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이야기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동생을 돌보고 사촌 동생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어른들에게 예쁜 얼굴로 인사를 잘하고 제사일을 도우면 엄마가 내게 고맙다고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잘하네. 고맙다. 등 말을 건네줄거고 내 얼굴을 한 번 더 봐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묵묵무답이었다.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은 당연했다.

제사지내러 왔으면 놀러 온 것도 아닌데 일을 도와야지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건 당연하지

어른이 널 모른 척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정신없이 바쁜데 일일이 그런 걸 누가 신경이나 쓰니?

언니가 동생 봐주는게 뭐가 어때서?

걔가 젤 순한 애인데 걔 봐주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가 나를 봐주는 건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좋았을 때. 학원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을 때

나 정도면 일반대학보다 의대를 가야하는 거라고 친척어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할 때 그때 엄마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공부를 했고 공부를 잘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마침내 원하는 의대를 갔을 때 엄마는 본인의 한이 다 풀린다고 이야기를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일 그래서 온 가족이 공부를 막은 일

대학을 갔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결혼을 한 것

그냥 이름없는 종가집 종부가 되어버린 일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한이었고 모든 것이 억울했다.

그 억울함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날개를 달았을거야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날개가 꺽였지

나는 엄마와 대화를 끊었다. 공부한다는 건 좋은 핑계였다.

굳이 거실에서 얼굴을 마주 하지 않아도 방에 있어도 좋은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쌓인 분노가 터지던 날 나는 집을 나왔고 독립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역겹다고 표현했다.

엄마는 억지로 엄마를 한 거였어. 적어도 나에게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엄마가 해야할 의무를 하지 않은 것

그러면서 내게 바라는 것도 많았지

대학을 진학하고 나는 이제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취직까지 문제가 없을 것이고 독립이 가능하다.

굳이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이제와서 내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역겨워

엄마를 이해할 수는 있지. 여자로서 날개가 꺽이고 가부장제안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한거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가 딸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어

 

딸의 존재를 부정하고 딸을 차별하고 딸을 자기 꿈의 대타로 만드는 것

어쩌면 그 덕에 내가 이만큼 왔다는 것 그건 인정할게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엄마에게 거금이 든 통장을 던질거야

그동안 키워준 빚을 이걸로 갚겠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영 보지 말자고

물론 그 사이에도 볼 일은 없겠지만 이제 나는 마음의 빚도 없는 타인이라고 단호하게 말할거야

그런데 그 돈을 내밀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게 어떤 말을 할까

그 표정과 말이 궁금하면서 두려워

내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나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내가 원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녀한테 그 차이점을 숨기려고 애쓰며 나는 오히려 정말 피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모든 걸 말했어야 했던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경우 생겨날 수 있는 또다른 잔인함이 드러났을 것이다. 엄마를 더 신뢰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에게 거듭 상처를 주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화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들을 잃을 위험은 다르다. 오랫동안 나는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뒤에야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생긴 고통과 그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구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테스모포리아 중)

 

페르세포네가 지옥에서 보내 계절 그 계절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했을까

데미테르가 딸에게 느끼는 불안. 나를 떠나면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을 경험할 거라는 두려움 누군가 분명 내 딸을 납치해서 해꼬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들이 딸을 보내기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납치범을 따라가고 싶어하고 그와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그를 따라가는 일 그게 엄마에게 가장 두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게 떠난 딸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 그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하세계로 간 딸은 바쁘다.

엄마 전화 못해서 미안해. 수업 때문에 너무 바빴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별 일 없어.

이 중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사실이 아니지만 문제 없었다.

집이 그리웠고 돌아오면 편안했다. 그러나 얼른 그 곳을 떠나고 싶었다.

욕구처럼, 굶주림처럼, 어떤 특정한 종류의 사랑처럼 내안에서 근질거리는 욕망처럼

 

우리는 우리를 납치한 것들을 사랑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상상한다. 만일 내 인생의 절반이 누군가에게 묶여 있다면 나도 그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지옥에서의 일들을 일일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데미테르는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 무엇과 직면할지 두렵다. 그저 잘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지옥에서 엄마에게 왔을 때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걸 딸들은 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

그 말 조차 힘들다. 그 말은 왜 걱정해야하는지를 또 설명을 해야 한다.

지옥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그도 나쁜 사람이 아니야.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기 지옥은 완전 다른 세계지만 여기 역시 내 집이기도 해.

그말을 짐작하지만 듣는 건 다른 일이다.

그래서 엄마도 딸도 침묵한다. 상처를 주고 싶지 않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고 그것을 상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하지 않은 말들은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다.

짐작할뿐 더 이상 알지 않으려는 태도들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려는 태도들

그러나 그 배려앞에서 상처입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또 마음이 아프다.

어려운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도 그럴까? 아닐 것이다.

 

착한 여자아이들은 침묵한다.

아니예요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되요.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예요.

 

우리가족은 지옥의 한철을 빠져나왔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 마침내 나는 안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그녀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슬퍼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 일이 또다른 재앙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녀의 또다른 손이었고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나마저 망가질 순 없었다. 그래서 또다른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덜한 재앙 속으로 나자신을 숨겼다. 나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

엄마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품어온 죽음의 꿈속으로 매일매일 일허라 갔다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제너두)

어쩌면 모두가 견디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보호하는 일이고 내가 부모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철이 든 거이다. 내가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의지하는 어른이 있다는 감각이 깨어나면 아이는 그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다.

내게 닥친 일들 내가 받은 모멸감과 고립감과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것들이 폭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가엾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도 즐거웠고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침묵했고 괜찮다고 했고 그냥 견뎠다.

내 엄마가 모른다면 괜찮다. 그냥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렇게 겪어온 시간을 서로 나누었을 때 상대가 받을 충격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단단해졌다

내가 그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쓰고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다면 단 한사람 그도 괜찮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 시간을 건넜다.

