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세상에서는 어떤 질문도 나올 수 없다,

모든 것은 의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모든 질서들은 당연하다.

조금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불쑥 들때가 있겠지만 그건 단지 내가 별나서거나 내가 모나서일 뿐이지 세상은 익숙하고 당연하다,

그런 세상에서 아니지 않은가? 라거나 이상하지 않니? 라는 목소리는 내는 것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나대거나 튄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젠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하고 많이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끼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는 누군가 아프고 불편하고 힘들다,

그건 언제나 타인이지 않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아이을 키우게 되면 다양한 지영씨들을 만난다,

나처럼 서른 넘어 첫 아이를 낳은   지영씨부터 갓 스물 넷에 첫아이를 낳은 아직도 소녀같은 지영씨까지... 나이도 다르고 살던 곳도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도 다르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단하나의 공통점만으로 모여도 이야기는 잘 통한다,

비단 아이를 키우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시집식구들과 격는 갈등

우리도 밤에 모임을 하고 싶은데 자꾸 남편 눈치가 보인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나도 한때 한 술 했는데 이젠 그런 모임은 고사하고 동네 엄마끼리 맥주한잔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푸념

내가 한때는 전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집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아이가 있으니 어디 근사한 식당은 고사하고 동네 분식집이나 중국집에서도 구석자리를 잡아야 하고 얼른 아이 챙겨먹이고 일찍 일어나야하는 조급함도 같았다,

나이가 다른데 어쩜 이렇게 잘 맞을까?

그저 한때는 그게 우리가 잘 맞는 동네친구라서... 라고만 생각하고 뿌듯했드랬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변하지 않은 것이었을까?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울때  나처럼은 살지 마라 살지마라 했었고 나 역시 그래도 엄마처럼 살고 싶진 않아.. 라고 되뇌이면서 나는 다를 거라고 믿었다,

대학시절 겨우 한두학번 아래 후배를 보면서 꼭 나이든 사람 마냥  학번차이가 장난이 아니야 하면서  우리와 다른 세대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후배들을 보곤 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보면 엄마의 삶이나 나의 삶이 그렇게 멀지 않고

60년대 끄트머리에 태어난 지영씨와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지영씨가 다르지 않게 서로 통하고

결국은 소설속 82년 지영씨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

여자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하고 약간씩의 차별을 받았지만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존중받고 귀하게 큰 딸들이었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싶어했고 대학은 못가더라도 괜찮은 여상에 가서 괜찮은 직장을 잡고 싶어했었다,

남자못지 않게 학점도 따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적도 있었고

직장 생활에서도 간혹 보이는 덜떨어진 남자들을 보조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나름 보람있고 즐거운 시절도 있었다,

나는 엄마랑 다르구나.. 이젠 시대가 다르구나 하고 느끼던 찰라의 순간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열살이상 차이나는  고만고만한 아이를 키우고 또 아이가 자라서 학부형이 되고 진학을 걱정하는 나이까지 오면서 우리는 점점 닮아갈 뿐이었다,

 

아들을 낳을 때 딸을 낳을 때 역시 대접이 다르더라

티내진 않지만 은근히 손녀는 차별하더라

지금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자꾸 눈치를 주니 지금이라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지 고민중이다,

아무래도 딸은 이쁘게 키우는게 젤 중요하지 않나?

아들이면 그냥 알아서 오겠거니 하겠지만 딸이니.. 힘들어도 어쩔 수 있나? 독서실에서 올때 데리러 가야지..

아무래도 딸이라 보니 선생님과 일대일로 하는 과외는 좀 꺼리게 되네

아이가 주번이라고 해도 딸아이라 보니 학교에 일찍 보내는 것도 좀 겁이 나

뭐 아들은 안그런가? 그래도 딸이 더 신경 쓰이긴 하겠지?

주위에서 스토커같은 엣애인때문에 고민하고 고생하는 남자들이 분명히 없진 않겠지만

드라마에서도 뉴스에서도  출처를 알 수 없는 톡에서의 소문들도 그 주인공은 늘 여자였다,

연애를 하고 싶고 멋진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워 하는 것

사귀다 보면 헤어질 수 있고 서로 마음이 멀어질 수도 있는 일인데 행여 그 때문에 험한 일 당하지 않을까 아예 연애를 포기해버릴까 하는 마음

남자에게는 당연히 묻지 않은 질문들

결혼하면 직장은 어떡할거예요?

애 낳고도 계속 다닐 건가요?

