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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컵의 물이 넘치는 것은 컵에 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컵의 끝까지 차오른 물위에 뜰어뜨린 한방울의 물때문이다. 직전까지 차오른 그 임계점을 넘게 하는 건 크다란 무언가가 아니라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다. 나는 단지 한방울의 물만 뜨러뜨렸을 뿐인데 물이 넘쳤다는 건 이미 컵에 물이 차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정말 사소한 순간의 충동들이다. 순간의 실수 욱하는 감정 사소한 한마디가 건드리는 감정의 편린들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속의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을 사소하게 툭 건드려 지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벛꽃이 지다에서... 미키히사는 다만 도쿄대학에 진학해서 어머니를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습에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찾아낸 후미코에게는 순간 아들에게서 맡은 술냄새하나로 살인으로 일어진다.
지워진 15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필이면 야구중계사이에 끼워진 살인사건 속보가 기미에를 건드린다. 기미에가 살아온 험난한 인생살이 그리고 공부대신 야구를 선택한 아들이 그동안 후보로만 있다가 드디어 출전할지도 모르는 그 시합이 자꾸 속보로 인해 끊어진다. 사실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 굳이 속보를 보낼 필요도 없어보이는 일인데도 자꾸 야구는 끊어지고 그때문에 찰라적으로 등장한 아들을 놓친다. 결국 그 사소한 속보가 그동안 살면서 쌓이고 쌓였던 기미에의 임계점에 한방울의 물이 되고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들이 사라진다. 어쪄먼 아들에게는 엄마의 범죄가 그동안 참고 살았던 고난함에 한방울의 물이다,
일본 추리소설을 읽으면 일본사회의 오늘이 보인다. 대부분의 추리물의 사회를 반영하니까 그런 면이 있지만 일본추리물은 사회의 한 단면을 치밀하게 드러내는 면이 강하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입시문제 집요한 스토커들 홈리스들 가족사이에 벌어지는 질투와 망상등이 모두 이 소설속에 있다. 읽고 나서 기가 막히다 싶은 반전도 보이고 허망해지는 졸작도 섞여있지만 대부분 재미있다. 다만 문제가 끝나고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기대할 수 없다.
제목이 헤피앤드에게 안녕을... 이라서인지 모두 끝이 칙칙하고 우울하다. 개운하지 않다.
그냥 픽 웃고 말기에는 찝찝한 이유가 우리 사회도 소설속의 일본사회의 문제와 다를 바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