그리고 지금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끔 상대의 비밀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가 하는 말 절대 감옥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그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고 얼마나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느지 나중에 비로소 퍼즐이 맞춰졌다.

아무렇지 않게 딸을 감옥에 보내고 인생을 망가뜨린 부모

작은 잘못에 대한 큰 벌

그 잘못 역시 본인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들이었다는 것

그 경험앞에서 엄마는 반항하는 딸과 손녀가 두렵다.

그러다 감옥을 갈 수도 있다는 강한 신념이 계속 그 엉뚱해보이는 말을 중얼거리게 한다.

도데체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야

내 아이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그러가 그 한마디에 담긴 그 마음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되고 마음이 무너진다.

(열다섯)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정확히 그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습 그대로 기억하게 해주는 것에는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우리의 위대한 자산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기꺼이 뭔가를 공유하려고 하는 것은 친밀감을 시험하는 행위이며 천상의 선물이다.

고백은 그 사람의 어깨위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애를 나누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중함의 베일, 일상의 베일을 벗고 그 순간 진실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 하는 자는 결국 살아남은 자다.

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망각과 상실괃 J 나아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맞선 싸움이다. 죽은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부활한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의 삶은 곱절이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하는 것들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이들의 장밋빛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알고 그것을 누군가가 인정한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인생은 복잡하고 풍요롭다는 것 암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것 (이야기 하지 않은 건 없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면 엄마가 말을 할 것이고 그러면 엄마를 사랑하기 너무 힘들어질까봐 두려웠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그때 전화로 말하려던 모든 것 핸드폰을 꺼내 들고 스크롤하면서 엄마를 차자가 그걸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치워버린 그 순간 말하려는 모든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는 커다랗게 갈라진 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엄마마땅이 이래야 하고 우리에게 전부를 주어야 하는 엄마와 실제 우리 엄마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틈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그것에 대해 계속 슬퍼하지도 화나지도 않는 길을 찾을 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될 모든 것이다.

 

모유수유를 그만뒀을 때 불현듯 두려워졌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 아이가 진정되리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아이가 뭔가를 필요로 하고 원하고 힘들어하면 나는 말로 어르고 포옹하고 달래고 물어보고 안아주면서 최선을 다해 추측할 뿐이다. 내게는 단지 인간이 사랑하는 그 불완전하고 추상적인 방식만 있을 뿐이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던 것은 그녀는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화가 났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상처를 준다. 그녀는 내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나를 화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마침내 이제 괜찮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

나는 괜찮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그말은 이제 그에 대한 사랑이 옅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은 이에게 상처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거리가 생겼고 내가 그 거리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 말은 상대를 서운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성장과 독립이란 내가 더 이상 너를 필요료 하지 않는다. 덜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평생동안 자식의 성장과 독립을 바라는 동시에 영원히 그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 하지 않은 것들은 이렇다. 그녀의 인생이 그리도 불행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나를 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날려버렸다는 것 소원해진 우리 사이에 대해 나는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사실 후회의 감정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그러지 않아서 놀랐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그리도 불만스러운 건 유감이라는 것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원수에게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와 나눈 것들은 그립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다시 그렇게 되지 못할 거라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되는 걸 고민하는 내내 방해가 된건 은 돈 이나 열정이 아니라 내가 어린시절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두려움

내가 바란 것보다 엄마를 더 닮았다는 두려움이다. (모국어)

 

누구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이건 엄마와 딸 사이의 사실 명제이고 명언이다.

그래서 엄마와 닮은 나를 보면 두렵고 싫다. 그냥.

 

나는 이제 깨달았다. 내가 한때 엄마에게 뭔가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엄마도 내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

그건 단지 물건만이 아니다. 그녀가 내게 주고 있는 것은 베풂이다. 오랫동안 할 수 없어서 회한으로 남은 것, 나는 받음으로써 준다는 것의 만족감을 그녀에게 준다. (오빠 잔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나는 그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아이인 동시에 쓸모없는 쓰레기였다. 그녀난 가끔 내게 빵을 구워주고 원피스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더러 쓸모없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이 두가지 해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어디에 안착해야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항상 내 정체성의 증거를 찾아다녔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위해 다른 길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줄 이들을 찾았다. 나는 나 자신을 매일매일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로 만들어왔다. 나 자신에게 나아갔고 사랑도 전염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다. 어릴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인생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어린 우리를 새롭고 눈부신 인생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주지 않아도 나는 배울 수 있다. 충분히)

 

다른 J의 이야기 


엄마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도 포함된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마음을 표현했을 때 돌아올 것들을 이미 나는 안다.

그냥 무시당하거나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는 면박일 수 있고 말만 하지말고 뭔가 원하는 걸 표현해달라는 뻔뻔한 요구일 수도 있어서 입을 다문다.

되돌아오는 것이 가벼운 고마움 나도 같은 마음이야 라는 동의의 표현이 차라리 낫다.

묵직하게 돌아오는 것들이 두려운 것이다.

엄마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에는 자식이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포개어져 있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한 쪽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느낀 부담감만큼 상대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표현이 쉽지 않다.

표현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연습이 있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뱉을 수 있는 말들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렵다.

나도 엄마에게 사랑한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엄마 역시 그런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당연한 것이 된다. 가족끼리 하는 말이 아닌 것 중 하나가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용서하라 는 말일 것이다.

서로 당연히 사랑해야하고 서로 당연히 해주어야 하고 가족끼리는 잘못할 리가 없다는 명제들이 각각 개인을 외롭게 하고 아프게 했다. 내가 아픈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면 안되는 것임에도 나는 당연하게 내 딸에게 되돌려준다.

원래 그런거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엄마에게 힘든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따돌리고 나만 모르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

저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일하고 돈 버는 일은 너무 어렵고 세상 모든 상사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남편을 만나고 결혼한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이말을 엄마앞에서는 꿀꺽 삼킨다.

삼킬 수가 없어서 연락을 아예 하지 않는다.

