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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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 전 달에 나는 그와 여섯 번쯤 대화를 나눴는데 실망스럽게도 그와는 별로 할 얘가기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어떤 신비로운 거움일거라는 첫 인상은 점점 사라지고 이제는 그저 한동네의 호화로운 여관집 주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누구나처럼 개츠비와 데이지를 중심에 놓고 읽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과연 진실한 사랑일까?

통속적이고  들 떠 있는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불안한 사람들 과연 사람은 뭘까?

왜 개츠비가 위대하지?

왜 이것이 고전이 되었지? 그냥 통속적인 이야기인데? 하이틴 로맨스랑 다른게 뭐지?

 

이번에 다시 읽게 되면서 나는 다른 인물보다 화자인 닉 게러웨이에 주목했다.

그는 이 소설의 화자이다.

우리는 그가 보고 그가 느끼고 그가 판단하는 걸 볼 수 밖에 없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누군가 일인칭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른 판단을 할 수 없다.  독자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책을 닉의 시선을 통해 그에게 의지하며 알아간다.

 

닉은 상류층 인물이다. 개츠비보다는 데이지와 톰에 가까운 인물이다. 다만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인묭문처럼 내가 가진 시선이 어떤 특수성에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걸 늘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인식과 행동이 일치하진 않는다. 의식적으로 자기의 위치를 생각하고 타인을 바라보지만 알게 모르게 닉의 계급과 그가 가진 익숙한 문화가 튀어나와 그의 시선을 조절한다.

 

닉의 시선에는 늘 우월함이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한 발 떨어져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입장을 취하고 어느 편에도 쉽게 서려고 하지 않았다. 일인칭이지만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게 화자가 끼어들 만한 여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닉을 얄미울만치 두 세계 사이를 걸치고 있으며 빠져들지 않는다.그는 늘 세계의 바깥에 서 있고 셰게 안으로 발 하나를 걸쳐 놓을 뿐이다. 언제든 뺄 수 있고 언제든 선을 그을 수 있게

그는 이야기 밖에서 인물들을 바라보지만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고 가끔 이야기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철저하게 자기의 입장이고 스스로를 변호할 뿐이다.

톰과 데이지와의 관계 그리고 개츠비와의 관계에서 나는 모든 걸 가진 사람이라는 위치에서 둘 을 내려다 본다.

속물적이고 즉흥적이 인물의 일탈들에도 냉소적이고  개츠비의 막무가내의 자아도취같은 로맨스에도 쉽게 공감하지는 않는다.

어떤 인물도 이해하지만 그 입장을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 나와 다른 타인을 공감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비지의 조언이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누구나 제각각의 입장이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을 판단하는 건 어쩌면 편견이고 오만일 수 있다.

 동시에 그 말은 많은 걸 가진 입장에서 너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주위해야한다는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하는  문구가 될 수도 있다.

닉의 태도는 각자의 입장을  이해해보려는 태도와 함께 그럼에도 나는 그 지저분한 관계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몸사람도 느껴졌다.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통속적인 치정극을 닉과 함께 보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닉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 결핍을 알지만 그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그 결핍을 채우고 싶어 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통해 상류층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싶고 데이지는  로맨틱한 사랑도 꿈꾸지만 동시에 톰과의 생활이 주는 상류층의 달콤함을 더 갈망하고 톰은 머틀과의 불룬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머틀 역시 톰을 통해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닉 역시 이들의 일상을 우연히도 함께하고 엿보면서 아무일도 없고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더하고 자기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얻는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내게 없는 걸 굳이 나를 쥐어 짜내며 구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풍요하게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전적으로 타인이 그것을 충족시켜 줠거라고 믿거니 해서는 안된다.

인물들은 누구나 타인이 나를 채워주길 바란다.

내가  결핍된 것을 말하지 않아도 타인이 채워주기를.. 너무 바라기만 한다.

그러나 결핍된 사람이 또다른 결핍된 사람을 채워주긴 힘들다.

