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상처는 남의 상처일 뿐이다.

타인의 아픔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지만 그냥 비슷한 모양새일뿐 같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비슷하고 같아서 그게 그거 같아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에겐 자기의 아픔이 유일하고 강하고 독해서 다른 것은 비교할 수 없다. 상처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다. 우열을 따질 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내가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다른 누군가의 상처에서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타인의 아픔에 대해 내가 알아갈 뿐이다.

힘들었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도무지 상상할 수 없지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어쩌면 공감을 훈련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의 다양한 사람을 간접 경험하기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모르고 넘어가는 것보다 낫지 않는 위안한다.

내가 몰라서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서 이해할 수 없어 무시하거나 이상한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일은 없도록 ... 가능한한 요만큼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다.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손타지 않은 아이.. 라는 말이었다.

능력이 뛰어나서 도드라져서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스타일도 아니고 말썽을 부리거나 너무 손이 많이가는 처리곤한한 문제아도 아닌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묻혀가는 아이

조금 무심해도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하고 도드라지지 않고 조금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그런 아이 나는 그런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못하지도 않았고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간 아~ 할만큼 못나지도 않았고 예민하게 신경써야할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둔하지도 않은 그런 아이. 그냥 중간은 하는 그래서 좀 편하고 만만하고 쉽게 칭찬하고 잘 해주면 순종적인 채로 나이 드는 아이 뭐 그런 아이

사실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샘도 많았고 내가 가진 것과 타인이 가진 걸 비교하느라 혼자 속을 복달거렸고 실망하고 세상 막막하게 우울했지만 겉으로는 전혀 티나지 않았다. 내향적이라 말이 없고 뚱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서 고집있어 보이는 면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똥고집을 부리고 몽니를 부리는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형제중에서도 중간에 위치해서   언니 챙겨야 하니까 잠깐 저 집에 동생이 아직 어려서 잠깐 이쪽으로 여기저기 옮겨 놓아도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혼자 잘 놀고 말도 잘 듣고 밥도 찬투정 없이 잘 먹고 잘 자서 맡아주는 사람도 점차 무심해지는 그런 아이였다.

혼자 오래 외가집에 맡겨진 기억도 있고 명절에 이동할때 한차에 타기에 넘쳐서 혼자 다른 가족과 타고 간 기억도 있다. (언니는 커서 안되고 동생은 어려서 안된다는 적확한 이유가 있었고 나는 나이는 어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성숙하지도 않아서 적당해야했다.)

그렇게 손이 가지 않은 아이는 그렇게 컸다.

물론 매년 매 순간 온순한 아이이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냥  내가 하고 말거나 참고 말거나 하는게 편했다.

힘들어 보이는 엄마에게 나까지 무게를 얹고 싶지 않았고 언니나 동생에게 샘내는 걸 들키는 일이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고 대낮 빈집에서 혼자 낮잠에서 깼을 때 햇살이 길게 들어오던 마루에 앉아서 혼자 쓸쓸했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감정을 말한 적이 없었다.

책가방도 내가 싸고 내 옷도 내 물건도 내가 챙겼고 누군가가 주는 내 몫에 대해서 주저하지도 않았다. 챙길건 챙기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러니까 손이 안가는 아이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정도 가지 않은 아이였을 수도 있다. 대단히 잘나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페끼치는 것도 싫고 뭔가 나누기보다 그냥 다 주고 마는게 더 편하다보니 깍쟁이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아이일지라도 누군가 관심을 주면 참 좋았던 거같다.

다만 좋은 티를 이상하게 냈다는게 문제지만 틱틱거리는 거.. 뭐 그런걸로

 

부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상식적이었고 책임은 강했다.

다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거 같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기보다 내가 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주었다. 그들이 주었다는 걸 잘 알았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이를 먹어 보니 누군가를 공감하는 게 많이 서툴고 타인의 아픔에 마음이 저릴 만큼 이해가 가지만 어떻게 위로하고 곁에 있어줘야할지는 너무 어렵고 서툴렀다.

원만하게 잘 자랐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어떤 부분은 넘치게 가졌으나 어떤 부분은 지독하게 매말라서 언제든 바싹 바스라져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모르고 나이를 먹었다.

사랑과 공감을 글로 배워서 머리로 익혔다.

감정이나 정서라는게 타고난 것보다 배우고  흉내내고 그렇게 계속 반복하고 연습해서 익히는 거란걸 몰랐다.

나는 내가 사람들을 열외시켰다고 생각했다.

조용히 냉정하게 그냥 내가 원하지 않아서 상대를 누락시켰다고 믿었다.

그냥 티나지 않게 조용히 예의있게

그런데 사실 나는 나를 누락시켰다.

나를 제외함으로서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상처받을까봐 미움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조용히 티안나게 한 구석에 자리 잡아서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이건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거라고 믿었고 그래도 힘든 관계에서는 내가 조용히 정리하고 제외시켰다 믿으면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투명해져갔다.

 

사실 나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고 싶었다.

저 녀석때문에 내가 못살아 하면서 엉덩이를 맞아가면서도 뭔가 관심을 받고 토닥임을 받고 싶었던 거다.

뛰어나서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건 너무 먼 길이라 그냥 손이 많이 가고 조금 어딘가 어설프고 어리석어서  자꾸 지켜봐야하고 걱정해야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같다.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던 거 같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매사에 주고받는 게 딱 떨어지는 그런 거 말고

그래서 돌아서면 잊히는 거 말고

 

이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나를 많이 사랑하기로 괜찮다고 등을 쓰다듬어주기로 하고 적어도 내가 누군가에게 갈증나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책이란 어쩌면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 모양이다.

심리치유서를 참 많이 읽으면서도 늘 머리로 받아들였다.

이런 케이스 저런 케이스를 정리하면서 딱딱 맞게 서랍을 정해 넣어두었는데

지금 이순간 어쩌면 이렇게 무언가를 흔드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순간 내가 조금 말랑말랑해져서 어떤 위로를 원하는 딱 그런 순간이었고

그 때 이 책이 내게 온 모양이다.

때로는 이렇게 기막힌 핀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사는 일이 꽤 따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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