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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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 볼 수 있다.

 

혐오표현의 유형

차별적 괴롭힘 ....>> 편견 조장.....>>  모욕 ...>> 증오 선동

 

 

말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에 칼날이 번득이기도 한다.

무심코 던진 말일 수도 있고 심사숙고해서 어렵게 꺼낸 말일 수도 있는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말들은 그저 말이 아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입장과 시각을 모두 아우르는 결과물이다

생각없이 말한다고 하지만 그 생각없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은 생각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속에 젖어 있는 선입관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세상의 상식과 당위들이 뒤엉켜서 나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그것이 말로 글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 내 뱉은 말이니 생각없이 나온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런 말들이 누군가에게 꽂혀 칼이 되고 독이 독이 된다.

칼에 맞은 상처나 독에 찔린 상처는 깊은 통증과 흔적을 남기고 한 번 아팠던 사람은

다음에 비슷한 말에 다시 경기를 일으키고 몸을 움츠리며 불안에 떤다.

칼이 아픈지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경험해 본 사람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니까

 

모든 이들은 평등한 인간이고 인간성의 존엄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정의에 관한 기초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폭력, 배제, 모욕, 종속의 가장 지독한 형태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에 확신하는 것이 정의의 가장 중요한 기초인데 혐오표현은 이 기초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혐오표현이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면 이것은 헌법적 가치인 인간존엄 평등 차별로 부터 자유로울 권리 연대성 등을 훼손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표현이 이러한 가치들을 파괴한다면 표현의자유가 우선시될 수 없다.

 

누군가를 어떤 가치관을 싫어할 수 있다.

그리고 싫다고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이게 되고 많아지면 내가 가진 생각은 당연한 상식이 되고  힘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말로 인해 상처입을 타인이 있다는 건 잊게 된다

아니 타인을 인식하지만 그가 그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음 역시 당연하게 생각해버린다.

그리고 말들이 모이면서 행동이 되고 규칙이 되고 울타리가 되거나 분노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생각이 말로 형태를 갖게 되고  모이게 되면서  움직임을 만들고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그 이면에 누군가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은 잊어버린다. 아니 그게 당연하게 된다.

 

혐오표현이 잠재적 가해자들 사이에서 확산성이 있다는 점도 혐오표현의 해악을 가중시킨다. 명예 훼손이나 모욕은 특별히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혐오표현은 다르다.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혐오감정과 차별적 편견이 권력욕이나 경제적 궁핍 사회불만등과 결합되어 문제의 원인을 소수자에게 전가하고 희생양을 만들기도 하고 혐오 이데올로기가 후대에 전승되어 사회에 뿌리박히고 혐오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자는 혐오표현이 가지는 제한성과 배타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런 혐오표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제도적으로 법을 만들고 강제성을 띄어서 제한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럴 경우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부딪칠 수 있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말이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이 싫다고 말하는 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재갈을 물리는 것이 제도화 되어버리면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회가 평등하지 않고 누군가 어떤 집단은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경험했다면 그들에게 던져지는 어떤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그저 한마디의 말이 아니다.

그건 공포일 수 있고 불안 나아가 생명까지 위태로운 무시무시한 상황일 수 있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고 스스로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했던 어떤 소수자에게 나는 너희들에게 동의하지 않아. 라는 말은 그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의견일뿐 아니라 하나의 폭력으로 다가올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심한 말들이 어느 순간 하나하나 개별적인 언어라 아니라 뭉쳐진 덩어리가 되어 어디서 나를 후려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아직 혐오표현을 경험하지 않았고 왠만한 말에 상처받은 경험이 없다면

사회가 살만한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만큼 운이 좋고 소수자가 아닌 편에 있는 경우라고 생각을 해야한다. 사회는 여기저기 기울기가 다른 곳이다.

저자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우선 사회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혐오표현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자꾸자꾸 말하고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혐오표현이 자리잡지 못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걷잡을 수 없이 혐오표현들이 다양해지고 여기저기서 에상치 못하게 부 딪치고 충격을 주는 혐오표현들이 그렇게 정화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서로서로에게 겨눠지는 수많은 혐오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생겨났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과연 개개인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와 약자를 향한 (본인은 정당하다고 당당하게 믿는)혐오발언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무작정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결국은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갈등을 사랆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지 않나 하는 조금은 말랑말랑한 제안을 하지만.. 역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군가를 향해 비난을 하고 혐오를 드러내는 일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까

아니 나아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고 없어지기를 바라고 그래서 물리적인 행동을 옮기는 일이

나에게도 과연 득이 되는 일일까

그래서 사라진 누군가 약자 혹은 혐오대상이 언젠가는 내가 되지는 않을까

해결책 보다는 생각이 더 복잡해지는 책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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