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공감하는 것과 사실을 이야기하고 판단하는 것

그 차이를 드라마에서 배운다

<굿파트너>를 혼자 보면서 차은경과 한유리의 대화법에서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

차은경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을 한다.

그가 딸 재희와 하는 대화는 나와 내 딸들의 대화와 비슷했다.

아이가 힘듦을 이야기하면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해결사 모드로 전환한다.

엄마라는 것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앞에 어떠한 문제도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없어서 절망하고 화가 나는 것

나에게 선택지는 그 두가지 뿐인데 아이가 점점 자랄 수록 나는 후자밖에 할 수 있는게 없어졌다.

해결은 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간의 문제란 점점 진화하는 것이어서 점점 복잡해지고 오묘해지고 잘잘못의 구분이 부명하지 않다. 문제라고 여기는 지점 역시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도데체 그것이 왜 문제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아이에게 좋은 해결사도 못된다.

해결해야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고통이다.

차라리 어려워서 노력하고 연구해서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괜찮은데 이건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연구하고 시간을 쏟아부어도 답이 없는 경우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고 무력해진다.

그때 화를 낸다.

넌 도데ㅔ 왜 그런 문제에 매달리는 건데

그게 뭐라고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 니가 지금 그럴 때야?

물론 드라마속 차은경은 나보다 이성적이어서 그리고 여유가 있는 엄마여서 그런 막말을 쏟아내지는 않지만 딸 재희앞에서 자꾸 무너지고 해결중심으로 접근한다.


반면 딸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 한유리는 재희와의 대화에서 공감을 해준다.

무엇도 질문하지 않고 재희의 말을 그대로 반영한다.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자기개방을 하고 그때 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내가 얼마나 무력하고 화가 났는지를 이야기해준다.

어쩌면 재희가 원하는 건 그 문제 내가해결해 줄께 가 아니라 어머어머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랬어, 그래서 내가 알아 그거 되게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야 라는 말들이었다.

한유리의 공감대화는 재희의 마음을 열었고 재희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너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문제는 어른들이 해결할 일이고 너는 너가 원하는 대로 하면되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것ㄴ 역시 그들이 알아허 할거야 라는 말을 근사하게 풀어준다.

너가 가장 우선인 부모들이니까 너의 결정으로 두 사람이 상처받는 일은 없다고 너의 선택을 가장 존중할거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공감의 대화와 문제해결의 대화의 다른 점을 두 사람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법정에서 의뢰인을 앞에 놓고는 두 사람은 다른 위치가 된다.

그 자리에서는 차은경의 문제해결의 대화가 더 필요하다.

공감도 필요하지만 의뢰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온 사람이다.

그때는 차변의 말대로 내 감정 내 입장은 넣어두고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바라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 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모를 수 있고 

알지만 말로 잘 풀어내기 어려울 때도 있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빙빙 돌릴 때도 있다.

차변은 정확하게 그  지점을 알아낸다.

사실 상대의 문제를 잘 파악하는 차변 역시 공감을 잘한다고 할 수 있다. 

한변은 상대의 말을 내 관점에서 걸러서 다시 재 조립해서 듣는다.

아이를 서로 맏ㅌ지 않겠다고 싸우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는 그의 말은 부모란 모름지기 아이를 서로 원하고 양육하고 싶어해야한다고 하는 신념ㅔ 차있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걸 아직 알지 못한다.

이때만큼은 한변의 공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양의 퍼즐조각처럼 서로 많이 다른데 그래서 서로가 필요하다.

서로 원하는 지점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런 콤비 플에이도 서로가 적당한 경계선으로 나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즉 두 사람이 가족이 아니기때문에 가능하다.


가족이란 그냥  뒤엉켜져 있어서 어디까지가 내 경계인지 모호한 집단이다.

차은경이나 한지상은 둘 다 재희가 내마음이라고 믿는다.

불안한 구석이 있지만 내가 그동안 보살핀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아이가 나를 이해할 거라고 믿고 있다. 나와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서도 상대가 내 입장을 이해할거라고 잘 알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부부이고 가족이라고 믿어서 갈등이 깊어졌다.

상대는 나와 다르고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건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서운한 마음까지  안고 함꼐 할떄 가족은 오래 간다.


한지상에게는 차은경이 가져오는 경제적 안정은 당연시 되었고 그에 더불어 흔히 모성이라고 하면 드러나야할 아이에 대한 무한정한 애정과 희생까기 기대했다.

