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병 공장 야유회 ff 시리즈 5
베릴 베인브리지 지음, 채세진 옮김 / 꿈꾼문고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한 침대를 나눠 쓰는 프리다와 브렌다는 이탈리아인 사장이 경영하는 포도주병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시골의 주정뱅이 남편과 학대하는 시어머니를 떠나 도시로 온 브렌다는 수줍은 성격의 여성으로,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해, 공장 매니저 로시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룸메이트인 프리다에게 기가 눌리는 등 다른 사람들에게 치이며 살아간다. 솔직한 성격의 몽상가로 언제나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프리다는 브렌다는 물론이고 공장의 다른 직원들과 매니저까지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프리다가 공장 노동자 모두가 함께하는 야유회를 계획한다. 돌아오는 일요일의 야유회는 적극적인 성격의 프리다에게는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내성적인 성격의 브렌다에게는 끔찍한 경험을 안겨줄 것으로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떠나게 된 야유회는 시작부터 좋지 못했다. 야유회를 위한 밴의 예약이 취소되어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프리다와 브렌다, 비토리오, 로시, 브렌다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일랜드인 패트릭 등이 두 대의 차를 나눠 타고 야유회를 떠나게 된다. 알고 보니 비토리오는 로시의 처조카와 약혼한 사이였고, 그는 프리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묘한 태도를 취한다. 브렌다는 추근대는 로시를 피해 혼자 있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야유회에 끌려간다.

이 하루는 윈저 성에서의 싸움, 축구와 피크닉, 여왕의 장례식 말 타기, 기묘한 사파리 공원 여행 등 사소하지만 기이한 사건에 사건이 겹치며 결코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야유회 날 이후의 삶 역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이야기가 시작하면서 많이 불편했다. 뭐가 불편한지 몰랐다. 그냥 프리다의 일방적인 태도도 힘들었고 브렌다의 어정쩡한 태도도 불쾌했다. 분명 약자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걸 알겠는데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즐기면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가 폭력을 불러오는 거라고 나는 혼자 피해자의자격을 따지고 있었고 사실 다시 읽어보면 프리다가 틀린 말을 한 건 하나도 없는데 그녀의 말하는 태도나 방식이 너무 거슬려서 뭘 저렇게 잘난척할까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냥 낄낄거리기에도 목에 까끌거리는 것들이 가득하고 무기력한 이탈리아 이주민인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는 어떤 말도 못하고 굽신거리면서 같은 노동자입장인 영국 여자들에게는 뭔가 해볼려는 기회를 노리거나 일단 건드려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들을 그저 농담이나 유희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영국의 끈끈하고 칼칼해서 기분이 불쾌해지는 늦가을 야유희는 정말이지 취소되면 좋겠다는 브렌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여러 우여곡적 끝에 야유회는 떠났고 모든 계획은 뒤틀리고 관계도 묘하게 엉클어지지만 그래서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따뜻해보이기도 하는 소동들을 보고나면 그 사건이 일어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꿈일거라고 현실일 수 없다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모두는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동시에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모른다는 것이 가장 안전할 수 있다는 현실도피가 뒤섞인다.

소설의 마지막 줄까지 다 읽고 나면 내가 소설 전반내내 느꼈던 불쾌함이 부끄러워진다.정말 불쾌하고 폭력적인 건 그런게 아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내 손은 더럽힐 필요없이 다른 누군가가가 나 대신 모든 뒷정리를 하고 먼지를 털고 부스러기를 치우고 없애야 할 것들을 없애버리는 일 그리고 그런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감정도 가질 필요가 없는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 그런 것들이 있다. 내 위치에서 이런 일은 어떤 의문을 가질 필요없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 이 정도 일을 하면서 내 위치를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 탐할 수 있는 걸 취하는게 뭐가 잘못이냐는 생각. 그냥 시키는대로 어떤 질문도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고 무탈하게 노동하고 돌아가는 게 전부인 사람들. 그 피라미드는 여전하다.

알고 있고 그걸 말로 꺼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프리다가 될 수 있고 그냥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면 그뿐인 브렌다가 될 수도 있다. 여전히 공장에서 모든 자잘한 일들을 해야하는 마리아일 수도 있고....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불편하고 와닿지 않은 프리다와 브렌다의 대화들 그리고 화장실에서 패트릭과 브렌다의 대화 방에서의 프리다와 프리시오의 대화들 그것은 그냥 시시하고 유치한 대사들이 아니었다. 알고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참 서글프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야유회 시간이 다가오면 노동자들은 여전히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음식을 준비하고 내야 할 돈을 불평없이 내면서 재미없고 불편하기만 한 그 나들이를 떠날 것이다. 이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이라고 믿고 감사하고 좋았다고 기억하려하면서.

웃기엔 불편하고 분노하기엔 너무 비겁했다.

 

그녀는 야유회에 대해 생각만 해도 당황스러웠다. 벌써 10월이므로 비가 올 게 틀림없었고, 그녀는 그저 그들이 일렬로 쓸쓸히 잔디 위를 걸으며 이룰 음울한 행렬을, 남자들은 포도주통의 무게 때문에 미끄러지고 발을 헛디디고, 날씨 때문에 화가 나서 얼굴이 일그러진 프리다는 진흙탕 바닥에 주저앉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뭇가지 아래서 은박지 포장을 벗기고 차가운 치킨을 꺼내 사지를 비틀어 뜯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프리다는 이를 다르게 상상했다. 그녀는 파가노티 씨 조카인 수습 매니저 비토리오에게 몹시 반해 있었는데, 병입 설비와 지하 저장실 업무로부터 그를 빼내 멀리 야외로 데려갈 수 있다면 그를 유혹할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_9-10

 

난 아무것도 잊지 않았어.” 로시가 비토리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고, 그 일에 관해 그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시는 그렇게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파가노티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상관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더 이상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 _263

 

거기 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네.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봐요

아주 커다란 모자의 지그마한 여자는 그 생각을 견딜 수 없었네.

그녀는 일어나 극장을 떠났고

남자는 행복해졌네, 생쥐는 안 보였고.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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