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하철 묻지마 살인이라는게 있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무심히 차를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 내 뒤로 말없이 다가와 나를 밀어버린다.

철로위로... 그리고 죽는다.

거리를 걷다가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정말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분노와 불안으로 죽음을 맞는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분노가 불길이 되고 죽음이 다가온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특히 고전류에서  셜록이나 미스마플 혹은 포와로에서는) 죽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무언가 잘못된 일들.. 내가 마음깊은 곳에 숨겨두고 무의식적으로 잊어버린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결국 뭔가 원인이 있었다.

비록 죽은 자는 알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건을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이유가 있었다.

나를 모욕했다. 우리 집안을 풍지박산나게 했다. 예전 누군가를 상처줬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간에 사람을 죽이는 건 옳은 행위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 이유가 있었다.

모든게 들통나고 후회하고 괴로워할지언정 혹은 홀가분하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더라도

그 순간의 이유는 절박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유가 없다.

내가 길을 가다가 죽는 이유, 사고를 당하는게 이유가 없다.

누군가의 분노앞에 그저 내가 그 시간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이 이유가 될 뿐이다.

 

요즘 아이들 사이의 왕따가 그렇다고 한다.

너무 잘난척을 해서 혹은 너무 찐따라서  누군가를 왕따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냥 ' 나만 아니면 되...."

그것 뿐이라고 한다.

물론 깊이 파고 들면 뭔가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이미 저질러진 사건 사고위에 이유를 만들어 입힐 수도 있고 그것이 이유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되어버리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워서도 아니고 나만 아니면 상관없는 이유로 왕따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아니다.

이유가 없지는 않겠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할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새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귔다, 아이에게 단짝이 생겨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전에 전교적인 왕따였다고 한다.

내 아이만 전학을 와서 혹은 다른 학교에서 와서 그 이유를 몰랐다.

첨 단짝을 가진 그 아이는 내 아이에게 유달리 잘해주고 집착한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의 왕따놀이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렇게 왕따를 사귀다가는 내 아이도 왕따가 되는게 아닐까

이게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그런 아이와 친구를 한다는게 두렵다.

내 아이가 받을 상처가 두렵다.

 

사람들은 말한다. 왕따라는 건 아무도 친구가 없고 투명인간상태의 외로움인데 그냥 그렇게 둘이서 사이좋게 잘 지내면 왕따는 없지 않은거 아니냐고..

학교2013에서도 그랬다. 친구의 스마트폰을 훔친 나리가  나 이제 왕따당할거야라고 했을때 그 친구가 그랬다, 내가 있잖아. 내가 너랑 친하게 지낼건데 무슨 왕따야..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훈훈하게 끝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다.

왕따가 새로운 표적이 생기면 그 전 왕따는 자연스럽게 왕따에서 풀려난다.

이제 니가 아니라 저 아이가 왕따라고 정해지면  그순간 왕따였던 아이는 살기위해서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경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집단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친구라고 믿었던 아이에게 받는 배신감이 더해져 그 다음 왕따는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 내가 경험했으니 하지 말아야지.. 다른 이에게도 고통을 주지 말아야지 하는 공감보다도

이제 더이상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일까

그게 나쁘다는 걸 알지만 나쁜거보다 더 힘든건 내가 고통받는 것

차라리 고통보다 나쁜 걸 택하려는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아이에게 그렇게 말 한적이 있다. 왕따 시키는 아이보다 더 나쁜 건 옆에서 말없이 동조하는 아이들이라고.. 그 아이들은 말한다.

난 아무것도 한 거 없어. 내가 주동한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가만있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다수의 돌아선 등이 더 무서운게 아닐까..

나를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드는 미치광이보다 커튼 뒤에 숨어서 나의 그 고통의 과정으 낱낱이 관찰하는  알 수 없는 다수가 더 두렵고 밉지 않을까

그래서 아이에게 적어도 이게 잘못이라고 나서는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침묵으로 동조하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동조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으면 대체 무얼하라는 말인지 나도 참 알 수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으면 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잘게 부서지고 해부되어 하나하나 죄의식이 심어진다. 혹시 나의 외모가 나의 몸짓이? 혹은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던가? 잘못해서 저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 있었나? 그때 내가 무심코 웃은 것때문에? 그게 비웃음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든 시선이 검열관이 되고 나의 모든 사고와 말 행동은 하나하나 검열에 걸려든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된다.

상대의 사소한 반응이 하나하나 다 신경이 쓰이고 무심한 웃음에 마음이 놓이다가도 한순간 냉담에 하늘이 무너질 것이다.

 

사실 어른도 힘든일인데 아이들이 아직 13-4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그걸 견딜까

해 줄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흔히 하는 말로 요즘 아이들이 누구말을 들을까

스스로 아니라고 깨닫기 전에 어떤 말이 귓등을 통과해서 마음에 닿기나 할지

 

사실 소설속에서 왕따를 당한 소녀는 꿋꿋하게 이겨내거나 혹은 시간이 해결해주거나 한다.

 

 

혹은 정신승리법으로 내가 모두를 따 시키겠다고 거꾸로 맘을 먹기도 한다.

 

 

아니면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리거나

 

 

 

 

 

사실 책을 열심히 읽어도 해결책이 없다.

그저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계속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 세상은 모두가 함꼐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밖에는...

그리고 어쩌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고 지치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아이들이 믿게 만들어야 하는것 그런것뿐인지 모르겠다.

책에서 길을 찾는다는데 어떤 책에도 맘에 드는 해답은 없다.

그저 견디거나 함께 위악을 떨거나 주저앉는것...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을 수밖에?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인 문제들이라 누구도 이렇다할 해결을 못내고 있는 건지도모른다.

해결책이 나올만하면 아이들의 사고도 함께 진화하면서 보다 더 노골적이면서도 은밀하게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방법들이 진화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늘 이게 나쁘다는 것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가 하는 일이니까 나만  올곧으면 바보같고 고지식해 보이니까.. 떄로는 옳지 않은 일이 매력적이고 나를 더 근사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는 마음에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하는 사고와  행동이 결국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파 되고 있는 건지도

아니야.. 그러면 왕따 당해 ... 틀린건 아니지만 그러면 애들이 싫어하지

이말이 이제 더 이상 은밀하게 통하는 비법이 아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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