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콜스 - 영화 [몬스터콜] 원작소설
패트릭 네스 지음, 홍한별 옮김, 짐 케이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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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 엄마를 낫게 하려고 온 게 아니다. 너를 낫게 하려고 왔다. ”

엄마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도 견딜 수가 없었어. 그저 끝나길 바랐어. 다 끝나길 바랐다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했어.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가 이겨내지 못할거라는 사실을 알았어. 맨 처음부터, 엄마는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거였어. 그리고 난 그 말을 믿었고 사실은 믿지 않았지만

그러다가 이제 그타기를 내가 얼마나 바라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저 이런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어. 기다리는 걸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 그게 나를 이렇게 외롭게 만드는 걸 더 견딜 수 없었어

이 일이 그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거다. 그게 엄마를 잃는 일일지라도.

 

진심이었다. 진심이 아닐지라도

사람은 복잡한 짐승이니까 어떻게 여왕이 좋은 마녀이면서 나쁜 마녀일 수가 있는가? 오아손이 살인자이자 구원자일 수 있는가? 약제사가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은 바를 수가 있는가? 목사는 생각이 잘못되었으면서 선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질 수 있는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번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너는 엄마가 떠나길 바랐고 동시에 엄마를 간절히 구하고 싶었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달래주는 거짓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네 마음은 두 가지를 다 믿는 것에 대해 너를 벌 주는 것이다.

 

삶은 말로 쓰는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것이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쁜 것이 아니다. 생각일 뿐이다. 무수한 생각 중 하나 행동이 아니었다. “

 

아픈 엄마를 가진 소년 코너는 외롭고 씩씩했다.

모두가 엄마가 아프다는 걸 알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코너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코너는 엄마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엄마가 죽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사자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을 때 주변 사람들은 혼돈스럽다. 위로를 해야할 것 같은데 또 맞지 않은 것 같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하려고 하지만 그러기엔 사실이 너무 크다.

사람들은 코너를 배려하려는 마음이었고 동시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엄마 역시 자신의 병에 대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야할지 몰랐을 것이다.

코너는 엄마가 죽는다는 걸 믿지 않은 것처럼, 조금만 더 견디면 괜찮아질거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코너에게 위로와 배려는 어울리지 않아 보여서 사람들은 침묵을 했고 그 침묵이 힘들어서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언제든 손을 내밀면 잡아줄 준비를 하면서 주위를 서성이면서도 선뜻 어떤 선을 넘어 코너에게 다가가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모른 척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코너는 도움을 원치 않은 것 같아.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건 코너가 원하는 건 아무 일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함께 공부하는 친구이고 학생이고 이웃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코너를 대하는 것 그래서 일상에 아무런 균열도 없이 그냥 어제처럼 이어나가는 것이었을 텐데 이미 그러기에는 늦어 버렸다,

내가 너를 위해서 한 일이야... 라는 것이 코너에게는 상처로 남았고 내가 그 상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일은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까지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코너가 아니니 그 마음을 짐작만 할 뿐 알기는 어렵다.

 

엄마도 코너에게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내가 낫지 않은 병이야. 곧 죽을거야 라는 말을 혼자 식사를 차려먹고 혼자 빨래를 하고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에게 할 수는 없었다. 혼자 일상을 견디고 아이답지 않게 구는 아이에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희망을 주고 아이가 그걸 믿는다고 생각하고 견디는 것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아빠도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빠는 이미 나는 제3자라는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와 엄마를 떠난지 오래 되었고 아이를 만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내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괜찮다고 다시 와도 엄마와 너를 볼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한다. 코너가 그때는 늦을 수도 있다는 말을 애써 외면하면서 서로가 잘 알고 있고 서로가 잘 알고 있음을 아는 그 진실을 열지 않는다.

할머니는 진실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딸이 혹은 이전 사위가 그 말을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하는데 둘 다 겁을 먹고 어리석어서 그 말을 하지 않음에 화가 난다. 아이 마음을 알기에 무어라 할 수 없고 그냥 무뚝뚝하게 대할 뿐이다

코너는 어른들이 무슨 말을 자기에게 하고 싶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결국 나는 보이지 않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안다.

보이지 않은 존재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생활할 뿐이다.

숙제를 하지 않아도 발표를 하지 않아도 심지어 큰 사고를 저질로도 코너는 보이지 않은 학생이다. 배려받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아이. 지금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여겨지는 아이. 그 마음은 결국 코너가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들이다.

 

코너는 자신이 잘못을 하고 벌을 받음으로써 이 긴장감을 해소하고 싶다.

내가 대신 벌을 받고 엄마가 살아나기를 바랬던 것일까

내가 잘못했으니 엄마을 잃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벌을 받기를 간절하겍 바라는 그 마음이 몹시 아팠다.

 

몬스터의 말은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지는 부분을 설명한다.

누군가를 선하고 악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어떤 일에 대해 당연하다거나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우리는 각각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살인자인 왕손이 좋은 통치자가 되거나 나쁜 마녀가 착한 마녀일 수도 있는 것

독선적인 약제사가 사람을 구하려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선한 목사가 나쁜 신념을 가질 수도 있는 일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본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어요.

사건이 생기면 주변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러나 코너는 선함과 악함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명확해야 안심이 되는데 그 두가지가 내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고 휘몰아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고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가진 가장 깊은 진실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 엄마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러나 엄마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엄마의 고통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고

엄마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엄마를 힘들어하는 내 마음임을 알 때 아이는 너무나 혼란스럽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어서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코너안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갈등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내가 나쁜 아이여서 부모가 싸우고 가족이 위태로워진다고 믿는다.

내가 착한 아이가 되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으면서 참겨 견뎌내는 어른 아이가 된다. 그리고 무심한 어른들은 참 의젓하다, 착하다고 아이를 다시 그 소용돌이 속에 내버둔다.

할머니는 코너의 그런 면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차를 준비하고 행주질을 당연하게 하는 아이는 없으니까

모든 것을 다 부서버린 그 과정이 놀랍고 충격이지만 어쩌면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고통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 마음을 감추고. 아니 감출 것도 없이 알지도 못하면서 누르고 덮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그렇게 행동하면 정말 없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기대를 갖는 것

그렇게 고통을 혼자서 점점 키운다.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몬스터가 코너를 몰아붙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너가 내 마음을 마주하고 그 마음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엄마를 잘 보내줄 수 있었고

엄마도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사실 서로 몹시 안타까워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었었는데

내가 수도 없이 검열하고 판단하고 평가해버렸던 그 마음을 비로소 떠나보낸다.

이야기는 어둡고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세상에 해피엔딩은 없다. 그냥 엔딩이 있을 뿐이다.

그 엔딩이 해피할지 아닐지는 지금 당장 알 수는 없다.

지금은 그냥 솔직한 내 마음을 알고 전달하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따뜻하고 강한 몬스터가 있을까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보고 그 사이 경계를 넘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알고 있는 것

아프지만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책은 코너의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준다면

영화는 코너의 마음을 짐작하게 하면서 함께 안타깝게 성장하게 한다.

둘 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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