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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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몰래 버리고 싶은 존재

또는 나의 살아가는 힘

그 두가지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가족은 나의 힘이고 나의 존재이며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가장 상처주는 대상이고 버리고 떠나고 싶은 곳이다.

 

흔히 가족은 화목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세상에 다시 없는 존재이며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희생해야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게 한다.

그래서 가족 때문에 힘들거나 가족에게 상처받거나 가족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

그 가족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멀리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 마음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나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심한 건 아닐까 내가 참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정말 그러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을 텐데 내가 잘못했다는 마음을 갖는다.

내가 그 상황에서 화를 내서는 안되는 거였고

내가 돈을 마련하거나 빌려서라도 줘야 하는 거였고

내가 말을 잘 들었어야 했고 그냥 니가 맞다고 말을 해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니까 아내이니까 가족을 돌봐야 하는 게 맞는 거였는데

내 일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어야 했는데 나는 엄마답지 못하고 아내로서 자격이 없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맞아도 내가 맞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밥상을 뒤엎은 그 사람에게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절대 깨지면 안되는 그 무언가이기도 하다.

아무리 힘들고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내 부모님의 실망과 충격을 견딜 수 없어서

가족을 떠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어서 나는 가족을 깰 수 없다.

가족을 깬다는 생각조차 불순하고 불온하다.

 

가족이란... 이라는 질문에 아마 대부분 비슷한 문장을 완성하지 않을까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화목하고 다정한 사람들 서로 이해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관계들

 

이 책은 그런 가족에게 질문을 던진다.

불편하고 불온하지만 어쩌면 한 번쯤 혼자 몰래 해봤을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입장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이 몹시 불편하고 화가나고 되먹지 않은 내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도데체 가족을 어떻게 보고 이런 발칙한 질문을 할까 라고 말이다.

 

왜 며느리가 남자면 안될까

역사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가 구축되고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이 독립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소유물로 여겨졌따는 점에서 한국이나 서구나 다르지 않다. 둘 다 가부장제 안엥서 여성은 예속된 상태에서 순종을 욕받았따. 그러나 한국의 유고 가부장제에서 결혼한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는 아내로서의 지위에 한정되지 않고 시부모의 지배를 받는 며느리로서의 지위를 가졌다.

며느리의 역할은 중대했으나 그 지위는 낮다는 모순이 있다.

며느리의 지위는 남편을 ᄄᆞ라 정해지지만 남편과 동등한 지위가 아니다.

허나 지위가 종속적이었다고 그 역할이 수동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전통적으로 아내이자 며느리에게는 높은 수준의 대처능력과 판단력이 요구되었고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들을 이끌고 어르고 돌보며 이들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관리능역과 경제적 수완이 기대되었다. 주도성을 요구하는 종속 상태라는 모순된 위치다. 이러한 모순은 남성의 역할에서도 나타난다. 남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사회적 출세인데 이를 이루지 못했을 때 가족 내의 권위는 형식만 남는다. 권력을 가지지만 생활에서 무력한 수동적인 상태를 경험한다.

 

가부장제에서 성별 역할은 구분되어 정해졌다.

딸 아내 며느리 라는 역할은 여성의 역할이며 동시에 여성이다.

며느리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 되는 경우 생물학적인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맡게 된다.

종속적이고 희생적이며 주체적이지 않은 하나의 소유된 존재로서의 역할을 하는 남자

그런 남자를 지배하는 다른 남자라는 인식은 가부장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단순히 동성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전통이라고 믿어 이어온 가족이라는 제도와 통념을 뒤흔드는 일이 된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와 역할이 모호히져버리는 일

그것이 동성결혼보다 더 중요하고 두려운 일이 아닐까

 

2.결혼과 출산의 절대 공식

한국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한다는 공식이 존재한다. 부모가 낳은 자식만을 인정해야 결혼과 가정이라는 공식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 공식이 흔들리는 건 존재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곧 무너질 거라는 착각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을 위해 결혼제도를 수호하는가?

결혼 밖에서 사람이 태어나면 정말 안되는 것일까?

출산이 결혼의 테두리에 있어야 정상이라는 관념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사람을 적법과 불법으로 구분하며 생애의 시작부터 불평등을 만들었따. 이런 불평등을 사회가 모르는 게 아니라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은 출산의 기반이라는 이념이 무너지면 사회의 근간이 붕괴되는 것과 같은 불안감에 차별을 정당해 해왔다.

