 이야기는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우리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도 비범한 힘의 선의가 있으며 그로 인해 늘 희망이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시작이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재니스는 이번만큼은 이야기를 수집할 여유가 없다. 머릿속이 베키 생각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베키의 동생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 좋은 결말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다. 부모님은 배키를 탓했을까? 그때 베키는 몇 살이었을까? 하지만 재니스의 경험상 어린아이일 때는 그 점이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결코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죄책감과 책임도 기꺼이 떠안는다. 그 짐이 자신에게 너무 버거우며 사실은 어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모든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난다.)
그는 놀라면서도 감동했으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렇다면 b부인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스파이 이야기?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소멸한다.)
”착한 사람에게 단점이 있듯이 악당에게도 장점이 있는 거야. 재니스 순진하게 굴지 마. 나쁜사람이든 악당이든 자네가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들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말해봐“
”부인의 말을 듣고 개뻐해야 정상이죠. 어머나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구나. 하고요. 하지만 왠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책 속 이야기일 때는 그냥 받아들일 수 있어요. 당차고 못된 성격에 그걸 보완하는 장점은 거의 없는 베키 샤프도 좋아할 수 있죠. 하지만 실화일 때는 누군가가 하지만 저들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걸 견딜 수 없어요. 왜냐하면 현실에선ㄴ 네 바로 그거예요 제 삶에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쁜 사람과 힘든 일을 견디며 살아야 하니까요. 전 오랫동안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왔어요. 사람은 단순히 선악으로 나눌 수 없어. 그이는 망상에 빠져 있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기적이고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형편없는 아빠고 거짓말하고 과장하고 내가 마룻바닥을 닦아서 번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을 무시하지 그러면서 또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그이의 장점을 찾죠. 계속 새 직장을 구하고 백수 사태로 오래 있지 않고 날 때리지 않고 다른 여자를 쪼아다니지 않고 가족끼리 외출도 하고 꽤 유쾌한 성격이기도 하고 펍에서 만나는 그이의 친구들은 그이를 좋아하는 것도 같고 내가 부탁하면 쓰레기도 버려주잖아 근데 그거 아세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하기는 개뿔 그러니까 균형있게 봐야 해 그리고 이봐 네가 쓰레기라고 생각한 사람도 사실은 장점이 있어 라는 부인의 말을 난 견딜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고 이미 오랫동안 노력해 왔으니까요. 지금 부인이 내게 요구하는 태도로 이미 살아왔다구요. 아 이건 흑백논리가 아니야. 재니스 하지만 빌어먹을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엿같은 상황에서도 좋은 점을 보려고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나를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라고 훈계는 말이 듣기 싫을 때가 있죠. 가끔은 지붕에 서서 이 모든 게 엿같고 더 이상 못 해 먹겠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치고 싶어요.“
(마음이 머무는 곳이 곧 집이다.)
차에서 내리며 재닛는 자신의 삶을 가장 크게 지배한 감정이 죄책감임을 꺠닫는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요.
하지만 이건 자네 이야기야. 재니스 자네는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해.
그런가요? 말하면 뭐가 달라질까요? 제가 결말을 바꿀 수도 없는데
바로 그 대목에서 자네가 틀렸다는 거야. 때떄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희망뿐이야.
(재니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 어떠면 여동생 조이와 함께 겪었던 그 시간들을 조이와도 나누지 않았다. 본인은 조이보다 큰 아이라고 믿었고 조이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믿으면 자신도 여전히 어린 아이이고 보호가 필요한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걸 왜 내 엄마는 모르고 있고 조이는 알면서 혹은 알지 못한 채 그들에게 이쁨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슬프게 지켜봐야 하고 불안하게 지켜내야 하는 건지 그리고 그 어린 재니스가 어떻게 어린 조이를 지켜내고 남자를 없애버렸는지는 천천히 다른 이야기처럼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재니스의 입을 통해 다시 구성되고 다시 의미를 가진다. 내가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삶에서 속죄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든 나를 좋아할 리 없다. 마이크의 행동들을 나는 견디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들 사이먼도 나를 좋아할 수 없다. 내가 그의 동의 없이 멀리 있는 기숙학교로 그를 보내버렸기 때문에 그는 나를 미워한다. 동생은 어쩌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래서 나를 무서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모든 혼자만의 생각들이 이야기를 통해 내 속에서 나오면서 이야기는 다른 결말을 가진다. b부인이 원한 건 그런 거였다. 이야기는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청자에게 닿는 순간 그 이야기는 화자의 것만이 아니다. 이야기는 살이 붙고 의미가 첨가되고 바뀌어 가면서 다른 이야기로 다시 전달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 구성한 이야기는 다른 결말을 가지고 나는 그 이야기에서 비로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내 이야기지만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
(슬픔은 죄책감처럼 무겁지 않다.)
‘저는 대체로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동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을 느껴요. 어른이 되고 보니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조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했다는데 여전히 죄책감을 느껴요. 아저씨가 죽은 뒤에 조이의 삶이 더 힘들어졌다는 데도 죄책감을 느끼고요. 그게 제 탓인 것 같아요.
조이는 엄마의 사랑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어린 소녀였는데”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자넨 겨우 열세 살이었잖아
전 더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없어요. 하지만 조이는 다르죠 조이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쩌면 죄책감은 병과 같은지 몰라요 자기도 모르게 걸리는 거죠.
죄책감은 허락을 구하지 않고 들어오는 것같아요. 문을 두드리고 밖에서 얌전하게 기다리지 않는다고요.
번식력이 아주 강한 잡초처럼
(종이에 적힌 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살면서 좋았던 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화자의 나쁜 기억을 내보내는 기능 바람에 먼지가 흩날리듯 나쁜 기억을 흩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는 걸까
지금 그녀는 놀랍도록 자신을 잘 통제하고 있다. 차분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어때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할 건가요?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요. 멈추고 싶지도 않구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서 우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어쩌면 내게도 서너개의 이야기가 생길 거예요. 이제라도 따라잡아야 겠어요.
나는 몇 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의 나의 이야기는 몇 개가 되려나
그는 나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하고 지키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늘 연결된다. 타인의 경험이 나의 경험일 수 있고 내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게 묘한 희망이나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귀를 내게도 기울인다. 내게 있는 이야기는 몇 개 인가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웃으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이야기도 필요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이야기하다보면 이 상대가 나를 떠날 수도 있다는 부담으로 조금 두려워하면 꺼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했고 저주했고 그리고 무언가를 저질러버렸다는 이야기들
내가 남편을 미워하고 이혼을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 몹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 가족들이 조금은 성가시기도 하다는 이기적인 이야기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은 어쩌면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된 존재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