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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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양하게 읽힌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에즈미의 성장이야기로도 충분히 의미있고 재미있다.

엄마없이 아빠와 함께 자란 어쩔 수 없이 아빠의 일터에서 숨어서 성장하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딸의 성장에 당혹스럽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곤란한 아빠가 주변 성숙한 여자 어른의 조언으로 주인공을 기숙학교로 보낸다. 기숙학교는 권위있고 명망은 있을지 모르지만 매우 엄격하고 자비가 없다. 자유롭게 성장한 영혼이 망가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당연히 우리의 에즈미도 조금은 망가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무한 돌봄을 베푸는 리지에게 의지하면 다시 스크림토리엄에서 생활을 이어나간다. 단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세상을 만나고 마침 불어오는 여성참정권운동과 마주하고 그 물결에 휩쓸리다가 고민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행동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나는 단어를 선택하고 지키는 사람이다. 그 선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에즈미는 자기의 욕구에도 눈을 뜨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아들인다. 자유로움을 맛보고 그 가치를 알아차리는 시간이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만 사전에는 실릴 수 없는 말들을 수집하고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수집은 그녀의 방식으로 여전히 트렁트 속에 갇혀있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입양보내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스크립토리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임신하고 아이를 낳았으니 어머니인데 결혼을 한 적이 없으니 어머니가 아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단어는 세상에 없다.

나는 세상 어떤 단어에도 속할 수 없으며 동시에 어떤 단어라도 내가 될 수 있는 굉장히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점점 더 단어속으로 침잠할 수 밖에

그리고 인쇄공 개러스를 만난다 조용하게 자신을 알아주고 자기가 모으는 잃어버린 단어들의 의미를 아라봐주는 사람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그때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이다.

개러스의 청혼은 어떤 청혼보다도 낭만적이다.

(상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장 의미를 두는 것 그리고 가장 바라는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고 이뤄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에즈미는 단어에 포함되고 단어에 구속된 어쩌면 세상 모든 단어들의 여자노예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기꺼이 일생을 그 역할에 바친다.

세상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고민하고 섬세하게 선택하는 사람

이미 선택된 의미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

그리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단어들을 모아서 결국은 세상으로 내보내는 기초를 마련한 사람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어쩌면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많은 단어들이 이제 그녀를 기억한다.

 

 

세상에는 적극적이 투쟁도 있지만 보이지 않은 소극적이지만 지속적인 꾸준한 투쟁도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가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여전히 언제나 여기에 있었다.

내가 쓰는 언어를 너는 얼굴을 찌푸리거나 외계어를 듣는 듯이 어리둥절하고 말도 안된다는 듯이 무시하겠지만 나에게는 나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방식이다.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지 않을 수 있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고 얼굴이 찡그려질 수 있겠지만 존재는 인정하라

모든 언어는 모두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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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차를 타고 이동해온 피로감이 묻어 있는 얼굴들을 비춘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레임은 없다.

그냥 지쳤다.

넓기만한 평야를 지나 내린 곳은 지나쳐 온 곳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덩그렇게 이동식 주택이 놓여있다.

 

병아리 감별을 하면 암놈은 살고 수놈은 갈아 없애버린다.

쓸모가 없어서다.

맛이 없어서라고 아이에게 설명하지만 알을 낳지 못하는 수놈 병아리는 무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아빠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빠는 그 가치를 아칸소에서 농장을 일구는 일로 정했다.

매일매일 병아리 똥구멍을 만지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내 땅을 가지고 내 일을 하는 것

그건 미국의 아버지나 한국의 아버지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지나 다 마찬가지다.

아버지로서 자부심과 권위를 보여주는 일 그건 중요하다.

병아리 똥구멍이나 만져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이 많은 돈을 남기더라도 말이다.

 

어머니는 마뜩치 않다. 아픈 아이가 있고 교육시켜야 할 자녀가 있고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활기반이 중요하다.

불규칙하고 보장되지 않은 수입에 자신이 없다.

어쩌면 아픈 아이나 교육환경따위는 핑계일 수도 있다.

그녀는 이 생활을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할 때 그 뒤에서 묵묵히 감내해야하는 희생을 필요로 한다.

당연히 그 희생은 그녀의 몫이다.

농장을 일구고 몸을 쓰는 노동을 하는 남자의 모든 행동들은 가시화되고 가치가 매겨지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챙기고 적은 돈으로 살림을 꾸리고 일상을 이어가는 여자의 노동은 보이지 않고 가치를 매기지 못한다. 더불어 남자를 응원하고 사기를 돋우어야 하는 감정노동 또한 그녀의 몫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뭔가 해보려는 가장에게 도전하고 반대하는 일은 옳지 않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가족이니까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건 가치가 있는 일이므로

그래서 그녀는 아칸소의 농장이 싫고 트레일러 집이 싫다.

토네이토에 흔들리고 날아가버릴 불안정한 주거가 너무 황량하고 물을 대기 힘든 넓기만한 땅덩어리가 그녀에게는 그냥 짐덩어리일 뿐이다.

 

부부는 싸우고 아이들은 방으로 도망가서 귀를 막지만

결국 다시 아침은 오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은 포기하게 된다.

 

미국으로 이민올 때 둘은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어주자고 했다.

여자는 남자의 구원이 되었다고 믿지만 남자는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가족을 위해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한다. 게다가 그 일은 쓸모없는 수놈들을 갈아버리도록 솎아내는 일이다. 어쩌면 남자는 그 일에서 솎여지는 것이 병아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여자와 아이의 편안한 일상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고 가족을 구원하고 있다고

그래서 돈이 모였을 때 스스로를 구원하리라 생각했을까

여자는 어쩌면 전형적인 주부라는 위치는 가족을 구원하는 것이 직업일 수도 있다.

