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p 59-60

 

그러니까 난 내가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라 보통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던 거야. 난 내가 부러워할지도 모를 여행을 하고 미래가 여전히 닻을 올리고 있고 미럐의 지도가 아직 그려지지 않은 다른 젊은 탐험가를 위해 출발점 역활이나 하는 영원히 정지된 닻이 될까 봐 두려웠어. 배낭을 트렁크에 실을 때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키스를 날리는 출입구의 전형적 인물 추례하고 투실투실한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고 출발하는 배기가스 연기때문에 헝클어진 앞치마로 눈을 비비는 사람, 쓸쓸하게 자물쇠를 돌리고 천정이 내려앉을 것 같은 적막 속에서 싱크대에 있는 얼마 되지 않ㅇ는 접시들을 설거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거야 난 떠나는 것보다 남겨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더 키웠어. ''''''''''''''''''''

 

...  난 아기 갖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어.임신하긴 전 아기 양육에 대한 내 상상 잠자리에서 미소 짓는 승무원에 대한 동화를 읽어주고, 늘어진 입에 질척거리는 것을 먹여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던 것같아. 내가 두려워했던 건 폐쇄되고 돌처럼 차가운 내 본성, 나 자신의 이기심, 관대함의 부족, 내 안에 머물면서 두터워진 억울함의 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것과 마주하게 되는 거였어, 내가 아무리  '페이지 넘기기'에 관심이 있다 해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가망없이 옭아매일 거란 예감은 날 몹시도 당혹스럽게 만들었지. 그리고 난 날 낚아챈 것이 바로 그 공포였다고 확신해. 사람을 뛰어내리도록 부추기는 절벽의 튀어나온 바위처럼 말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것에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결국 내게 그일을 하도록 유혹한 거였어.

 

 

겨울 다 읽었다.

이렇게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이라니....

이건 작가의 잘못인지 번역자의 잘못인지 독자의 잘못인지...

영화를 보지 않고 책을 들었더라면  몇페이지 읽지도 않고 그대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생각했다.

에바는 아무 잘못이 없어.

모성이 부족하다는게 뭐가 잘못이야?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오면서 누가 모성에 대해 가르쳐 준적이 있었어?

그걸 어떻게 알고 훈력하고 익히는건지 알려준 사람이 있었나?

좋아 그게 그렇게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나고  나오는 거라고 여긴다면

부성은 어떤데? 그것도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가 혼자서 나오나?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어떻게 아기가 저절로 생기지?

열달동안 몸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그동안 아기와 엄마사이에 정이 통하고 사랑이 생겨나는 거 아니야.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

하지만 세상에 흰사람 노란사람 검은 사람  다양하게 있듯이 사랑이 저절로 생겨나는 사람  학습으로 익히는 사람 좀처럼 생기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 아닐까

왜 한몸인 시간이 길었다고 서로 완벽하게 이해해야한다고 치부해버릴까

그렇다면 한몸인 시간을 똑같이 견딘 아이는 왜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지?

아직 어리니까?

그게 변명이라고... 같은 시간을 함께 한몸으로 있었는데 누구는 끝없이 베풀고 누구는 끝없이 받기만 하는 거라니.. 이런 엿같은게 어딨어!!!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에바에게 죄가 없다고 믿었다.

그건 로레타 그린리프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유다.

 

 

 

p 281

.......모든 게 항상 엄마 잘못이에요 안그래요? ..........................

남자애가 못되게 구는 건 엄마가 술에 취했거나 아님 마약중독이기 때문이예요. 엄마가 아들을 제멋대로 자라게 나두고 잘못한 걸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기때문이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한번도 집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 아빠가 술주정뱅이거나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그 아이가 그냥 처음부터 빌어먹을 나쁜 놈이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런 실없는 이야기는 절대 믿지 마요. 사람들이 하는 기운 빠지는 이야기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돼요. ........

엄마가 되는 건 힘든 거예요. 아무도 임신하기 전에 반드시 완벽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법을 통과시키지 않았어요. 난 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해요. 이렇게 멋진  토요일 오후에 이런 쓰레기장 같은 곳에 있잖아요. 아직도 당신은 노력하고 있어요. 이젠 당신 자신을 돌봐요 부인 그리고 다신 그런 얘긴 하지 말아요.

 

 

그런데 하나 새롭게 알게 된것

케빈과 에바가 참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다.

아르메니아 인의 전형적인 외모뿐 아니라 건조하고 매마른 성격,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것 , 그리고 뭔가 집중할 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누가 모자가 아니랄까봐 닮았다.

자기를 닮은 아이. 더구나 자기와 같은 약점 혹은 치부를 가진 아이를 부모는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 난 나의 이런 점이 정말 싫은 데... 그걸 똑같이 가지고 있는 작은 나같은 모습이 너무너무 싫어진다.

어쩌면 에바는 캐빈에게서 점점 자기를 보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에바를 이해하는 만큼 왠지 케빈도 이해가 갔다.

