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강화문 교보 시네큐브...

13년간 내게 은밀한 도피처가 되어준 곳이다.

우울하고 막막하고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혼자 서성거려야 할때 아무 생각없이 버스타고 도착한 곳이 그것이었다.

교보의 책들 사이를 목적없이 헤매기도 하고

청승스럽게 성곡미술관의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거리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했던게 씨네큐브의 좁고 어두운 극장에 웅크리고 화면을 응시했던 일들이다.

상영시간도 적당했고 거리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혼자서 기웃대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던 곳이었다. 몇번을 가고 보니 그 옆의 라바짜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실 배짱도 생겼다.

무얼 볼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작정 아침에 나서서 그날 하는 영화를 잡아 보는 것...

그렇게 나의 은밀한 도피처였고 비밀 장소였다.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일본영화 플라워도 아네트 버닝의 마더엔 도터도 참 좋았다.

그냥 혼자 훌쩍거려도 민망하지 않았고.. 오시는 분들의 연령대도 이상하게 편안했던 곳이었다.

유난히 혼자가 많았고 좋았던 곳이다.

 

이제 이사를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근처에 영화를 보고나면 소비할 장소가 없어서 더 소박하고 건전한 도피생활이 되었던거 같다. (괜히 남대문 동대문을 가게되면 필요없는 돈을 쓸기도 한다..)

 

경기도로 이사를 가면 동대문시장이랑 이곳이 참 그리울거 같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매운 바람을 맞으며 서울 한복판을 열씸히 걸어다니던 그 기억들이 날거같다...

사람도 아니고 책도 아니고 그냥 어떤 거리가 장소가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는게 참 새삼스러우면서도 좋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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