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레 대한 정서적 영향이나 원인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그 치료법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어떤 큰 충격 혹은 오래 지속된 학대나 방임 폭력으로 인해 정서적 불안 이상의 뇌에 문제가 생긴경우 그것을 단순히 트라우마  외상증후군이라고 이름붙일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그 원인이 존재하는데 현상과 지금 현재의 증상만 보고 약물투여만 하거나 정신의 문제라고 보고 지금 의 현상에만 집중하면 순간 좋아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원인자체가 남아 있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어쩌면 트라우마의 문제에 접근하는 건 개인의 정서나 감정의 문제 이상 사회적 정치적 개입도 필요하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일 수 있고 법이나 제도를 바꾸어 촘촘하게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폭력에 노출되고 지속적으로 그 환경에 놓이다 보면 인간은 변할 수 밖에 없다. 그 변화라는 것이 잘못된 환경탓이므로 환경을 바꾸면 사람이 바뀌는 문제 이상이다. 사람은 아주 단순하게 살려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순간에 우아하고 고상한 선택을 하기 어렵다.

살아야 하고 편안해야 할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지키려고 할 수도 있고 폭력속으로 다시 걸어갑으로 그것에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왜 그래야하는지

왜 그러고 사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참 운이 좋다는 증거이고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은 많은 힘을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폭력이 좋아서 그 곳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도 그 폭력의 대상이 유일하게 나를 인정하고 예뻐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래 노출되고 익숙한 불안과 폭력이 오히려 낯선 평화나  안락보다 안전하고  편안하다.

그런 사람도 있다.

이것이 폭력이고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무기력하게 모든 걸 놓아버릴 수도 있고 그 속에서 변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미칠지경일 수 있다

폭력이 나쁘다는 걸 알지만  그 폭력이 누구에게서 자행되는가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에서 그리고 나의 힘과 나의 능력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이다.

타인의 눈엔 그저 한없이 미련하고 한심하고 도와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만큼  말도 안되는 선택이지만 그럴 때가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연구하고  현장에 있던 사람답게 다밤면으로 다양한 트라우마 환자들을 예를 들며 그 증상이나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 더불어 아직도 학계에서 반신반의하는 다양한 치료법을 이야기해준다.

이성적이고 확실한 연구 결과와 통계로 나온 검증된 방법을 원하는 과학의 세계에서 어쩌면 검증자체가 쉽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잘 적용된 방법이 누구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순간적이거나 즉흥적이거나 비이성적인 방법이 사람에게 통하기도 한다.

 

짧은 경험의 위기상담에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담자가 많았다.

왜 그렇게 까지 참고 살아야 할까

아이를 위해서? 경제력때문에 ?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리고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삶에 실패했다는 결론밖에 남지 않아서

그냥 내가 나를 속이고 아닌 척 하고 조금만 버티면 아이는 괜찮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고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은 모르니까 나를 부러워할 수 있고 우리는 정상가정이 되며 정상이라는 삶이 된다.

그럼 정상이 뭘까

내가 망가지고 내가 나를 속이지만 남들의 기준에만 맞으면 정상일까?

그렇다고 쉽게 삶을 바꾸라고 할 수 없다.

나도 타인이라 그의 삶에 내가 관여할 수 없다. 누구도 내 삶에 관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럴 때 왜 저렇게 살까

왜 저런 증상을 가졌으면서 병원가는 걸 그렇게 싫어하지?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게 우선 아닐까?

저건 지독한 망상이나 분열이 아닐까

그렇지만 조금 달리하면 저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고 어쩌면 그 방법 자체가 그에게 최선이고 가장 안전하고 오래 고심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관여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들 제안들이 그를 더 혼란하게 하고

어렵게 이어오고 지탷한 삶을 부정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그건 건강하지 않다고

누구 한명 희생으로 번듯한 정상이라는 라벨을 갖는게 그렇게 중요할까 생각한다.

 

저자는 트라우마 증상과 치료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에 그리고 그 과정에 더 주목하라고 한다. 약물로 지금 증상을칠 치료할 수는 있을지 모르고 지금 상황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원인은 그대로 나았고 그 치료에 의해 더 망가지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고 망가진 사람이 결국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치료하고 보호하는 일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사회적 제도와 정서 그리고 사고방식의 변화다.

 

지금 현재 내가 익숙하고 편해서 이게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제도나 관념때문에 누군가는 고통받을 수 있다.

세상은 그래서 조금은 더 예민할 필요가 있고  내가 편하다고 모든게 다 잘 돌아간다는 생각은 조금 뒤로 돌려야 한다.

함께 산다는게 뭔지 그걸 먼저 생각해본다.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래서 치료가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그 이전에 쉽게 누군가 배제되고  고통받고 있음을 예민하게 고미할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