그 아이의 악행을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당신을 닮았다는 이유로 회피하는 엄마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렇게 당신과 다르지 않느냐? 아니면 아무리 부정해도 난 어쩔 수 없는 당신이라고..

 

영화에 비해 책에서는 에바가 케빈을 얼마나 거부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원해서 한 임신이었지만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에바는 많이 갈등하고 후회하고 힘들어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아이보다 자신의 결정에 더 관심이 있었고 자기의 결단에 더 신경을 쓰고 자기만 생각했다. 주사를 거부하는 것도 어쩌면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거였으니까  태어난 아이는 젖을 물기를 거부하면서 두 사람사이에 긴장은 시작된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에 에바는 실망하고 케빈은 한번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던 (자신보다도) 에바를 거부한다,

둘은 그렇게 팽팽하게 기싸움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세상에 나왔는데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악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지만 케빈도 참 많이 외로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아이는 내가 열달을 품고 내가 낳았지만 내맘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내가 정한 시간에 먹고 자고 싸는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시간에 그렇게 한다,.

나의 취향이나 기호 내가 바라는 건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그 작은 것도 생명체이고 자아라고 자기만의 취향과 기호를 가지고 태어난다.

내가 분홍을 들이밀어도  회색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두개의 자아가 서로 부딪치고 상처받고 거부당하면서 그렇게 서로 익숙해지고 편해지는게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아닐까

세상에 내맘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하는 걸 아이는 배워가고 엄마도 내가 낳았다고 내 종속물은 아니라는 걸 배워가야 한다.

그러기에 케빈과 에바는 자아가 너무 강했다.

내가 저것을 내 뜻대로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무시해버리겠다..그렇게 휘어지지 않고 꺽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가족력을 통해 모성을 익히지 못했던 에바에게 모성을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을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를 희생한다는 건 머리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에바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등했지만 캐빈도 사랑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너무나 닮았고 너무나 고지식하고 단단한 껍질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고 은연중에 드러난 감정에 스스로도 화들짝 놀라지 않았을까

내 아이를 미워한다는 것..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 그것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속을 더 할퀴는 꼴이 되고 스스로 상처입었다.

그렇게 평행선으로만 치닫는 두 사람이 결국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끔찍한 목요일을 겪은 후였다.

 

책속에 에바는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한다. 케빈을 감싸고 도는 남편에게 질투를 느낄만큼 그가 자기를 알아봐주고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아이가 생긴 후 남편은 많이 달라졌다.

어쩌면 아이가 생기고 여자가 이렇게 달라지고 남편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는 봤지만 모성과 부성이 이렇게 뒤바뀐 경우는.... 없진 않겠지만 낯선 풍경이다

에바가 끊임없이 케빈을 의심하고 불안해할 수록 남편 프랭클린은 케빈을 이해하고 모든걸 수용한다. 사내아이니까... 아직은 어리니까.. 모든 아이가 발달상황이 다 같지는 않으니까..

한때 지나는 사춘기니까...에 이르기까지

프랭클린은 맹목적으로 케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계모에게서 아이를 보호하는 막무가내의 부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차갑게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엄마와 무조건의 애정과 물량공세로  다가와 좀 만만하고  한심해보이는 아버지 사이에서 케빈의 혼란은 없었을까

흔히 아이를 양육할때 양쪽 부모의 일관된 행동과 양육방법이 좋다고 한다.

두 사람의 기준이 다를 경우 아이가 가지는 혼란과 불안을 없애고 좀더 효율적으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는 같은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데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랑 맞는 엄마는 냉정하고 나를 무조건 감싸는 아빠는 우습기만하고...

그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이용하는 것이 케빈이다.

이 아이가 정말 모성부족으로 정없는 엄마때문에 망가진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이든 이용할 줄 알고 눙칠 줄 아는 아이..

남의 감정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공감하지 않으려는 아이

나는 케빈을 이해하는 만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 알만하다 싶으면 저만큼 가 있는 아이라고나 할까..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사실..

모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겨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포기하기 어려웠고

돌에게 각각 맞추는 것도 힘들었고

왜 아이들은 예상되는 정답이 없는지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변덕스런 감정과 무심함속에서도 엄마라고 매달리는 눈망울을 보면

야단맞고 울음을 쏟아놓고 돌아서면 웃으며 내게 안기는 아이를 보면

스스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만 참으면 될걸.. 아직 어린 아인데..

 

케빈에게 그런 아이다운 상냥함이 단숨함이 없어서 에바는 스스로 장벽을 허물고 무너질 기회를 갖지 못한게 아닐까... 에바의 장벽이 높아서 케빈이 단순함을 부려놓을 틈이 없던걸까..

 

어쩌면 에바는 그날.. 목요일을 겪은 후 이제 엄마가 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결론은 모든것이 지나고 후회를 한 이후에 오는 법이니까

살아남았기때문에 모든것을 오롯이 견뎌낸 에바가 이제는 정말 엄마가 될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매번 전쟁을 하고 뒤통수를 맞고 번개같은 충격을 먹고 이제 조금 엄마가 어떤건지 아는 나도 있고..

 

아이문제는 언제나 늘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