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아름다운 청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때를  추억할거리가 달라진다.

지금 악마가 내게 다가와 다시 빛나는 청춘으로 되돌려 줄터이니 딱 한가지만 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연애를 하고 싶다.  (왜 악마가 이런 제안을 하냐고 묻는다면 천사는 이런 유혹을 절대 하실 분이 아니시라 믿어서지요..)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잘 한것 혹은 가장 후회되는 것을 꼽으라면? 이라는 질문을 보면서 후회되는 건 정말 열손가락 발가락을 동원해도 다 못 헤아릴 만큼 많지만 내가 잘 한것은? 이  질문에는 그만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내 인상을 돌아봐서  후회되는 것들이 없진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리겠지만 그래도 그 중  잘 한게 무어냐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늘 답이 궁하다. 그렇다면 잘 산게 아니란 뜻일까

 

다시 청춘이 되면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조금은 영리하고 영악하게 돈문제에 대해서도 깐깐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보다 연애를 하고 싶다.

무어그리 박복했던지  80년도 국민학교에서 5학년부터 남녀를 갈라놓는 학교를 나와서 중간 전학으로 한학기 남자구경했다가 주욱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게다가 직장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 더 많은 곳을 다녔다. 몇번을 바꾸어도 계속....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고 절세 미인도 아닌 까닭에  변변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어도 연애를 하려면 누구나 돌아볼 만큼 미인이거나 아니면 남자들에게 붙임성이 좋고 낯을 가리지 않거나  내세울것도 없으면서 아집만 가득한 헛된 자존심같은건 없어야 하는데 있어야 할 외모도 성격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높아서 결국 연애를 안한것도 아닌 못하고 젊은 시절이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한두번 해프닝같은 만남, 친구도 아니고 원수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의 동문들  타학교와 함께 했던 동아리 친구 선배들이 전부고 그나마 알던 남자들도 졸업하면서 거의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다지 아쉬운 줄도 모르고 나 잘난 맛에 살았던거 같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뻘짓을 하고 온갖 해괴망측한 짓을 해야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든 주사든  뭐든 젊었을때 치기어린 마음으로 해버려야 하는 걸  제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순탄하게 지나는게 아니라 나중에 늙어서 조금은 추하게 그런 뻘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20대초에 하지 못한 연애가 결국은 서른을 바라보는 느즈막에 찾아와서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얼굴 벌개지게 할 거 다하고 추태를 부렸구나 싶은  기억들도 함께 생겼다. 

밤늦게 누군가를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행복해도 해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억지부리고 땡깡부리렸던건 받아도 받아도 자꾸 기갈나던 내 속의 허전함을 나도 어찌할 수 없어서 애정을 갈구했던것같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된 연애에도 남들이 할건 다하고 싶어서 함께 해돋이를 보러가고 차안에서 음반하나가 몇번을 반복하도록 음악을 들으며  침묵을 함께 하기도 했다.

뭐랄까 내 곁에서 얼마이상 떨어지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내곁에 얼마이상 다가오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만큼 내 곁에 있어주기를.. 하지만 요만큼의 내 공간은 인정해주기를..  늦도둑이 무섭다고 연애에 미쳐서 할일을 내팽개치기도했고  계속 빼삐를 들여다보며 연락이 오기를 뭔가 메세지가 담겨있기를... 있지도 않을 메세지를 찾아서 공중전화에 매달리거나 혹시 그의 비밀번호릉 알게되지 않을까 음흉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기도 하고 어이없는 행동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술에 취에 첨본 운전기사에게 한탄을 쏟아내기도 했으니까 짧은 기간동안 할건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늦은 연애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든 그 짓을 할 때 이뻐보이고 용서가 되는 시기가 있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조금 추했을지라도 그게 늦은 나이지만 내게는 처음이었으니가 다 이해가 되고 나름 용서가 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이라는 게 그런게 아닐까

좀 유치하고 어이없고 억지부리는 것이라도 다 통하게되는것

그러려니 하고 이해되고 오히려 익숙하게 능숙하게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무모하고 철이없고 서툴러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상처가 많아서 기억에 오래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베르테르도 로테에 대한 마음이 첫사랑이어서 그렇게 열정적이고 무모했고 급했다.

물론 제 격정과  무모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기 정수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그의 행동을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빠져서 경주마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상대방에서 순수하고  적극적으로 빠져드는 용기.. 그것이 첫사랑의 특원이다.

비슷한 청년이 이탈리아 베로나에도 있었다.

사랑에 빠져서 가족도 원수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로지 한 여자에게 매달리고 함께라면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는 것...... 그것도 첫사랑이 아닐까

(첫사랑이란게 처음 하는 사랑이라는게 아니라 첨으로 눈이 멀어질만큼 집착하고 몰두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미쳤다 싶을 만큼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혼자의 시간이 되면 내가 미친게 아닌가... 아니 미쳤구나 이러지 말아야지... 그래도 품위는 지켜야하지 않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는 했었으니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맹목적으로 눈멀고 집착하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품위를 생각한다는게 조금 우습기도 하다.

