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나는 그저 읽은 사람일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칡는다.

나는 달라지고 싶어서 책을 읽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읽으며 나는 또 하루를 버텨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삶응ㄹ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다.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는 나를 늘 힘들게 했다.

다들 정말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의심했다.

나는 지금 내일 무얼할지도 정하기 힘든데 내 시간을 모두 바쳐 달려가야하는 목표를 정하는 것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느렸고 무계획했고 부정적이었고 그냥 하루하루가 즐겁거나 괴롭거나 슬퍼거나 불안했다. 그럴 때 책을 읽었다. 이야기 뒤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고 위로받을 수 있었고 공감받을 수 있었다.

내가 주인공에게 화자에게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만큼 나는 세상에 내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기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책을 덮고 세상으로 나오면 내 범위는 여전히 좁았고 세상은 언제나 저만치 앞에 있었고 모두가 다들 할 일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데 나는 여전히 긴긴 시간을 혼자 채워야 하거나 흘려보내야만 했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나는 그대로 나이먹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다만 알게 된 것은 어른이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

그냥 받아들이고 통과해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망치고 모른 척하고 회피해도 결국 내가 해야할 몫은 내 앞에 온다.

그냥 받아들이고 상처받고 우울해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리고 또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게 어른이라고 외롭지만 조금은 강해졌구나 약간의 근육이 생겨서 조금 덜 삐그덕대겠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게 다 책에서 배운 것이다.

책은 내가 많은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 대부분이 내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몰랐다면 더 단순하게 더 씩씩하게 내가 잘났다고 믿으며 살았을텐데

읽을수록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고 불안하고 초라해졌다.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나는 표현그대로 한 점에 불과했다.

읽을수록 작아지는 나.

그러나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았다.

작은 내가. 작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생각한다.

물론 가끔 부자가 되고 싶고 권력을 갖고 싶고 명예와 지식을 가지고 뽐내고 잘난척 하고 싶은 욕구에 이불킥할만한 행동들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를 이제는 받아들인다.

책이 그랬다.

그냥 너는 너라고...

책은 책일 뿐이고 나는 나 일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친해졌고 서로 인정하고 있다.

읽기가 주는 즐거움은 어쩌면 무용하다.

후기자본주의 세계화 시대에 무용하고 하찮은 것들이다

쉽고 빠르게 누구보다 앞서 나가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지금 현실에서

느리게 읽고 쓰고 기록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머물뿐인데 뒤로 자꾸 밀려난다.

조금 읽고 많이 아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래서 많이 말하고 더 뽐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읽을수록 작아진다.

이렇게 읽다가 내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그것도 괜챃다.

나는 작아져서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있다.

내가 안다. 내가 있음을. 내가 읽었음을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읽다보니 그것으로 괜찮다.

 

 

그런데 이탈리아 철학자 바르노에 따르면 하이데거가의 이 구분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상없는 불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세계까 불확실하고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우리가 이 기분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뜩정 대상을 위험한 것으로 지정해서 모호한 고통을 확실한 고통으로 바꿔버린다. 명확한 경계의 대상이 생기는 순간 그것만 제기하면 세계는 다시 확실하고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 저 동양인은 걸어다니는 바이러스야. 이처럼 두려움의 대상을 고안하고 이들만 사라지면 사회가 안전하고 건강해질거라는 감정적 방어책을 만들어내면서 타인에 대한 잔혹한 반응을 정당화하게 된다.

(모호한 것은 두렵다. 그래서 두려운 대상을 명확하게 한다. 친구를 잘못사귀어서 그래. 저 사람이 문제라서 내가 화를 낼 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왜 밖에 놀러다니고 그런거야? 단순한 이유일수록 즉각적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단순하고 명확한 이유들이 안전하다. 그래서 문제야 그 명확한 문제만 해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잘 지낼 수 있어. 그렇게 우리는 암묵적으로 나만 아니면 되는 대상을 미워하고 상황을 혐호한다.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언제나 해결되지 못한 여전한 문제다. 두껑을 덮는다고 오물이 사라진 것이 아닌데...)

