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한 번 쯤은 기사로 흘러다니는 이야기로 접했을 주제를 페미니즘이라는 틀로 다시 들여다 본다. 

메갈의 탄생과 과정 그리고 그들이 받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언제나 페미니즘과 함께 이젠 짝꿍처럼 따라다니는 여자도 군대를 가야 진정한 평등아니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 있고

모든 일에 관여하는 진보논객들이 유일하게 침묵하고 스스로 조용하게 자성한다는 분야가 페미니즘이다.

정치도 빠질 수 없고 섹스에 대한 공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다양한  성지향성을 가진 소수자의 위치 성노동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속물적인 본성을 언제나 여자에게만 향하는 현 관점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과연 진짜 페미니즘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중에 가장 흥미가 갔던 것은 폭력이라는 커다란 범주에서 볼 수 있는 데이트 폭력부분과 그와 연결해서 함께 생각해 볼 진보 논객의 입장과 성노동의 합법화의 주장의 당위성과 그 주장의 한계를 짚어본 두가지 꼭지였다.

 

 

 

언어가 만들어지면 피해는 발견되고 급증한다. 일상적이었던 것이 언어화되었을 때 그제야 특별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생성은 개인과 개인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 맺음과 무기력한 소통 과정으로 인해 피해의 심각성이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터져나오는 폭발적 저항의 결과이다. 언어는 중립적인 듯 보이지만 그 언어에 연루된 사람 위치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활용되는 매우 정치적인 속성을 품고 있다. 과거 가정 폭력과 데잍 폭력이 사랑과 로맨스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었음을 상기해본다면 언어야말로 문화 담론의 헤게모니를 함축하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저항적 언어가 만들어지고 알려지는 것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관계에 대한 도전으로 진단되었기 때문에 '역차별'  ' 꽃뱀' 그리고 무수한 '00맘' '00녀' 시리즈등 여성 혐오적인 공격으로 되돌아왔다. 문제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저항의 언어가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많은 문제들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극에 다다른 또 다른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명명되지 않고 재개념화되지 않은 성차별적 문제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것이 언어화되는 만큼 사적인 공간에서 여성혐오와 폭력은 저항에 대한 효과적인 제압 방식으로 개념화 되면서 폭력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남성성은 가족과 학교에서 남자다워야 한다고 주입되는 성역할 포르노그라피등을 통해 전달되는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스포츠 군대를 경험하는 동안 조직적 위계적 관계등을 습득하면서 연습된다. 연습돤 남성다움은 일정한 때가 되면 이성애 연애 관계에서 비로소 실천 되는데 돈을 더 쓰고 가방을 들어주고 어두운 밤길을 데려다 주면서 보호자의 권한을 확보한다. 더군다나 여성은 성적으로 무지하거나 자신의 성적 욕망에 둔감하다는 믿음 아래 여성의 No는 Yes 를 의미할 뿐으로 여성은 성적으로 가르쳐주고 리드해야할 대상이 된다. 이런 남성성은 훗날 이성애 가족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밀봉해지는데 자녀와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과 더불어 그들을 통제할 권리와 결합되며 완성된다.

 

남성성은 저절로 생성된 것이 아니며 위계적 남성성을 추구하도록 독려하는 구조 속에서 순환된다. 여성학자 벨 훅스는 직장등의 공적인 세계에서 권력적 관계로 인해 굴욕감을 느끼고 심리적 학대를 받은 남성들이 폭력을 억누르고 있다가 통제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을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서 순환된다고 말한다. 더우기 경쟁속에서 생존해야만 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구조 아래 실업이 증가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분노읙 ㅏㅁ정이 친밀한 관계에서 해고나 보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에게 분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성성이란 타고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 위치를 점유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이 수행 과정에서 데이트 폭력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남성다움의 전형적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강한 남성이 미인을 얻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약한 여자를 보호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자만은 결국 의사소통의 거부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트 폭력이란  살짝 밀친 장난이거나 타이름이거나 터프한 성적 관계이거나 오빠가 생각하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정당화 된다. 따라서 데이트 관계에서 성폭력이라는 명명은 더더욱 성관계를 동의한 여성의 변심과 모함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폭력 연구자들이 재차 말해왔듯이 폭력은 악이 아니다. 폭력은 악이 아니라 구조다. 연애와 사랑등 아름다운 이름으로 회자되고 성역할이라는 이름으로 착취의 흔적을 지우려 하겠지만 비대칭적인 젠더 구조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호명으로 만나는 이성연애가 착취적이지 않으려면 각고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자연스러운 연애는 성별화된 연애의 수행이기 쉽다. (중략)

