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언어의 정원, 서

 

 

 

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 언어의 정원 ]2013‘

 

 

 

 

 

올여름 비가 드럽게도 많이 내렸다.

한달내내 꿉꿉하고 끈적거리고 습습했다.

그런데 화면에서 내내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몹시 설렜었다.

내일도 또 내일도 비가 오기를....

그래서 그 소년이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그리고 무언가 전진이 있기를

둘이 함께 걸어가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 내 마음결을 느껴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언제 그런 경험을 했던가?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족감으로 가득했고  먹지않아도 배고프지 않았고 지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고 누군가의 근황이 궁금해지는 상황이 나도 있었다.

 

한때 사랑이 끝나고 만남이 뚝 하고 잘려나갔을 때 참 많이 힘들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원망한 것도 처음이었고 심지어 죽어버리라는 저주까지도 서슴치 않았던 적도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어디가 못나서하는 자책감도 생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그 나쁜 기억이 흐려졌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 함께 아파하고 꿈꾸고 세상을 향해 함께 걸음을 내딛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알아보는 순간을 가졌다는 것

그건 참 좋은 거라는 것..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했고 충만하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젊은 소년의 표정에서 옛날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설레었었다.

물론 나는 영화속 그녀처럼 이제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진 못했다. 여전히 미적거리고 미성숙하며 나이만 먹었지만 그래도  한때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고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지금이라도 나도 혼자 걸음을 내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긴다.

 

소년과 여자의 짧은 만남은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고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이면 어떠랴. 사랑이란 건 어떻게 명명되는지 정의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갖고 감정을 가지는 거니까..

어쨌거나 함께 성장할 수 있고 세상에 한걸음 걸어나갈 수 있다는게 중요한게 아닐까

세상앞에 두려운, 중학생 이후 성장을 멈춰버린 여자에게 남자는 구두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 구두가 비록 투박하고 불편해도 어딘가 설레는 곳으로 데려다 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맥주를 마시는 여자와 구두를 디자인 하는 남자

둘 다 뭔가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걸 꺼내 보여주기가 민망하고 그런것이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서로를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서로는 위안이 되고 꿈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되고 다시 만나고 뭐 그러고 끝이 났다면 그저 그랬겠지만

뒷부분에서 여자에게  고백한 소년이 여자에게 거절을 당하고 여자의 방을 나가고 그리고 여자가 쫒아가고 그리고 다시 만나고.. 여기서 그냥 포옹.. 뭐 그렇게 지나면 상투적인거지만

소년이 화가나서 여자에게 소리지를 말들.. 원망하고 화를 내고 스스로 어쩔 줄 몰라 누구에게 화를 내는 건지 몰라하면서 소리소리 지르는 그 장면이 정말 좋았다.

안으로 안으로 고여드는 감정이 마음이 그렇게 밖으로 내질러지는 순간, 그래서 비로소 스스로 그 감정이 빛깔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는  깨달음이 탁 터지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런거다. 감정은 속으로 고여서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밖으로 터져 나와야 하는 거니까... 그래야 비로소 내가 보이고 상대가 보일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함께 이어도 좋고 각각이어도 상관이 없다.

이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눈물이 났다.

아 멍청하고 아둔한 나는 시간이 10년이 흐른후에  그걸 알았구나.

나도 그땐 참 아름다웠고 동시에 찌질했고 그리고 힘들었구나.

그래서 지금 내가 있구나 하는...

45분의 영화에서 이렇게 위로받는 느낌은 첨이었고 웃으면서 눈물나는 영화도 첨이었다.

 

 

함께 간 딸은 재미는 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직 삶이 짧은 딸이  절망감이나 막막함을 알지 못하니 알지 못하는 서글픔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때마다 느끼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주제가가 참 소박하고 촌스러우면서도 내용을 그대로 집약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번역의 문제인지 몰라도  직설적이로 세련되지 못한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그 영화의 주제와 느낌을 딱 요약해준다는 걸 나만 느끼는 걸까.. 그래서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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