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말하는 돌봄노동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사이 느끼는 것 중 하나

개개인의 선한 의도 혹은 선한 행위에 기대는 것은 참 위험하다.

단순하게 작은 원안에서의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선한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부과하고 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한 행위따위는 없다.

나는 좀 비관적이긴 하다.

사회에서 터지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혹은 복지정책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다양한 사각지대를 알게 되면서

선한 의지따위보다는 강한 정책과  처벌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선한 의지들이 있다면....

사회구성원이 의식을 바꾸는 교육을 통해서...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선함을 기대하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어가는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애가 타고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고 있다.

인권이 좀  눌리더라도,  비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더라도 강한 정책으로 일단 누르고 강제시키는 일들이 필요할 때가 많다.

돌봄경제가 담당하고 돌봄 노동으로 치부되는 곳에서는 일단 모든 정책이 그리고 모든 대처가 일이 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폭력이 일어나 누군가 다치거나 해를 입기전에 미리 대처할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지독하게 따라다녀도 그가 칼을 들고 내 목을 긋지 않은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경찰이 해줄 것도 없다.

구속된 남편이 돌아오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또 한번 폭력의 바람이 불게 뻔하지만 일단 그 남편이 돌아와 피바람을 일으키기전에 미리 준비할 대책이 없다.

일단 터져야 도움을 줄 수 있고 피해가정으로 폭력가정으로 인식이 되고 시스템이 돌아간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햇병아리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건 참 하찮게 여겨진다는 거다.

그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뼈를 갈아서 삶을 갈아넣어서 그 자리를 채우고 지켜나가고 있지만

그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또다른 그가 다시 그 자리를 채워도 아무렇지 않다.

미묘한 돌봄의 섬세한 감각따위는 돌봄을 받는 대상이 느낄 뿐이지만 그는 아무런 힘이 없다.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취약층도 어떤 힘이 없다.

그걸 지시하고 감독하고 통제하는 기관이나 상부는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그냥 관행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하찮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순간

모성이 없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욕을 듣기는 참 쉽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누군가도 다른 일자리를 얻는다면 당연히 그만두고 싶어하는 일이지만 누구도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

그것이 돌봄노동이고 그것의 가치다.

 

이러면 안되지만 가끔 강력한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법령이나 제도가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인식의 전환은 그 다음으로...  강제하다보면 인식도 바뀌는 거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쉽게 들어오진 않는다.

많은 예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게 미국 제도여서 그랬던거 같다.

뭐 우리라고 많이 다르진 않지만 보편적인 듯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미국적이어서....

그래도 읽을만하다. 경제문제에서 돌봄노동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건 당연하지만 획기적인 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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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25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제제에 대해 저 역시도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느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고요.
복지 정책 역시 좀 더 강제적인 시행이 필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또 너무나 먼 일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푸른희망님^^
 
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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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가 나왔던 드라마 '추리의 여왕'도 생각나고...

남들은 보잘것 없다고 믿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도 누구든 꿈이 있고 열정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자기조차 몰랐을지라도...

그리고 공동지성은 무엇이든 이뤄낸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돕기위해서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위한 움직임이 세상을 바꾸는거다.

거대한 공약이 결국 공약으로 끝나는 그런 구호가 아니라 ...

 

하루만에 다 읽을만큼 몰입이 잘 된다.

바바리맨이라는 어쩌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봤거나 무서워했거나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본 경험이 있는 것을 소재로  익숙한 이웃들이 등장해 사건을 풀어나간다.

