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가 급한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뭐든 결정해야한다는 꼰대기질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늘 이렇게 묻는다.

"이거라 저거 중에 뭐할거야?"

"이렇게 할거야? 아니면 저렇게 할거야?"

그래놓고 아이가 내켜하지 않으며 몸을 배배 꼬면 또 한 번 더 질문이 들어간다/

"엄마는 물어봤다. 니가 선택해야지."

아이는 마저못해 선택한다. " 이거 (혹은 저거)"

"니가 결정한거야.'

분명 아이에게 결정권을 줬고 최후의 선택은 아이가 한 거지만  아이는 뭔가 마뜩치 않고 속은 기분이고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나중에 이런 질문에 부딪친다

"니가 선택한거잖아. 내가 분명히 물어봤지? 니가 정하라고"

그리고 모든 책임은 아이에게... 어른인 나는 아이에게 결정권을 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이끈 참된 어른이 될까?

 

동의를 했느냐 아니냐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세상에 모든 질문에서 세상의 모든 결정앞에서 백프로 나의 의견과 나의 입장과 나의 감정과 나의 이성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나 될까?

반백인 나도 나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의 결정이 정말 나의 결정이었을까 싶은 순간들 투성인것을....

사회적인 인식에 밀려서 이런게 정상이라는 사회적인 잣대에 밀려서

그래도 지식인인데 싶어서 내 본능과 상관없는 선택도 있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골랐던 적도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다들 괜찮다는게 괜찮은 거 아니겠어? 라는 마음으로 한 결정도 있고

눈을 부라라진 않아도 무언의 압박과 내일 점심 도시락 반찬 걱정으로 내 용돈 삭감의 공포로 한 결정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닐까? 내가 너무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건 아닐까 하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이런게 사랑이라는 압박에 내린 결정들 등등등

전날은 호쾌하게 내린 결정에 대해 다음날 마음을 바꾸는 것이 옳지 않다는 알 수 없는 자기 검열에 걸린 적도 있고 ....

동의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 내가 결정해야하고 상대와 의견을 맞춰야 하는 일에서 모든 것이 나의 졀정권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점심 메뉴마저 그냥 남들 먹는대로 하는 마음으로 결정하는 게 많은데

여러가지 권력문제가 걸리고 사회적 입장 문제나 통념들이 뒤섞이면 내가 내 결정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동의는 중요한 문제다.

성적동의 역시 그렇다.

강간신화가 아직도 존재하고 그래서 강간문화라는 것이 그냥 장난처럼 암묵적인 풍조처럼 아직도 존재하는 지금  이다. 내가 강간을 당했음을 내가 입증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전혀 동의하지 않았음을 보이는 증거로 들이밀지 않으면 쉽지 않은게 아직도 현실이다.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 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나의 신체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성관계 역시 상호 교류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온몸으로 겪는 일이다. 동의 협상이란 이 가능성의 공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나의 상대방이 각각 성적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 중에서 공통괸 부분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공통된 부분이 없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의 성적관심사를 공유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나를 좋아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하려는 것을 상대는 하기 싫을 수도 있다. 동의는 그렇다. 내가 상대와 함께 즐길 수 있는가?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섹스든 다른 관계든 타인과 맺는 사이에서 한 쪽 일방만 즐거우면 그건 즐거움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혹은 서로 호감을 가진 사람이 함꼐 즐겁고 함께 좋은 경험을 나눠야 한다. 그렇다면 동의는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나의 즐거움만큼 상대의 즐거움도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동의의 시작이다.

 

경계는 내가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들 사이에 놓인 선이다. 성적 상황 뿐 아니라 여타 사회적인 상황, 타인과의 일상적인 관계에도 관련이 있다. 실명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마음. 소규모 그룹은 편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모임은 불편한 마음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 것 포옹보다는 악수가 더 좋은 것 개인이 자기 삶에 설정해놓은 사적인 경계들이다.

