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욕을 한다. 장난이라고 하면서 친구에게 폭력을 쓴다. 불법 영상을 본다. 협박한다.
아이들의 행동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를 야단치고 처벌한다.
벌써부터 이렇게 나쁜 행동을 하면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
나중에? 뭐 지금 당신과 다르지 않은 어른이 되겠지
아이들 대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할 때 취해야할 행동은 늘 어정쩡했다.
어른 나쁜 짓거리가 있으니 조심하거라? 혹은 이렇게 나쁜 일을 하면 절대 안된다?
훈계하고 타이르고 겁박하는 것 말고 없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오랫동안 폭력예방교육을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을 쳤다.
그분은 아이들에게 어떤 짓이건 니들이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고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단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욕도 결국은 어른들이 쓰던거지.
불법 동영상도 어른들이 만들고 아무나 보라고 유통시켰지
범죄도 어른들이 하던거야
말로만 하지말라고 하면 뭐하지 저희들은 나쁜 거 알면서 혹은 모른 척 하면서 다 하고 있는데. 애들한테만 하지마라 잔소리하고 훈계하고 처벌하는거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우린 그런 어른들이 책임없이 만든 것 행동하는 것 말하는 거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지 말자
자존심상하잖니?
저희들은 하면서 아이들한테는 하지말라고 하는거 너무 우습지 않니
우린 진작 안한다~ 이런 마음이면 어떨까?
뭐 더 근사하게 말했지만 난 이렇게밖에 요약을 못하지만 그 말이 가슴을 쳤다.
행동의 잘못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잘못된 점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모든 폭력을 막는 길이라는 요지였다.
요즘 아이들이 무서운 건 무서움을 모르고 있는 어른들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자기 흠은 보지도 못하면서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요즘 애들은 우리때랑 달라. 얼마나 까졌는지. 얼마나 무서운지.
그런데 그 무서운 아이를 키우고 훈육하고 자라게 만든건 어른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고 말해줘도 삐뚤게 자라는 아이들도 있다. 세상은 언제나 다양하니까.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나를 바라보고 말하는 훈계 잔소리 꼰대같은 언어들이 나에게 스며들어 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 남들은 모르겠지 하면서 내뱉는 말들 몸짓들 그리고 부끄러움 없는 모든 것들을 습득할 뿐이다. 그게 더 쉽고 자연스러우니까.
책에서 가장 좋은 건 서문이었다.
아이는 어른이 없을 때 자란다는 말.
아이는 어쩌면 어른이 없어야 더 잘 자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아이들은 지루해서 온몸을 뒤트는 그 순간 자란다고 했다. 숙제가 있고 학원이 있고 시간이 모자라 정신없이 지식을 넣고 교양을 넣고 체력을 키우는 동안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아무 할 일도 없고 아무런 것도 배우지 않아서 지루하고 지루해서 온몸이 뒤틀리는 그 순간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고 했다. 그 순간이 통제하고 간섭하는 어른이 없는 그 순간이다.
꽤 괜찮은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정말 희귀한...
좋은 아이들이 사고 없이 아픔 없이 잘 자라만 준다면 분명 좋은 어른이 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할 시간에 내가 얼마나 좋은 어른이 될까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 될까를 고민하고 행동하는게 더 좋은 교육이고 양육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 책에서 배운 것들......
있으나 보이지 않는 존재. 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는 귀신이 된다.
사랑이 없는 장소는 흉가나 다름이 없다.
관심이 없는 곳도 폐가와 다르지 않다.
집에서 학교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귀신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니 어른도 있다.
무심했던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을 때 너무 낯설다.
저 사람이 여기 있었던가? 왜 내가 몰랐을까? 정말 있었던 게 맞을까?
내 무심함은 생각하지 않고 그를 귀신보듯 한다. 그리고 놀라고 악몽이라 여긴다.
조용하고 소심하고 여린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들이 있다.
말도 못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하는 아이들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가지고 있는 볼륨도 저마다 다르다.
묻지 않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들은 입을 잃어버린다.
어른이 제 문제에 빠져 정신없는 동안 아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든다.
가끔 그렇게 서둘러 철이 든게 억울해서 아이는 침묵하고 귀를 닫고 입을 닫는다. 그리고 독립을 꿈꾼다. 혼잣말을 한다.
그러면 어른은 의젓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변신이야기는 가능성의 이야기다.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이야기
그건 뒤집어 말하면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연하다”
논리적으로 마땅해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권위의 강요에 못이겨 부당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폭력은 대개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어떤 논리나 호소로도 상대의 편견 신념을 깨뜨릴 수 없다면 큰 절망이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들은 논리로 해결되지만 마음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이해할 수 있다.
추론의 과정이 “누가 그랬지?”에서 “왜 그랬지?” 그리고 “반드시” “모두” 그래야 했을까를 생각해야한다.
착하다 와 못됐다는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다.
우리를 서럽고 힘들게 하는 건 삶의 복잡다단한 굴곡일 때도 있지만 과자부스러기 한 조각일 때도 있다. 긴 이야기를 전부 들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한 장면 때문에 그 사람 전체를 이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고 그것이 꼭 착각이라는 법은 없다.
사람들의 생활속에 슬픔의 자리를 ‘화’가 차지한지 꽤 되었다. 슬픔이 내면을 향하는 감정이라면 하는 화는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다.
슬픈 감정=약한 사람. 슬픔은 권하고 싶지 않다.
슬픔은 화가 지니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자기 안으로 깊숙이 슬퍼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