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내성적인 성향은 그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도 무척이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무난한 사회생활을 했고 모임에서 장도 몇년을 해왔고 늘 모임에서 대화를 주도하고 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술자리도 즐겼지만 그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가 많고 모임이 많고 목소리도 무척이나 컸고 관심받기를 좋아했지만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모임에서 떠들썩한 시간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쉬는 날이 되면 늘 무표정하고 뚱했던 표정이나 말없이 책상앞에 오래오래 앉아 있는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내성적인 사람이 받는 오해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잘난척 한다. 오만하다. 제멋대로다.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가 혼자만의 방으로 들어가서 누구와도 마주하지 않은 시간을 갖는것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오만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지쳤고 피곤했던 거였다. 떠들썩한 시간들을 가진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어떤 사람의 목소리보다는 그저 적막한 고요속으로 숨어들어 숨을 쉴 여유를 찾아야 했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공개된 자리에서 너무 떠들어댄건 아니었는지 어떤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를 곰곰히 되짚어가며 복기하는 시간들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고 침묵의 가치를 다시 꺠닫는 시간들이었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조금 편한 가족들의 질문이나 말에 대꾸하지 않은 것은 잘나서가 아니었고 지쳤고 부끄럽고 또 수줍어서였던 거였다.

하지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하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하고 적절한 맞장구를 쳐야한다. 그리고 잘 어울리고 잘 웃고 말을 재미앴게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과 정반대점에 있던 그는 긴 가방끈과 높은 학력만큼이나 오만한 것이었고 잘나서 주위의 모두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보는 어려워보이는 책들도 그런 주위 사람들의 판단을 보충해주는 증거였다.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어쩌면 오만하고 잘난척 한다는 오해뒤에 숨어버리는 것이  원치않은 수다나 과장된 적극성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젊어서는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할때는 원치않은 행돋들도 필요했지만 나이가 들고 이제 사회의 뒤안으로 물러난 시점에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내 마음이 편한 곳을 선택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래서 외로웠고 고독했겠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장이었던 사람이 사나이였던 사람이 외롭다고 하는 것은 사실 내가 레이스가 있는 팬티를 입는다고 고백하는 것만큼 생뚱하고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를 가장 많이 닮아있던 나도 그땐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무뚝뚝하고 별 대꾸없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질서에 숨어드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불편했고 피하고 싶었고 가능한 짧은 시간만 마주하고 싶었다.

그때도 그가 외로웠을거라는 걸 짐작했지만 애써 모른 척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불편하니까

내성적인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도 아닌것같다,

어쩌면 내가 혼자 있는 것이 편한만큼 상대도 그럴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고 그래서 내편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젊었고 여유가 있었고 언제든 사람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많았으므로 그때 나의 외로움이나 고독은 심각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치기어린 낭만주의였을 테지만 그의 나이먹은 외로움은 그 색채도 다르고 냄새도 다를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가고 그의 빈 책상을 바라보면서 그가 수줍은 사내였다는 걸 알아버렸다.

잘나서가 아니라 사람사이에 끼어드는 일이 두렵고 어색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젊어서 잘 했던 개방적이고 외향적인 것들이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짊어졌던 무게였다는 것,. 그래서 그 의무에서 벗어났을 때  내성적인 그의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본능에 반한 오랜 시간의 갈등끝에 자신에게 깊이 빠져버린 내성적인 행동이 결국 다시 상황에 따라 외향적이어야 하는 상황에도 머뭇거리게 했던 거였다는 걸 몰랐다.

비슷한 사람이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지만 오히려 비슷하다는 걸 아는 순간 그대로 모른 척 스쳐지나가는 잔인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내성적이어서  공개된 공간에서 말하고 웃고 에너지를 쏟은 만큼 나만의 방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시간이 필요한 건 맞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고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커피 혼자 보는 영화가 편하다는 것도 맞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은 혼자가 편하다고 영원히 혼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므로...

그걸 아는 내가 그가 혼자가 편한 수줍은 사람이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요구하고 조르면 마저못하는 척 방에서 나올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아주지 못했다. 아니 모른 척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그를 생각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그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책속에 있었고 그 이유가 세심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건 그의 모습이고 그리고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받는 오해들이 그때 그가 받은 오해들이었고 내가 무시하는 것이 그가 무시했던 것이었다.

책의 글귀에서 내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으면서 그가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위로했을까

 

 

책을 읽으며 그가 그립다. 그리고 미안하다.

다음주 월요일은 그의 첫 기일이다.. 이 책이 그래서 내게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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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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