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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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학교에 작은 포스트 잇이 붙었다.

 

"feminist .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여자가 토막살인을 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여자가 토막살인을 당해도 토막녀 살인사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여자 아이들에게 '만지지 마세요'를 말하라고 가르치는게 아니라

  남자아이들에게 "허락없이 만지면 안돼" 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가해자가 없어지면 피해자도 없어집니다"

 

" 세상에 기아란 없다.

  나는 오늘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성 혐오란 없다

  나는 오늘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여자들은 "김치녀"가 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검열하지만

 남자들은 "한남충"이  되지 않으려고 여자들을 검열한다.

젠더 권력의 차이란 그런 것이다"

 

 

누가 언제 왜 붙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 쉬는 시간에 봤더니 이런 포스트잇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포스트 잇을 잡아 뜯어버렸다고 했다.

그나마 일찍 발견한 아이는 그걸 사진에 담아 왔다.

누가 왜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읽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고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왜 욕을 하지?

이게 붙어있는게 누구에게 피해를 준건 아니지 않나?

남자애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런걸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있더라.. 아이는 그 사실에 더 놀랐다고 했다. 뭐 여자라고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욕할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누군가 공부하기 싫어서? 혹은 궁금해서 누가 복도에 이런걸 붙여놨더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지만 선생님은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갑작스러웠을 것이고 뭐라고 해아할지 순간 머뭇거렸을 수도 있을 것이고 혹시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게 멈칫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프닝같은 하루가 지나고

며칠 뒤 이번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스티커를 붙이는 자보가 화장실에 붙었다고 했다. 그것 역시 몇몇이 보았고 몇몇이 욕을 하고 몇몇이 찢거나 스티커를 아무데나 붙이며 사라졌고 그날 오후 방송에서는 허락받지 않은 계시물을 함부로 부착하지 말라는 학생부의 통고가 들려왔다고 했다.

아이는 누군지 궁금하다고 했다.

처음엔 어떤 학생이 아닐까 했는데 어쩌면 선생님일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누구인지 용기가 있지만 용기가 없기도 하다고 조잘대다가 학원으로 갔다

 

 

예전 가정폭력 활동가 수업중에 한채윤 선생님 강의가 참 인상적이었다.

여러 성소수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강의가 정말 좋았다.

누구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던 부분을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쉽고 재미있게 거부감없이 하는 설명에 모두 넔을 잃었고 열광했었다.

돌아와서 이런  아이를 붙들고 설명했지만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머리탓에 혼자 해매다가 이런 좋고 쉬운 강의를 너희 나이에 받으면 참 좋을텐데. 그러면 편견이 좀 적어지지 않을까

너무 쉬워서 누구나 듣고 금방 이해 되더라

물론 엄마도 이해는 다 했어 다만 외우질 못했을 뿐이야.... 하며 수다를 떠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런 강의 한 번 하는 건 하겠지만 하고 나면 학부모회에서 난리가 날 수도 있어"

아... 그럴수도 있겠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은 아니니까 누구나 의견은 다르니까....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강의는 모두 다 듣는게 좋은데... 아쉬웠다.

말랑말랑하고 알고 싶은 거 많은  그리고 어쩌면 이미 편견이 조금씩 자리를 넓히고 있을 지 모를 그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게 정말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만 했었다.

 

조금씩 정말 아껴가며 읽었던 책의 마지막을 덮었다.

마음이 서늘해진다,

누군가는 몰라서 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알지만 말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알 필요조차 없는 진실들.. 사실들..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하나의 권리이며 동시에 권력이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누구나 하는 생각 이미 세상의 당위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아닌 조금만 비틀리고 방향이 다른 이야기들은 그대로 침묵이 된다 누군가 힘이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그건 폭언이고 반항이고 쓸데없으며 조용히 사라진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포스트 잇의 글귀들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지만 함부로 권할 수 없는 좋은 이야기들

세상에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것들이 참 많았다.