남자들로 상징되는 경찰은 대단한 사건을 뒤쫒아가며 우리 이웃 누군가의 실종은 그냥 가출이라고 치부하고 별 거 아니라고 하지만 모든 단서는 그런 별 거 아닌데서 나온다. 세상 어떤 일도 소소하지 않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네명의 탐정단도 매력있지만 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도와주는 맘약하고 귀가 얇은 우리의  광규씨도 너무나 매력있는 인물이다.,

다만....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해치는데 아무도 죽지도 않고 며칠의 입원으로 멀쩡해진다는게  흔한 히어로물같아 싫었지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전혀 다른 종자가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악한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반대로 기를 쓰고 악인으로 키우고 싶어도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람은 선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악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를 악마니 뭐니 하면서 이름을 붙이지 말자

그들은 그 명칭조차 훈장으로 여길것이고 어딘가 약하고 삐뚤어진 누군가는 그것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어떤 스토리도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

그는 그냥 범죄자고 나쁜 놈이고 처벌받아 마땅할 뿐이다.

 

어려운 책을 읽느라 머리가 아프거나

일에 치여 쉬고 싶은 활자중독자거나

지금 이 시점에 너무나 무료하고 답답한 누군가에게 권한다.

단 너무 기대하진 말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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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욕을 한다. 장난이라고 하면서 친구에게 폭력을 쓴다. 불법 영상을 본다. 협박한다.

아이들의 행동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를 야단치고 처벌한다.

벌써부터 이렇게 나쁜 행동을 하면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

나중에? 뭐 지금 당신과 다르지 않은 어른이 되겠지

아이들 대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할 때 취해야할 행동은 늘 어정쩡했다.

어른 나쁜 짓거리가 있으니 조심하거라? 혹은 이렇게 나쁜 일을 하면 절대 안된다?

훈계하고 타이르고 겁박하는 것 말고 없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오랫동안 폭력예방교육을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쳤다.

그분은 아이들에게 어떤 짓이건 니들이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고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단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욕도 결국은 어른들이 쓰던거지.

불법 동영상도 어른들이 만들고 아무나 보라고 유통시켰지

범죄도 어른들이 하던거야

말로만 하지말라고 하면 뭐하지 저희들은 나쁜 거 알면서 혹은 모른 척 하면서 다 하고 있는데. 애들한테만 하지마라 잔소리하고 훈계하고 처벌하는거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우린 그런 어른들이 책임없이 만든 것 행동하는 것 말하는 거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지 말자

자존심상하잖니?

저희들은 하면서 아이들한테는 하지말라고 하는거 너무 우습지 않니

우린 진작 안한다~ 이런 마음이면 어떨까?

뭐 더 근사하게 말했지만 난 이렇게밖에 요약을 못하지만 그 말이 가슴을 쳤다.

행동의 잘못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점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모든 폭력을 막는 길이라는 요지였다.

 

요즘 아이들이 무서운 건 무서움을 모르고 있는 어른들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자기 흠은 보지도 못하면서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우리때랑 달라. 얼마나 까졌는지. 얼마나 무서운지.

그런데 그 무서운 아이를 키우고 훈육하고 자라게 만든건 어른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해줘도 삐뚤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다. 세상은 언제나 다양하니까.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나를 바라보고 말하는 훈계 잔소리 꼰대같은 언어들이 나에게 스며들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 남들은 모르겠지 하면서 내뱉는 말들 몸짓들 그리고 부끄러움 없는 모든 것들을 습득할 뿐이다. 그게 더 쉽고 자연스러우니까.

 

책에서 가장 좋은 건 서문이었다.

아이는 어른이 없을 때 자란다는 말.

아이는 어쩌면 어른이 없어야 더 잘 자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아이들은 지루해서 온몸을 뒤트는 그 순간 자란다고 했다. 숙제가 있고 학원이 있고 시간이 모자라 정신없이 지식을 넣고 교양을 넣고 체력을 키우는 동안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 할 일도 없고 아무런 것도 배우지 않아서 지루하고 지루해서 온몸이 뒤틀리는 그 순간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고 했다. 그 순간이 통제하고 간섭하는 어른이 없는 그 순간이다.

꽤 괜찮은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정말 희귀한...