데이트 폭력 담론에서 폭력을 예외적인 악으로 구정하고 가해자를 '가해자'로 굳히는 일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폭력을 구조로서 이해하고 구조안에서 자신이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면 가해자의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가해자의 성찰이 곧 구조의 변화이고 균열일 수 있는 건 이때문이다.

                                                    남성진보논객과 담론 헤게모니

 

폭력 폭력  누구나 말하고 알고 있지만 그 폭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저 물리적으로 힘으로 누군가를 제압하고 누군가에게 보이는 상처를 입히는 것 맞고 때리고 꼬집어서 상처가 생기고 벌겋게 자국이 남는 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를 사랑해서 가르치는 것 바꾸려고 하는 것 도와주려고 하는 일들 그리고 내가 예의있게 하기 위해 모른 척 하거나 내가 나서면 안될거 같아서 눈을 감았던 일들

순간적인 감정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냈던 일들 그리고 나서 나는 다 잊었으니 나는 뒤끝이 없는 깔끔한 인간이라는 근거없는 믿음

사랑하니까 아끼니까 보호하기 위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거 아니냐는 일방적인 믿음과 신념들

그 모든 것은 폭력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계속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연습해야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하고 있다고도 믿는다.

나는 알잖아.. 그런데 행동은 다르다.

나는 사랑을 주었는데 상대는 공포를 억압을 폭력을 받기도 하는 걸 모른다.

그리고 그 폭력을 목도했을 때 눈을 감는 것 역시 폭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옹호하며 피해자의 맞은 편에 자기가 위치한다는 것을 모른다.

폭력을 행한 사람이 악이고  특별한 경우라고 믿으며 그 특별한 행위때문에 모든 다른 이들이 함께 뭉뚱거려 같은 집단이라고  명명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 것도 때로는 폭력이 된다.

내게 이익이 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페미니즘으로 인정되고 내가 불편하고 힘든건 너무 막 나가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구분짓는 것 역시 그렇다.

내가 아프지 않으니까 폭력이 아니야.. 라고 믿는 어린 아이들이 많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서 나는 잘 못 느끼니까 그런 건 없다고 믿는 것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고 그 신념하에 행한 행동이니 당연히 상대도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

세상엔 다양하고 소소한 폭력이 여전히 많이 있다.

절대 폭력의 얼굴을 하지 않은 채로..

페미니즘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폭력이 얼마나 다양하고 일반적이고 때로는 찌질해보이는 것까지 있는지 생각해본다.

 

성매매 문제를 성 노동이라고 봐야 한다는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의 문제를 국가가 관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다만 비합법적이라는 것만 없다면 개개인의 자율하에 하나의 노동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꼭지인 성노동 비범죄화 안될 일이다 를 읽으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성매매 (성 노동)이라는 것이 깔끔하게 성을 구입하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금전적으로 혹은 관계적으로 동의만 있다면 성을 사고 판후 깔끔하게 돌아서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배가 고픈 사람이 편의점에서 원하는 삼각김밥을 골라서 돈을 지부하고 그것을 먹고 나오면 되는 일과 성매매는 또다른 형태의 활동이다.

성 매매에는 포주라는 또다른 기생적 관계가 붙어 있다.

그리고 집창촌의 성매매가 아니라 단란주점이나 그 외 아가씨가 나올 수 있는 여러형태의 업수들이 존재하고 매매라고 한다면 일차 술자리가 아니라 이차 함께 외출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 일차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여러일들을 성매매로 볼 것인가. 아니 볼 수 없다면 그 때 일어나는 여러가지 폭력적이고 불합리하며 갑질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결국 성매매의 문제도 존중이 존재하지 않은 폭력의 문제가 연결된다.