에초에 사람이 태어난다는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출생부터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출생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결혼이나 자녀 출산에 관한 결정은 헌법적으로 보면 국가나 제 3자가 간섭할 수 없는 사생활의 영역이다. 국가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가족을 형성하고 존엄하고 평등하게 가족생활을 영위하도록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따.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낳을지 여부는 전적으로 두 사람이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때떄로 한국사회에서 결혼과 자녀 출산은 타인의 의견과 희망이 오가는 공적 의제 같다. 부모의 은근한 압력부터 결혼에 대한 주변의 충고까지 결혼과 출산에 관한 간섭은 꽤 일상적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불확실한 세계를 여는 일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어떤 아이일지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양육자의 상황이 어떠할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미래를 가늠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세상이 불평등하고 양육자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앞으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면 ... 양육자가 제공하는 가족이라는 환경이 자녀의 삶을 결정해버리는 현실에서 누가 자녀를 낳고 싶을까

 

동성가족이나 비혼출산등을 합법화하고 사회에서 받아들인다고 사회가 붕괴되고 질서가 사라질까

비정상적인 가족을 막으려는 사람과 다른 쪽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결정하냐고 되묻는 사람들 시아이서 여전히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비정상 가족에서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여전히 우리에게는 중요한 질문으로 남는다.

현재 아이들은 여전히 태어난다.

결혼을 한 정상 가족의 아이만 합법적이 정상이라고 인정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비정상 가족의 아이들도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데 그저 정상가족과 정상 출산만을 인정하고 다름을 배척하는 지금 누구든 행복할 수 없다.

 

3.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않은 출산

대한민국은 평등과 자유를 기본 정신으로 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채댁하였고 정부를 수립하였다.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다며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혼인은 남녀동권을 기본으로 하며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가족 제도는 예외다.

가족에 관해서는 평등보다 전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유독 가족에 대해서는 한민족의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평등은 전통적인 가족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허용된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가족제도를 동결시키는 절대적이 원리가 되왔다.

가족제도를 바꾸는 대신 혼혈아동과 그 어머니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장애부부는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은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

어떤 가족에게 어떤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제도적인 뒷받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제하거나 제외시키는 방식을 택해 기존 정상가족을 유지해왔다. 물론 이유는 그럴 듯하다.

태어나는 자녀가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

차별받지 않기 위해 혼혈아동은 해외로 입양을 보내가 장애 부부는 강제 불임을 하도록 해 왔었다.

아이의 불행한 삶을 예측하면서도 아이를 갖거나 낳겠다는 것은 부모의 이기심이라고 비난해왔다.

오늘날도 건전하지 못한 자녀를 출산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질타는 계속된다. 누군가 사회가 원치 않은 아이를 출산할 때 이기적인 행동이라며 출산을 결정한 그개인에게 잘못을 돌린다.

그렇게 혼혈아동에게 그랬듯이 아동을 사회적 차별과 불행한 인생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은 출산과 가족생활을 하기 어려운 사회를 만든다. 여전히 우생학에 기반한 차별은 정상적이고 우수한 사람만이 출산하고 출생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때떄로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태어날 아이의 불행을 예고하는 염려가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출산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온정적인 염려와 경고를 보냄으로써 세상의 차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임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그리하여 실제로 닥치는 불행은 오롯이 출산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결국 그렇게 차별을 보존하고 전승하며 어떤 집단의 미래를 영구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행위에 가담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사람들을 이 땅에 오지 못하게 막는 행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는 사회가 변화를 도모하지 않겠다는 변명이다.

부모가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사회는 이미 아동에게도 좋은 사회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면 이미 차별이 없는 세상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누군가의 출산을 막을 것이 아니라 출생으로 등장하는 예측 불가능한 구성원을 위해 변화하며 고옹체를 형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임신과 출산은 국가적 수단이 아니라 국가가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이다.

 

재생산 권리를 보장한다는 건 임신 출산에 관한 개인의 결정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여 출생하는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차별을 용인하고 묵인할 때 누군가의 출산을 막는 일이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처럼 보였겠지만 차별과 맞서기로 결정한다면 양육자의 권리가 곧 아동의 권리이고 그 가족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 된다.

