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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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산다는 건 적어도 내가 나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

내 감정을 아닌 척 하는 것,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척 하는 것 자꾸 척척 하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헷갈린다. 내가 원래 감정이 없었던 거 같고 내가 원래 다정한 사람이라는 착가에 빠지고 내가 쿨하고 꽤나 멋진 사람이라고 믿는다. 믿음의 뒷면은 썩어가고 있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답게 살지 못하는게 나를 점점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 닮고 싶은 누군가에게 억지로 내 몸을 끼워 맞추거나

내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아서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못견딜 걸 알아서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최면을 걸고 산다.

 

유원은  화재의 불길 속에서 언니가 젖은 이불에 둘둘말아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던져 살아남은 아이다.

우연히도 그 곳에 있던 아저씨가 아이를 받아서 자기 정강이뼈가 으스러져 다시는 바로 걷지 못할 상황임을 느끼면서 받아낸 아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불 아이가 유원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주목받고 모두에게 위로를 받고 모두에게 격려를 받으며 한마디씩 받은 덕담을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언니 몫까지 잘 살아야지

 새로 태어난 인생인데

 정말 운이 좋은 아이야

 두 사람의 희생으로 얻은 목숨인데 너는 그렇게 살면 안되지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고 모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일은 저주다.

오로라공주가 왜 백년동안 잠만 잤겠는가. 모두의 축복을 욕심내던 부모때문이다. 모두의 축복을 욕심내다보니 단 한명을 배제시켰고 그 한명의 저주가 결국 ... (뭔 말이 하고 싶을까?)

나는 잘 살아야 하고 누구보다 씩씩해야하고 모두의 관심은 당연하고 나의 일상은 그들이 원할 때 언제든 공개되어야 하며 나는 언니 몫까지 살아야 하고 나를 통해 언니를 바라보고 언니를 찾는 타자들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런 존재이므로

 

유원은 아마 18년을 그렇게 살았다.

고마우면서 동시에 지독하게 미운 언니 미운 아저씨가 매년 잊지않고 그 사건을 상기시키고 나를 통과해도 견뎌야 한다. 그들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으므로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밝게 지낸다.

친구가 없지만 그렇다고 왕따도 아니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 뿐이다. 사귀는 법을 모른다.

왜냐하면 유원은 유원이 아니니까

그는 예정이기도 하고 아저씨이기도 하고 모둑 기억하고 상상하는 살아남은 이불아기일뿐이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당연히 유원이 자기를 찾아낸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내가 더 멋지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이런 꼬라지가 나라고 인정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감당하기 어렵다는 마음을 그대로 내보인다. 당연하다. 18세는 모든 걸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가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다 괜찮다고 상처를 받아들이고 나쁜 마음은 이제 잊고 새 살을 살라고 한다.

그런데 잊어야할 나쁜 마음이 내겐 정말 생명줄같은 것이고 그들이 바라는 새로운 삶 좋은 마음이라는게 나를 아프게 찌르는 가시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일단 나는 생명줄을 잡고 가시를 제거해야한다.

나는 그가 감사하지만 이면에 밉다

나에게 이러쿵저러쿵 자판으로 말을 덧붙이는 사람들이 싫다. 그 무책임함이라니 구역질나게 역겹다.

그런마음 괜찮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 아이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그 아이의 가족이었다.

너무 미워서 그가 나에게 가했던 폭력들이 너무 아파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반드시 꼭 그를 죽이고 말거라고 매일 생각한다고 했다. 어떻게 죽일까 그런 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했다.

그런 생각에 내가 지금 해야할 숙제를 못하기도 하고 시험을 망치기도 하고 잠을 제대로 못자서 정신이 몽롱해진다고도한다. 그런 마음을 먹는 내가 너무 이상한 괴물같다고도 하는데 그 마음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아이가 정말 정신이상이었을까?

자기도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상상처럼 킬러를 사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더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그마음도  나는 안다.

 

모두가 그 아이를 걱정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상이라도 마음껏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피범벅이 되도록  패륜이라 할만큼 악하고 독하게 극단까지 가다보면 그러면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절대 그런 마음을 극단으로 몰아갈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조언들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무심하게 다정하게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마음이 드는 거 당연해요. 나라도 그럴거 같아요  정말 무심하지만 사실 진심이 가득담긴 이 위험한 말이 그에게 힘이 되기도 했을까?

다른 날 아이가 많이 밝아져 있었다.

물론 그 사이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도 받고 잠도 잘 자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좋은 전문가의 손길덕분일 것이다. 아마 거의 대부분은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내가 무심하지만 정말 공감해서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던진 그럴 수도 있지 죽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지.. 했던 그 말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00000001%정도는??

 

유원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지만 그냥 그렇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게 참 좋은 방법이고 유일한 방법인데

게다가 모두가 아는 방법인데 그걸 직접 행하는 건 참 어렵다.

나도 그렇다.

 

이 책은 미워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미워할 수 없는 너무 착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그 미운 상대가 짠해보여서 나자신에 너무 화가 난다고 했던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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