내가 무심하고 못된 딸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엄마를 걱정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더 두렵다. 누군가가 썼듯이 걱정하고 아프게 하는 것과 그를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다른 일임에도 나는 엄마가 아픈 것이 두려워서 보지 않은 방법을 택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많은 고민들이 더 아팠다.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도 힘들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거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이 더 밉고 싫었다.

도데체 내가 어떤 존재로 보였기에 말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마음

그러나 딸의 입장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내 자존심이기도 했고 혼나거나 걱정하는 것이 싫기도 했고 말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지레짐작이었다.

어쩌면 기대가 커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바에는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걱정을 나눌 수 없는 타인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겠지만 결국 나는 누구와도 걱정을 나눌 수 없는 갇힌 사람이었다.

내가 쌓은 울타리가 크고 높아서 가까운 사람과도 거리를 만든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

가족이어도 부모여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에 내 문제를 나 말고 해결해주는 이는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된다.

그냥 나눈다는 것 말을 하고 털어내고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말을 하고 나에게 털어낼 여지를 주는 것 그게 가장 힘들다.

괜찮다는 말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괜찮아. 걱정마

그런데 안괜찮고 걱정해주면 좋겠어.

그게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안심되고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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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이야기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동생을 돌보고 사촌 동생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어른들에게 예쁜 얼굴로 인사를 잘하고 제사일을 도우면 엄마가 내게 고맙다고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잘하네. 고맙다. 등 말을 건네줄거고 내 얼굴을 한 번 더 봐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묵묵무답이었다.

일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은 당연했다.

제사지내러 왔으면 놀러 온 것도 아닌데 일을 도와야지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건 당연하지

어른이 널 모른 척 하고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정신없이 바쁜데 일일이 그런 걸 누가 신경이나 쓰니?

언니가 동생 봐주는게 뭐가 어때서?

걔가 젤 순한 애인데 걔 봐주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가 나를 봐주는 건 공부를 잘해서 성적이 좋았을 때. 학원 선생님이 나를 칭찬했을 때

나 정도면 일반대학보다 의대를 가야하는 거라고 친척어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할 때 그때 엄마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공부를 했고 공부를 잘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마침내 원하는 의대를 갔을 때 엄마는 본인의 한이 다 풀린다고 이야기를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일 그래서 온 가족이 공부를 막은 일

대학을 갔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결혼을 한 것

그냥 이름없는 종가집 종부가 되어버린 일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한이었고 모든 것이 억울했다.

그 억울함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날개를 달았을거야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날개가 꺽였지

나는 엄마와 대화를 끊었다. 공부한다는 건 좋은 핑계였다.

굳이 거실에서 얼굴을 마주 하지 않아도 방에 있어도 좋은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쌓인 분노가 터지던 날 나는 집을 나왔고 독립을 하기로 했다.

엄마가 역겹다고 표현했다.

엄마는 억지로 엄마를 한 거였어. 적어도 나에게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바라보지 않고 엄마가 해야할 의무를 하지 않은 것

그러면서 내게 바라는 것도 많았지

대학을 진학하고 나는 이제 잘 지낼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취직까지 문제가 없을 것이고 독립이 가능하다.

굳이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고 이제와서 내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은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역겨워

엄마를 이해할 수는 있지. 여자로서 날개가 꺽이고 가부장제안에서 희생만을 강요당한거 충분히 이해하지만 엄마가 딸에게 그러면 안되는 거였어

 

딸의 존재를 부정하고 딸을 차별하고 딸을 자기 꿈의 대타로 만드는 것

어쩌면 그 덕에 내가 이만큼 왔다는 것 그건 인정할게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엄마에게 거금이 든 통장을 던질거야

그동안 키워준 빚을 이걸로 갚겠다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영영 보지 말자고

물론 그 사이에도 볼 일은 없겠지만 이제 나는 마음의 빚도 없는 타인이라고 단호하게 말할거야

그런데 그 돈을 내밀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게 어떤 말을 할까

그 표정과 말이 궁금하면서 두려워

내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나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내가 원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녀한테 그 차이점을 숨기려고 애쓰며 나는 오히려 정말 피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모든 걸 말했어야 했던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경우 생겨날 수 있는 또다른 잔인함이 드러났을 것이다. 엄마를 더 신뢰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에게 거듭 상처를 주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화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들을 잃을 위험은 다르다. 오랫동안 나는 그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뒤에야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생긴 고통과 그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구별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

(테스모포리아 중)

 

페르세포네가 지옥에서 보내 계절 그 계절이 어둡고 암울하기만 했을까

데미테르가 딸에게 느끼는 불안. 나를 떠나면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을 경험할 거라는 두려움 누군가 분명 내 딸을 납치해서 해꼬지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들이 딸을 보내기 주저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딸은 납치범을 따라가고 싶어하고 그와 함께 지내는 일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그를 따라가는 일 그게 엄마에게 가장 두려운 일일 수 있다.

그렇게 떠난 딸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 그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하세계로 간 딸은 바쁘다.

엄마 전화 못해서 미안해. 수업 때문에 너무 바빴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 잘 지내고 있어

괜찮아. 별 일 없어.

이 중 절반은 사실이고 절반은 사실이 아니지만 문제 없었다.

집이 그리웠고 돌아오면 편안했다. 그러나 얼른 그 곳을 떠나고 싶었다.

욕구처럼, 굶주림처럼, 어떤 특정한 종류의 사랑처럼 내안에서 근질거리는 욕망처럼

 

우리는 우리를 납치한 것들을 사랑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상상한다. 만일 내 인생의 절반이 누군가에게 묶여 있다면 나도 그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페르세포네는 지옥에서의 일들을 일일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데미테르는 궁금하지만 물을 수 없다. 무엇과 직면할지 두렵다. 그저 잘 있다는 말을 믿고 싶다.