상처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하고 편한 것에 끌리는 편이라 상처를 가진 사람은 또다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있는 대상을 택한다. 동병상련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위안이 되리라 믿지만 냉정하게도 내 상처조차 어쩌자 못한 사람은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 줄 수 없다. 오히려 내 상터가 거 벌어지지 않은 것에 더 신경을 쓰느라 타인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가진 상처는 그 상대로 인해 더 커지고 오히려 또다른 상처를 얻게 된다.

사실 없는 사람들끼리 보듬고 살거나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를 치유해주고 살아가면 좋겠지만

사람은 내가 가가진 것과 비슷한 사람에게 익숙하게 끌리면서 동시에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채워주기를 바란다. 같은 대상에게 너무나 다른 걸 바라는 것이다.

 

자기부정에서 출발한 개츠비는  허영심이 많고 나약한 데이지를 안아 줄 수 없다.

데이지 역시 개츠비에게 색다른 매력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에게 어떤 안전기지가 되어줄 마음은 없어 보인다.

톰은 데이지가 상징하는 상류층의 세상을 버릴 생각은 없지만 머틀이 가진 육감적인 매혹을 떨쳐버릴 생각도 없다.

닉 역시 모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저 자신에게만 관심있는 인물이다. 그들을 통해 그들을 이해햐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보며 나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야.. 하며 안도하는 인물이다.

모두 이기적으로 타인을 통해 자기를 위안하고 적당히 무시하면서도 겉으로는  교양있는 척  행동한다.

모두가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것이 그가 고결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것보다.

그런 위선적이고 욕심스러움 속에서도 대책없이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무언가를 믿고 달려가는 무모하면서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때문 아닐까

대책없이 무모하며 순수한 개츠비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데이지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지만 결국 스스로  파멸한다. 결핍을 채우기위해 가졌던 것이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었지만 그가 소망했던 그 순수함은 거짓이고 찰라적인 것이고 허상이었을 뿐이다.

좀 서글픈 위대함이다.

 

누구나 자기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

자기가 얼마를 가졌든 보잘것없는 위치든 제각각 자기 위치에서 보이는 시선을 가졌을 뿐이다.

개츠비의 집에서 건너 보이는 반짝이는 초록불빛은 그립고 갈망의 대상이었고

부캐넌의 집에서 건너보이는 집들은 그저 졸부들의 천박한 모습이다.

내가 보는 것이 사실 그 대상의 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왜 그런 모양인지까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닉이 들려주는 개츠비의 살아온 모습과 개츠비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아들 개츠의 모습은 다르다. 각자의 시선에 각자의 정서를 필터로 보는 것이지만 두 가지 모습이 다 개츠비였을 것이다.

다만 닉은 닉의 입장에서 보고 판단하고 타인의 판단들은 유보하거나 무시한다.

아예노골적으로 무시하며  타인을 보려고 하지 않은 톰이나 데이지, 조던보다 모든 걸 다 보려고 한다는 중립적인 자세를 지니려하지만 정작 자기의 시각도 그리 넓지 않다는 걸 모르는 닉의 시선은 더 큰 편견이다.

 

닉도 신비한 이웃 개츠비에게 관심을 가진다. 어떤 인물인지 호기심을 갖고 경외감을 느낀 적도 있지만 금방 개츠비가 진실되지 않다는 것과 자신과 다른 부류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데이지에게 아직도 미련을 가졌고 그가 데이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셔츠로 상징되는 부의 과시이상 아무것도 없으며 결국 데이지는 자기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을거라는 것도 짐작한다. 개츠비는 그냥 그들 옆을 서성이다 쫒겨날 거란 걸 안다.

개츠비의 파티에 왔던 사람도 호기심으로 다가 왔다가 그냥 이용하고 즐기기만 했을 뿐이듯

닉 역시 마지막까지 개츠비를 지켰지만 나는 아직 그의 진심을 믿을 수 없다. 게츠비는 어쩌면 닉의 삶에 하나의 색다르고 의미있을 추억의 하나로 남을 뿐이다.

재즈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곧 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고 밀주를 마시며 떠뜰썩하게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은 또다른 삶이 시작될 것이다. 개츠비는 잊힐 것이고 톰과 데이지는 그냥 같은 패턴으로 살아갈 것이다.

삶의 한 시대가 지난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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