내가 돈을 주 고 산건  매매자와 매수자의 깔끔한 성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그 만큼 나는 원하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심이 들어있고

관계까지 안 갔으니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떳떳하다는 이중적인 심리가 들어있을 수 있다.

결국 성 매매는 성만 매매 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폭력과 가학적이고 치욕적인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는 일이다.

다만 성매매 (혹은 성노동) 단순한 하나의 경제생활을 수반하는 노동으로 본다는 것은 그 일부만 보는 것이다.

어렵다.

 

결국 읽다보면 늘 느끼지만 페미니즘이란 여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 함께 소외된 사람없이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다.

세상은 내가 경험하고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내가 편하고 정의롭다고 믿는다고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어딘가 불평등이 있고 소외가 있고 폭력이 있다

내가 알고 고의로 행한 것도 있고 나도 모르고 행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믿는 신념때문일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말...

하기는 쉽지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쉽고 편하고 익숙한 걸 택하는 존재다.

그제 본 영화에서 그랬다.

달은 늘 그저 같은 달일 뿐인데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자꾸 변한다고 한다.

변하는 건 달일까 달을 보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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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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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반전이나 트릭을 기대하진 않는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정서를 보며 감탄한다. 오래된 미스테리물이라 진부하고 고전적인 구성과 묘사도 있지만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희노애락 오욕칠정은 늙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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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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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뭐지?

그건 삶의 슬픔이나 유머따위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맞다. 그렇구나. 싶었다.

바라보는 사람이 서있는 위치, 그의 눈의 높이 그리고 그 순간 그가 가진 정서과 사고가 삶을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만들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것과 그리고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스펙타클하다거나 로맨틱하지 않다.

통속적이고 진부하고 누구나와 다른 바 없는 비슷비슷한 상투성의 연속인데

사람들은 자기 삶만은 다르다고 믿고 싶고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삶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내 삶이 진부하고 보잘것 없다고 믿는다면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책을 왜 읽었지?

책의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했다.

모두가 최고의 책이라고 했고 심지어 오바마도 최고라고 했다는 말에 심하게 혹한게 아닐까 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묘사들과 결혼생활이라는게 섹스가 중심이 되어 그것만이 전부인것처럼 이어지는 것도  불편했고  '운명'편의 주인공인 남자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것도 지루했다.

그냥 반납할까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흐름을 타고 계속 읽게 된다

 

이야기는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분노의 타이틀로 여자의 이야기를 쓴다. 남자의 이야기는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일대기 방식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순간순간 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남자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속물적이다.

1장에서  사람스러운 남자 랜슬럿  이름마저 주인공이 아닐 수 없는 토로는 멋지게 좌절하고 성공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죽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빨리 죽을 지는 몰랐다.

그가 중심이 된 이야기속에 그의 아내 마틸드는 어떤 면에서는 쌍년이었다.

느딧없이 등장해서 아름다운 청년을 사로잡고 결혼하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게 죽음이 갈라놓을때 까지 함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둘은 정말 진실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했다. 타인의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리면서

2장은  쌍년인지 내조자인지 헷갈리는 마틸드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아닌 뒤죽박죽 흘러간다

어릴적 모습이었다가 과부가 된 지금의 이야기였다가 다시 젊은 시절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이야기였다가 뒤죽박죽이지만 오히려 그런 구성이 그녀를 더 잘 보여준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헛헛함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어릴적 치기어린 행동으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춥고 낯선 환경에 버려진 토로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 채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기저기 위탁을 다니며 어느 순간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하는 여자가 만난다.

타인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더없이 드라마틱하고 멋진 플롯이 되지만 그것이 내 삶이 되는 순간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삶은 없다.

 

아름다운 사람 무책임한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조용히 사람을 밟아버리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력있고 순종적이며 내조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세익스피어가 인용되고 신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어쩌면 멋지고 매력있게 보이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 문장들속에 주인공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멋지고 아름답지만 딱 거기까지....

읽는 동안 지루했고 재미있었고 긴장도 했지만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대로 잊혀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다만 남는 것들은

어릴 적 애착관게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겠구나 

잘못 형성된 애착관계와 도식들이 삶을 어떻게 흔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남의 삶을 바라볼 때 결국 그건 내가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를 바라보면서 세상엔 내가 아는 것을 제외한 더 큰 세상이 존재하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 이외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토로와 마틸드를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만큼 매력적인 레이첼과 샐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받고 알아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내가 살 수는 없다.