 

솔닛의 글에 '여성"의 자리에 누구든 약자를 넣으면 다 말이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 장애인. 성 소수자. 외노자 .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서 ... 도와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야 하는 말이야

그러니 조용히 따르기만 하면 돼

꼭 그렇게 많이 알 필요는 없어

그렇게 세상의 많은 입들이 조용히 닫히고 세상은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는 평화가 되고 안전이라고 여겨진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저 솔닛의 책에 밑줄을 치고 소리내어 읽어 볼 뿐이다.

 

 

 

감정이입이란 우리가 타인을 진실되게 느끼기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느끼거나 타인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자신을 넓히고 확장하고 개방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의 일부를 닫아두거나 제거해버렸다는 것. 자신을 어떤 종류의 취약함으로부터 막아두었다는 것이다. 남을 침묵시키는 것 혹은 남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타인에게도 인간성이 있으며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p66

 

 

우리의 인간다움이란 이야기들로 구성되고 만일 언어와 서사가 없는 경우에는 상상력으로 구성된다. 그 상상력이란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아니라 네게 벌어졌기 때문에 내가 말 그대로 몸소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치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어져 있고 누구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살해되어 침묵당하면 감정이입을 끌어낼 수 있었던 목소리들이 침묵되고 의심받고 검열받고 말할 수 없게 되고 들리지 않게 된다. 차별은 누군가가 어떤 측면에서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에게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우리 서로 간의 차이가 전부이고 공통의 인간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p67

 

 

랭턴은 우리의 논쟁의 촛점을 재설정하여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하는 일 말이 품은 힘에 주목한다. 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언어를 써서 결혼하고 투표하고 평결하고 명령한다. 혹은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을 때는 하지 못한다. 주인이 노에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건 명령이지만 노예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호소이다. 각자가 지닌 힘이 말의 의미와 말이 할 수 있는 일을 혹은 할 수 없는 일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p109

 

 

수치심은 자존감을 파괴하는 것이다. 공격자가 피해자에게 스스로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피해자가 스스로를 더럽고 역겹고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가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피해자가 경찰에 범죄를 신고하거나 도움을 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피해자는 또 자신의 과거 성경험과 폭행의 세세한 측면이 꼬치꼬치 파헤쳐질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p 140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니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p148

 

 

집단이란 물 샐틈 없는 범주이므로 그 속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사고방식, 신념, 나아가 책임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차별의 핵심적 요인이다. 이런 생각은 집단 처벌로 이어진다. 이 여자가 나를 배신했으면 저 여자를 비난해도 된다는 생각 집 없는 사람들 중 일부가 범죄를 저질렀으면 모든 집 없는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쫓아내도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p 212

 

 

얼마전 나는 무지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보았다.특권있는 사람 재현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사람 실제로 자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이 나름대로 일종의 상실이다.

페미니즘은 여자들이 과거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험에 대해 마침내 말을 꺼내는 것인 경우가 많다면 반페미니즘은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인 경우가 많다.  p242

 

 

누군가가 나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 쉽지 않을것이다.

나는 부조리가 싫고 세상에 불만이 많고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내게 좀 대단한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게 편한 입장에서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예전 김수현의 <사랑은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에서 커밍아웃한 동성애 아들을 대하는 부모를 보면서 적어도 나도 저렇게 행동하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스개 소리로 지식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성을 데려오면 어떻게 할거냐는 닥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할때 그 수다들을 막은 질문은 그것이었다.

마음에 안드는 이성이 아니라 마음에 안드는 동성을 데리고 오면 어떡할래?

그 질문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지도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보따리를 내미는 것이다,

나는 극히 이기적인 부모의 입장에서 나중에 내 자식이 어떤 입장이 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 목숨이나 재산이나 명예를 빼앗는게 아니라면) 그 입장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를 바란다,

내 아이가 여자여서 밤길을 조심해야 하고 여자여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다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고  여자를 사랑해서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내 아이가 당할 차별과 불합리가 두려워서 나는 지금 이순간 누구도 차별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겨눈 칼끝이 언젠가 내게도 돌아올 수 있다.

지금 내가 살고 말 세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고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내가 조금 더 살기 편하게 누구나 세상을 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그가 무엇무엇이어서 외롭고 아프고 답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병신같은 질문을 받지 않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하고 내가 먼저 움직이고 내가 조금 더 따지려고 한다.

이것도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참 이기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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