좋은 아이들이 사고 없이 아픔 없이 잘 자라만 준다면 분명 좋은 어른이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할 시간에 내가 얼마나 좋은 어른이 될까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 될까를 고민하고 행동하는게 더 좋은 교육이고 양육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 책에서 배운 것들......

  

있으나 보이지 않는 존재. 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는 귀신이 된다.

사랑이 없는 장소는 흉가나 다름이 없다.

관심이 없는 곳도 폐가와 다르지 않다.

집에서 학교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귀신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니 어른도 있다.

무심했던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을 때 너무 낯설다.

저 사람이 여기 있었던가? 왜 내가 몰랐을까? 정말 있었던 게 맞을까?

내 무심함은 생각하지 않고 그를 귀신보듯 한다. 그리고 놀라고 악몽이라 여긴다.

 

조용하고 소심하고 여린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들이 있다.

말도 못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하는 아이들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가지고 있는 볼륨도 저마다 다르다.

묻지 않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입을 잃어버린다.

 

어른이 제 문제에 빠져 정신없는 동안 아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든다.

가끔 그렇게 서둘러 철이 든게 억울해서 아이는 침묵하고 귀를 닫고 입을 닫는다. 그리고 독립을 꿈꾼다. 혼잣말을 한다.

그러면 어른은 의젓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변신이야기는 가능성의 이야기다.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그건 뒤집어 말하면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논리적으로 마땅해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권위의 강요에 못이겨 부당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폭력은 대개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어떤 논리나 호소로도 상대의 편견 신념을 깨뜨릴 수 없다면 큰 절망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들은 논리로 해결되지만 마음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이해할 수 있다.

추론의 과정이 누가 그랬지?”에서 왜 그랬지?” 그리고 반드시” “모두그래야 했을까를 생각해야한다.

 

착하다 와 못됐다는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우리를 서럽고 힘들게 하는 건 삶의 복잡다단한 굴곡일 때도 있지만 과자부스러기 한 조각일 때도 있다. 긴 이야기를 전부 들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장면 때문에 그 사람 전체를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고 그것이 꼭 착각이라는 법은 없다.

 

사람들의 생활속에 슬픔의 자리를 가 차지한지 꽤 되었다. 슬픔이 내면을 향하는 감정이라면 하는 화는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다.

슬픈 감정=약한 사람. 슬픔은 권하고 싶지 않다.

슬픔은 화가 지니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자기 안으로 깊숙이 슬퍼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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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 - 성평등 교육에 관한 여덟 가지 질문
이나영 외 지음 / 프로젝트P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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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예방교육 참고 도서로 구입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전달하는 건 정말 다른 일이다.

머리로 알고 있는 걸 내 언어로 풀어서 전달하는 건 쉽지 않다. 내 머리속도 정리안한지 한 참이라 어디에 뭐가 들어있고 어떻게 이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 쉽게 정리된 책이 필요하다.

이제 이런 수준의 책은 제법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읽어도 읽어도 늘 새로운 건

내가 어쩌면 단기 기억상실증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늘 새로우니 좋은 점도 있지만... 이렇게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면 어지러워서 어쩌나...

 

성평등에 대해 혹은 여성폭력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입문용으로도 좋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도 좋다.

혹은 내가 아는 걸 쉽게 전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면 더욱 좋다.

아이랑 함께 읽어야지 라고 핑계대며 구입하면 더 실속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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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다는 것이 그래서 좋았다라고 할 때도 있고 그래서 힘들다라고 할 때가 있다.

한결같은 그 사람 그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그대로 한결같이 그 사람일 뿐인데 그 존재일 뿐인데 내 마음이 바뀌는 것이다. 한결같아서 좋았던 그가 아직도 여전하다는 게 갸우뚱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고 싫어질 수도 있게 한다.

결국 내 마음이다.

