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완서의 소설이랑 김수현의 드라마가 참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직은 살아온 날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나름 나 잘난 맛이 세상모르고 높았을 무렵

세상에 대한 독설과 매서운 관찰 그리고 내뱉는 무심하면서도 뼈가 박힌 말들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박완서의 이야기들은 늘 어린맘에도 아프고 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꺼집어 내어 이것봐라~ 하고 내미는 고약한 심성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통속적이구나. 너무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장면들이었다.

차라리 김수현의 드라마는 드라마이기때문에 가지는 환상과 낭만이 있었지만 박완서의 소설은 단단하고 건조한 그 문장들 속에서 현실감이 그냥 툭툭 튀어나와서 책장을 넘기기조차 고약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왜그렇게 그악스럽게 세상을 들이미나 싶어서 몇작품 읽지 않고 아는 척 하고 나랑은 맞지 않아~ 하고 넘기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 작가가 첨 글을 쓰던 나이가 되고 그런 경험이 켜켜히 쌓여가면서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가 본 세상, 사람살이가 사실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예전 어떤 선배가 어느자리에서 엉뚱하게 뱉었던 박완서의 소설이야기

'그 가을 사흘동안"이 졸업을 앞두고 읽으면서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고..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아이를 받아내기 위해 기다리는 그 사흘간의 절박함이 너무나 간절하게 와닿았노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선배나이는 겨우 20대 초반이었던 까닭에 그 말이 정말이지 선배말마따나 생뚱맞았다

그리고 읽었던 그 소설이 그냥 그런 박완서 풍이구나.. 하고 넘겼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설에서 보여지는 절박하고 초조한 느낌이 현실에서 부딪치게되었다.

뭔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될거 같은 기분.. 누군가에게 쫒기는 기분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같은 것을 느끼면서 그 작가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두렵기도 했다.

 

항상 작품에 조금씩 엿보이거나 노골적으로 보이는 작가의 살아온 삶의 모습들

그것이 그의 한계야 하면서 잘난척 해본적도 있지만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가졌다는 것이 참 부럽기도 했다. 시대를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사고와 직관은 같은 시대를 거쳤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이들면서 이제는 엄마를 이해하게되듯이 그의 작품이 와닿기 시작하면서 주말밤 그의 책을 읽었다.

어쩌면 소설인지 수필인지 모를만큼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녹여있고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었다. 

주말이면 혼자 자기 싫다는 작은 아이때문에 그아이 방에서 함께 누워 아이를 재우고 책에 수록된'나의 가장 나종에 지닌것"을 읽었다.

예전에도 읽었던 아는 이야기라 술술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무어가 그렇게 북받치는지 마구 쏟아지는 눈물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내용이 그렇게 슬펐던가? 그건 아니었다.

그러면 내용에 내가 공감하고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던가?그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로 넘어가는 이야기일 뿐인데

굳이 이유를 끌어들이자면  구술체(맞나?)로 쓰여진 그 말글이 주는 느낌때문이었을까

누군가 내 옆에서 한없는 넋두리를 듣는 기분때문에?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화자의 마음에서 울었다기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수화기 저 너머의 형님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어떤 감정의 표현도 없이 담담하고 절제되어 한평생을 살면서 차갑다 정없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살아온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었던거같다.  거의 드러나지도 않는 이에게 이입되었던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다.

그렇게 계속 울면서 읽었던거 같다.

그러면서 드는 깨달음...

어쩌면 박완서님 작품에 늘 드러나는 것. 그래서 내가 찔리기도 하고 멀리하고싶어했던 부분은 "결핍"이 아니었을까

시대상황적인 결핍, 경제적인 결핍.. 모든 걸 채워넣은 현실에서도 어딘가 공허한 정서적인 결핍.. 그 결핍되어 늘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자꾸 자꾸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하게되고 끊없는 수다를 떨게하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는 . 혹은 이유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결핍이었다.

나이먹어서도 사춘기처럼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했던것

혼자가 편하다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있지 못한것에 불편함이 없다고 혼자 잘난척 하는 것

그런것이 어쩌면 내 속에 숨은 결핍을 감추려는 허세가 아니었을까

많이 외롭고 슬프다고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번도

사실 왜 그러냐고 물으며 대답이 궁했기때문이기도 했다.

없이 자란것도 아니고 못배운것도 아니고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면속에서 자꾸 배고파하는 그 무언가를 뭐라고 말하기 몹시 힘들었다.

배부른 투정처럼 보일 수도 있고 허세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늘  외롭고 허전했고 불안했던거 같다.

그런 상투적이면서 속된 나의 투정이  그의 책 어느부분과 닿았던 것일까

늘 읽으면서 불편하면서 공감이 갔던건 어쩌면 그분도 알게 모르게 그런 결핍을 느끼고 살았던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읽으면서 엉뚱하게 눈물을 쏟은 책들이 다 그랬던거같다.

 

 

이 책의 같은 제목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났었다.

그때는 한참 어렸고 사실 내용이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륜녀에 공감하는 어린 아이이야기였는데.. 나는 그때 그 주인공 꼬마가 너무나 이해가 갔다.

엄마의 자리를 꿰찬 나쁜여자라는 걸 알지만 내 속에 숨어있던 결핍을 알아봐준  유일한 사람..

어떻게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절절한 마음과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다가갔던 여자와 꼬마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었다.

 

 

이 책은 두번째로 내가 펑펑 운 작품이다.

아마 여기서도 동구의 결핍 그리고 사실 가장 극악스럽고 악의 축이었던 할머니의 결핍이 책의 말미에서 드러나면서 그만 울어버렸던게 아니었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어둡고 나약한 부분을 꼭꼭 감추면서 살아갈까

어쩌면 그 부분을 드러냄으로서 차라리 위안받고 털어버릴 수 있을텐데

그 걸 알면서도 자꾸 감추고 허세를 부리고 남에게 위악을 떨어버리는 것 그렇게 외면해버린ㄴ 내 속의 허한 부분 ... 그 결핍이 여기서도 나를 울게 했던거 같았다.

아...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나만 나쁜 건 아니구나 하는 기분...

 

내 속의 결핍을 알고 있으면 어쩌면 그 것으로 힘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그 결핍이 내 발목을 잡아서 그 허한 마음을 허겁지겁 감추려고 악수를 두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어떤 쪽이었을까

어쩌면 후자여서 더 남의 결핍을 모른척하고 혼자 남몰래 울음을 쏟아내었던 건 아닐까

 

울고 나서 개운한 마음이 반.. 왜 그랬을까 하는 머쓱한 마음도 반

여전히 드러내기엔 뭣하고 아직도  위선을 떨어야 하는 경우라면

이렇게 간혹 통곡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다.

또 어떤 글들이 나를 울게 할지 .... 조금 겁나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