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 어눌한 사람이다. 표현도 서툴다. 자식인 네게는 더더욱 그랬다. 내 자식이어서 일 게다.

내 부모는 간섭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한 번도 내가 원했던 길로 가 본 적이 없다. 나는 절에서 수행을 하고 싶었다. 할 수 없이 대학을 갔다. 어쩌다 보니 운동권에 있었다. 원했던 바는 아니었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던 탓이다. 괴로운 일이 많이 있었다. 세월에 씻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것은 받아들였다. 너를 키울 때 한 가지만은 지키려고 했다. 무엇이 됐건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고. 어려운 일이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란 부모에게 천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토록 내 부모를 싫어했음에도 말이다. 그래도 노력했다.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은혜도 빚도 없다. 혹여 지게를 진 일이 너에게 짐이 된다면 버려라. 나는 인간에 대해 실망을 많이 한 사람이다. 지게를 진 건 내 두 손과 두 발로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도 도움 받지도 않고 어떤 인간관계도 없이 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지 너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부자가 먹고 살았다면 부차적인 일이지 내게 감사할 일도 아니다. 혹여 그런 애비가 부끄러웠다면 이 종이는 버려라. 네겐 의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말이 어눌하고 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지 않겠다. 나는 사랑에도 서툰 사람이다.

이것은 유언장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너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라. 너에게 부모라는 굴레는 여기까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죽은 것이다. 내 죽음을 맞는다면 유해는 화장해서 동해에 뿌려라. 딱 한 번 동해바다를 본 적이 있다. 마음에 들었다. 장례를 치르지 마라. 삶은 충분했다.

이 글을 네가 읽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다. 혹여 읽은 후면 불태워 버려라. 이 역시 굴레다.

이 부분을 첨 읽었을 땐 이 아버지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런 무거운 시간을 견딘 사람이었구나 하는 마음 그래서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죄책감 책임감이라는게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 말의 무게에 휘청이는 누군가에게는 무섭고 어려운 의미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않겠다는 아비가 보였다.

아 부모가 이럴 수도 있구나.

자식에게 뭐든 주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리고 내 용량이상을 퍼붓는 것, 그리고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며 자식의 머리에 새겨넣으려는 사람이 부지기순데 이렇게 모든 걸 놓아버릴 수도 있구나 했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웃기고 있네"라는 마음이 불쑥 쏟구친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 아비는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죄책감이 너무 커서 자기는 자식의 어깨에 무게를 얹지 않겠노라고 깃털처럼 가볍게 사라질거라고 결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하나 가볍자고 하면 모두가 가벼워지는 걸까?

내가 너를 가볍게 할 터이니 너는 아무런 부담도 갖지 말아라 하면 자식이 네~ 하고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훌훌 자유로워지는 걸까?

자식은 아니 아이는 어른의 눈치를 본다.

사랑과 돌봄을 베푸는 것은 어른이지만 아이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먹지만은 않는다.

아이의 생존본능은 지금 이 사랑과 돌봄이 지속적일 것인지 언제든 단절될 수 있는 것인지 나의 생존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민감하다.

지속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아이는 아이가 되어 살아가지만 지속불가능할수도 있다는 불안이 한방울이라도 퍼지는 순간 아이는 시간을 당겨 성장한다. 욕구를 줄이고 눈치를 보고 자기가 어떻게 해야 생존가능한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일찍 철이 들거나 주눅이 들거나 자포자기하거나

결국 저 애비의 아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손안대고 코푼것처럼 쉽게 자식잘 키웠다고 하겠지만 아들은 분노로 가득찼고 욍로웠고 그리고 언제든 집을 떠나고 싶어했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뒤늦게 아비의 역사를 알고 아비의 삶을 알게 되어도 그냥 이해하는 것 이상이 될 수는 없다.

아 저런 삶을 살았구나. 고단했겠구나

그리고 끝.

아무리 그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알고 그의 의도가 선했음을 알아도 이미 생채기가 깊어진 마음은 돌이킬 수 없다. 허탈하고 어디에다 누구에게 따지고 물어내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아비는 참 쿨하고 자유롭고 아들을 위해 한 행동들이 아들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가끔 그런 일들이 있다.

너를 위해서 이렇게 할 것이다. 내가 겪어보니 그건 못할 짓이고 너무 상처가 되더라

그러니 나는 절대 이런 일로 너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 너는 자유롭게 너가 원하는대로 살게 해주겠다.

반대로 나는 너무 외로웠고 누군가 의지할 곳이 없었다. 누구든 단 한사람 나를 지지하고 나를 도와주었더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뭐든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너를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 언제나 니곁에 있겠다.

깊어진 결심은 타인에게 종종 상처가 된다.

결심이 나를 향해야지 타인을 향하는 순간 그것도 여리고 순한 아이를 향하는 순간, 그와 나를 별개라고 여기지 않고 한몸이라고 여기는 순간 상처는 시작되고 멀어질 일만 남았다.

 

책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갸우뚱할때도 있고 이게 현실인가 싶다가도 환타지 같았다. 그럼에도 저 한 대목 아비의 편지는 꽤 오래 남는다.

책이 때로 한 단락만 내게 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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