 

 

4, 역할은 성별에 따라 평등하게?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가능하려면

(남성이 가장으로서 나가서 돈을 벌고 여성은 전업주부로 집에서 자녀를 돌보는 것)

이는 꽤 비현실적인 가정 위에 올려진 꿈이다.

사회가 성별분업을 지배적인 관념으로 채택하면 연쇄작용이 생긴다. 성별분업이 가능하려면 남성 한 사람의 노동으로 가족구성원 모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는 일자리를 남성에게 우선하여 준다. 이런 사회가 되면 여성은 마땅한 일자리를 갖기 어렵고 어쩔 수 없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성별분업이 일종의 이념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결혼은 중요한 생존요건이 된다. 그것도 결혼한 상태가 평생 유지되어야 한다. 남성에게 부여된 과업도 만만치 않다. 남성은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소득이 넉넉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기대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지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것

비혼 미혼의 비율 증가

남성이 받는 가족임금이 가족 모두가 생활할 수 잇을 만큼 받는 경우가 절반도 채 되지 않은 현실

능력있는 가장과 전업주부라는 역할은 가족문화의 귀족화를 추구한 결과이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가족모델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평생 동일한 직어을 유지할 수 있는 퍼센테이지는 높지 않고 주변 노동으로 이동하여 노동이 불안정해질 경우 성별분업은 지속되지 못하고 아내의 취업이 증가한다.

 

일제 강점기 늘어난 여성의 교육은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자기성장이 아니라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 현모의 역할 때문이다. 국가에 필요한 적절한 노동력의 생산을 위해 여성이 교육을 받고 자녀를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후 유신체제의 현모양처 교육은 충효의 정신을 강조하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든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라는 내용이다. 모든 사회 관계를 가족적 관계로 전환하여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는 개인을 길러내려는 의도였다.

현모양처란 여성의 교육기회를 여는 열쇠였지만 결국 여성의 역할을 집안으로 한정했다.

한국은 전통적인 성역할 이념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에 우호적인 국가

여성이 일도 하면서 가사 책임도 받아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닌 경우 출생율을 낮을 수 밖에 없다.

 

5. 가족각본을 배우는 성교육

청소년의 성교육은 죄책감과 수치감을 심어줌으로 성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성이란 가족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교육한다.

사회는 결혼이란 테두리 안에서만 사람이 태어나야 적법하다고 보는 제도를 통해 가부장제 가족질서를 구축했다. 또 승인된 가족질서에서 벗어난 출산과 출생에 낙인을 찍음으로 가족제도의 불합리함을 수정하는 대신 불행을 개인사로 돌렸다.

성교육은 성역할의 구분을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만듦으로 가족각본이 유지되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족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한다는 명분아래 명예를 이유로 하는 폭력이 촉발된다고 설명한다.

남성 혈통을 따라 계승되는 가족체제가 있다.

한 가족이 다른 가족과 친족 관계를 형성하려면 결혼을 해야한다.

이때 여성은 좋은 조건의 집안과 친족을 형성하기 위한 거래에 사용되는 중요한 자본디다.

이 거래에서 순결은 여성이 결혼 가능하다는 가치를 담보하는 일종의 상징적인 자본으로 중요하게 기능한다. 만일 여성이 순결을 잃거나 처신을 잘하지 않으면 결혼 거래에서 불리해진다. 여성의 성에 따라 가족 전체의 번영과 쇠락이 좌우되는 것이다.

온 가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일에 관여하기로 한다.

여성은 조신하고 순결해야한다는 엄숙한 성규범이 가족안에서 만들어진다.

남성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진실이 아니어도 소문이 나게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행실을 문제 삼을 수 있고 반대로 진실이어도 소문을 막을 수 있다면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6, 가족 각본은 불평등하다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존을 맡기에 가족이란 단위는 불안정하다.

경제적 단위로서 가족은 규모가 작아서 가족 상황이 조금만 변해도 가족 구성원 전체는 쉽게 휘텅댄다.

