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읽은 책


책을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다.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끝을 봐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중간을 건너뛰고 결말을 보고 책장을 덮을 때도 있다. 

세번을 시도했으나 결국 다 못읽은 책은 <밀크맨>  책 제본이 다르지 않음에도 내게는 글 간격이 너무 촙촘하고 줄 간격도 너무 좁다는 인상을 남겼다.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상황들을 적어가며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보다 의식의 흐름이 더 많았다.

아니다 계속 어떤 사건은 일어나지만 나는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화자에게 갇혀서 무기력했다.

결국 읽다가 다시 반납하고 읽다가 반납하기를 세번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모두가 좋은 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올해의 책이라고 하지만 나는 스무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그리고 읽다가 이 저자는 자기 자랑만 하는구나

끝없이 수다를 떨거나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으면 책을 읽기 어렵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즘>은 재미가 있다.

페미니즘 역사를 알기에도 좋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들  조금은 곁가지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중반이상을 읽은 지금 이 책을 계속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이렇게 이런 상황이었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면이 있고 저 사람은 저런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 현재 내가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꾸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기 2026년을 앞둔 한국에서  중산층에서 사회취약게층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일을 그만두면 무얼하며 살아야 할지가 고민이 되는

내가 이전 서구 페미니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때 열심히 모으고 읽은 관련 서적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그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 현실에 맞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들 나름의 한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내가 지금 여유가 없다.

가끔은 끝까지 우직하게 읽는 것보다 책장을 덮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우직하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시간낭비를 했구나 싶은 책들도 있다.

그 책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게 그 책이 들어올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책의 문제가 아닌 독자의 문제다. 

책은 필요에 따라 읽기도 하지만 여유있을 때 즐기기 좋은 놀이이기도 하다.

한없은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내가 쓸 수 있는 시간동안 가장 즐겁고 유익한 것을 하고 싶다는 건 당연하다.

읽어서 즐거운 책 그러나 남는 감동이 있거나 무언가 내가 깨어지는 깨달음을 갖는 책 물론 그 깨달음이 삶의 영역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책장을 넘기고 덮는 순간은 내가 조금 자랐다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는 책을 원한다.

고르고 골라 시간을 투자했는데 그런 남는 것들이 없다면 차라리 드라마를 보는게 더 나았을까 잠을 자는게 더 나았을까 후회가 오기 마련이다.

한때 나도 책장의 마지막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중간에 책을 덮어도 괜찮다. 가끔 아주 가끔 그런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책을 전부 읽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칠 때가 있다. 그 구절이 책 전체의 주제가 아니고 그냥 스치는 문장일지라도 그 문장은 비로소 내것이 되었다.

그 때는 나도 양심이 있으니 그 책을 다 읽었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책에서 문장을 수집했다고 생각한다.

단편 소설집도 다 읽지 못할 때가 있다. 열개 중에 일곱개를 읽고 좋았어도 괜찮았다. 이제는 한편이어도 상관이 없다.

작가가 모든 글을 고르게 잘 쓸 수도 없겠지만 

독자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늘 감동적이고 호의직으로 대할 수 없다.

독자 역시 그 글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

작가의 책이 독자의  읽는 행위로 비로소 마무리가 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때 독자의 마음, 상황들이 글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다시 읽은 최은영이 이전만큼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작가에게 있지 않다. 다시 읽었을 때의 나는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한계로 자신을 밀어가며 글을 쓴다고 믿으며 좋아했던 황정은이 버겁게 느껴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내가 주변 경계가 느슨하고 여유가 있고 무엇이든 받아들일 상황에서 읽은 책들과 무언가 위안을 바라고 답을 원할 때 읽는 책들은 확실히 다르다.

내가 어떤 독서 취향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취향이 널뛰듯이 오가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누구라고 말하기 힘든 것은 나의 상황들이 안정적이고 한결같이 않음에 있다


책은 잘못이 없다. (가끔 잘못한 책들도 없지 않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물론 내가 너무 힘들때는 책을 펴지 않는다.

적어도 책을 편다는 것은 내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만 가끔 나는 도피하듯이 책을 펼칠때도 있었다. 

지금 해야할 일들이 있음에도 아직 시간이 있어 라는 마음으로 나를  안심시키면서 책을 펴고 책 속으로 도망친다.

어쩌면 책을 많이 읽은 어린 시절 나는 책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책속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아이는 어른들이 내버려 두었고 칭찬을 했고 책을 읽는 시간은 내가 현실을 잊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 안도감 안정감을 나는 아직 기억하는 모양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결정하고 나면 잘 못되어도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댓가를 내가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되는 건 낫다. 나의 어떤 결정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 주변 사람이 함께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것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결국 내가 가진 것들을 내가 지켜내야 한다는 안달들이 나를 자꾸 어떤 결정들에서 도망가게 만든다.

그 도피처가 나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것 

책을 뒤적이고 찾아보고 서점에서 서성이는 일

그건 내가 지금 도피하고 있다는 것이고 지금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을 결정해야하는지 나도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 펼친 책들은 내게 위로가 되었나 

현실을 잊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 선택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지만 어딘가 잘 차곡차곡 모여 있다가 다른 시간 다른 문제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기로 한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책들을 다시 뒤적이며 읽고 기록을 남기고 책을 정리하는 중이다.

오래 가지고 있었던 책들 

절대 정리하지 말아야 겠다는 책들을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만큼 좋지 않았다.

그건 역시 책의 잘못이 아니다.

정리가 우선인 내 머리에는 모든 책들이 이미 정리 대상이며 결국 그 마음을 책을 읽을 수 밖에

많은 책들을 정리했고 또 그만큼의 책들이 남았다.

다시 관심이 가는 작가들이 생겼고 이제는 사 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책에 대한 나의 마지막 목표는 나의 도서목록 50권을 갖는 것

그리고 세상의 모든 책을 읽지 못하고 끝날거라는 초조감을 느꼈언 어느 시절과 다르게

모든 것을 읽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알 수도 없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것이다.


여전히 책으로 도피할 것이고

내 마음에 따라 책들이 널뛰듯이 좋았다 싫었다 하겠지만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내 마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변할지라도 그 마음에 따라 좋은 걸 찾아가고 싶다.


여전히 못다 읽은 책들은 늘어갈테고 

또 읽은 책들 밑줄 그은 책들도 늘어날 것이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그게 나인 셈이다.

내가 읽은 것들 내가 생각한 것들이 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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