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그리고 올 초  참 많은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다른 장르에 비해 내용에 몰입하거나 읽어내는 속도감이 더 좋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신문이나 인터넷에 오르는 여러가지 청소년문제들 사고들을 구체적인 인물의 이야기로 보게 되면서 마음아프고 미안하고 짠하고 결심하고 그랬었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내 아이랑 함께 읽고 싶어서 권하기도 하고 아이가 원하는 책을 골라 함께 읽기도 했지만 의외로 아이는 나보다는 덤덤하게 내용을 읽고 넘기는 모양이었다.

원체 덤덤한 성격이니 좋았다고 호들갑떨지는 않고 그냥 괜찮아.. 정도면 다행이지만 내가 함께 읽고 뭔가를 말하려고 하면 그냥 듣는게 전부이고 좀처럼 자기 표현은 하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면 .. 아하.. 그런 의미일 수도 있구나 .. 하는게 고작이라

이 녀석이 제대로 읽는 건지  너무 감정이 매말랐는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 어쩌면 아직 오지않은 여러가지를 미리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지레 겁을 먹거나 질린건 아닌지  혹은 어쩌면 현실의 수위는 이보다 더 쎄서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에게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 학교생활 학원생활 과제 시험 등등이 더 현실적으로 와닿아서 다른 무언가를 보고 감동할 여유가 없는건지도 모ㅇ르겠다.

 

결국 청소년 소설을 읽고 동동거리고 걱정하는 건 엄마들 몫이 아닌가 싶었다.

엄마들끼리 함께 책을 읽고 여러가지 문제들로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면서 세상에나 세상에나... 설마 이런 일까지... 하면서 걱정하고 모의하고 어떡해야하는가 하고 머리를 맞대는 동안 아이들은 그냥 그런 일처럼 무심하게 넘기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청소년 문학이라는 건 그 또래 아이를 둔 부모에게 아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청소년을 위한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함꼐 살아가기에 도움을 주는  다큰 자식을 위한 육아서의 또다른 이름이란 생각도 했다.

내가 청소년 소설을 읽고 푹 빠진 것도  아이가 내게는 말하지 않은 그들만의  세계를 훔쳐보고 알고 싶어서일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함꼐 읽기를 원하면서도 사실은 나만 읽고 싶은 마음도 들었던거 같다. 엄마가 이런것도 안다는 걸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는 기분 같은 거

아이에게 직접 대화를 하려니 방법을 모르겠고 막막하고 아이가 대화를 거부해서 받을 상처가 두려워서 책을 읽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직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이 어렵고 힘들때 내가 상처받는 것도 싫을때 소셜을 읽으면서  난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세상에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위안하고 싶어서 읽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결국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내 아이는 또다른 현실이고 그 또래들 역시 그러하지만 아이에게 직접 다가가기에 소심하고 두려운 부모는 지금도 청소년 소설을 아이몰래 읽으면서 내 아이를 간접적으로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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