다른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읽은 정희진의 책의 첫인상은 쨍하다였다

한겨울 깊이 묻어놓은 김장독에서 꺼내어 처음 들이킨 동치미의 국물과 처음 베어물은 동치미 무의 맛같은 거였다. 알싸하고 차갑게 목을 넘어가는 그 맛. 매운데 달콤한 복잡한 그 맛이 어딘가 슴슴하면서도 자꾸 먹고 싶고 기억나는 그 맛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가정폭력이라는 현실을 알게 했고 여성폭력이라는 것을 마주하게 했다.

물론 이전에 교육을 받으며 알고 있었지만 복잡한 그것들을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사실적으로 직면하게 했던 저자였다. 계속 찾아 읽으면서 젠더폭력과 여성문제등을 알게 되고 정리하게 된 나름 선생익도 했다. 그 이외에 다른 저자들의 글로 읽기가 확장되었고 교육이나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저자들은 직접 강의를 듣는 기회를 가졌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많다는 정희진의 강의는 한 번도 인연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글들이 아직도 읽을게 남아서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찾아다닌 교육들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지금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두권으로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말에 당장 구입했다. 읽었다.

나는 독서는 저자에서 시작되지만 독자에서 마무리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 전해야 한다고 믿는 말들을 글로 ㅆ고 출판하지만 결국 독자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 말과 글들이 독자에게 전해지고 독자가 그것을 흡수하고 소화하고 제 것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독서는 완성된다고 믿는다.

저자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든 각각의 독자는 자기의 위치와 입장 그리고 그 순간 책을 선택할 때의 마음과 목적이 독서를 완성한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독자의 목적이 완벽하게 합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미묘하게 어긋나지만 그래도 의미는 전달되는 경우가 많을것이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곳이 꽂혀서 닿을 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아 야를 전하고 싶었지만 독자는 책에서 오요를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저자는 이부분을 정말 핵심이라 생각해서 오랫동안 공들여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록했지만 독자는 저자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저부분 저문장에 꽂혀 인생의 책으로 올려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독자의 오독이라 잘못된 걸ᄁᆞ? 그건 아니다. 그냥 독서는 그렇다. 저자의 마음이 독자에게 닿지만 떠날 때의 그 마음과 의도가 고스란히 제대로 닿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입장이 있고 위치가 있고 마음이 있으므로

수능이나 시험을 위한 독서나 문해라면 저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알아차리고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요한 건 독자의 마음이고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었을 때( 이번 도서와 비슷한 독서에 관한 기록들이라) 밑줄을 그어가면서 읽다가 이내 포기했다. 일단 내가 찾아 읽기엔 너무 묵직하고 깊은 책들이었고 대부분 절판되기도 했고 그리고 밑줄을 모든 페이지에 다 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좋았다고 썼을 것이다. 어디가 왜 좋았는지도 썼겠지만 결국은 좋았다고

그리고 이번 독서에서 나는 조금 갸우뚱했다. 한결같아서 ...

여전히 깊고 어려워 내가 접하기 힘든 책이고 절판된 책들이었지만 그것때문은 아니다.

왜 이렇게 읽었을까? 왜 이렇게 생각이 튀어버릴ᄁᆞ? 하는 부분들에 갸우뚱하면서 여전하 공부하고 생각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저자의 모습에 한결같아서 좋다가 한결같아서 괜히 뚱하다가 그랬다. 그도 어쩌면 원 책의 저자의 생각에 자기 생각과 입장을 얹은 독서를 해가고 있었고 나 역시 그의 책을 읽으며 내 입장과 생각을 얹을 뿐이다. 어쩌면 그도 한결같고 나도 한결같이 내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독서를 했구나

좋다 별로다... 라는 판단보다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건 나랑 다르구나. 이런 문장은 내가 생각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거였는데... 그렇게 편안하게 읽었다

저자가 변하거나 한결같거나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것처럼 부지불식간에 내가 변하고 있고 조금씩 꼰대는 아니더라도 곤대가 되고 있어서일지도 .. 모를 일이다.

이 시리즈가 5권이 나온다고 하는데... 앞으로 더 사볼지는 조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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