결국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한계도 함께 알아간다.

 

인물은 매력적이지만 이야기는 글쎄.... 호들갑스러운 찬사들은 나랑 맞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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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3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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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원작이 풜씬 좋다.

그럼에도 영화가 별로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많이 축약되고 인물들도 줄어들었지만 원작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결은 그대로 가지고 간다.

내가 여사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범행에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형의 집행은 찬성하지 않는다.

어떤 죄를 지었던 그것을 다시 죄로 갚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성이 앞서고 논리적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가장 납득할 수 있는 개인적인 사형이다.

 

영화가 좋았다고 생각되어지는 점은 추리라는 점에서는 어설프고 보여주는 장르다 보니

우리의 노쇠한 포와르가 너무 많은 액션을 펼쳤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유괴당해서 살해된 어린 소녀와 그로 인해 망가지고 파탄이 나버린 가족에 대한 절절한 복수가 이만큼 이해되고 공감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스포가 포함된다)

 

모두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가누며 칼을 겨눌 때

그들의 슬프고 애절한 표정과 몸짓은 가장 감동적이다.

아름답고 잊을 수 없는 손녀를  기억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회한을 담아 무두 손에 피를 묻힌다.

그렇게 관련자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목적으로 서로를 모른 척하며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닫힌 공간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더 매혹적이고 애절하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다면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들은 이제 낡았고 다들 알만한 클리세가 되어버렸지만 범인을 쫓는 긴장감보다 사람사이의 관계  사람들간의 감정의 흐름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모든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어서 소설을 읽는다.

그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입장이 되는 방법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만큼 미운적이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서 가슴 한가운데가 아프기만 하고 무력하기만 했었다면

세상의 불의앞에 나서지 못하고 약하고 소심하게 눈을 돌린 경험이 있다면

추리소설이 더구나 이렇게 고전적이고 맬로적인 추리소설이 보여주는 세계는 좋은 공감이 되고 카타르시스가 된다.

 

모든 선악을 구분해야하고 범인은 언제나 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

고지식한 우리의 포와로가 또다른 추리를 내놓을만큼 어쩔 수 없이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번 사건은 그래서 걸작이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아니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미셀 파이퍼의 마지막 열변때문일까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엔 아니라고 아니라고 머리로는 판단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우리는 참고 견디며 기다리지만

그렇지 않고 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 갈등을 견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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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1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작 인정 !!!!!!!!!!

푸른희망 2018-01-11 18:53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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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감독이냐? 고 누군가 묻느다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주저된다.

좋아한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그런데 의외로 그의 작품을 많이 봤다.

개봉한, 그래서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다 본 듯하다.

처음으로 본 영화가 "걸어도 걸어도"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고 재개봉한 "환상의 빛"을 보았고  집에서 " 어쩌면 일어날지몰라 기적" 을 보았고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았고 최근에"태풍이 지나가면"을 보았고 또 한편이 개봉한다기에 (이미 했나?) 소심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보고 싶긴 아지만 아이들만 남겨진다는 상황이 마주하기 두려워서 보지 않았다.

 

이러면 좋아하는 감독이라고 해도 될까?

그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좀스럽고  별 일이 아닌 사적이고 가족간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참 공들여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는

신간센이 마주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날거라고 믿는다거나

큰 아들의 기일에 가족들이 습관처럼 모여 밥을 먹고 하나마나하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상처주고 모른척 하는 일이나

죽은 남편이 왜 죽었는지 곱씹고 또 곱씹는 이야기들 (그러면서도 일상은 평온하게 꾸리고 사는)

이혼한 아내와 다시 붙어볼까 궁리하다가 늙은 엄마의 재산을 노리기도 하는 한심한 조사원도 있다.

물론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이야기도 있고 배다른 자매들의 새로운 시스터후드 스토리도 있지만

사실 남의일이다. 라고 생각해버리면 별로 관심가지지 않을만한 이야기들이다.