 

 

요즘은 워낙 헤사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오다 보니 너도나도 첫사랑의 아이콘이 되고 순수청년이 되고 말아  "순수"라는 말이 오히려 상업적으로 들리는 판이다 심지어 송중기의 늑대 소년 이후로는  반인반수의 저 철수마저 저렇게 아름답다면  굳이 인간일 필요가 있으랴 싶게 열광하고 있는 형편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순수하고 그래서 어리석고 서투른 첫사랑에 빠진 청년은 "봄날은 간다"의 상우였다.

라면먹고 가라는 말에 헤벌죽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녀의 전화 한통화에 서울에서 강릉까지를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 커다란 키마저도 너무 서투르고 어설퍼서 맘이 갔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서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그녀와의 지금이 소중하고 그녀와의 미래를 꿈꾸게 되는 청년.. 사랑하므로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고 있던  소년같은 청년이 상우였지만  그의 그 서투르면서도 집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은 세상을 알만큼 아는 속물같은 사람에게는 많이 두렵고 벅찬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상대 은수도 막 20대가 된 순수하고 서툰 처녀였다면 둘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어쩌면 어린나이에 덜컥 살림을 차리고 지금껏 행복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열렬했던 기억은 남아있을 테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절절히 공감하며 느낀게  역시 연애도 해야할 나이가 있구나

철없는 시절 이런 남자가 내게 있었다면  ,,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저 상대가 좋아서 정신을 못차릴 만큼 사랑하고 행복해하는 것.. 그런것도 때가 있구나..

어쪄면 여자가 남자보다 세상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먼저 성숙해지는 존재라 이런 상우같은 남자는 뭘 모를때 만나는 것 그래서 그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짧은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조금은 서글픈 교훈을 얻는다.

내 남동생이라면 머리라도 쥐어박으면서 여자에게 그렇게 빠져들면 안된다. 더구나 은수같은 닳고 세상을 잘 아는 여자라면 더욱 전략이 필요하고  전술을 잘 짜야 한다고 아는 척 충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 초 새로운 첫사랑의 순수청년이 나타났다.

"건축학개론"속의 승민

나이든 엄태웅의 승민말고 절은 이제훈의 승민이다.

그는 그래도 상우보다는 조금 세상을 많이 알고 계산할 줄 알았다.

첫눈에 서연에게 끌리고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서연에게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먼저 지킨다. 정신없이 상대에게 빠져들고 배신의 상처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돌아서버리는 현실감도 가지고 있다.

예전 상우가 남자와 모텔에 들어간 은수를 어찌 할 수 없어서 찌질하게 그차를 키로 그어버리거나 화를 내며 돌아와 달라고.. 사랑이 어찌 변하냐고 징징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승민은 사랑은 변할 수 있는 거고 여자는 더 좋은 조건의 남자에게 끌리는 거고 내게 상처를 줄 여자라면  상처받기전에 내가 먼저 상처를 주겠다는 계산까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첫사랑의 *년을 마음에 품고 잊지못하고  현실에서 어정쩡하게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상우는 떠난 여자에게 징징거리며 매달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모텔을 가는 것까지 뒤쫒아 확인하고  홧김에 그 차를 확 그어버릴만큼 유치하고 무모했고 승민은 용기있게 고백할 타임도 번번히 놓치고 선배에게 대놓고 서연을 좋아하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상처받고 혼자 상처를 준다.

내 온 영혼을 바쳐서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연인의 배신이 그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도 첫사랑이어서인가...

나름 계산한다고 해도 그 계산에는 사칙연산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내마음에 상대의 마음을 더한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사랑에서 누군가의 마음이 변해서 사라진다고 해서 고스란히 내것만 남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나라의 계산법 처럼 뭔가를 더하고 뺐어도 원래보다 더 많이 허전하고 더 많이 충만한기분 그게 첫사랑이니.. 아무리 영민한 머리더라도 계산이 쉽지는 않다.

 

그 첫사랑을 통해 상우나 승민이 얼마나 성장통을 겪고 성숙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한번 두번 사랑이 덧입혀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속되게 되거나 익숙해지면서 변해갈것이다.

아쉽게도 서양의 두 청년은 그렇게 성숙해질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말았지만

 

첫사랑이 아련하고 아름다운 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이기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나도 고백하자면 헤어지고 얼마간 세상에 그렇게 나쁜놈도 없고 죽일놈도 없었다.

그래도  내게 좋은 추억을 주고 경험을 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것도 몇년되지 않으니까...

 

언젠가 상우에게 은수가 웃으며 기억될 수 있을까

승민에게 서연은 그렇게 한채의 집을 남겨놓고이제 마무리가 가능했을까

베르테르도 살았다면 나이먹고 늙어가는 로테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로미오도  뱃살이 늘어나고 잔소리가 늘어가는 줄리엣을 그러려니하고 바라보는  체념을 배웠을지도...

 

그때 그랬더라면..

이런 결심을 했다면.. 하는 후회와 가정법은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에도 적용된다.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갈 수 이다면

이것저거 재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남의 눈에 미쳤구나 싶어도 상관없이 나혼자 충만하고 행복한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 딸들에게 담담하게 이 엄마도 한때는 빛나고 환하던 때가 있었단다..

하고 조금은 뻐기면서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

 

이 가을

그냥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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