차은경 역시 한지상의 육아와 살림에 대한 책임을 어느 순간 당연시 했다.

내가 이렇게 서포트를 하고 있고 내 시간이 없을만큼 일에 매달리는 것은 다 가족이 편안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게,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그걸 몰라주는 것이 서운했고

늘 육아와 살림은 당연하게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모책임하고 무신경함에 서운했을 것이다. 

서로 가족이 그러해야한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한다 라는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서로 달랐다. 


그리고 


차은경은 엄마로서 경험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먼저 사회적인 성공을 했고 사회에서 일을 하고 얻는 성취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공감보다는 문제해결에 뛰어나고 그 능력으로 지금껏 살아왔따.

그런 그에게 육아를 하면서 집에 있으라는 건 사실 날개를 꺽는 일이다.

사람마다 능력치가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집보다 직장이 더 편하고 성취감을 주는 차은경은 아이와 보낸 육아휴직 기간이 행복했지만 동시에 자신은 사라지고 없는 상실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육아란 온전히 타인에게 집중해야하는 노동이다.

그냥 잠깐 보면서 귀엽고 즐거움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차은경과 재희의 관계처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뒤톧수를 한대 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지칠 수도 있고  절대 어떤 풀이과정도 맞지 않은 난제 일 수도 있다. 

그런 간계에서 에너지가 고갈된다.

사실 양육은 내가 얻는 즐거움과 보람만큼의 에너지를 그대로 빼앗기는 일이다.

아이가 마냥 이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니다.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아이. 나의 도움이나 관심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고 생존마저 위태로운 존재. 자라서는 엄마의 역할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엄마가 하면 당연하고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심어주는 시화분위기와 여러가지 거지같은 이론들이 부모를 옥좬다.

그냥 이뻐하고 육아휴직을 쓰고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좋은 아빠 타이틀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부성과 다르게 모성은 하나라도 빠지면   실패가 되고 죄책감을 낳는다.


그 과정에서 엄마들은 많은 차은경들은 (굳이 변호사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문제해결중심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문제가 내 아이에게 생기면 그때 모든 시선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에게 쏠린다. 엄마가 어떻게 해결하지? 지켜보는 눈들이 생긴다.

아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닌데 엄마가 먼저 지레 겁을 먹고  돌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공감은 뒤로 밀리고 문제해결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아마 드라마는 재희와 차은경이 좋은 관계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아직 외도를 한 배우자에게 좋은 결과를 주는 드라마는 없다.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를 양육할만큼 좋은 아빠였떤 한지상이었는데  외도문제가 생기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 

차은경에게 자존감이 상했는지. 육아에 지쳤고 외로웠는지 이유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이 외도가 보태지면 어떤 깐한 마음도 들지 않는다. 


부모도 힘들도 자녀도 힘들다.

나와 다른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

나와 다른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자녀

부모같지도 않은 부모도 있을 거고 아무리 애를 써도 엇나가는 자식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그래도 함꼐 살아가려면

나는 늘 주장한다.

적당한 거리.

모르는 사람처럼 

늘 다를 수 있다는 생각 (어제와 오늘 내마음이 다른데 저 사람은 늘 한결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도데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어쩌면 서로 외롭고  쓸쓸할테지만

나는 차라리 상처나 배신감보다는 외로움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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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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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스 피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떄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순간 의심스러웠으니까.

글을 몰라서 살인을 한다고? 

읽어간면서 점차 납득이 갔따.

사실 묨사된 위시스 피티먼은 끔찍했다.

내가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커버데일 일가를 죽이기 전까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임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죽고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문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나의 방식으로 그가 살아야 한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이해의 기준이 내가 될 때 사람은 선한 의도를 가진 이기주의자가된다 

의도가 좋았으나. 타인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아니 적당하다라기 보다 타인에게 가혹하다.


피치먼이 선한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약한 인간이다.

약한 사람이란 자기의 약점을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애쓰고 불안해 하는 사람이다. 나는 글을 읽을 줄 몰라요. 

그 한마디는 순간의 수치심을 가져올 수도 있고 일정 기간 무시를 당할 수도 있지만 주변의 선한 사람들에 의해 내가 변화될 수도 있는 시작인데 

피치먼은 그걸 몰랐다.


커버데일 일가 역시 책을 많이 읽고 지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래서 피치먼에게 가혹했다.