기꺼이 희생하고 돌보고 챙기는 모습을 위대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희생했다면 자신을 위한 뭔가의 댓가가 있어야 하는데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생활기반이 있는 곳 한인교회가 있는 곳 아픈 아이가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곳

결국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가지 구원이 부딪치면서 갈등의 골을 깊게 판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에서 여자의 엄마 순자가 도착한다.

사실 순자 캐릭터는 우리에게 낯선 할머니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김혜자 같은 할머니도 있지만 김수미 할머니도 있고 김용림할머니도 있고 김영옥 할머니도 있다.

푸근하고 한없이 베풀는 할머니

앞치마를 두르고 쿠키를 굽는 것 차를 끓이는 할머니 말고

욕설을 하고 손자들 등짝을 때리고 함께 싸우는 할머니도 있고

냉정하게 이용하는 할머니도 있고 그렇다.

순자는 어떤 할머니라고 단정짓기 힘든 복잡한 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리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누구가에게는 한없이 여리고 순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독하고 모질기도 하고 누구를 속이기도 하고 어디서는 속아넘어가기도 하는 것 사람은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존재이므로

순자도 그런 할머니다.

딸을 위해 쌈짓돈을 모아와 건네고 기꺼이 멸치와 고춧가루를 짊어지고 태평양을 건너지만

손자에게 이겨먹고 싶고 손자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욕설을 섞어가며 고스톱을 가르치는 할머니

결국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만 그 희생과 노력이 때로는 모든 걸 앗아가게 만드는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 사람이다.

순자는 농작물을 태우기도 했지만 그 한 구석에 미나리를 키우던 사람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구원과 희생 꿈과 쓸모를 생각하던 부부보다는 입체적이기는 하다.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화분도 분갈이 한 후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시들어 버리거나 뿌리가 썩을 수도 있다.

낯선 곳에서 뿌리내리기

어쩌면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살수도 있다는 희망은

그곳도 이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 어디서나 쓸모가 존재하고 가치는 순위가 매겨지고

내 존재를 드러내는 꿈이나 야망 따위는 필요하다.

가부장은 어디에서나 의미가 있고 남자들이 쫒는 꿈이다.

남자의 농장은 그의 힘의 상징이고 권위의 상징이고 존경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꿈을 쫒던 여자도 여기서도 거기서도 주부이고 아내이고 엄마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운이 좋은 날 여자는 말을 한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좋아서 덮어지는 일이란 나빠지면 다시 도드라지게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합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덮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의 이 행복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여자는 아이와 함께 떠나겠다고 한다.

그리고 농장에 불이 난다.

자 문제가 다시 도드라졌다.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리고 희망을 찾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지워지고 리셋된다.

함께 거실에 모여 자는 네 식구를 순자를 내려다 본다.

어쩌면 아니 어쩔 수 없이 네 식구는 다시 보통의 가부장이 있는 가족으로 돌아간다.

아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남자는 머리가 아닌 기구를 써서 우물을 찾는 백인남성을 고용했고 그 자리에 여자도 함께 한다. 남자는 순자가 피워낸 미나리를 발견한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좋은 자리를 잡고 저절로 자라는 미나리

때로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무섭다.

뱀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불안해서 다가갈 수 없지만 뱀이 보이면 아 저기 있구나 하고 그 이외 곳으로 돌아다녀도 된다. 보이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도 있고 보이면 오히려 왜소해 보이거나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성공과 실패와는 상관없이

 

가족의 갈등이 드러났을 때

더 이상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서로가 꿈꾸는 그곳이 다르고 꿈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그리고 내가 무엇을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알았을 때 오히려 개운하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자라날 것들은 자라난다. 미나리처럼


충동적으로 보러간 영화관은 본의아니게 혼자 독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엔 상영하지 않은 줄 알았고 나중에는 조금 무서웠다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자유로웠다.

혼자라 마스크를 살짝 벗어도 괜찮았고 살짝 가져간 젤리를 먹어도 괜찮았고 그리고 점차 영화속에 빠져들면서 혼자라는 것도 잊었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행복한 결말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막막한 결말일거고  그냥 또 밋밋하거나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은 저마다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고 가치가 매겨진다

내게 영화는 생각보다는 먹먹했고  조금은 서툴러 보이는 연기들이 오히려 영화분위기와 썩 어울려 보이면서 동시에 왜 이렇게 그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을까 의아했고  

그리고 그날 그 시간 내 위치와 감정에 따라 이 결말이 조금 슬펐다,



역시 영화는 극장에서 볼 일이다.

화려하면 화려한대로 오감이 만족될테고 밋밋하면 밋밋한대로 집중이 쉬워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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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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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게 오픈되어버리는 상황이 된다면?
우리속의 숨은방이 때로 예의가되기도하지만 그속에 숨기만 할게 아니라 문을 열어도 구끄럽지 않을 단단함이 더 필요하다.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의 나 그게 진짜 나나는게 부끄럽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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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번 써봅시다 - 예비작가를 위한 책 쓰기의 모든 것
장강명 지음, 이내 그림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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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은 엥? 했었는데 비소설은 의외로 매력적이다. 글을잘 써야겠다는 마믐보다 그래도 계속 써야겠다는 마음. 오래 버티고 꾸준함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글쓰기가 아닌 면에서도참고될만한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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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조원희 지음 / 만만한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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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저 사람이 죽어야 풀어질 미움이 엉겨서 내 속을 꽉 채운다. 다른 감정이 들어갈 틈이 없게. 미움은 결국 내가 선택한 감정이다. 나는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 용서가 아니라 잊어버릴 수도 있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다. 나는 미움을 던졌고 이제 니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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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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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6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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