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죄를 지은 가해자가 미성년일 경우 벌을 할 수 없다는 것

책에서도 나오듯이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화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전제하에  미성년의 범죄는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으며 교화에 중점을 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피해자의 입장으로 가서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할 수 는 없다,

사형제 논란만큼이나 소년법의 문제도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예전 어디선가 본 책에서 일본의 소년법이후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시간을 두고 추적한 것이 있었다, 피해자는 그 날 이후 삶이 피폐해지고 힘들어져 결국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 수 없었지만 가해자는 소년원 혹은 비슷한 보호소에서 지낸 후 이름을 바꾸고 주소를 바꾸어 나중에 변호사가 된 경우가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변호사처럼...

죄를 지은 사람이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누구에게나 드러내 보일 필요는 없다, 정당한 벌과 진심어린 뉘우침이 있고 난 뒤에는 새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가해자 피해자가 그 이후 자기의 삶을 어떻게 보듬어 나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질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늘 그렇듯이 인권을 들먹이며 가해자는 철저하게 보호되지만 피해자는 누구하나 위로해주는 사람도 보상해주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 팽개치고 공개되고 여론속에 발가벗겨진다는 것이다,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경우도 어떤 소년범죄도 인터넷상으로  떠도는 개인정보이외의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소문은 부풀려지고 점점 거대해지다가 잊혀진다,

그러나 피해자는 늘 우리가 잘 알게 된다, 어떤 일을 당했는지 왜 그랬는지.. 조심했는지 안했는지 판단조차 그대로 공개된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우리는 피해자는 잘 알지만 가해자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을 늘 겪는다,

 

책에서도  시작은 그렇다,

아내를 무지막지하게 살해한 녀석들은 겨우 15세 중학생들이었고

일본 소년법에 의해 그들의 정보는 비공개가 되고 재판과정이나 그들의 교화과정 어떤 것도 피해자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가족을 잃고 삶을 잃고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데 그들은  새 삶을 위한 교화랍시고 보호받고 지도받을 뿐이라면...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미움이 강처럼 솟고 원망이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다만 그걸 견디라고 개인이 알아서 견디라고 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 그 때의 범인들이 하나둘 씩 죽음을 맞고 그 때의 피해자 가족인 하야마는 의심을 받고 스스로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처음엔 가해자의 인권에 비해 터무니없이 대접을 받는 피해자의 아픔을 드러내며 과연 이것이 옳으냐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꾸 하야마에게  대입되며 아무리 어려도 악마는 악마고 악은 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갱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야마의 이 절규같은 질문에 나도 멈칫한다,

갱생이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죄를 씻는 것이 스스로 세상에 맞게 살 수 있게 지도받고 교육받고 깨우치는 것 그 이상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스스로 돌아보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사죄이다,

내가 한 잘못에 대해 아무리 골방에서 혼자 사죄하고 벌을 받아도 그 마음은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 상대에게 내가 잘못했음을  사과하고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 사과를 받고 안받고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로 인해 더 큰 고난이 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들은 반성했습니다. 늘 괴로워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울림도 피해자에게 줄 수 없다. .......................... 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가고 계속되어 숨겨진 사건의 이며니 드러나는 순간 나는 가해자의 마음에 선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교코의 행동이었고 그로인해 하아먀와 함께 생각이 복잡해진다,

너무 무서워서 차마 마주하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마음속의 죄의식이 점점 부풀어 울라 나를 눌러대고 있어도  마주 대하고 사과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두려워서 그 압박감을 견디고 있는 가해자를 보면  또 마음이 아린다,

그래도 그게 처음이 아닐까..

우선 사과 그리고 반성 그리고 또 사과..... 그리고 처벌

유치원에서 다툼이 나고 누군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로 규정될떼 일단 상황을 알아듣게 설명하고 사과하게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그리고 반성의자에 앉든 손을 들든 벌을 받는 순서가 되는 데... 이후 세상에서는 그냥 반성의자에 앉았다는 것 손을 들고 서 있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퉁쳐버리는 게 아닐까....

