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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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도의 폭력"이라는 단어가 꽂힌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에 나오는 독서모임에서 누군가가 <선원 빌리 버드>를 읽고 난 후의 소감을 말하면서 뱉은 단어를 주인공은 이렇게 반문한다.

"선한 의도라는 건 누가 판단해요?"

그걸 누가 판단할까?

촌스럽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그건 권력이 정하는 일이다.

권력이란 누군가 대단한 무언가를 가진 소수의 상류층? 뭐 그런게 아니라 비교적인 의미다.

어떤 관계에서든 인간은 권력이 있다.

동등하다는 건 그냥 이론속에 있을 뿐이고 누군가 앞서서 잘났다고 믿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 그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이 꼭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절대 혼자 독고다이로는 만들어 지지 않는다.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 함께 있을 때 그래서 그 사이에 관계가 형성될 때 그 관계속에는 권력이 언제나 존재한다. 조금 덜 여문 권력이 있고 단단해서 중앙에 콱 박혀서 이도저도 못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이에서 권력이 존재하는 법이니 인간 둘 이상이 모은 곳에는 무엇보다 어김없이 권력이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선한 의도를 결정한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누군가 마음 아픈 일이 생겨도 누군가 다치게 될지라도 그 권력자의 원래 의도가 그게 아니면 선한 일이 된다. 그 누군가 아프고 다치고 손해를 보거나 뭔가 찜찜한 인간은 그냥 재수가 없거나 사회의 흐름에 거스르는 사람이거나 다수의 뜻에 반하는 사람 혹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선생이 학생에게

농장주가 소작농들에게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노인이 젊은이에게 혹은 젊은이가 노인에게

백인이 유색인종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많이 배운 사람이 덜 배운 사람에게

혹은 그 반대로 권력은 어디에서든 단 하나의 기준값을 가질 뿐이다

사람은 생긴것이 다 다른 것처럼 제각각의 라듬을 가지고 저마다가 자기의 기준이 되지만 천만에 세상에는 이미 기준이라는게 정해져 있고 세상의 흐름이라는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 거기에 맞추어야 하고 맞지 않으면  내 개인의 잘못이므로 내가 틀렸고 내가 고쳐야 하고 내가 반성해야 하는 곳이다.

 

<줄 게 있어> 에서 나의 친구 기열이는 나를 만나러 오다가 죽었다.단편 속에서는 기열이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고인지 사건인지도 모른다. 다만 죽었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 만나려고 한 사람이 나였고 나와 기열이가 꽤 친했고 그러므로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아야 하고 트라우마를 겪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세상은 정해버린다

아직 어떤 애도도 시작되지 않았거나 시작되었으되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나에게 세상은 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많이 아프고 슬프고 죄스러울거라고 단정해버린다. 그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고 믿고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든 그 고난을 견디는 행동이라고 판단하고 지래 나를 죄스러워야 한다거나 견뎌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그 기대가 무겁고 버거운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상한 사람을 만들어 버리고는 대안학교로 보내지지만 상처받은 어린 청소년의 모습으로만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에게 어떻게 맞춰줘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기열의 죽음보다 그 이후 타인들이 특히 어른들이 바라보는 그 시선에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가 더 혼란스러울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절대 상담가가 아니고 다른 어른들처럼 그저 폭력적일 뿐이다.

그 의도가 어찌되었든 간에..

 

<병원>에서 유림는은 자살할 요량으로 약을 백이십알을 먹고 들어온 환자다. 사실 자살할 의도였는지 아니면 먹어도 먹어도 감기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먹다먹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다만 자살시도 환자였고 그럴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이 되지 않아 비싼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그걸 알려주러 온 공단 사람들은 은근 슬쩍 정신병처방을 받으면 보험료를 적용받을 수ㅇ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당연히 선한 의도일 것이다.유림은 는 다니던 아카데미에 더 이상 빠질 수도 없고 돈도 없는 딱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정신과를 예약하고 진단서를 요구하지만 거기에도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고내가 정신이 이상한지 아닌지를 스스로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의사는 진단서를 쉽게 끊어주고 싶지만 정말 내가 환자인지 아닌지 그걸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답답한 소리나 하고 아카데미 원장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결국 유리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진단서를 받고 보험을 적용받아 병원을 빠져나온다. 내가 자살을 했는지 아닌지 왜 하려고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정신병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한 검사와 치료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아카데미에거 짤렸지만 어찌어찌 사정하면 다시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병든것은 의사조차 모르면서 내가 멀쩡하다고 믿는 부분은 또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을 그냥 내 위치에서 내가 아는 상식과 질서로 판단할 뿐이다.

자살이냐 아니냐

정신병이냐 아니냐

그냥 판단할 뿐이다. 자살시도를 하거나 정신병에 걸린 대상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늘 깜빡한다. 그냥 명확한 인과관계만 필요하다.