 

안나 이호바토바는 말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었다. ; 나는 시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 말은 이렇게 읽힌다. ’나는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집이 다시 출간되기를...

(하루를 무감하게 살아내는 것, 반복같은 하루를 그래도 살아내고 먹고 자고 생각하고 쓰고 일하고 귀가하고 다시 고단한 몸을 눞히는 일을 내일도 모래도 지치지 않고 해내는 일 때로는 그 일이 혁명보다 더 위대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 모르는 타인들 그리고 당신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반복하면서 멈추지 않은 우리가 위대하다.)

 

실비아 플러스의 딸이 이야기 한다.

어머니가 실존했고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살았고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황홀하기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와 남동생을 낳았다는 사실이 축하받기를 원했다. 나는 어머니가 놀라운 작품활동을 했으며 평생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붙은 우울증과 싸우기 위해 용감하게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을 스캔들로 소비하는 대신 그녀가 남긴 작품 속의 치열한 삶을 보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다.

(피해자는 늘 24시간 피해자가 아니다.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욕심도 내는 사람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상의 한 순간 험한 경험을 했고 상처를 받았고 삶이 잠시 중단되었겠지만 여전히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영웅이 된다. 얼마나 괜찮았는지 멋졌는지 영웅이 되거나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떤 배우를 나는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가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고 웃고 울고 설레었지만 너 그 배우를 좋아하니? 라고 묻는다면 별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원히 반짝반짝 빛날 별일거라 믿었는데 너무 얼굴이 알려지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직업탓에 모두가 그의 상처를 알고 치부를 알게 되었고 그는 극단적인 선책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가 분노하며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늘 그대로 그 사람이지만 보는 사람의 시각이 달라졌다. 나는 여전히 그를 좋아햐냐고 물어보면 글쎼 라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그가 나온 것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아낀다. 그뿐이다. 그는 자기 삶을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남아있다. 그냥 그 뿐이다. 먼저 간 내친구를 남은 친구들은 좋은 면만 기억한다. 나도 그 친구의 나쁜 기억은 없다. 그러나 그가 성자가 아니라는 건 안다. 인간적인 결함도 있고 때로 이기적인 판단을 하기도 했고 자기 시각에서 세상을 판단하기도 했고 그 판단이 누구에게는 상처였을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좋은 친구였으나 대단히 멋진 사람은 아니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는 나도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친구들 중 하나.. 내가 사랑했던 가족중 하나.

특별안 단하나의 누군가가 아니라 평범한 여럿중 하나지만 가끔 그립다고.. 그렇다. )

 

아리엘 도르프만

그는 누군가의 실제하는 고통을 맬로드라마로 가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정확히 동시통역하는 것이 시의 임무라고 믿는다. 그는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강한 어머니의 아이로 남지 않기를 선택한다. 그것은 그의 고백대로 세상의 고통에 대해 고작 전문가란 이유로 두둑이 보수 받고 동시통역이나 해주는 단순한 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더 강한 자와 어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쓰고 있는 한 사람 덕분에 평범한 이들의 비극이 온세상에 알려진다.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나는 늘 다짐한다. 나는 내가 아는만큼 상대를 본다. 내가 아는 상대가 전부가 아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판단하지 말자. )

 

조앤 디디온

디디온은 기사에 글쓴이의 주관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의 에세이 <엘리시아의 대안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객관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하지만 글쓴이가 가진 편향성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모든 편향에서 자유로운 척하며 쓴 글에는 대안 매체에 아직 전염되지 않은 가시과 허위가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역사에서 ~ 만약 이라는 질문은 불필요하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살피고 연구한다. 만약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일어난 사건이 상황이 누가 어떤 위치에서 보고 기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역사는 어쩔 수 없는 승작의 기록이다.