지옥에서 엄마에게 왔을 때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걸 딸들은 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

그 말 조차 힘들다. 그 말은 왜 걱정해야하는지를 또 설명을 해야 한다.

지옥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그도 나쁜 사람이 아니야.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기 지옥은 완전 다른 세계지만 여기 역시 내 집이기도 해.

그말을 짐작하지만 듣는 건 다른 일이다.

그래서 엄마도 딸도 침묵한다. 상처를 주고 싶지 않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고 그것을 상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하지 않은 말들은 어쩌면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이다.

짐작할뿐 더 이상 알지 않으려는 태도들

더 이상 알려주지 않으려는 태도들

그러나 그 배려앞에서 상처입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또 마음이 아프다.

어려운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도 그럴까? 아닐 것이다.

 

착한 여자아이들은 침묵한다.

아니예요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되요.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예요.

 


우리가족은 지옥의 한철을 빠져나왔고.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했다. 마침내 나는 안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그녀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일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슬퍼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 일이 또다른 재앙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녀의 또다른 손이었고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나마저 망가질 순 없었다. 그래서 또다른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덜한 재앙 속으로 나자신을 숨겼다. 나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

엄마는 아버지가 오랫동안 품어온 죽음의 꿈속으로 매일매일 일허라 갔다가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녀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제너두)



어쩌면 모두가 견디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말하지 않은 것이 보호하는 일이고 내가 부모를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철이 든 거이다. 내가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의지하는 어른이 있다는 감각이 깨어나면 아이는 그 순간 어른이 되어버린다.

내게 닥친 일들 내가 받은 모멸감과 고립감과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겪은 것들이 폭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가엾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도 즐거웠고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래서 침묵했고 괜찮다고 했고 그냥 견뎠다.

내 엄마가 모른다면 괜찮다. 그냥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렇게 겪어온 시간을 서로 나누었을 때 상대가 받을 충격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단단해졌다

내가 그 모든 이야기를 글로 쓰고 모두에게 공개할 수 있다면 단 한사람 그도 괜찮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 시간을 건넜다.

그리고 지금은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끔 상대의 비밀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될 때가 있다.

그가 하는 말 절대 감옥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그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고 얼마나 복잡한 감정이 들어있느지 나중에 비로소 퍼즐이 맞춰졌다.

아무렇지 않게 딸을 감옥에 보내고 인생을 망가뜨린 부모

작은 잘못에 대한 큰 벌

그 잘못 역시 본인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들이었다는 것

그 경험앞에서 엄마는 반항하는 딸과 손녀가 두렵다.

그러다 감옥을 갈 수도 있다는 강한 신념이 계속 그 엉뚱해보이는 말을 중얼거리게 한다.

도데체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이야

내 아이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 아니라고

그러가 그 한마디에 담긴 그 마음을 알고서 비로소 이해가 되고 마음이 무너진다.

(열다섯)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정확히 그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습 그대로 기억하게 해주는 것에는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우리의 위대한 자산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기꺼이 뭔가를 공유하려고 하는 것은 친밀감을 시험하는 행위이며 천상의 선물이다.

고백은 그 사람의 어깨위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애를 나누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중함의 베일, 일상의 베일을 벗고 그 순간 진실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기 하는 자는 결국 살아남은 자다.

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망각과 상실괃 J 나아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맞선 싸움이다. 죽은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부활한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의 삶은 곱절이 된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하는 것들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이들의 장밋빛 세계가 현실이 아님을 알고 그것을 누군가가 인정한다는 것이 위안이 될 수 있다. 인생은 복잡하고 풍요롭다는 것 암울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것 (이야기 하지 않은 건 없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면 엄마가 말을 할 것이고 그러면 엄마를 사랑하기 너무 힘들어질까봐 두려웠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그때 전화로 말하려던 모든 것 핸드폰을 꺼내 들고 스크롤하면서 엄마를 차자가 그걸 쳐다보다가 다시 핸드폰을 치워버린 그 순간 말하려는 모든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는 커다랗게 갈라진 틈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엄마마땅이 이래야 하고 우리에게 전부를 주어야 하는 엄마와 실제 우리 엄마가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틈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은 내가 그것에 대해 계속 슬퍼하지도 화나지도 않는 길을 찾을 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될 모든 것이다.

 

모유수유를 그만뒀을 때 불현듯 두려워졌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확실하고 깔끔한 방법 아이가 진정되리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다. 아이가 뭔가를 필요로 하고 원하고 힘들어하면 나는 말로 어르고 포옹하고 달래고 물어보고 안아주면서 최선을 다해 추측할 뿐이다. 내게는 단지 인간이 사랑하는 그 불완전하고 추상적인 방식만 있을 뿐이다.

내가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없던 것은 그녀는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화가 났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 상처를 준다. 그녀는 내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나를 화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마침내 이제 괜찮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



나는 괜찮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그말은 이제 그에 대한 사랑이 옅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은 이에게 상처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거리가 생겼고 내가 그 거리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고 그 말은 상대를 서운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성장과 독립이란 내가 더 이상 너를 필요료 하지 않는다. 덜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평생동안 자식의 성장과 독립을 바라는 동시에 영원히 그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역시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 하지 않은 것들은 이렇다. 그녀의 인생이 그리도 불행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나를 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날려버렸다는 것 소원해진 우리 사이에 대해 나는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사실 후회의 감정이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그러지 않아서 놀랐다. 그녀가 자신의 삶에 그리도 불만스러운 건 유감이라는 것 (나는 내 인생 최악의 원수에게도 그걸 바라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와 나눈 것들은 그립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고 다시 그렇게 되지 못할 거라는 것 그리고 부모가 되는 걸 고민하는 내내 방해가 된건 은 돈 이나 열정이 아니라 내가 어린시절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두려움

내가 바란 것보다 엄마를 더 닮았다는 두려움이다. (모국어)

 

누구나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이건 엄마와 딸 사이의 사실 명제이고 명언이다.