그들의 지나친 다정함과 오지랍이 그녀에게 두려움이 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움켜쥔 사람과 

타인에게 허물없이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

두 사람이 부칮치는 순간  갈등은 끔찍하게 커지고 터져버린다.

거기에 조앤의 망상이 더해지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문맹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커버먼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두려운 비밀을 지닌 사람의 서늘한 기운도 알 것 같다.


그리고 타인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고 자기 세계로 들이려는 커버데일 일가의 다정함도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한 동안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묘하게 불편했다.

이미 내가 박힌 돌이었고 굴러온 돌인 그가 불편했다. 

물론 처음엔 잘 지내보려고 했고 많이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나 역시 커버데일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좀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가르치려고 했었고 도와준다는  뜻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도무지 에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 발끈하고 이유없이 화를 내고 남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본인이 받아들이는대로 판단하는 그와 잘 지내기는 어려웠다.

사소한 일에 (그것 역시 내 기준에) 파르르 하는 모습에 질렸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지. 말을 길게 하지 말아야지 였다.

어쩌면 그가 보기에 나는 별 거 아닌데도 아는 척하고 자기를 통제하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들었던 재수없는 인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당한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서로 괜찮은 척 지냈고 다정하게 헤어졌다.

가끔  같은 공간에서 섬처럼 외롭게  공허한 시선으로 앉아 있는 그를 볼 떄가 있다.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집요할만큼 열심히 했던 그였지만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절은 절대 알려고 들지 않았는데 그런 얄미운 모습뒤에는 외롭고 공허한 얼굴이 있었다.

내가 이래도 되나 라는 자책이 들면서도 나도 역시 더 이상 그로 인해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판단했다.

그는 나랑 다르구나

나이 먹어 굳이 다른 사람과 알려고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피치먼이 열심히 광을 내고 세탁을 하고 다림질을 하는 묘사를 보면서 

자신의 일에 애를 써서 노력하고 완수하려는 그의 모습이 겹친다.

(물론 그는 문맹이 아니고 감정도 있어서 웃기도 하고 타인에게 질문도 하고 관심도 있었ㄷ.)

그러나 자기 일이 아닌 건 절대 아는 척 하지 않는 것, 자기 경계를 확실하게 긋고 불편해하는 모습에서도 커버먼이 겹친다면 너무 지나쳤을까


누군가는 이 책이 문맹의 가지는 두려움과 공격성과 함께  지식인이 가지는 자만과 어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를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에서 타인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물론 커버먼에게 무언가를 물어봤다고 대답을 제대로 했을리는 없다.

가족둘은 충분히 물어보고 의향을 알고 싶어했고 이해하고 싶어했다.

다만 자기방어가 강했던 그가 모든 것을 거부했을 뿐이다.

그러나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것.

나의 기준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내 기준에 벗어나는 순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

그런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자주가는 사이트에서 어떤 질문을 보았다

착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이전에는 순종적이고 양보하고 순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까

사람들의 답변을 읽다가  아.. 하는 답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착한 사람이고 나를 싫어하는 (내가 싫어하는)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동의한다.

착하다 나쁘다의 기준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된  가치판단일 뿐이다.

어제 착한 사람이 오늘 나쁜 사람이 되고 너에게 좋은 사람이 나에게 나쁜 사람일 수 있다.


문맹에 대한 깊은 고찰보다는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대해서

쉽게 내 기준으로 선 악을 나누는 각자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이 가고 내가 조금 편해진 건 있다.

그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더 이상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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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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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삐딱한 시선일지 모르겠으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이지만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램이 묻어 있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질투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좋아한다.

사람이란 좋아하는 걸 원하고 닮고 싶어하고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쌍둥이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그 고유명사 당사자여서 싫을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러이러한 유형의 사람이 싫어라고 할 수도 있따.

좋아하는 것 역시 그 고유명사를 좋아하는 것일 수 있고 이러이러한 사람이 좋아 라는 의미일 수 있다.

아니 그 고유명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데 나는 그가 싫어 혹은 좋아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 뭐해서 나는 이러이러한 점이 좋아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 좋아라고 표현했을 수도 있다.

좋아하기로 했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여졌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좋아 그가 싫어라고 말하는 건 어른 답지 못하거나 속이 좁아보이거나 실없어 보이거나 너무 만만해 보일까봐 은근히 그의 특징을 (사실은 그의 특징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라보는 면을) 좋다고 혹은 싫다고 한다.