그리고 보통의 우리도 부지런히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여기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생각도 있다고 . 역사는 결국 기록하는 자의 생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 시간 그 시대에 누가 권력이 있었는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누가 썼는가에 따라 독자는 다르게 읽는다. 냉정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속되고 속되다. 주관적임을 인정하자. 내 의사 편향성을 인정하고 이런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이렇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

 

단어들을 가지지 못할 때 청년들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소박하고 반지성주의적인 저항을 일삼게 된다. 베트남 전쟁과 소비의 상징인 비닐ㄹ oq에 반대해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많은 단어가 필요한 생각은 잘난 척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점을 무척 염려했다. ‘이 아이들이 ㅇ창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어휘는 이사회의 진부한 표현들이다. 사실 나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꼐 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결손가정출신이라는 표현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 그들이 결손가정이라는 단어로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엄마 아빠 나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은 결핌이자 비정상이라는 기성의 관점에 자신들도 모르게 동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시지프 신화는 결국 죽을 운명인데도 힘을 내서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삶자체가 부조리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부조리하다고 해서 다 비극적인 것은 아니다. 시지프는 아무 생각없이 반복되는 일을 해나갈 수도 있다. 자기 상황을 제대로 자각하지 않으면 비극이랄 게 없다.비극은 오로지 그의 의식이 깨어 있을 때 시작된다. 다시 저 아래의 바위를 향해 정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시지프는 자신의 바참함과 무력함을 깨닫고 반항적인 태도로 그 고통을 응시함으로서 비극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카뮈에 따르면 비극은 피해야 할 게 아니라 자각하고 응수해야 할 운명이다. 그리하여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 고뇌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오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앤카슨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이별하는 것

(애도에는 기간을 둘 수 없다. 천천히 자기 방식으로 이별하는 수 밖에 없고

애둘러 내 방식으로 위로나 배려를 하지 않은 것 지금 여기 없는 이의 이야기에 내가 먼저 마음을 베이지 않는 것 되려 먼저 조심하지 말 것. 그냥 피가 첲철 흘릴만큼 베이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톨스토이

다른 존재들을 구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부터 발끝ᄁᆞ지 거창하게 새로운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늘 하던 대로 그러나 에너지와 방향을 조금씩 바꿔서 매일매일 움직이면 될 뿐 우리의 사랑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듯 구원도 혁명도 그럴 것이다.

 

이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 할 것만 있다.

 

읽기는 즐겁다.

그리고 이야기도 때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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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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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서 에세이는  또 다른 독서로 나를 이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들이 많아진다. 몰랐던 작가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외국어를 배울까 생각을 한다. 내 세상이 넓어졌다.

한권 한권 책이 흥미롭다.

책을 읽다 멈추고 정보를 찾는다.

또 다른 작품은 뭐가 있을까? 어떤 작품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작가가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나는 정말 작은 세계에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폴란드의 작가들이 , 칠레의 작가가 

가까운 일본에 이렇게 괜찮은 시인이 있었는지 몰랐다.

몰랐던 게 부끄럽지만 이제 아니까 다행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 고민의 시작점이 제각각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시작되어서 

그 과정이 다를 뿐 어쩌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우리의 범위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쓰고 남긴다. 그리고 읽는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겨놓는다는 것,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것이고 동시에 또다른 세계를 소개하는 것


읽기 잘 했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가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 그런 삶을 소망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고 그가 분명 내 책을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작가는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그리고, 희망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철학을 펼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않는 삶을 말하는 책이 포기하지 않는 독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이다. 혹은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인간은 실패하려고 태어난 ‘훼손된 피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계속이어가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대신 위대한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대낮에는 별들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가치들을 대낮처럼 환한 진리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별도 발견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결과로 생겨나는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제 안에서 춤추는 별을 찾게 된다. 