사실 내 경계를 아는 일은 무척 까다롭고 어렵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사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라 나도 좋아하는 줄 알았고 마땅히 해온 것들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그걸 내색하면 예민하고 이상하게 보일까 말하지 못하는 것 그런 부분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남이 어떻게 볼까 내가 이상한가? 문제가 있나 하는 마음에 내 경계를 타인에게 관습에 맞추는 일들....

경계를 알아간다는 건 시간이 걸리는 묹이지만 그건 알아야 한다. 혼자 정할 때도 있지만 자신의 경계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해야만 개인의 자율권 행사와 사회적 규약 존중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고 서로의 경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공간이 생긴다.

무례해 보일까봐 밀어붙이고 경계로 들어오는 것들을 허용한다면 ... 나의 불편함이 너의 무례함이 아니라 나의 까탈스러움이라고 하는 것들도 있다. 결과가 두려워서 그냥 용납하는 경우

그건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포기하는 일이고 상대의 신체적 자율권을 무시하는 일이다.

 

우리가 아는 섹스는 섹슈얼리티는 참 단순하다.

서로 좋아하고 손을 잡고 안고 스킨쉽을 나누고 키스하고 그리고 성기결합으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과정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 틈이 없고 단지 모든 단계는 성기결합을 (이성애자 남녀사이의)위한 전제조건일 뿐이다. 그렇게 이해되는 섹스에서 동의가 끼어들 곳은 단 하나 성기를 결합하느냐 마느냐 그것 뿐이다. 이런 이성애적인 담론과 함께 남자는 동물이고 흥분을 하면 참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남성성욕담론은 남성의 강간을 이해하고 어쩔 수 없다고 관대해질 핑계가 된다.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보다 성관계에 소극적이고 안정적인 애정관계에서만 끌리는 요조숙녀라는 틀은 모든 섹스의 결정은 여자가 가진 것처럼 보여진다. 흥분앞에 제정신이 아닌 남성을 잘 구슬러서 안정적인 애정으로 관계를 해야하는 의무와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고 본다. 그러니 그런 관계 이외의 모든 섹스는 음탕한 여자라는 낙인으로 이어진다.

흔히 비유되는 성녀와 탕녀의  두가지 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자유연애가 등장하고 남성과 다르지 않은 성적 결정권을 가지는 적극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이라는 담론에서 모든 관계에서의 책임은 신여성인 그녀들에게 돌린다. 소극적이면 구태의연한 것이고  적극적이라면 신여성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뒤돌아서서는 성녀와 탕녀의 담론을 들이댄다

 

성적 결정권이라는 것 이것이 자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관계에는 권력이 존재하고 권력은 다각적이고 다차원적이다. 명백히 자율적인 개인의 선택이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이 책은 성적 동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동의란 성적인 문제 이외의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문제다. 우리의 일상 전반에 침실 바깥의 상호관계에 진정한 동의 문화는 필요하다. 동의는 친구, 가족 동료 모르는 사람과의 소통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어리고 도움이 필요하고 아직 세상의 결정을 내리기엔 미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살고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한 나읙 결정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얄량한 나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리곤 주관대로 쥐어준 선택을 들먹이며 책임으로 옭가묶었다.

동의를 경험하지 못했고 동의를 배우지 못했다면 아이는 자라서 또다시 누군가에게 동의를 앗아갈 것이다. 그렇게 자랐으므로..

내가 편안한 경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고 누군가 내 영역을 침입해도 예의라거나 사회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납하고 참고 견딜 것이고 폭력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런 상황까지 몰고간 나의 탓으로 모든것을 돌릴 수도 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폭발하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폭력을 가할 지도...

 

가장 기본이지만  늘 잊고 사는 것

편하고 쉽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그냥 밀어붙이는 관계는 위험하다.

간혹 느끼지만 당연한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동의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다.

 

책은 처음에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쉬운 말로 동의를 설명하고 쉽게 풀어가서 좋았는데

사실 그게 전부라 아쉽기도 하다.

다만 동의란 무엇보다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걸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은 확실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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