이렇게 밤늦게 일하면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나요?

남편도 이렇게 술 잘 마시는 거 알아?

 

뭐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마음 베려하는 마음 챙겨주려는 마음일거라는 것도 안다,

세상이 험악하니까 ....

결국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나 개인적인 우울감 등으로 드러나느 폭력이나 사건에서 남자가 피해자라는 뉴스는 들은 기억이 없다, 언제나 피해자의 역할은 여자들이었다,

드라마를 봐도 연쇄 살인범은 남자였고 늘 그 피해대상은 힘없는 여자들이었다,

예전에 엄마가 말했었다,

딸들이  어리면 어린대로 걱정이고 다 크면 다 커서 걱정이다,

딸들이 다 귀가하면 비로소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갔다는 셍각이 든다...

가끔 친구와 술을 마시거나  수다가 길어져서 늦어지는 날마다 들었던 엄마의 전소리였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집에 있으면 결혼이나 할려나 하고 걱정

약속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  언제 오나 왜저리 밖으로만 도나 하는 걱정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결국 나도 어쩔 수 없이 그 엄마처럼 전전긍긍한다,

한참 이쁠 때고 이쁘고 싶을 때라는 걸 머리로 이해햐면서도

짧은 옷은 입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직은 학생이니까 화장은 안하면 좋겠고

어디 친구끼리 다닐때는 그냥 긴 청바지를 입고 나가면 좋겠고

아무리 기막힌 학원이라도 멀리 떨어진 곳은 일단 망설여지고..

학원 선생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신경써야 하고 그 학원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신경써야 하고  혹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으슥한 곳에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고 ...

어쩌면 그렇게 한치도 틀리지 않고

예전 엄마가 했던 걱정을 내가 그대로 하고 있고

나는 이렇게 엄마랑 다르니까.. 또 다르겠지 하고 믿으며 조금은 시샘하고  경계했던 나 이후의

후배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다,

 

여자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는 거?

이제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해서 남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거?

각종 고시나 학교 교사들이 이제 남자보다 여자가 조금씩 더 많아지는거?

집안에서 엄마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한것?

단지 그것들 만으로 여자가 살만해졌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젠 역전되어 매맞는 남자도 생겼고  여학생들의 진학률이 남학생을 능가했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지 않았느냐고.. 남성부는 없는데 여성부는 있고 남성들은 여전히 군복무의 의무가 있지만 여성들은 그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냐고...

여대는 있지만 남대는 없으니 대학진학에서 여자들이 갖는 이익도 얼마나 크냐고...

웃기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학력 나이 등등 의 스펙중에 가장 큰 스펙이 남성이라는 거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의 절반은 이해하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하며 또 여자들 중에도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다, (몰른 그 속 마음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말하고 주장하는 여자들에게

나대고 시끄럽다고 말했던 개그맨의 언행은 그만의 것이 아닐것이다,

여자들은 수다스럽고 사소하고 속된 이야기를 좋아하고 큰 일은 함께 할 수가 없는 족속이며 언제나 한 발 뒤에서 도와주고 보조하고 보살피는 존재이길 바란다,

원하는 순간, 드러나는 사람이길 바란다, 평소에는 그림자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우면 그뿐이다,

모든 일에 보조하는 사람인  지영씨들이 오로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는 주체적이길 바란다, 그 부분에서 지영씨가 아닌 이들은 그저 도와주고 조력하고 감사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건 사적이고 소소하며 개인적인 일이니까

결국 58년 지영씨도 69년 지영씨도 75년 지영씨도 82년 지영씨도 그리고 93년 지영씨도 아마 우리는 다를것이라고 굳게 믿겠지만 결국 우리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 억울하고 또 동시에 힘이 되리라 믿는다, 세대를 지나도 우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래서 우리는 더 잘 소통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두 발을 다시 디딜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지영씨를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연홍과 종찬의 딸 민진이 실종되었다,

하필 그날은  국회의뭔이 되려는 종찬의 선거 첫째날이었고

하필이면 그들의 딸은 문제아였고

이미 시작된 선거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고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다

전에도 있던 일이라고 하며 종찬은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한다,

행여 아이가 돌아왔을 때 더 곤란해질 수 있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실종신고는 미뤄지고 연홍 혼자 초초하게 민진의 흔적을 쫒는다,

연홍이 알고 있는 민진의 정보는 모두 가짜가

연홍이 알고 있는 친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연홍의 친구들은 여전히 날라리고 민진을 알지도 못하고 학교에서는 왕따였다,