사실 내가 싫어 라는 점은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이라면 그가 가진 어떤 취향이나 기질이라면 나는 좋다고 하지 않을까? 그는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거나 그 정도로 뭐라고 하는 건 너무 까탈스럽지 않나요? 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그냥그냥 읽어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그런 부분들을 만난다.

내가 좋아좋아하는 면들이 내가 대하기 불편하고 뭔가 자꾸 부딪치는 사람의 어떤 면이라면 먼저 싫구나 나랑 맞지 않구나 했던 사람에게 발견한 모습이라면 어 사람이 달라보이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싫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거나 싫거나는 그 고유명사 당사자다.

물론 그가 그녀가 싫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핑계라고 하든 이유라고 하든 원인이 선행하겠지만

내가 누군가가 싫거나 좋은 것은 그 사람이라는 것과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이 함꼐 내개 다가올 때이다.

모르는 사람의 어떤 면을 우리는 싫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는 사람일 때 그 아는 사람이 나와 맞지 않거나 내게 상철르 줬을 때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나는 그 사람을 싫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멋지다고 생ᄀᆞᆨ하는 언행을 태도를 가졌을 때 나는 좋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

나는 어떤 행동이 좋아 라고 취향을 가지는 것은 내가 호감이 있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더 크고 내가 싫다라는 행동은 내가 호감이 없는 혹은 불편한 누군가의 행동일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호 불호는 그냥 개인의 기호이다.

다만 모두가 좋아하는 취향이 있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기 힘들어 라고 할 수도 있고 모두가 싫어할 수도 있다.

다만 내 취향을 이렇게 확고하게 알고 있다는 건 꽤 괜찮아 보인다.

 

1. 여기는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와요

좋은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함께 좋은 사람이 되는거예요.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사이가 되면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이 풍성해 진다.

 

2. 오드리 로드 설사 입 밖에 낸 말로 상처를 받거나 오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해도 말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다른 어떤 결과보다 내게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

3. 지나친 우유부단함 속에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존재한다. 자신의 오호를 정확히 인지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오해의 씨앗을 덜 심게 한다.

 

4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는 그렇게 길지 않아요.

 

5.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주지 않을 것. 주고 싶어서 줬으니까 그걸로 끝. 호의를 기대하지 않으니 받는 사람은 부담이 없다. ‘사람 마음이 어떻게 그래요라고 하고 싶지만 사랑을 전하는 일이 목적이었다면 마음 속 깊이 차오르는 준 사랑 똑같이 받고 싶은 감정은 눌러야 한다.

 

6. 실패는 실패로만 여길 수 없는 각자의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오래 공들이고 마음을 다했지만 실패하는 일도 있고 노력과 성공이 반드시 비례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안다. 타인의 실패담을 들을 때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적어도 실패를 했다는 건 시도를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응원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7.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이기도 해요. 스스로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필요한 것 등을 피하지 말고 하시라는 이야기였어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잘 그릴 수 있는 스킬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요.

내가 부족한데 이걸 안해도 할 수 있을까요? 라는 의도가 든 질문이 많아요. 그 분들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피해 갈 수 없어요. 결국 그거 해야지 당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 예요. 즉 굉장한 비법은 없어요.

 

8. 다른 사람에게 박수로 표현하는 칭찬이 아니라 팩트를 전달하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요. 그것도 자세하게. ‘당신 좋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당신이 가진 무기라는 의미예요. (김이나)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나의 장점을 정확하게 발견해 주는 한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9.쿨한 척 하는 사람은 있어오 진짜 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거절당할 때 흔쾌한 마음이 든다. 상대가 너무 편안한 말투로 거절할 때. 내가 이 거절을 오해없이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구나 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거절하는 일. 거절 당하는 일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너무 비장한 마음으로 부탁하거나 너무 심각하게 거절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관계는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10. 우리에게는 멘토보다는 페이스메이커가 더 필요하다. 비법은 모두에게 통하지 않지만 응원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상대의 속도에 맞춰 같이 뛰어주고 북돋아주는 일의 귀함을 우리는 안다.

 

11. 어떤 선의나 호의가 생겨도 섣불리 조언하지 말 것.

누군가 먼저 물어보기 전에 어설프게 말을 보태지 않기.

내가 조심하고 싶다. 선의와 호의의 덫에 걸려 무심코 조언이 툭 튀어나올 때 과연 상대가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내 선의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진 않은지 어설픈 말들로부터 상대가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조언을 건네는 일에는 계속 주저하고 싶다.