 

<다시 하자고 > 도데체 진짜 이름은 모르겠지만 가짜로 살아가는 두 여자가 있다 전혀 방음이 되지 않는 방에서 조금이라도 소리를 줄여보려고 침대를 세우려는 시도를 하는데 웃기게도 그 침대 하나 세우겠다고 볼트 리무버에 드라이버까지 구입하고 그것이 택배되어 올때까지 침대 세우기를 연기하는 사람들이다. 뭔가 중요한 해야할 것이 있는 거 같은데 아무 가치 없는 일에 연연해 하는 것 결국 내가 중요하게 여기느냐 아니냐는 내가 기준이 아니다. 그냥 세상이 기준이라고 하면 그게 기준이 된다.살아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면 내가 남의 말을 듣고 남의 기준에 연연하며 내가 아닌 타인으로 살려고 많이 전전긍긍했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후회스럽지만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아마 똑같이 살지 싶어서 후회할 수도 없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어쩌면 병원의 유림이 퇴원을 한 후 어찌어찌 아카데미를 마치고 난 후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내 인생에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끼어들어온 언니가  내 인생을 결정하고 방향을 정하고 나를 멋대로 가엾게 여기고 돌봐준다. 내가 있으니까 좋지? 이런 폭력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

 

가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해주고 상대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이렇게 잘 해주는데 이렇게 내가 희생하고 도와주는데 어쩌면 고마워할 줄을 모를까

염치없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말한다

음식을 나눠주고 안부를 물어주고 함께 뭔가를 하자고 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에

나는 그저 감사하고 고마워해야만 한다.

그냥 내버려두고 굶어도 죽지 않고  모른 척 해도 되는 일일텐데 그건 인정머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막 퍼주는 일.. 그리고 감사를 강요하는일.. 이것도 폭력이다.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들

결국 그건 내 만족때문이더라

내 체면을 위해서 내 자존심을 위해서 너가 잘 되어야 하고  휠씬 더 내세우기 좋은 상품이 되어야 한다고 그게 결국은 다 너를 위하는게 아니겠냐고 믿는 마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는 내 사랑을 그렇게 몰라주냐면 따라다니고 애원하고 물량공셀르 퍼붓고 그리고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가는 것도

결국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한 일이고

배려라는 말이 참 아름다운 말인데 그 속을 보면 결국 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모자라고 부족한 너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무언가를 베푸는 일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뭔가를 주는 것

물론 그게 필요한 경우가 훨씬 많겠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더나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추앙>은 이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문단에서의 미투운동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작가가 겪은 일이었던 걸까? 이야기가 더 생생하고 날것처럼 느껴진다.

"문학적 자질을 지년다"는 말이 "시적 허용"이라는 말이 이렇게 뻔뻔하고 치욕적으로 들리기는 처음이다.내가 시적 허용을 말한 것이고 문학적 표현을 한 것인데 그걸 무지하게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매너는 그 감각은 도데체 무엇이냐며 피해자엑 탓을 한다.

폭력이 폭력이라고 보이지 않는것은 폭력을 행하는 그 본인의 뻔뻔함이거나 권력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을 바라보는 방관자들의 말없는 동조에 있다. 그게 뭐가 문제라고 너만 예민한 거가지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관심이고 애정인데 라고 덧붙이는 말들은 호기심으로 상철르 한번씩 건드리면서 덧나게 만들고 더 심하게 감염되게 하는 그 말없는 혹은 선한 의도의 폭력들이다.

 

<신체 적출물>에서 주인공은 분명히 내 고통을 내가 생생하게 느끼는데 그건 내 고통이 아니라 상상이라고 말한다. 내 신체 적출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니 몸의 일부가 여기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이 곳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여전하고 뜨겁다. 다시 되돌아가 구백만원의 돈을 써서라도 가져오고 싶었던 내 신체의 일부분은 누군가에게는 소독이 되지 않은 살덩어리 그래서 쓰레기가 된다.

나의 고통조차 온전히 내것이지 못하는 세상이 폭력이다

 

표제작 <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참 복잡하다.

분명 아파하는 누군가와 연대하기 위해 내 일상을 접어놓고 뛰어든 일인데 그 나의 선한 연대가 누군가에게 고통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선한 의도가 폭력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

그리고 나의 의도를 의심받는 일 그래서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폭력당하는 일이기도 하다. 순수한 피해자의 프레이에서 우리도 허우적거리며 그 것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지워나가는 일

연대해야 한다는 말을 참 든든하고 따뜻한 말인데 어쩌면 그 연대가 제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A라는 이유로 연대하지만 누군가는 A`를 이유로 연대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다르게 B라는 이유로 연대할 수 있다.

피해자가 원하는 일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일과 다른 일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밀어붙여서 바꾸고 싶은 세상이 어쩌면 누군가는 주저하고 그냥 그대로 묻히기를 바라는 일일 수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도 ....

머리카락이 나온 음식을 받으면 당당하게 따지고 환불받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조용하게 알리고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사과로 만족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냥 말없이 덜어내고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텐데.

누군가는 정의롭고 누군가는 비겁하고 누군가는 욕심장이가 되고 누군가는 속깊은 사람이 되기도 하는 일

 

좋은 뜻으로 그랬어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상대를 위해 혹은 내가 알고있는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순수하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내 위치에서 나의 순수한 의도라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면  혹은 원치 않은 것이라면 그건 폭력이니까

 

단편들을 읽으며 열여덟에서 서른언저리까지 어리면 어리고 젊은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른이 참 잘못해서 다음 세대가 아프고 힘들구나

어른이 어른답지 못해서

내행동이 옳다고만 머리로 생각만 해써 때로는 그 때문에 누군가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지나가는 구나

왜 말하지 않았니? 왜 나서지 않았니라고 쉽게 나무라고 충고하는 일

그것조차 조심해야 할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되었고 꼰대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젊고 피가 뜨거워서 쉽게 화를 내고 불만스럽고 예민하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까탈스런 꼰대가 되어있더라.

성숙한 어른의 시간은 기억나지 않은데 철없고 어리석은 젊은이에서 두꺼워서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은 꼰대가 되어버렸다. 슬프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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