연홍은 혼란스럽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연홍은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생각하려고 애쓴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미친년처럼 중얼거리고 감정이 앞서고 흥분하고 날뛰면서 연홍을 뛰어다닌다,

엄마니까 무서울게 없고 부끄러울 게 없고 거리낄게 없이 학교로 거리로 경찰서로 쫓아다닌다

종찬은 무서울만치 냉정하다,

이미 문제를 일으켰던 딸이고 가출을 경험했던 딸이다, 앞에는 일생을 걸어야할 선거가 시작되었고 경쟁자는 시시틈틈을 노리며 약점을 찾고 있고 세상이 초짜 정치인을 지켜본다, 내편이라고 안심할수도 없는 상황이다, 종찬을 둘러싼 남성들의 세계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질서있게 움직인다, 어떤 시기에 경찰에 가야할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표정을 보여야 할지 계산이 철저하다,

결국 시신으로 돌아온 민진앞에서 연홍은 미친년이 되고 종찬은 차본하게 연홍을 다독이고 협박한다, 이렇게 나가서 좋을게  이득 볼 게 하나도 없다고....

가족의 일은 사적인 일이고 사소한 일이며 지금 문제를 크게 일으킬 수는 없다,

오히려 딸의 죽음으로 동정표를 얻고 상대편 후보에게 의심이 가면서 선거판은 유리하게 돌아간다. 계산이 앞서고 머리회전이 먼저 될 수 밖에 없다,

연홍은 무엇이 대의이고 무엇이 사소한 일인지 구분할 수 없다,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다,

딸이 죽었고  이유를 알 수 없고 누가  죽였는지도 알 수 없으며  나아가 내 딸이 어떤 아이인지 조차 알 수 없다, 나쁜 아이? 영악한 아이?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에 당혹할 뿐이다,

종찬은 계산을 하고 어떤 방향이 내게 이익인지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성적으로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움직인다,

연홍은 흐트러졌다가 단정했다가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가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가 표준말을 썼다가 정신이 없다, 타인에게 덤비고 자해를 하고 폭력앞에 노출된다,

그러나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미친년처럼 돌아다니던 연홍이다,

뭐든 사소하지 않고 허투루 보지 않고 다가가도 마주하면서 연홍은 진실앞에 다가간다,

이성적이고 반듯하고 흐트러짐없다고 믿었던 대상에게 인간적인  실망.. 아니 존재론적인 배신감을 느끼며 연홍은 혼자 문제를 해결한다,

이성적이고 빈틈없는 종찬은 아무것도 모르고 손선생은 자기 죄를 덮으려고 이성을 잃고 날뛰었고 연홍은 또다시 문제를 파해치려고 정신을 잃고 날뛰었다,

그렇게 사건이 발생하고 그렇게 사건이 해결되었다(?)
감성적이고 작은 일에 집착하고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바로 앞의 문제에만 골똘하던 연홍이 결국은  사건을 풀어낸다,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 사건에 어떻게 연루가 되는지 도데체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조차 모르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큰 그림을 볻다고 믿는  종찬대신 연홍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죄를 단죄하고 상처받은 아이를 안아준다,

연홍을 미친여자취급하고 전라도 여자라고 무시하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믿어버리고 그저 예쁘게 꾸며서 예쁘게 웃으면서 선거 송에 맞춰 율동을 하고 미소지으며 투표하는 사진만을 원할 뿐이다, 나에게 필요할때는 이용하고 필요없으면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것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그 들의 세계에서 문제를 파악하지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알지 못한다, 당연히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문제는 사소하게 시작된다, 어떤 큰 대의나 정의? 정치적 암투따위는 끼어들지도 않았고 그 따위는 애초 있지도 않았다, 모든 문제가 그렇다, 별 일 아닌것 사소하고 사적인 일..그렇게 시작된다,

소문처럼 실체없이 번져나가지만 무시하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분위기

별거 아니라고 개인적인 일이고 집안일이라고 덮고 쉬쉬하고 뒤에서 쑥덕거리던 일들이 덮고 모른척하고  없던 일처럼 치부되면서 그 냄새는 점점 심해지고 썩어가고 악취를 풍기며 자란다

