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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평점 :
한때는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사람에게 끌렸다. 누구에게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멍해져서 그대로 빨려들것같은 말, 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든 수식어를 떼어내고 바로 명사와 동사로 문장을 이어가고 말을 이어가는 사람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담담하게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고 톤도 일정하게 어찌보면 졸릴지 모르겠다 싶다 낮으면서 단단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
그 낮은 목소리 단단하고 건조한 말투에 자꾸 귀가 다가간다.
환영
이 책이 그랬다.
어떤 환상도 설레임도 없이 담담하게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대신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백속집에 일하러 가는 여자 윤영.. 처음 그렇게 시 경계를 드나들 때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젖몸살을 앓으면서 뼈마디가 으스러지도록 일을 하지만 언젠가 남편이 공무원이 된다면 모든일은 추억이 되리라... 그건 정말 잔인한 고문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첨부터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라가는 쥐는 놀라서 펄쩍 뛰지만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고 데워지는 프라이팬 위의 쥐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고 점차 올라가는 온도에 적응에 가면서 자기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건지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익숙해간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섬뜩하다.
나의 고통을 내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희망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그 희망이 나를 옳아매고 나를 점점 어두운 구멍으로 등을 떠밀고 있다.
분명 "희망"을 품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품고 한참을 정신없이 내달라디 문득 내려다 보면 내가 안고 있는 것은 빛나는 희망이 아니라 냄새나고 물러터져버린 절망이고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진다.
내가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던 불빛은 어디로 갔는가.
윤영은 돈때문에 그렇게 점점 가랑이를 벌리고 그 치욕을 스스로 죽여나간다.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어떤 화려한 수식도 없고 절망의 비명도 없고 그냥 덤덤하게 해가 뜨고 지듯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때가 되는 것 처럼 그렇게 어느순간 어쩔 수 없이 그런 순간이 왔다.
별채에 들어가고 가랑이를 벌이고 그리고 다시 옷을 입고 물가에 섰다가 다시 홀에서 빈그릇을 치우는 상황... 그건 별난게 아니었다.
그렇게 주머니에 들어온 꼬깃한 만원짜리 몇장이 내 밥이 되고 내 아이의 옷이 되고 우유가 되고 방세가 된다. 그러니 그게 어찌 별난 일이 될 수 있으랴.. 그냥 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런 덤덤함이 일상처럼 흐르는 시간이 그렇게 쌓아가고 견뎌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윤영은 거기서 나올 방법은 점점 사라진다
누가 윤영은 나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이순간 내 가정이 무너지고 내 앞이 막막해지고 내 새끼가 배가 고파서 울고 있다면 나...
왕사장이 돈냄새를 뿌리면서 은밀한 제안을 해온다면
나는..
나는 과연 윤영과 다른 선택을 한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저 따뜻하고 평화롭던 불빛이 순간 사라지고 내앞에 깜깜한 앞이 보이지 않는 벽이 나타 나버리면 나는 .. 어쩌면 윤영같은 기회조차 없다고 우울할지도 모른다.
문체가 너무 담담하다. 한 여자를 이렇게 감정없이 따라가면서 묘사하고 보여주는 글이 아프면서도 쉽게 책을 놓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왠만한 다른 글들처럼 막연한 희망이라도 암시하면서 끝나지 않을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투덜거릴지언정 그렇게 유치하고 휴유~ 하고 한숨 돌리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이야기는 끝까지 몰고 간다.
어쩌면 김기덕의 영화를 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울 수도 없고 소리 칠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는 ... 사방이 막혀버린 상황..
그렇게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는 시간을 견디고 살아내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내게 뭔가를 해 줄 누군가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은 세상이 그렇게 꽉 막혔다.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 많은 불빛들 속에 내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절망이라는데...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내게는 그게 일상이기도 하다.
누구나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