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딸을 둘 키운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왕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척 보기에도 큰딸은 단정하고 지혜롭고 자상하다.

작은 딸은 세상의 모든 막내가 그러하듯이 활발하고 호기심이 강하고 충동적인 면도 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들이고 각각을 보면 둘다 나를 혹은 나의 배우자를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정말 다르다.

큰 딸 앨사는 능력을 타고 났다. 만지는 것들을 얼음으로 만드는 능력

그건 동생에게 즐거운 눈놀이를 하게 만들 수도 있고 언제나 신나게 스케이트를 즐기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기도한다.심지어 사랑하는 동생까지도

그 능력이 어떠한가는 일단 제쳐두고

왕에게는 능력을 가진 첫째와 평범한 둘째가 있었다.

왕과 왕비는 그 능력의 비범함과 무서움을 알고는 그 능력에 집중한다.

엘사를 누구와도 접촉시키지 않고 그 능력으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하지마나 동생 안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이미 지워진 기억으로 언니의 능력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언니랑 놀지못하는 쓸쓸함과 외로움만 가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큰 아이가 있다. 언제나 일등이고 백점이다. 부모는 당연히 욕심을 낸다.

조금만 더 뒷바라지 하면 우리가 조금 더 노력을 하면 충분히 잘 될 수 있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특별한 교육과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로 매진한다. 아이도 성실하고 순종적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부모말에 따른다. 훌륭한 커리큘럼 좋은 선생님 우수한 코스를 따라 아무런 저항없이 순순히 따른다.

아이의 빛나는 미래는 멀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른 아이가 있다. 평범하고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나이때 아이들처럼

아이는 늘 제 형제와 놀고 싶다. 눈싸람을 만들고 물장난을 하고 소꼽놀이를 하고 수다를 떨고 싶다. 하지만 엘리트코스에 들어선 언니는 시간이 없다. 늘 문  저 너머에서 무언가에 몰두한다.

언니가 그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누구도 떠들거나 뛰어다닐 수 없다. 언니를 방해하면 안된다. 언니가 무얼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와서 나와 놀아주기를 한없이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한 아이는 점점 자기에게 얹혀진 기대감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하기엔 이제 두렵다. 나보다 나은 경쟁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 한계를 알것도 같고 무엇보다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그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래서 이젠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이방에 숨어서 계속 나를 다그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아이는 외롭다. 혼자 뛰고 노래하고 놀지만 외롭다. 자유로운데 뭔가가 부족하다. 그냥 자유롭지 못한 잔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부럽다 어쩌면 그 잔소리는 사랑의 다른이름이고 관심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자유로운것이 아니라 버려진게 아닐까.. 아닐거라고 스스로 되내이지만 뭔가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죽고 성문이 열린다.

이제 두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나 성문을 꼭꼭 닫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본모습이 들킬까 두렵다.

누구에게도 본래 얼굴을 보일 수 없어서 외롭고 무섭다.

한 아이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게 누구이든 무엇이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나를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세상이 두려운 한 아이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제 형제를 경계하고 힐난하고 반대한다.

오로지 관심만을 원하던 한 아이는 제 형제의 거부가 너무나 충격이다. 나는 왜 사랑을 할수가 없는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거부하는가

그래서 사건이 터지고 자매는 헤어진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다른 부모처럼 기대가 컸다.

아이가 자라 무엇이 될까 나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는 영리하고 순종적이었다. 나름 고집이 강했었는데 그래도 꺽을만큼이었고 내가 잘 콘트롤 할만큼의 호기심도 있었다.

자라면서 아기나라를 하고 한글을 배우고 수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순간순간 삐끗거리는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책도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읽었고 호기심도 많았고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이렇게만 가면 꽤 괜찮을거라고 나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리고 둘째가 있었다. 한창 큰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무렵에 태어난 둘째였다.

세살터울... 어쩌면 가장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터울이었다.

막 세상에 호기심을 보이고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집중하려면 동생은 조금 성가셨다.

다행히 둘째는 잘 잤다. 혼자서도 잘 자고 깨서도 울지 않은 아이였다.

낮잠을 3시간씩 자는 둘때덕에 큰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가능했다.

어느정도 나이가 되어 둘째도 큰아이처럼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뒤로 쳐졌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수줍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영리하고 따라가는데는 문제가 없었고 기대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둘째는 조금 문제였다. 어느 순간 낯을 가리기 시작했고 낯선 환경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제멋대로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가족이외에 누구와 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하고싶지 않다는게 강하게 느껴졌다.

수건없이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외출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고집스럽고 누가 뭐라고 하든 어디서든 고집을 피웠다. 어느순간 순한 큰 아이가 둘째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나도 그랬던거 같다. 힘든 아이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큰아이때 하지 않던 아기학교를 다니고 문화센타를 다니고 아이 친구엄마와 어울리고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고집은 여전하지만 점차 사회성은 길러졌고 나름 매력이 있어 미움은 받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은 아이가 편해지면서 나는 큰 아이와 함께하는 긴장감과 경쟁을 작은 아이앞에서 풀었다. 그냥 그 아이랑 있으면 늘어졌고 편해졌고 내버려뒀다. 나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전투라면 작은 아이는 휴식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끝조차 꼼짝 하기 싫었다. 어쩄든 되겠지 싶은 마음만 들었다.

 

큰 아이는 어느순간부터 평범해졌다. 나도 잘하고 싶지만 엄마의 기대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쳤다.

작은 아이는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언니랑은 싸우든 언쟁을 하든 항상 말을 하고 상대를 하는데 나랑있으면 늘 피곤하고 가만있기만 한다고 했다.

틀린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내게 더 화가 났다.

갑자기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만 들때도 있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는 초등때 반짝하는 전형적인 중학생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학습이 느리고 욕심과 하고싶은 건 가득한데 현실은 소심하고 부끄러운 고민을 가졌다. 나는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이렇게 아이들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는 게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진 능력이 아이에게 몰두하는 에너지나 능력이 없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이나 능력으로도 자란다.

하지만 가장 쉬우면서 중요한건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걸 나는 몰랐다.

어정쩡하니 아이에게 몰입하는 부모 흉내나 낼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았어야 헸다.

그랬더라면 큰아이에 대한 기대감은 조금 가벼웠을 것이고 작은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과 훈육이 들어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몰두하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방임해버린것

그것이 지난 10녀년간의 나의 불찰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내 아이들은 아직 문제는 없다.

사회적 기대나 어떤 목표치에는 한없이 못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착하고 바르고 평범한 아이다.

내가 조금 덜 기대하고 비범하기 바라는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뭐 단점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아이들이다.

 

영화에서 왕과 왕비가 조금더 현명했다면  아니 여전히 나처럼 어리석었더라도 조금 더 살았다면 두 딸들이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형제를 오해하고 내 능력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온통 얼려버리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지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세상에 감사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며

둘이 사이 좋게 의지하며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요즘 세상엔 부모가 둘려쳐줄 수 있는 울타리가 많다. 내가 조금 더 돈이 많다면 능력이 있다면 지위가 있다면 내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많아진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어떤 눈에 보이는 건 하나도 없다.

내 노년조차 불확실한 부모에게 태어난 내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어쩌면 행복했던 기억과 그래도 자랑스러운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결심했다.

내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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