설명할 때만, 그리고 설명해준 것만 아는 사람은 설명자에 예속된 존재이다. 혼자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과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배울 수 있을 때 그는 자유로워질수 있다. 좋은 교사는 유식한 자가 아니라 해방된 자를 만드는 교사이다


그는 학생이 주의를 기울여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봐주고 학생의말에 경청하기 위해서 곁에 머물 뿐이다. 랑시에르는 이것을예술가의 ‘해방하는 수업‘이라고 부른다. 평등이 필요한 것은 시인과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은 독자들이 제삼자의설명 없이도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시선으로 그것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시인 자신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사물과 직접 만나며 배운 것을 작품으로 썼듯이 말이다


관습이나 종교에 따라서든, 혹은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든, 우리가 애도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제의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른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고인이 살았던 삶의 역사를 세상에 알리며 그와 정중히, 그리고 천천히 작별하는 것

사회적 제의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핵심이전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패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에서 우리는 고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 채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세상을떠난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바로 그 제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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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걸 싫어해요.
다른 거 불편하니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내가 어리석었나? 내가 잘못하고 있나? 나만 모르나 하는 불안을 갖게하는 것들을

누군가의 말이,외침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건
그게 나와 다르고 익숙하지 않아서예요
그런 건 폭력이예요
나는 동의하지 않아요
나는 원하지 않아요
나는 다른 삶을 원해요.
당신의 행동은 폭력이고 나는 거절해요.
그런 말들이 불편해요

그래서 까다롭다. 뭘 모른다. 이기적이다. 라고 ㅇ
하면서
입을 막고 손발을 묶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손을 올려요.
두려운거죠
내가 틀렸을지 몰라
내가 모르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누르려고
더크고 세고 강하게 자신을 부풀려요.
너희가 틀렸어
너희가 뭘 몰라
너희들이 너무 예민해

어쩌면 우리는 말하는 법 듣는 법을 몰라요.
그냥 내말만 냅다하고 상대방 말을 듣지않죠
내가 할말만 생각하느라 들을 수없고
상대방말의 틀린점을 잡기워해 곤두서 있어요.
대화는
듣고 생각하고 말하고
묻고 듣고 다시 생각해야하는데
침묵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데
우린 모든 순간 순간을 말로 채우려고해요.


말을 듣고 생각하고
다르구나 그럴 수 있구나... 하는 고요의 순간이 필요한데
그래서
듣기만하다가 아쉽거나
말을 했지만 후회스럽거나 쓸쓸해지는 순간
차라리 아무말도 말걸
말하기 전으로 돌아가고싶다.
들었던 내귀를 씻고싶다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죠

말을 했고
들었는데
더 단절되는 기분
자꾸 멀어지는 기분
더 외로운

어떻게해야할까요?

마음엔 말들이 그득한데 내놓을 수 없거나
들었지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들었지만
점점 더 알 수 없는 기분

우리는
나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나요?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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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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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면 편안해질거예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어요

그런 말이 이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말을 하도 전혀 변한게 없어요

그냥 내가 미친년일뿐이더라구요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고 또 시작이다. 또 지랄이다 라는 반응 이제 나도 지쳤습니다.

말하기는 늘 듣기와 짝궁이 될때 그 가치가 있다. 


말을 듣는다는 건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내 생각이 끼어들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하고 내 생각은 그냥 덮어두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도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친족성폭력 3부작을 읽었다.

굳이 푹력피해라고 말하지 않아도 

어쩌면 여성이라면 한번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자꾸 돌아보고 뒤적이게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꽤 힘을 가진 사람이거나  무지한 사람이거나...

윤희나 유정이나 그 내담자나...

모두 자기를 뒤적이면서 자기안의 분노를 어쩔 줄 몰라한다.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읽는 내 마음일 수도 있다.


말을 하거나 드러내거나 표현하는 건 중요하다.

결국 나만 내 일을 정의 내리고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타인일 뿐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 침묵하는 것도 적극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세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알려고 애쓸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고 

잘 했다고...

일단 말을 하고 내 말을 믿을 것이다. 


말을 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고

더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는 걸 또 배운다. 


다른 단편들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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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없는 집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1
알렉스 안도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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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다보니흘러넘쳐 남은게 없음
탐정이 매력적인 줄 알았는데 아직 자기연민에 잠겨 있고 대를 잇는 폭력과 가부장제 그루밍 성폭력을 그냥 뭉뚱그려 짠 하고 급히 마무리한 느낌
사지않고 빌려보길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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