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워낙 유멍해서 리메이크까지 된 드라마니 내용이야기는 생략하고  

드라마초반에 주인공가족이 고향에서  가난이 찌들고 빚이 눌려 지내다가 아버지가 자살하고 가족이 서울로 도망오는 장면이 있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가난때문에 심성이 나약한 아버지는 책임감에 죽어버리고 강한 엄마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서울로 와서 엄마의 쌈지돈으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다.  

그때 엄마에게 쌈지돈이 있었던걸 알게된 아들 (아마 작은 아들이지 싶다) 엄마에게 대드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돈이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거라고.. 엄마가 독하게 그돈을 쥐고 있지 않고 아버지에게 주었더라면 우리가 가난을 면하지는 않았더라도 아버지를 잃지는 않았을거라고 엄마에게 퍼붓는다. 그러나 독한 엄마는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냥 못 들은척 묵묵히 그 돈을 발판으로 악착스럽게 행상을 하고 함바집을 하고 식당을 하면서 돈을 불려나가고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자리를 잡는다. 

그 돈이 아버지를 죽게 하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빚을 다 갚고 가난을 면할 액수는 아니었을것이다. 어머니도 겨우 서울서 셋방을 얻고 행상을 다니는 정도였다.  

그때 어머니가 그돈을 내어놓았다면 빚의 일부는 갚았을지 모른다. 아버지 체면이 섰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전부였을 것이다. 몇달간 혹은 일년정도 빚독촉에서 놓여나고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면이 서고 조금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하지만 그게 전부다. 빚이라는게 그렇게 쌓일줄만 알지 녹을 줄 모르는것이라 잠깐 따뜻한 햇살이 있다고 해도 윗부분 약간만 녹아 물이 흐를뿐 그 물이 데워져서 아래의 얼음까지 녹일 수는 없다.  

결국 잠깐의 평온이 지나면 다시 독촉이 날아오고 또 불안하고 여전히 가난할 것이다. 어머니는 그걸 알았을 것이다. 이렇게는 아무것도 안된다고 내 새끼들이 어떤 꼴이 될지 뻔하다는 걸 안거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독한 년이 되고 말고 어떻게든 자식들을 살려야겠고 나도 살아야겠다고 맘을 먹고 그렇게 쌈지돈을 쥐고 있다가 그것이 밑천에 되어 일어난다. 아들은 바락바락 대들면서 그 돈이 아버지 목숨값이라고 퍼붓지만 어머니도 모르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돈이 남편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고 당신이 과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자식들이 아비없는 놈들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지만.. 과감하게 한가지를 도려내기로 했다. 사실 그렇게 시달리고 쪼들린다고 덜컥 죽어버리는 무책임하고 나약한 남편에게 실망하면서 돈을 내놓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한켠 죄책감은 영원히 지니고 살아야할 주홍글씨가 되었을거다.  

아들이 눈을 뒤집어가면서 엄마를 살인자로 몰아가며 악을 써대는 동안도 어머니의 표정은 한치도 흐트러짐이 었었다. 그냥 묵묵히 뒤집어 쓰고 견디고 있었다. 내 속으로 낳은 내자식이 이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그건 체념같기도 하고 의지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같았다. 오냐 이렇게 독하게 살아남았으니 정말 살아남는게 뭔지 살아가는게 죽는것 보다 얼마나 어렵고 지긋지긋하고 비굴한지 온몸으로 보여주겠노라는 의지같았다.

썩은 종기를 도려내듯이 모두가 살기위해 한쪽을 도려내는 건 누구에게는 근엄한 선택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잔인한 선택일수도 있다. 그걸 하든 안하든 힘들기는 마찬가지고 욕을 먹기도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잘라내는게 나을까 

지금 나는 그 어머니에게 기대고 싶다. 그렇게 아들에게 욕을 먹고 원망을 듣고 독하고 모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게 후회되지는 않았는지... 결국 끝이 좋아 다 좋아지는 경우긴 하지만 과연 끝이 좋을지 아닐지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어떤 선택을 하고 판단을 내려야 할때 내가 먹을 욕이 중요한건 아니다. 내가 욕을 먹고 똥통을 뒤집어 쓰더라도 그 결정이 누군가에 결국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거라는 걸 믿을 수 있는게 중요하다. 인생이란 만약에... 라는 건 없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 일단 선택한 대로 쭉 이어질 뿐이다.지금 내가 내린 결론이 그 태수 엄마만큼 독한것이라도 태수엄마만큼 강인하고 옳은 선택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삶이 지속되는 건 지리멸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으로 단절되는 깔끔함이 그래서 더 유혹적이다. 구질구질하고 비굴하게 굽히고 휘고  웃음지어가며 사는 것..그래도 살아있는게 살아서 하루하루를 견디는게 더 용기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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