그래서 엄마와 닮은 나를 보면 두렵고 싫다. 그냥.

 

나는 이제 깨달았다. 내가 한때 엄마에게 뭔가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엄마도 내게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

그건 단지 물건만이 아니다. 그녀가 내게 주고 있는 것은 베풂이다. 오랫동안 할 수 없어서 회한으로 남은 것, 나는 받음으로써 준다는 것의 만족감을 그녀에게 준다. (오빠 잔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나는 그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아이인 동시에 쓸모없는 쓰레기였다. 그녀난 가끔 내게 빵을 구워주고 원피스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더러 쓸모없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이 두가지 해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어디에 안착해야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항상 내 정체성의 증거를 찾아다녔다.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구하려 들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를 위해 다른 길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내 마음을 알고 그것을 안전하게 지켜줄 이들을 찾았다. 나는 나 자신을 매일매일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로 만들어왔다. 나 자신에게 나아갔고 사랑도 전염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다. 어릴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인생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어린 우리를 새롭고 눈부신 인생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주지 않아도 나는 배울 수 있다. 충분히)

 


또다른 J 이야기 


엄마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들

엄마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들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도 포함된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그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마음을 표현했을 때 돌아올 것들을 이미 나는 안다.

그냥 무시당하거나 무슨 그런 말을 하느냐는 면박일 수 있고 말만 하지말고 뭔가 원하는 걸 표현해달라는 뻔뻔한 요구일 수도 있어서 입을 다문다.

되돌아오는 것이 가벼운 고마움 나도 같은 마음이야 라는 동의의 표현이 차라리 낫다.

묵직하게 돌아오는 것들이 두려운 것이다.

엄마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에는 자식이라면 당연히 ~ 해야하지 않나 라는 마음이 포개어져 있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한 쪽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내가 느낀 부담감만큼 상대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표현이 쉽지 않다.

표현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고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연습이 있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뱉을 수 있는 말들이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렵다.

나도 엄마에게 사랑한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엄마 역시 그런 말을 내게 해주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당연한 것이 된다. 가족끼리 하는 말이 아닌 것 중 하나가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용서하라 는 말일 것이다.

서로 당연히 사랑해야하고 서로 당연히 해주어야 하고 가족끼리는 잘못할 리가 없다는 명제들이 각각 개인을 외롭게 하고 아프게 했다. 내가 아픈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면 안되는 것임에도 나는 당연하게 내 딸에게 되돌려준다.

원래 그런거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엄마에게 힘든 일들을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따돌리고 나만 모르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

저 친구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런 마음이 드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

일하고 돈 버는 일은 너무 어렵고 세상 모든 상사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남편을 만나고 결혼한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이말을 엄마앞에서는 꿀꺽 삼킨다.

삼킬 수가 없어서 연락을 아예 하지 않는다.

내가 무심하고 못된 딸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엄마를 걱정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더 두렵다. 누군가가 썼듯이 걱정하고 아프게 하는 것과 그를 다시 보지 않게 되는 것은 다른 일임에도 나는 엄마가 아픈 것이 두려워서 보지 않은 방법을 택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많은 고민들이 더 아팠다.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도 힘들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거지 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나 자신이 더 밉고 싫었다.

도데체 내가 어떤 존재로 보였기에 말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마음

그러나 딸의 입장에서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내 자존심이기도 했고 혼나거나 걱정하는 것이 싫기도 했고 말을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지레짐작이었다.

어쩌면 기대가 커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바에는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걱정을 나눌 수 없는 타인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겠지만 결국 나는 누구와도 걱정을 나눌 수 없는 갇힌 사람이었다.

내가 쌓은 울타리가 크고 높아서 가까운 사람과도 거리를 만든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리를 둔다.

가족이어도 부모여도 그렇다.

그러나 세상에 내 문제를 나 말고 해결해주는 이는 없다는 걸 나중에 알게된다.

그냥 나눈다는 것 말을 하고 털어내고 그리고 그가 나에게 말을 하고 나에게 털어낼 여지를 주는 것 그게 가장 힘들다.

괜찮다는 말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괜찮아. 걱정마

그런데 안괜찮고 걱정해주면 좋겠어.

그게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안심되고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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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셀라 부부는 아이를 잃고도 오래 살았다.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잃고 일상을 살고 웃고 먹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였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를 혼자 두지 말아야 했을까

뒷길에 난 거름구덩이를 이전에 메워야 했던 걸까

늙은 개를 묶어두었거나 데리고 나갔어야 했을까

그날 아이를 데리고 일을 나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만약에 라는 말은 일어날 일이 절대 없는 가정일 뿐이다.

아이는 죽었고 부부는 남았다.

사람들이 수군댄다는 것도 안다. 아이가 죽은 부모에게 위로를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행이 내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이의 죽음은 사회의 것이지만 죽은 아이는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아이의 죽음으로 좀 더 내 주위를 살피고 안전을 다지고 조심하겠지만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부모 마음에서 상처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말이 없는 소녀를 맡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소녀를 맡았을지 알 수 없다.

다만 가족들이 힘겨워하는 걸 도와 주고 싶었을 것이고 소녀 하나쯤 맡아 키우는 일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상상하는 소녀는 다정하고 얌전하고 집안 일도 잘 도울 수 있는 그래서 어쩌면 단조로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지 않을까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이를 만나고 씻기고 함께 먹으면서 부부도 처음엔 어색하고 멋쩍었을 것이다.

남의 아이 그것도 여자 아이는 도자기 같아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긴장감도 있고 행여 아이가 보는 것들을 어디 옮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어서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까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다정한 부부는 그 적절한 경계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첫 날 밤 실수를 한 소녀를 아무렇지 않게 소녀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받아주고 자연스럽게 처리를 했다.

