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시간들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탁기가 고장났다. 남자가 떠났다. 혼자 남았다. 텅빈 시간들만 내 앞에 널려있다. 나는 여전히 불면이다.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고 혼자 궁싯거린다.  

주인공 오주는 도서관 사시이고 불면증이 있고 남자와 금방 헤어졌고 아직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탁기마저 작정한듯이 고장났다. 

그 고장난 세탁기가 그녀를 세상밖으로 불러낸다. 빨래들때문에 찾게 된 빨래방.. 그 이전에 세탁기가 없으며 빨래방으로 가라고 조언해줬던 이웃집의 신기한 여자 조미정  그리고 빨래방에서 만난 조미치 콧수염 박이도 그리고 남자. 

그렇게 주줍고 어눌하고 대책없는 오주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겨나도 그들로 인해 시야가 넓어지고 조금씩 변하고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물론 그 남자와 헤피앤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첫번째 남자가 떠났을때처럼 어이없고 당혹한 기분은 아니다. 누군가가 떠나고 남겨둔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배웠기때문에 그리고 그 시간을 채워나갈 누군가가 아직은 옆에 있기떼ㅐ문이다. 그렇게 시간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시간의 빈곳을 채우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첨엔 조금 지루하게 시작했는데 조미정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흥미있어졌다. 등장인물이 하나같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매여있지 않고 그 이상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고 긍정적이다. 단체로 노긍정씨의 신도들이 아닌가 싶게 밝고 긍정적이다.그런 긍정의 기운이 오주에게 미쳐서 변하게 하고 읽는 독자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사실 별거 아닌거라도 좋게 생각하고 환하게 미소짓고 괜찬아 괜찮아 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위로가 디고 힘이 난다.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긍정적이다. 

우울해 보이는 남자 상처를 가진 남자도 한때는 오주에게 긍정적이었고 희망이었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늦은 봄밤 그와 함께한 기억이 환하고 이쁜 것이어서 그가 떠나도 오주는 괜찮을거 같다. 물론 그 전 남자도 환한 기억을 남겼겠지만... 남겨진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것을 알고 그 빈칸에 환한 기억을 채워나가게 한 두번째 남자는 그래도 처음보다 오주를 힘들게 하진 않으리라 싶다. 

벛꽃이 날리는 봄밤. 섬유유연제 냄새가 떠돌아다니는  빨래방의 풍경들 비오는 날 포장마차에서의 모임 그리고 책이 가득한 도서관 늦은 밤 아무도 없는 책들만이 주인이 된 도서관을 거니는 주인공... 공간들이 참 매력적이다. 도시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곳 혹은 그런 곳에 내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 (주로 도서관)곳들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술 먹은 다음 끓여먹는 콩나물 순두부 라면이랑 끝내 레서피가 공개되지 않은 비빔국수도 언젠가 먹어봐야지.. 

조미정씨처럼 나도 이책에 나오는 공간과 시간들을 꼼꼼하게 적어뒀다가 한번 느껴봐야겠다.  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햇살 좋은 날 손빨래를 하고 빨랫줄에 바싹 말리는 동안 그렇게 빨래가 마르는 동안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