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딸아이에게는 읽으라고 권하고는 난 아직 읽지 않았다. 마루밑 바로우어즈.. 

마루밑에 살면서 사람들의 물건을 빌려쓰는 작은 사람들이야기.. 

그 이야기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의해 에니매이션으로 만들어졌다. 

마루밑에서 사람들의 물건을 빌리며 사는 종족들이 많이 없어지고 이제 그 집에 단 하나 남은 가족이 아리에티가족이다. 아빠를 따라 첨으로 물건을 빌리러 나서서 그만 집에 사는 소년에게 들키고 호기심으로 그 소년에게 다가가보지만 결국 그로 인해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고만다.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열네살 소녀에게  소인으로 산다는 것은 제약이 참 많은 일이다. 사람들에게 들켜서도  안되고 이야기를 해서도 안되고.. 선물을 받아서도 안되는 것. 

그래도 열네살이란 나이가 주는 무모한 용기와 호기심은 소녀를 성장시킨다. 사람 아이와 교감을 나누고 엄마를 구해내고.. 세상이 어떤 곳이라는 것 을 배우는 것.. 그렇게 세상을 알면서 호기심과 용기는 조금씩 무뎌지면서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나중에 무뎌지고 기억으로만 남을 호기심과 용기일지라도 한번쯤은  무모해보는 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이다. 그렇게 실패하고 상처받는 과정이 성장일테니까? 

하야오의 에니메이션에는 유달리 소녀의 성장이 많은 듯하다. 

사실 토토로도 토토로를 만난 어린 자매의 성장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테고  귀를 기울이면은 진정한 자신을 찾는 소녀의 성장담이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하기 위한 소녀의 모험과 성장 이야기이다..  

 모험과 용기가 성장에 필요한 원동력이라면..지금 현재하고 의 아이들은 그걸 잘 이용하고 있을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만한 모험도  고양이도 죽인다는 호기심도 가지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어른인 내가 아이들이 행여 그런 호기심과 모험심을 드러낼까 두려워하며 꾹꾹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리에티 부모처럼... 그리고 소년의 가정부처럼 그런 상상력을 현실적인 욕심으로 바꾸는 건 아닐지.... 

아이가 용감하길 바라는 지 아니면 유순하고 제도에 맞게 자라길 바라는 지 내가 먼저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적어도 아리에티 부모처럼 아이가 저지른 실수 아닌 실수에 그렇게 너그럽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족) 3D에 익숙해있다가 아날로그적인 만화영화를 보니 시시하게도 느껴졌다. 

        그래도 역시 그런 손그림이 주는 편안함 익숙함이 좋으니 나도 이제 구세대가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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