소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하고 자연스럽게 농담을 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 아이는 곧 떠날 아이고 정을 들이면 나중에 내가 힘들거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적당히 잊힐만큼만 사랑하자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이 깊은 부부는 그 잊힐만큼의 거리가 때로 가까웠고 때로 다정해서 낯선 환대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를 혼란스럽고 두렵지만 계속 있고 싶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부부였으면 했을텐데

이웃의 수다로 아이도 부부의 상황을 알아차리게 된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친다. 말이 없는 소녀에게 그 말은 위로일 수 있고 삶의 방향등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밀이 없는 집에서 비밀을 공유하면서 소녀와 부부는 가까워진다.

가까워진다는 표현이나 상황은 없지만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이제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건 친밀함으로 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부부가 정해놓은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정말 내 아이가 된 것처럼 여름날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의 달리기 기록을 재고 응원하고 함께 빵을 굽고 우물을 긷고 바느질을 하고 축사를 정리하면서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늘 슬픈 예감은 어김없이 현실이 된다.

여름이 끝나고 소녀가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올 거라는 걸 알았지만 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간이다.

부부도 소녀도 이 시간이 영원할거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고 이제 서로 잘 알게 되었고 비밀을 함께 가지면서 비로소 가족이 되었다고 믿었는데

 

부부는 현실을 안다.

소녀는 내 아이가 아니고 부모가 따로 있고 언제든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아이의 짐을 정리하지만 작은 사고로 돌아가는 날이 미뤄진다.

부부에게 시원한 우물물을 길어주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작은 사고

이제 부부는 그만하길 다행이야를 경험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되었다는 마음

어쩌면 그 작은 사고가 부부의 마음에 오래 묵은 짐을 조금은 덜어주지 않았을까

 

소녀를 데려다 주고 부부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 아이가 아니기에

그런 내 아이였기에 아이가 혼란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자기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게

우리는 조금씩 잊혀도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이면서

한여름의 꿈처럼 좋은 시간이었음을 기억하면서

그런 부부에게 아이가 뛰어와서 안겼을 때 그 마음을 나는 모르겠다.

너무 벅차고 너무 사랑스럽고 그리고 너무 슬펐을 것이다.

너무 좋아서 슬픈 마음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고 어색한 마음을 소녀에게 선사했던 부부는

소녀에게 그 마음을 되돌려 받는다.

그것이 얼마나 찬란하고 눈부신 시간이었는지를

 

소녀에게 부부는 좋은 애착경험을 주었던 만큼

부부도 소녀에게 건강한 애착경험을 받았다.

서로에게 다정하고 고마운 존재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다.

그냥 다정하고 좋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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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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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마음속에 자라지 못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를 마주보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애써 모른 척 하거나 없다고 믿고 싶어한다. 

이 소녀를 만나면서 어쩌면 내가 맞부딪쳤던 이름을 붙일 수 없더 감정들 상황들을 떠올린다.

무어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어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아주 나빠졌거나 내가 많이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둘러싸인 순간들

어찌어찌 그 사간들을 넘겨왔고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소녀를 만나면서 다시 그때 감각이 떠오른다.

좋지만 좋다고 할 수 없는 마음 좋다고 하면 누군가에게 많이 미안해질 것 같은 마음 

낯설어서 좋은지 싫은지 미처 알아차리리 수도 없었는데 그냥 계속 그 상황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럴ㄴ 마음들이 책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다섯명의 자녀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얼굴도 모르는 엄마쪽 먼친척에게 맡겨진다.

소녀는 이름이 없었다.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든 아무 상관없었을 것이다.

누구누구네 몇째 정도? 

그것조차 어쩌면 매번 질문을 받는 것일 수 있다? 니가 몇쨰였더라???

여름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아버지 차 뒷자속에 비스듬이 누워서 풍경을 보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설레거나 긴장되지도 않는다.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 그 마음은 상처받거나 속상해하지 않으려고 미리 준비하는 단단한 껍질같다.

낯선 부부집에 내리고 아버지와 아저씨는 하나마나한 대화들을 하고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그저 말 잘들어라 라는 것밖에 남긴 게 없다. 

낯선 속에서의 생활 낯선 사람과의 식사 혼자 잠드는 밤

모든 것이 두려웠을 텐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어쩌면 이런 낯섦에 익숙했을 수 있따.

가까운 가족이라고 다정하거나 친숙한 건 아니다.

늘 새로운 낯섦을 느낄때가 있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아버지였던가? 내가 알던 어머니인가 라는 마음

내가 사랑했떠너 내 배우자였떤가 라는 낯섬들이 가까운 ㅇ들사이에서도 존재한다.

그 낯섦은 때로 갈등을 일으키고 다툼을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설레임을 안겨주기도 하겠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물어봐서는 안되는 일, 알아차리면 안되는 일들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따.

무심하지만 다정한 부부는 소녀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함꼐 일을 하고 식사를 하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고 칭찬하는 것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고 편지통까지 달리기를 하게 하고 기록을 재는 일

우물을 길으러 가서 그 깊고 진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

함꼐 이웃의 장례식을 가고 바닷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

어쩌면 익숙한 일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건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어떤 관계에서 내가 그 경험을 해내는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웃의 장례식에서 아이는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폭력처럼 느닷없이 알게 되는 붑의 비밀앞에서 소녀는 이 이야기는 입밖으로 꺼내면 안될 이야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어쩌면 그 말을 듣기 전에 어떤 짐작이 있었을 수도 있다. 

부부의 아픔을 아이 눈높이만큼 알게 된다.

그리고 아저씨와의 바닷가 산책에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기회를 잃어서 영영 돌이킬 ㅣ수 없는 상황을 알게 된다.

비밀이란 불안과 두려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 비밀은 누군가를 다정하게 배려하는 마음이기도 핮다는 걸 소녀는 알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늘 했떤 일상에서 다른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이제는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을 안다.

소녀가 마지막으로 우물을 깊으러 가고 우물에 빠진건  누구나 짐작하듯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게다. 그러나 우물에 빠진 소녀를 본 부부는 철렁했을 것이다.