 

12.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안달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살아갈 기운을 얻고 내가 못난 사람으로 여겨지면 자책한다. ‘이 사람이랑 있으면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라는 감정은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인데 반대로 이 사람과 대화하면 내가 자꾸 나쁜 사람이 되같은 감정으로는 결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없다. 사람의 죄책감을 건드리는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반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은 자꾸 보고 싶다.

포기해야할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부터 새로운 관계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13. 사람은 이미지야. 내가 그를 좋아하겠다고 결심해버리면 다 좋게 본다니까. 우리가 아무리 불편하다고 눈치를 줘도 소용없어. 이미 좋아하겠다는 렌즈를 끼고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게임오버지.

 

14. 힘내. 가 아니라 우리 힘내자.

 

15. 내가 괜찮은 척 하고 싶어서 했고. 사람들은 내가 괜찮아 보였으니까 괜찮다고 이야기한 거지. 그런데 그걸 또 내가 안 괜찮아하는 걸 보고 이게 뭔 웃긴 놀이인가 싶더라고 그냥 괜찮은 척 안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 왜냐하면 내가 괜찮지 않으니까. 내가 괜찮지 않은 모습을 보고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럼 뭐 어때? 괜찮은 모습일 때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잘 지내면 그게 이상하지

 

16. 대신 화를 내 주는 사람의 존재가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사과를 받고 싶은 상대에게 사과를 받지 못했어도 대신 사과하는 사람. 대신 울어주는 사람. 대신 화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기기도 한다.

 

17.내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면 안된다. 설령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몸을 움직여 줘야 한다.

당장 새로운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일단 던져보는 것.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은 펼쳐지지 않으니까.

 

18.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하고 활발한 상태를 유지하라. 나쁜 상황을 생각하지 마라. 자신을 낮추지 마라

경쟁자들이 너에게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 나쁜 말을 하지 마라. 항상 너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가지고 행동하라.

 

19.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요 (미스 홍당무)

모든 감정에도 이유가 있다. 이유없이 밉다 라는 건 없다.

내가 그 이유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20. 행복공부에서

행복의 결정요인은 유전자 50 환경 10 자발적 행동 40

환경보다 자발적 행동이 더 높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40이 어디냐

 

21. 흐르는 물을 막으려고 물을 잡는다고 해서 잡히지는 않아요. 그냥 흘려보내도 당신이 진게 아니예요. 어떤 남자가 내 어깨에 딱 부딪쳤어요. 되게 아프지만 의도가 없을 때 굳이 그 사람을 불러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큰 부상이 아니면 흘러 보내는 게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악연이 생겨요. (오은영)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은 수 없고 그러길 바래서도 안되는 것이 타인의 마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면 노력해야겠지만 the dther 인 사람이라면 조금 흘려보내는 태도가 아니다.

 

22. don’t even think you know, don’t think you know everything.

알지 못하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23.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답을 줄 수는 없어도 들어줄 수는 있어요. 잘 들어줄게요.

섣불리 상대의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 않을 것

이야기의 중심에 누가 있는가? 문장의 주어가 누구였는지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지를 다시 돌아볼 일이다.

상대가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섣불리 반응하지 않은 것이 좋다. 그것이 지난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상대의 시간에 대한 예의이다.

 

24. 사람은 누구나 관심받기를 원하고 은근히 잘 참견당하길 바라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했을 때 큰 만족감을 느낀다.

가장 답답한 초년생은 무조건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 하찮다고 무시당하지 않을까? 라는 망설이지만 무시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질문에 허투루 답하는 사람이 못된 사람이다.

질문하는 건 힘들지만 누가 나에게 물어보면 되게 좋다.

 

25. 그럴 수도 있지.

 

몇몇 도움이 되는 문구가 있다.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는다고 그게 타인에게도 옳은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선의가 표현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사람은 결국 생각보다는 행동해야하고 마음보다는 태도로 전달해야한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다.

그냥 텔레파시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건 오해뿐이다.

사람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부분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저자도 한 꼭지에서 이야기 했듯이 내가 좋게 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어떤 말이라도 찰떡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에게 마음을 다친 누군가는 같은 말도 개떡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찰떡으로 듣는다고 모두가 찰떡이 아니고 설령 누군가 개떡이라고 하면 그 입장에서 개떡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나와 카테고리가 같은 사람들이 다 찰떡이라고 하니까 개떡이라고 하는 너가 틀렸어 라고 단정한다.

