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고'에서 그랬다.

야구는 집에서 출발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라고...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다.

그냥 운동경기였고 남자들의 거친 행동들.. 운동선수치고는 둔하고 육덕한 몸매도 그랬고 사행심도 적당히 들어있고 관중들의 태도도 불량스럽고 지나친 응원으로 눈쌀을 찌푸릴 수 있는 게임

간혹 들리는 선수들의 일탈행동이나 관중들의 무매너도..

야구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영화에서 정의해주는 야구는 참 따뜻하고 졍겨운 게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세상을 한바퀴돌아야 하는 긴 여정..

 

집이 부산이라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내내 롯데응원속에서 살았다.

사실 중학교때 한 친구의 열렬한 해태응원과 언니의 결혼으로  새식구가 된 형부가 대구사람이라 은근한 삼성응원을 들었지만 결국 주위는 온통 롯데였다.

김용희 김용철부터 최동원 등등등... 그 촌스러운 하늘색 유니폼과 어딘가 모르게 인색하고 꽁한 인상 그리고 가끔 터지는 한방  우렁차게 퍼지는 부산갈매기..

집을 떠나면서 다양한 응원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잊어갔지만

간혹 경기를 뉴스에서 보거나 하면 늘 '요새 롯데는 몇등하나?"하는 관심이 생기곤 했다.

한때 우승까지 갔지만 만년 하위팀   좀 잘 해서 중위팀..

늘 시작할때는 올해의 우승팀으로 거론되지만 경기가 중반으로 이르면 그렇게 중간즈음에 이름을 올려놓던 팀.,

아버지는 야구를 좋아했었나?

동생이 어릴적에 함께 사직구장에 가서 직접 보기도 했으니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다 한창 일하실때는 골프다 뭐다해서 그냥 뉴스로 보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창 일할 나이의 남자들이 주말마다 구장을 찾거나 경기를 챙겨볼 시간의 여유가 없다.

그리고 나이드시고 아프시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또 여러개의 채널이 생겨나고 야구만 해주는 채널마저 생기면서 아버지는 야구를 꼼꼼하게 챙겨보셨다고 했다.

엄마가 드라마보는 것 조차 방해받을 만큼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롯데게임을 찾아보셨다고 한다. 심지어 야구에 관심없는 엄마조차 롯데가 언제 경기를 하는지 줄줄이 알고 계셨다.

그날 그시간을 피하면 편하게 드라마를 큰 텔레비젼으로 볼 수 있으니까...

 

나이 먹고 기력없이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서 야구를 보시는 아버지를 기억한다.

방학이라고 놀러간 손녀들이 오랜만 (울집엔 유선을 달지 않아서) 투니버스나 다른 채널을 좀 보게 양보하라고 몇번의 잔소리를 듣고서 겨우 안방으로 들어가서도 작은 화면으로 야구를 보시거나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그땐 뭣모르는 생각에 결과나 알면 되지 뭘 그리 열심히 빼먹지 않고 보시나 싶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보셨을까

나이 먹고 몸이 아파 기동이 편치 않으니 유일한 취미이나 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 앉아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누군가 그렇게 던지고 치고 달라고 집을 떠났다가 우여곡절끝에 돌아오거나 죽어버리는 걸 보면서 당신을 생각하셨을까

 

야구공은 투수에 의해 던져지고  타자의 방망이에 맞고 날아간다.

어설프게 맞아서는 겨우 여기저기 땅을 튀거나 굴러버리거나 그렇게 다이아몬드위를 빙글빙글 돌 뿐이다. 괜히 어설프게  빗맞아서 실밥이 터지거나 상해버리면 그냥 버려지고 교환된다.

야구가 인생에 비유되는 것이

야구선수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끝임없이 뱅뱅돌며 자신의 의지 한조각없이 여기저기로 옮겨지고 맞고 던져지는 야구공 그 자체가 아닐까

야구공은 잘 맞든 빗맞듯 계속 맞야야 한다. 그래서 집을 떠난 선수가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야한다. 어던 고난이 와도 어려움이 닥쳐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이기는 경기가 야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살려서 집으로 보내기 위해 야구공은 많은 매를 몸으로 견딘다.

내내 구장안을 돌면서 그렇게 몸으로 견딘다.

 

순간..

잘 맞은 야구공이 구장의 밤하늘을 나른다.

홈런이라고... 잘 맞았다고 모두가 흥분하고 바라본다.

모든 불빛아래서도 하얀 야구공은 저혼자 빛내며 고고히 그 불빛을 지나친다.

여기로 내려와 달라고 손내밀고 달려드는 관중들, 글러브를 잠자리채를 손에쥐고 공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심을 무시하고 공은 밤하늘을 직선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구장밖으로 사라진다.

누군가는 이미 집으로 돌아왔지만 공은 돌아오지 않는다.

공은 이미 우리의 시야를 떠나버렸다.

우와....

그 야구공은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어디로 갔을까

이제 더 이상 구장안을 빙빙돌며 맞고 내동댕이 쳐지는 운명을 벗어났을까

 

아버지도 그렇게 구장 밖으로 날아갔다.

누가 언제 홈런을 칠지,  구장밖으로 날아갈 강력한 장외 홈런을 칠지는 아무도 모르듯이

전혀 마지막이 준비되지 않은 채 그렇게 가셨다.

한평생 뱅뱅 돌던 곳을 떠나 이제 집을 떠나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

구장밖으로 날아간 공은 더이상 홈에 돌아와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갈 수 없듯이 이제 돌아오시지 않는다.

자유로울까? 두려울까?

구장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그런 세상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야구공들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냥 그 공은 이제 자유로울거라고

그 밖에서는 가장도 아니고 장남도 아니며 어떤 삶의 무게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홈런볼을 갖고 싶었던 철없는 소년만 우울 할 뿐이다.

 

지금 롯데는 몇등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경기를 열심히 챙겨보던 누군가가 한명 줄었다는 걸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고 응원도 계속된다.

그냥 올해는 롯데의 성적이 좋았으면 좋겠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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