거름구덩이에 빠져 잃어버린 아들 

우물에 빠져버린 소녀 

괜찮아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 라는 말이  다정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나를 다독이는 말이기도할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커버린 키만큼 이전의 소녀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거푸 묻는 엄마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 일 부부를 향해 달려가는 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저씨의 품에 안기는 일 그리고 아빠라는 말까지


#관심밖으로 밀려난 소녀가 생에 어떤 여름날 모든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된다.

그림자 속에서 갑자기 빛으로 나온 것처럼 눈부시고 낯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낯섫고 두려움 그래서 다시 눈을 감거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간질거리는 마음이 두려운 건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싫지 않은 것은 그 마음이 사랑임을 알기 때문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카나리아이니까

가족안에서 어던 문제가 있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모두를 아는 것도 아니고 전후맥락을 알아차리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몸을 낯추고 모른 척해야하는 걸 안다.

애써 명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알아도 모른 척하고 들어도 듣지 않은 척 봐도 보지 않은 척을 해야할 때를 안다. 다만 아직 끈기가 약해서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서 물어보고 울어버리기는 하겠지만

감각에 예민한 아이는 입을 다물고 자신이 그 분위기에 눌리고 압도 당하고 있음을 모른다.

앙픈데가 없고 배고프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카나리아처럼 예민하게 감지하지만 정작 그 감각의 이름을 모른다.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표현되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처음 빛으로 걸어가 겨엄한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고 좋으면서 두렵고 영원히 끛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꿈이라면 어서 꺠기를 바란다. 

아이가 느낀 사랑과 정성이 아름다우면서 두렵다.

아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따.

예전과 다르... 그 다름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때  견딜 힘이 있을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어쩌면 현실은 시작이라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의 댓가를 바라지 않은 그 순간에 몰두하는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알게 된다. 



넷플릭스에 본 영화 칠드런 인 트레인

전쟁이후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가난때문에 아이들이라도 잘 먹이기 위해 북부로 보내는 일이 많았따. 북부 공산당들이 아이들을 데령 ㅘ서 잘 먹이키워주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있었떤 듯하다.

주인공 아메리고의 엄마도 아메리고를 위해 북부로 보내게 되고 그 곳에서 아메리고는 자신이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사랑받고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소년의 마음 변화와 함꼐 알고보니 모성이 깊었던 엄마이야기까지 나와서 조금은 한국적인 신파처럼 보이기도 하다.

아이가 집을 떠나서 비로소 사랑과 보살핌을 경험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느끼는 혼란까지 .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소녀의 이후 삶이 어떨지도 궁금하다.

이야기는 짧게 가장 절정에서 끝이 났고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지마 그 이후를 마냥 낭만적으로 기대해도 좋을지... 나는 너무 현실적인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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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인에게 내 고통이나 불안을 나누어 주고 싶지 않다.

나는 늘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덤덤하게 보이고 싶다.

어느 정도 성공햇다.

불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니 불안이 없어졌다. 매사 감정적이고 싶지 않았더니 무덤덤한 사람이 되었고 조금은 재미가 없었다.

그냥 직선적으로 말하고 덜 상처입고 무심해지려고 했더니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건 그 사람의 감정이니까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통을 드러내고 요란스럽게 아파하고 뒹구는 사람들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들이 용기있다는 생각도 했다

아무리 외치고  호소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을 그리 애쓰고 가끔은 떼쓰고 울부짖는 일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부질없는 짓을 하나 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적어도 내 아픔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은 용기있어 보였다.


내 아픔을 내가 먼저 알고 타인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용기가 맞다.

나이 치부를 드러내는 것

어쩌면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서 마지막 최후의 보루로 던진 승부수일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그 상황까지 가지도 못하고 지레 혼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닿지 않을 고통과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울부짖어서라도 드러내는 것을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들켜서는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드러내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드러나는 것도 싫었고 행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어서 너무 큰 상처나 흉터를 드러낼까봐 더 두려웠고 싫었다.

그냥 숨기고 누르다 보면 무감해진다.

무감하다는 건 어찌 보면 무척 강해 보인다.

아무렇지 않고 덤덤하고 늘 안정적인 스텐스를 유지하는 것이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성적이고 강해보일지 모르겠다. 가끔은 진짜 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이 없고 감각이 없는 것은 그만큼 나를 죽이고 버려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고통도 두렵고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두렵다.

나에게 무감하고 나에게 덤덤한  기질이 결국은 주변 사람을 외롭게 하거나 서운하게 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 물어본다.

엄마가 혼자 잘 지내시는지...

그럴 때 마다 똑같은 대답이다.

혼자 지내다 보니 자식이 있는 도시로 올라왔고 마침 언니 집 근처에 집을 구해 살고 있어요.

언니가 자주 들여다 보고 있어요

대답도 비슷하다.

그래 아무래도 딸이 낫지. 그래도 장녀구나 

언니가 엄마에게 잘 한다는 건 알고 있다.그리고 둘은 꿍짝도 잘 맞다.

취향도 비슷하고 성격도 비슷하고 종가집 며느리라는 위치도 비슷하고 남편의 직업도 비슷하고 그래서 서로 잘 아는 면이 많다. 

둘 사이에서 나는 조금 외로웠는데 사실 어느 정도는 그 외로움을 이용했다.

외로웠지만 외로워서 그들 눈에 띄지 않은 나의 위치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보이지 않으니 어떤 의무에서도 비껴날 수 있었고 보이지 않아서 심통을 부려도 그러려니 했다.

언니는 곰살맞은 성격은 아니지만 엄마랑 비슷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 보다는 내가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었다. 베푸는 걸 좋아했고 자기가 손해보는 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상대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퍼주고 받지 않음을 욕하고 서운해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언니에게 충분히 많이 받았고 나는 대부분 되돌려 주지 못했다.