성별분업이념으로 설계된 사회라면 남성 갱계부양자의 존재여부나 상황에 따라 여러사람의 생계가 흔들린다. 국가가 이런 취약한 구조를 만들어놓고 가족끼리 서로 부양하라는 의무를 부여해 자력 생존을 유거하는 건 처음부터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은 복지국가를 표방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에게 기초적인 수준의 생활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도 국가는 가족의 부양의무를 우선해왔다. 가족부양 우선의 원칙으로 하여 우선적으로 부양의무자로 정해진 가족의 보호를 받고 부양의무자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 때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사회안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일은 가족의 실패를 증명해야하는 과제를 떠안은 것과 같다. 가족이 있어도 없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가족의 실패가 사회보장의 전제조건이 되면서 사회복지제도는 마치 가족이 없는 자들을 위한 낙오된 세계인 것처럼 만들어졌다.

있는 자가 가족제도를 통해 계층을 세습하는 동안 없는 자는 가족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는 건 그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와 위무가 생긴다는 뜻이다. 동거하며 서로를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 서로를 대신해 공동생활에 관한 일을 처리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생긴 채무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진다. 결혼 중 협력해 모은 재산은 명의와 상관없이 공동재산이 되어 둘이 헤어질 때 나누어야 하며 이때 가사노동을 분담한 기여도 인정된다. 서로에게 수술동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등 의료적인 결정을 내리는 보호자 역할도 하고 배우자로서 사회보장급여를 받고 상대방이 사망하면 유족으로서 장례를 치른다.

동성결혼 또는 동거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제적 정서적 돌돔의 공동체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들도 공동생활을 보호받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돌봄의 공동체를 국가와 사회가 존중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혈족 안에서 사람의 순서를 매기고 부양의 의무를 부가해 생존을 담보해온 지금까지의 가족은 사람을 타고난 운명에 순응케하며 권위적인 통제에 의지해 체제를 유지한 경직된 질서였다.

 

7 각본없는 가족.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은 성별에 따라 세밀하게 구조화된 체계이다.

모든 사람을 남과 여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고 성별에 따라 달리 기대되는 역할이 있음을 대전제로 한다. 남녀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법적으로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해야 하는 일련의 가족 각본을 충실히 따르기를 기대하고 때때로 압박한다.

 

가족관계로서 신분을 증명한다는 말은 나라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른 가족 구성원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면서 내 정보를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개인이 자기자신으로 존재하지 않고 가족안에서 존재하는 가족관계등록제로 되어 있다. ) 상세증명서를 통해 과거 정보가 불필요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정보를 가린다 해도 서류에 가족관계가 드러나는 이상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상황들이 포착된다면 차별을 피할 수 없다.

(가족의 여러 가지 개인적인 상황을 모두 기록하고 노출시킨다.)

 

 

환자 또한 전체 법질서 안에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엽다아야 하고 국가는 성전환자의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것은 그의 가족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이는 부 또는 모의 성전환이라는 사실의 발생에 따라 부모의 권리왕 mlan가 실현되는 모습이 그에 맞게 변화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따름이다. 이렇게 형성되는 부모자녀 관계와 가족질서 또한 법질서 내에서 똑같이 존중받고 보호되어야 한다.

성전환자가 이혼하여 혼인 중에 있지 않다거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이 이루어진다 하고 이러한 점이 달라지지 않는다.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도 여전히 그의 부 또는 모로서 그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여야 하며 이를 할 수 있다

 

건강가족의 의미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

가족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족

 

가족각본은 이분법적 성열할 관념에 기초한 가족 질서를 유지하면서 성평등에 실현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모양처 만들기를 목적으로한 여성교육)

가족과 사회가 별개의 질서가 가능한 분리된 세계가 아니다. 성별 구분을 바탕으로 설계된 가족제도는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적 현실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가족각본은 가족제도가 만드는 계층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지금의 가족제도는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없는 자는 가족생활을 유지하기도 새로운 가족을 꿈꾸기도 힘들다.

가족각본은 아동에게 가장 불평등하고 가혹한 사회를 만든다.

수많은 아동들이 가족 배경을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겪는다. 아동이 겪는 온갖 놀림과 괴롭힘을 들여다 보면 가족형태 가족 소득 가족 구성원의 특징 등 가족에 관한 이유인 경우가 많다. 가족의 상황이 아동들 사이에 권력관계를 만든다. 흔히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가장 부정의한 불평등이다.

어느 가족에게 태어났는지에 따라 누구는 존중을 받는 반면 누구는 무시를 당하고 누구는 풍족한 기화를 얻는 반면 누구는 생존도 어렵다면 아기때부터 우리의 몸에 계급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가족각본은 여전히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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