반성의자에 앉든 손을 들고 있던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내 마음을 만져주고 알아주고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를 듣는게 더 절실 할 수 있는데... 객관적이고 공평해야한다는 법과 질서는 그 모든 마음이 오가는 과정은 생략하고 행동이 오가는 과정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일단 서로가 마주하는 일이 가장 아프고 힘든 일이겠지만 처음 끼워야 하는 단추가 아닐까 했다,

책장을 덮고 하야마만큼 생각이 많아진다,

 

책속에서 주인고 하야마가 사건을 이대로 덮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시 사건속으로 파고 들게 된다. 싱글대디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게도 운영해야하고 아이도 돌봐야하는 그가 사건으로 파고 들어가려면 모든 일상은 중지되어버린다,

가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는 어린 미나미마저 옆으로 제쳐질 수밖에 없다,

주위사람들은 말한다. 지나간 과거라고 이제 그만 잊으라고 생각하면 괴로운 일... 범인은 잡혔고 사건을 해결된 것이니 이제 미나미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건이 자꾸 그의 발목을 끌고 그것을 덮어두고는 미나미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 수 없다. 그가 말했듯이 아이가 자라 엄마의 죽음에 대해 물어볼 때  혹시 그때 아빠는 무얼 했느냐고 하나면 무어라고 해야할까....

 

글 전체의 소년범 이야기만큼 현실의 문제와 과거의 정리사이에서 고민하는 하야마가 더 눈에 들어온다,

상담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헌재 내 모습을 만든 것은 과거 내 가족 내 행동 내 기억들이다 그것들을 마주보고 그때의 응어리 아픔을 만져주지 않고는 현재를 잘 살 수 없다고 프로이드는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심리상담에서 현재의 문제를 가진 내담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때는 과거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아픈 일이고 현재를 흐트러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 하나 흐트러지는 건 상관없지만 그로인한 파장으 주위까지 흔들어놓는다,

내 주위 사람이 모두 단단해서 내가 흔들리고 흐트러지는 과정을 지켜봐 줄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그것이 미나미처럼 어린 아이라면... 함께 흔들리고  결국 상처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나는 내 과거를 파고 들고 마주하는  그 과정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냥 현재에서 내가 돌아볼 수 있을 만큼 흔들리지 않을만큼만 보고 넘어가야 할까?

내 과거를 마주하는 것 만큼이나 내 현재는 지켜내는 것도 소중하다면.....

 

나 혼자 참아내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기면 편하겠지만 결국 그렇게 숨겨지고 덮어버린 상처는 언젠가 덧날 수 밖에 없고 그땐 쓰라린 치료가 아니라 도려내고 잘라내야하는 큰 수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결국 하야마는 상처를 건드리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다, 그리고 몰랐던 아내의 모습들을 알게 된다. 살아있었다면 결코 몰랐을 모습들 , 가장 감추고 싶어했을 가장 아프고 어두운 기억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다행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소년법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법이 가지는 의미를 통해  보호받은 아내의 모습과 그리고 그 법으로 인해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이 자꾸 중첩되며 생각만 많아질 것이다,

그러니 열어보지 말라고.. 과거란 판도라의 상자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 상자를 열기전과 열고 난 후의 삶은 누구나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좋은지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다,

열어서 해결된 사람도 있는만큼 열어서 더 괴롭고 혼란스러운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상자안을 들여다 본 이후의 삶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상자를 열고 상처 어두움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다시 살 힘을 주는 건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람이 모인 건강한 사회

그건 누구나 자신을 들여다 보고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의 시스템이 필요한 일이다,

그 단단한 토대에서 사람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선택을 한 하야마가 이젠 두 다리를 뻣고 잘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자식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코의 엄마도 이제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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