나는 상대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면 줄 수 없었고 그런 베품이 어쩌면 상대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했고 행여 필요하지 않고 곤란한 시혜이거나 돌봄이라면 어쩌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냥 이기적이고 못된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언니는 무조적 베풀고 나누었다.

가끔 필요없는 것들도 있어서 받고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앞에서 거절하기 어려웠다.

티나게 서운해하거나 왜 받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대부분 좋았고 필요했지만 또 한편 굳이 없어도 상관은 없었따.

필요한 것을 하나 더 쟁여주는 느낌. 뭔가 몰라도 그만인 신제품을 알게되는 것

그런것이 사는 정이고 작은 즐거움이고 선물이지만 가끔은  버거웠다.


암튼 

그런 언니는 엄마를 돌보는데도 정성이었을 것이다.

자주 들여다보고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알아차려서 마련해주고 

좋은 곳을 데려가고 함꼐 나들이를 가고 

가끔 나도 끼어 함꼐 했지만 나는 그저 함꼐 끼는 사람이었고 늘 언니가 모든 것을 다 계획하고 준비했다. 

그래서 편하기도 했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혼자 위안하기를  계획에 잘 따라주는 것도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늘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언니는 나보다 평안해 보였으니까

가끔 엄마가 언니에 대해서 걱정하는 말을 들었지만 귀담아 두지는 않았다.

누구나 살면서 모퉁이가 있고 돌부리가 있는 걸 언니라고 없을까

언니가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도 그리고 삶을 살면서 순간순간 이건 힘들겠구나 라고 짐작했을 텐데 그만큼 잘 대비하고 있지 않을까 그냥 생각했다.

나는 늘 내 삶이 가장 중요했고 내 삶의 순간에 허덕이고 있었고 내 삶이 엿같은 순간들이 많았으므로 

언니는 늘 언니 역할을 하는 줄 알았다.

엄마는 누가 찾아가든 늘 똑같은 레파토리를 읆었고 이제 너무 오래 살았다고 말을 했고 (이제 팔순이다. ) 혼자 사는 것이 외롭고 무섭다는 이야기도 가끔 했지만 엄마의 성정은 여전히 죽지 않았고 지나친 걱정과 잔소리 그리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리고 자기말을 하는 것 등은 여전했으므로 그냥 흘려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없이 엄마가 이렇게 더 살아계실거라고 믿었다.

그건 엄마에 대한 애정이라기 보다는 엄마가 없는 나 자신이 상상이 가지 않고 두려워셔였던 것 같다. 

그냥 세상은 변하지 않을꺼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있을거야 라고 믿는 어린 아이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언니도 여전히 언니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언니같은 언니였고 누구를 챙기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명령하면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언니때문에 엄마가 힘들수도 있따고 가끔 생각을 했다.


나는 머리로만 돌봄을 이해했지 그걸 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내 가족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을 돌보는 것과 함께 있지 않지만 그래서 더 신경쓰이고 챙겨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더 힘들 수 있음을 나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가 화를 냈을 때 비로소 언니가 많이 힘들었음을 알았다.

그랬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들을 그때 현실로 받아들였다.

딱히 뭐가 힘드냐고 묻는다면 이거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힘든 일이 돌봄이다.

같이 병원가고 산책가고 음식을 챙겨주고 씻는 것을 돕는 것 그건 사실 몸이 힘들지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듣고 고통스러움을 듣는 일 

상대를 위해 하는 말들이 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도로 튕겨나오는 경험이 반복되고 내가 이 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들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엄마도 나름 언니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니 매사 괜찮다고만 하고 참기만 하고

언니는 그대로 그 마음을 알지만 속상하고 화가 난다.

그런데 동생들은 손님처럼 엄마에게 왔다가 가기만 하는 것도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까


나는 잘 모른다고 하면서 멀리 있다고 하면서 내 앞의 문제가 힘들다고 하면서 엄마를 잊었다.

잘 지낼거라고 믿었다.

언제나 똑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한해한해 나이 먹어가는 것에 대해 민갑해지면서도 엄마는 늘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들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는 무심했다.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폐를 끼지거나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내 식의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 이기심이었다. 모르니까 안해도 그만이라고 짧게 정의되는 짓들이었다.

언니처럼 부담스러울지 몰라도 귀찮을지 몰라도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챙기고 도와주는 것이 결국은 돌봄이었다.

사람은 참 간사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간절하게 외치다가도 누군가의 사소한 배려나 관심에 간쓸개 다 줄만큼 녹아내리기도 한다. 

귀찮게 찾아가고 챙기고 잔소리하는 것

돌봄이란 그런게 아니었을까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귀를 막고 이해할 수 업으니 괜한 참견은 하지 않겠다는 깔끔함보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어서 다가가고 만지고 뿌리쳐지는 것들이 반복되는 것

고통의 곁이 하는 진정한 역할은 그게 아닐까

엄마가 고통은 아니지만 언니는 혼자 지쳐가는 곁이 되었고 스스로 고통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엄마와 언니는 서로의 고통이고 서로의 곁이었고

이기적이고 못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 1따위였던 거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으로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삶은 일단 몸을 쓰고 움직이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가장 최선을 찾기보다

일단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더 많다.

뭐라고 해야 잘하면 계속 하면 되고 못하면 다시 바꾸고 조절하며 해나가면 된다. 


책을 읽으며 고통에 대해 그리고 고통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과 그의 곁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보다

못되고 이기적이 나를 생각하고 부끄러웠고

오지랍이야  잔소리가 많아  왜 저렇게 살까 싶었던 언니와 엄마를 떠올리며 

한없이 쪼그라 든다.

전화 한번 더하고 한 번 더 찾아가서 잔소리하는 것

방이라도 치워주고 나가지는 않아도 창밖의 햇살을 함께 누리는 것

고통은 아니어도

돌봄은 그래야 하는게 아닐까 

거기다 돈까지 쓰면 더 좋고


속되지만 그런 것들이 더 필요한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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