큰 그림에서 보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쪽에는 실체가 없다,

사소하게 시작된 불륜  남겨진 친구에 대한 연민  사생활이 노출될까하는 두려움  비밀 수치감 모욕과 분노가 뒤섞여서 사건이 자란다, 크게 보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상관하라 수 없는 부분 모른 척하는게 예의인 부분에서 사건은 자란다, 모른다고 모른 척 한다고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사적인 부분 가정사인 부분에서 일은 시작되었고 사람이 죽었고 죽였고 복수가 시작되고 문제가 해결된다,

일이 커지고 곪아서 냄새가 진동하기 전까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일

그런 일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

 

 

 

 

 

 

 

 

 

 

 

 

 

 

 

 

 

 

가정폭력이라는 문제에서 해결책이라는 것이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보호"라기 보다는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가정 폭력특레법이 제정되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가족간의 사적인 문제나 가정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폭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결국 주된 목적은 사회의 기본단위이나 누구에게나 안정감을 주고 필요한 가정을 깨지 않고 잘 유지해야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과 믿음  세상에서 절대 없어서도 안되며 보호하고 지켜줘야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동시에 그런 가정은 결국 개인의 영역이고 사적인 문제라서 공권력이나 공공의 개입은 자제하고 그저 모른 척 존중(?)해주고 철저하게 사생활로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의지가 함께 포함된다, 가정이전의 개개인의 안전이나 지지 보호는 그저 가정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누구든 가정을 꺠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행복과 사랑을 꿈꾸며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가정을 이루며 바깥에서는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고 거친 파도가 닥치더라도 우리 가정만은 안전하고 안정적이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누구나 가정은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고 누구나 가정에 소속되어 있어야 하고 그래서 가정이란 어째 되었든 유지되고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그 지속과 유지의 책임은 가족에게만 있을뿐 타인이 간여할 수 없다, 이런 근거없는 믿음속에서 가정을 꺤다는 일은 부도덕하고 패륜적이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가정이 사회의 기본이라고 하고   보금자리라고 하고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가정이 없다는 것 조금 다르다는 것만으로 열등하고 부족하고 문제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데  가정을 깨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죽을만큼 맞고 살아도 가정을 깨려고 한다면  그동안 죽을만큼 맞았던 시간과 고통은 싹 다 잊히고 가정을 깬 여자 혹은 자기 자식을 버린 여자가 되어버린다, 별일도 아닌것을 부부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서...

법으로 보호한다고 하지만 결국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에게 폭력을 가했던 그 가해자를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일것인가 말것인가의 결정은 오롯이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나하나 참고 말것인가 ..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할것인가

가정폭력이 다른 어떤 폭력보다도 다루기가 힘든 건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고소와 처벌로 끝이 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자가 죄책감을 가지고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잇고 최악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절대 분리될 수 없고 그 악순환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가장 먼저 차별을 경험한다,  설령 에전같은 노골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위험하고 험한 세상에 대한 공포감이 가정으로 스며들어 좀 더 세심하게 신경쓴다는 행동들이 하나의 차별이 될 수도 있다, 82년 지영씨가 할머니에게 받았던 차별이 지금은 없어졌을지라도 여전히 지금의 지영씨들도 밤길은 위험하고  짧은 옷들은 나의 의도과 상관없이 해석되고 보호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소외된다, 여전히 말해서도 나서서도 주장해서도 안된다, 누구도 용감하게 나서서 안된다고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눈쌀이 찌푸려지고 거부되고 조용히 무시될 수 있다

연홍처럼 여전히 진실을 다가가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미친년처럼 뛰어야 할테고 여전히 가정내의 폭력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된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게 가장 안전하다, 때로는 그 것만 알고 있다는 것이 권력이 될 수 있다, 모두가 동의하는 삶에 나도 속해있다고는 것이 하나의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이해하고 잇는 것 이상의 더 큰 세상이 존재한다,

내가 알고 믿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남의 일이고 남의 사생활이며 도덕적이고 정의롭고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외면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하고 간절한 일일 수도 있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기에 누구도 깨서는 안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그 곳에서

누군가는 신음하고 아파하고 치를 떤다,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믿었던 것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균열되기도 한다,

모두가 행복할거라고 안전할거라고 믿고 있는 공간에서 느끼는 배신감 소외감 그리고 말로 꺼내기 애매하고  속에 쌓아두기엔 억울한 많은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여기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 이상이며

여전히 설명하고 해명하고 이해시켜야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지영이들이 연홍이들이 그리고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리고 죽어버린 피해자들이 여전히 여기 이곳에 있다,

나 가족이고 내 이웃이고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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