 뭐 저런 일도 있구나 싶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마는 이야기들인데

화면속에 이야기가 흐르는  그 시간만큼은 딱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되지

그의 이야기속에 어른들은 속물이고 소소하게 집요하며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 아직도 철이 들지 않고 어딘가 못미더운 구석이 있는 어른들이다.

그 반대로 아이들은 의외로 강단있고 스스로 꿋꿋하게 자란다.

 

그의 이야기는 모든 것에 다 성장 스토리다.

아이들은 기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마다의 사정으로 알게 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성장이라고 뭔가 대단히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는게 아니다

어제와 다름 없는 오늘이 펼쳐지고 그저 어른들의 행동이 조금은 납득이 가고 그렇게 맞추어지는 조금은 서글픈 성장이다.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알게 되거나 (태풍이 지나가고) 나중에 하면 되지 하고 쉽게 내뱉았던 말들이 이젠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걸어도 걸어도) 뭐 그런 종류의 하나마나한 성장이지만 그래도 그 전 시간과는 조금은 달라지고 뭔가를 알게 되는 순간을 지나간다.

그의 영화속에서 시간은 그렇게 한 줄로 서서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되풀이되고 반복되면서 켜켜이 쌓여가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

도무지 바뀌지 않을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어제와는 미세하게 달라진 오늘이 있고 아마도 내일도 딱 고만큼 달라질거라는 그정도의 기대... 그런 서글프고 시시하고 어쩌면 그래서 안도할 수도 있는 어른의 시간이다.

 

아 시시해..

그의 영화를 보고 어두운 극장알 빠져나와 햇살이 부시어서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렇게 중얼거린다. 뭔가 그럴듯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 시간을 지나 또 그렇게 비슷한 시간앞에 내가 서 있었다.

두시간동안의 환상이나 짜릿함 통쾌함 혹은 설레임조차 갖지 못한채

반복되면서 쌓여가는 어떤 시간을 지나 겨우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럼에도 자꾸 그의 영화를 보게 되는 건.. 나름 코드가 맞다고 봐야 할까?

그의 책도 그의 영화와 다른지 않았다.

그 전작인 수필에 나온 에피들이 많이 겹치고 여기서도  그는 늘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한다.

대단한 가치가 있지 않아도 무의미한 것이라도 세상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

영화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좋다.

뚜렷한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악할 수도 있고 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마음에 든다

주인공은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좋고... 꽤 공감할 구석이 많다.

이게 맞는걸까 이렇게 영화를 찍어도 될까

어쩌면 관객은 그저 흘려보내며 지나쳤을 장면에 대해 대사에 대해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도 조심하고 의미를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 대한 글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혔고

그의 방송에 대한 영화에 대한 생각들은 지루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영화를 통해 어떻게 이익을 얻는가 하는 부분의 글은 참 현실적이었다.

일본 영화 산업과 한국영화산업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 큰 돈을 벌거나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큰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영화만을 고집할 수도 없고

한편의 영화가 흥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것 떼고 저것때고 나면 남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들까지 참 현실적이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지난해 열심히 보았던 티비 프로그램중 하나가 < 전체관람가>였다.

이름을 들으며 알만한 감독들의 단편영화 만들기가 그 내용이었는데

한편한편 단편을 보는 즐거움과 함께 영화 감독으로 살기도... 나아가 영화를 하며 삶을 살아가는 일도 참 쉽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혼자 뚝딱 만들어내고 혼자 실패하면 그 뿐인게 아니라

많은 스텝들이 함께 해야하고 모두게 저마다의 역할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조율하고 맞춰가고  참아내고 주장하며 만들어내야 하는 현장이라는게 참 고달프겠구나 싶었다.

그저 쉽게 보는 영화 한편이 얼마나 많은 고생과 땀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알고 나면 쉽게 평가해버리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도 생각한다.

그저 두어시간 어두운 극장에서 시간을 보낸후

잘 되었네 못되었네 하는 말들이 얼마나 독일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힘들게 만든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서늘한 현실감도 느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지 좀 되었다.

슬슬 어두운 극장에 앉아 지금 여기와 다른 이야기속에 빠져서 혼자 행복할 두시간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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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2019-06-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맘을 옮겨놓은듯한 글 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