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붕대 클럽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판매완료


......직감으로 그렇게 느꼈을 때처럼 나는 붕대를 감으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까닭은 상처가 나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여기서 상처를 받았다'라고 인식하게 되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건 상처야'라고 인정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이름이 생긴거야. 시오, 우울했던 일 납득이 안 갔던 일 못 참을 일이라며 마음에 쌓아두었던 일들. 그 감정에 붕대를 감았더니 이름이 붙은 거야 '상처'라고 말야 상처받으면 아프고 누구나 침울해지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일 뿐이니까 치료하면 언젠가는 분명히 낫는 거잖아"   p 74

 

 

 

"난 그냥 알고 싶을 뿐이야, 다른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어떻게 느낄까. 그저 그것뿐이야. 근데 그냥 그런다니까 자꾸 혼을 내더라구, 아무것도 못 해. 힘들어하는 사람한테 난 아무것도 못 해주지. 하지만 알고 싶어. 흙탕물을 실제로 마셔보면 배탈이 나서 아. 이렇게 힘들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잖아. 마시기 전에 모르냐. 상상력이 없냐고들 하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란 말이야. 나를 짧은 순간이나마 어떤 사람의 입장과 비슷한 위치에 둬보고 싶어 그 후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이해하기 전에 어떻게 결정할 수 있겠어. 알아서 뭐 할거냔 질문들을 자주 하는데 그건 안다는 행위까지 방해받는 느낌이 들어"   p 117

 

 

그 무렵 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담임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망설이다가 집안에 일이 좀 생겨서요 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선ㅅ애님은 미세하지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은 묻지도 않고 그렇구나 기운내라 라며 다른 서류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뭔가 해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알아주기를 바랐을 뿐인데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노라고 만약 알아주었더라면 나는 가슴 한구석으로 도움을 받았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야기는 뉴스나 다른 매체를 통해 항상 접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어쩔 도리가 없으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려고 해왔다

알기만 해도 충분했는지도 모르겠다...... 알아둔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힘든 일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을 당했다면 게다가 도와 줄 수 없다고 외면까지 당한다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셰계의 어느 한 곳의 누군가는 알아준다 나의 아픔 나의 상처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내일을 살아 갈 수 있을 만큼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교만일지 몰라도 그렇게 느꼈다.

                                      p 119

 

 

 

"다들 겪는 일이라고 한데 묶어버리는 건 상대방의 마음에 신경써주기가 귀찮거나 내키지 않는다는 정신적 태만에서 온다고 봐"

디노의 말은 부아가 치밀긴 해도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다른 아이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을까.... 나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고 어짜피 남이 알아줄 리 가 없어 라고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했던가..         P 128 

 

 

 

쿵 가슴을 치는 말이었다,

누구나 겪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을 일로 혼자 호들갑 떨지마라

그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고 또 입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대부분 타인의 고통을 대하며 떠로는 말이다.

누군가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판단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

그건 또다른 상처가 된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지 말것 아프다고 엄살부리지 말것 담담하게 대할것

사소한 일은 툭툭 털어버리고 지나갈 것

그렇게 나 자신을 꽁꽁 묶어버렸고 타인을 보는 내 시선의 기준을 만들었다.

그래서 냉정하고  무심하고 소위 말하는 쿨한 인간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돌아보지 못한 내 속의 상처들은 여전히 아물지 못한 채 봉합만 되어있고 타인에게는 어떤 위로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재수가 없어"

"남한테는 관심도 없잖아"

 

최근 아이가 울면서 내뱉은 말들이었다.

쿵 하고 쳤지만 아무말도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나를 보고 알고 있었다.

남에게 관심두고 싶지 않다, 나한테도 관심을 꺼줬으면 좋겠어

옳은 말만 따박따박 할 줄 알았지 마음을 헤아리는 건 늘 샐프라고만 생각했다.

자기상처는 자기가 치유할것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구획을 그으며 살았던 거 같다.,

그러면서도 모순되게도 늘 누군가의 지지와 관심을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냥 덮어버리고 살겠다고 언제부터 생각했을까

상담공부를 하면서 들여다 본 나의 내면은 꼭꼭 문을 닫은 후 그 위에 야무지게 못질까지 해서 어떤 감정도 서투르게 불쑥 드러나지 않게 막아둔 것이었다.

상처도 아프다고 할 줄 몰랐고 그게 상처인지 몰랐다,

내가 그런 건 상관이 없는데 문제는 타인의 상처에도 무감하고 무심하며 냉정하다는 거였다,

그게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면 괜찮은데 내 아이일 경우는 심각했다,

그런 건 상처가 아니야. 징징 짜지 말랬지

너만 아픈게 아니야. 다들 마찬가진데 왜 별나게 구니?

아이들도 점점 무감해졌다.

나는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울 수 있고 화 낼 수 있고 아프다고 엄살부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나는 몰랐다,

그건 내 삶에서 금기되었던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또는 어떤 상황에서 불쑥 불쑥 울음이 터지려고할 때 누군가 엄격하고 무심하게 소리쳤다.

우는 거 아니야. 울지마..

그건 언제나 적절하게 들렸고 울음은 고통은 쑥 들어가서 나는 꼭 내 육체에서 빠져나온 영혼처럼 그 상황을 저 위에서 객관적으로 보면서 무심해져갔다,

난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의연한 거라고만 믿었다,

그렇게 자잘한 생채기들은 무심히 방치되었고 나는 점점 딱딱한 어른이 되었고 주위에 그걸 요구했다,

아프다고 할 수 있는 것

그게 진정한 성숙이고  정직이고 용기임을 이 책이 알려주었다

어렴풋이 내가 틀렸구나 하고 느낀 지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상처에 붕대를 감듯이 내가 상처받았던 그 장소에 붕대를 감는다..

유치하고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그렇게 상처를 드러내고 정면으로 보면서 나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공감해준다.

단순하고 유치한 그 행동이 위로가 된다는 게  놀랍고 따뜻했다.

 

붕대클럽의 멤버들은 자기도 모르는 많은 상처들을 붕대감기라는 행위를 통해 알게 된다,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이 상처가 되었고 내가 화가 나고 슬프고 무섭고 마주하기 싫었던 일들과 장소들이 나의 상처였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꺠닫는다

세상에는 하찮은 상처는 없다.

누구의 상처든 다 귀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내가 하찮은 일때문이 끙끙대고 아팠듯이  상대도 무의미한 무언가로 아프고 힘들것이다,

그 상처를 함께 만져주고 인식하고 마주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회복이 시작되는 거라는 것

어린 친구들이 사랑스럽고 멋지다.

 

 

늘 침침하고 우울하면서 아픈 단면을 눈앞에 내보이는 작가가 내놓은 가볍지만 따뜻한 이야기

무심코 흘리고 넘어갔던 곳에서 뜻밖의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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