세상을 살다보니 단정해 버리는 것 만큼 무서운 건 없다.

뭐든 단정하고 판단해 버리는 일

정말 만능키처럼 쓰이지만 그건 내 생각일뿐이다.

세상 모든 만물중에 하나일 뿐인 나의 작고 좁은 생각일 뿐이다. 혹은 나의 카테고리에 있는 몇몇의 생각일 뿐이다.

늘 돌아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밥을 먹고 다시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챙겨놓는 일처럼 매번 반복되는 일

그렇게 나를 돌아봐야 한다. 매번 매순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은 사람을 모두가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어딘가에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사람이 단 한 명 쯤은 있따는 이야기일테니까.

가끔 너무 주관적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꼭지들도 있지만 무난하다.

그냥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나는 남들을 어떻게 볼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취향을 통해 나를 본다.

나의 어떤 면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결국 진심보다는 태도가 타인에게 먼저 전달되는 것이구나

그러니 생각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행동이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는 말을 통해 행동을 통해 나를 보여주고 내 마음을 전달할 수 밖에 없다.

미루어 짐작은 오해를 낳지만 말과 행동은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잘못된 곳에 잘못된 의미로 전달되기도 하지만 변명이나 수정이 가능하다.

 

다만 내 경험상 내가 좋아하는 취향들이 나이듦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해서

어쪄면 더 넓어지기도 하고 더 좁아지고 강팍해지기도 하고 있어서

작가가 나중에 20년 뒤에 다시 이 주제로 글을 써보면 달라질까 궁금하다.

 

쉽게 읽히고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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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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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아아죠 시원한 패키지가 마시기도 전에 청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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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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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되긴 했지만 교제폭력에 대한 지금 이순간 분노가 현실적이다.


여자가 말대꾸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받아주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먼저 말을 해서 

내가 기분이 나빠서

여자를 때리고 죽이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지금 이순간 내 마음이 그렇다 라고 하면 모든 거시 이유가 된다.

내 마음이 그런데 니가 나를 건드렸어. 나를 화나게 하네 짜증나게 하네

결국 세상의 중심인 나(남성)을 건드렸기때문에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사건을 두고 세상은 말한다.

참지 그랬어

진작에 헤어졌어야지

그런 사람을 첨부터 몰랐던 거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기분 좀 맞춰주면 돼

남자들은 다 애잖아 우쭈쭈 해주면 금방 풀려

설마 죽이겠어 지금은 화가 나니까 아무말이나 하는 거예요


지나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도 화가 나고 폭력이라 마땅히 받아들이는데

아는 사람이, 한떄 사랑했던 사람이 친밀한 사람이  가하는 행동은 폭력인지 아닌지 어렵다.

내가 무엇을 더 잘하면 

무엇을 더 조심하면

무엇을 더 노력하면 될까 원인을 나에게 찾는다


내 어꺠가 너무 넓어서 내가 도로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내가 주위를 살피지 않아서 등등 폭력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건 

결국 친밀한 관계의 폭력밖에 없다.


가정폭력이건 교제폭력이건  피해자가 더 반성하고 고민하게 하는 잉가 뭘까


소설 말미엥서 주인공이 생각하듯이

내 엄마를 죽인 건 폭행하고 불을 붙인 그 남자지만

여자가 저렇게 헤퍼서 못쓰지 ...라는 사회적 통념

잘 사귀어 봐 맞춰주면서 라는 주위사람들

아 우리도 바빠요 남의 연애사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요 라는 공권력

설마 남편이 연인이 죽이겠어요 라고 넘어가는 기관들 

결국 우리는 공범이다.


세상 모든 폭력은 행위자 잘못이고 행위자가 교정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 다시 밀양 집단 성폭행사건이  회자되고 있다.

정리되지 않고 덮고 넘어간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건 

숭하고 부끄러운게 아니다.

미처 치료되지 못한 상처는 다시 덧날 수 밖에 없고  반성은 아무리 늦어도 필요하다.

소설에서만  보였던 사적 복수만 세상을 정의롭게 하는 걸까?

폭력이 폭력으로 대응되는 것밖에 방법이 없나?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은 요즘 읽은 책이다. 


왜 시간이 흘러도 교제폭력, 가정폭력의 유형은 늘 한결같을까

도데체 뭐가 변하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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