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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펄 벅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요새 다시 읽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새삼 오래된 책들의 가치를 알아간다.
더불어 어렸을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
웃자고 이야기하자면 역시 뭐니뭐니해도 부동산이 최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왕룽이 그렇게 돈을 모아 땅을 사는것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어서는 아니겠지만서도
내 땅에서 정직한 노동과 정직한 땀을 통한 소득만이 진정한 내것이라는 믿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왕룽일가가 가뭄으로 남쪽으로 가서 빌어먹을때도 남들이 모여 돈이 있다면 무얼 하겠는가 하
떠들었을때 왕룽은 땅을 사겠다고 했다.
남들은 그 돈으로 맛난걸 먹고 좋은 걸 사고 어쩌구 저쩌구 소비에 대해 이야기했을때
왕룽은 땅을 이야기했고 그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정직한 노동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왕룽의 그런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성격이 그를 그렇게 성공하게 했고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만들어준 것인지 모르겠다.
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란의 인생만큼 불쌍한게 또 있을까
부모에게 버림받아 부잣집 종으로 들어가 나이 먹도록 노동을 하고 게다가 얼굴도 이쁘지 않아 미움과 차별을 받고 살았고 그렇게 만난 남자도 가난한 농사꾼
정직하고 성실한 남자이긴 하나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이라 아이도 혼자 낳고 뒷처리도 혼자 하고 낳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하고 나중에는 남편이 첩을 얻는걸 바라보고 혼자 속으로 삭혀야 하는 신세
아마 오란이 그렇게 병들게 된것이 결국은 홧병이 아닐까 싶다.
모든걸 털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담아 온것이 결국 화가 되고 암이 되어 그렇게 스스로를 갏아먹었나보다.
남쪽지방에서 보인 그녀의 염치나 도덕성에 대한 불감증은 어쩌면 그녀의 삶의 피폐함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빌어먹고 훔쳐먹어가며 살지 않으면 목숨을 이어갈 수없다는 절박함을 어려서부터 배워서 남에게 크게 해를 입히지 않은 비도덕적인 행동은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부분이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는 조금 찜찜했지만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전에 내 입장에서만 보고 옳다 그러다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훔친다는 것 옳은 건 아니니까. 차라리 내가 훔치고 말지 아이가 훔쳐온 걸 먹이는 건그렇다
돈을 모아 땅을 사고 조금 살만해지자 극심한 가뭄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고 도시에서 빌어먹다가 혁명바람이 불어 얼떨결에 부잣집에서 돈을 가져오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오고 땅을 사고 지주가 되고
황룽도 어쩔 수 없는 동양의 아비인 모양이다. 자신은 비록 농사꾼으로 살지만 자식들이 학자가 되고 좋은 풍모를 가지게 되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걸 보면 세상 어떤 아비와도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또 조강지처에 대한 애틋한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꾸미지 않고 가난할때와 다름없이 꾀죄죄한 아내에게 벌컥 화부터 내는 것 그리고 돌아서서 미안해 하고 스스로 뇌책감을 느끼는 것... 그것도 어쩌지 못하는 동양의 늙은 남편이다
늘 땅을 사랑하고 땅에서 노동하고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왕룽도 늙어가고 양지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자기 아버지처럼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한세월 풍파를 겪은 왕룽도 자식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미 나의 세상은 지나고 자식들 세상이 펼쳐졌고 머리가 큰 자식에게 뭐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고 (에전 자신도 그랬으므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시끄럽게 굴기보다는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하는 것... 그렇게 왕룽의 인생도 지나가고 있다.
모진 일을 겪고 좋은 결과를 얻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행이 닥쳐도 인생은 계속된다.
살아가는 건 드라마나 이야기가 아니므로 가장 좋을때 끝이 나질 않고 가장 바닥을 쳤다고 해서 그것이 다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오르락 내리락 흐름을 타면서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쁜 일만 연거푸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고 간혹 양심을 속이기도 하고 남에게 욕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의 삶을 대견하게 만들어온 두 사람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오란이 늙어서 두견에게 했던 말... 나는 젊어 이쁘지 않아 영감님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영감을 얻어 자식들 낳았지만 넌 아직도 종신세를 못면하는구나..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삶에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런 자세를 닮고 싶다.
왕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란을 생각하면서 그때도 지금도 한 인간에게 삶이란 겸손하게 지속해야할 운명에 다름없다.
역시 번역이 깔끔하면 읽히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