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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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몸이 세계라면

 

기생충에서 영화만큼이나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기사나 개인적인 글 아래 달린 댓글들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무엇이냐에 따라 영화에서 느끼는 흥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감정도 달랐다.

 

나는 어떨까?

처음 봤을 때 몹시도 경악스러웠다.

어쩌면 나 혼자 고민하고 걱정하고 동동거렸지만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았던 내 속의 불안이 쑥 화면에 펼쳐졌다,

나도 저렇게 반지하로 떨어질 수 있고 더 깊이 빛이 한줌도 없는 지하로 떨어질 수 있다

그 가능성이 나에게도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고

뻔뻔하고 사기성이 강한 기택 가족의 행위를 좋아할 수 없지만 왠지 자꾸 면죄부를 주고 싶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싫었다.

어떤 방법으로 들어왔든 그들은 박사장네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가?

그런 극악스러운 상황에 마주하지 않았다면 약간의 거짓과 위선을 섞을지언정 받는 돈에 응당한 댓가를 치르며 살지 않았을까 하며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박사장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손해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마음?

누군가 이 정신없는 아수라장을 만들어 놓고 혼자 킬킬대고 있을 존재가 있을거 같고 그 존재를 모른 채 연교나 기택이나 정신없이 휘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킬킬대는 누군가의 목을 졸라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그리고 두번째 봤을때는 그냥 슬펐다.

이룰 수 없다는 게 뻔한 꿈을 꾸는 기우가 슬펐고

그렇게 언제 탈줄 할지 알 수 없는 지하생활을 계속해야하는 우택이 슬펐고

순간 드러낸 민낯때문에 죽어버린 박사장이 허무했고

죽는 순간까지 리스펙을 외치는 그 남자도 짠했다.

누군가가 죽어버리는 것만큼 앞으로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다는 막막함에 더 서러웠다.

어떻게든 발버둥쳐도 늘 제자리라는 사실이 서럽고 서럽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좋고 이루어 지지 않았더라도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는 건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는 세상에서 내 노력 한 방울 더하는 것  그건 축복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이 되지 않은 빡빡한 삶에서 태어나 한 번도 " 가지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  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꼭 필요한 거 하나만 골라"라는 말만 듣고 살았다면

아무 거나 골라서 이건 쓸모가 없구나 가치가 없구나 하는 걸 경험할 수 없다.

제일 좋지 않아도 중간쯤은 될 수 있는 것 내가 알고 있어서 익숙하고 실패할 수 없는 것만 선택한다. 모험이라는 건 누군가에게는 사치다.

많이 따지는 가성비라는 것이 그래서 때로는 슬프다.

써야할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최고의 만족은 아니지만 최하는 아니어야 하고 적정하게 만족하고 그 값어치에 비해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정도?  무난한 색상 무난한 기능 무난한 디자인 어디에서 사용가능한 동시에 어디에서나 애매한 존재 그런 걸 고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내가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때로는 슬프다.

 

예전에 이과를 가기 위해 필요한 재능이 상상력이라고 했다가 판잔을 들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을 공부하는데 왠 엉뚱한 상상력? 이라고 했다.

내 딴에는 일단 지구가 둥글지도 모른다는 상상  태양이 지구를 돌지도 모른다는 상상  저 지구 밖에 또다른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시간과 공간이 뒤섞인 다른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의 가설에서 실험하고 관찷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게 과학이 아니냐고 지극히 문과적인 관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돌아온 답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와 원칙 뭐 그랬던 거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결국 상상력이 어디든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주를 날아가는 택시 같은 상상력도 필요하고 내가 아닌 타인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보는 상상력도 필요하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고 있는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상상력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이 필요한게 아닐까

 

가끔 생각했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을 뺀 나머지 어마어마한 부분이 존재할 거라고

내가 보고 겪고 안다고믿는것은세상의한 점뿐일거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걸 망상이라고 믿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은 원래 없던  존재라고 생각한다

가게에 종업원대신 기기가 주문을 받을 때  몇번 버벅거리면서 투덜거렸고

아이에게 용돈을 주며 사먹어라고 했더니 이젠 돈받는 주문은 잘받지도 않아서 카드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기가 서툰 사람들 그리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없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햄버거를 사먹고 국수를 사먹고 차를 마실까?

그저 종업원의 고용문제라고만 생각했던 기기주문이 단순히 기기가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뿐 아니라 수없이 존재하고 있을 신용카드나 여타 카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원칙이 그렇다고  정해버린 규칙은 누가 만든 것일까?

그 원칙이 불편하고 불안한 누구가는 그저 깐깐하고 까다로운 사람이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일뿐일까?

내가 누군가 타인을 볼때 내가 가진 얄량한 정보와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지적하고 충고하는 일이 과연 상대방에게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일일까?

어쩌면 내가 못나서 불편했던 것들이 내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이 무심하게 정해놓은 기준탓은 아닐까

 

 

사실  길게 리뷰를 썼는데 저장이 잘못되었는지 다 날라가고 ... 밑줄 그은 부분도  다 지워져서 이제 더 쓰고 싶지 않다 ㅜㅜ

그냥 최근에 본 영화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늘어놓을 뿐이다.

 

저자의 첫책도 좋았고 지금의 책도 참 좋다.

세상을 또다른 시각을바라본다는 것도좋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일거라고 믿는 과학  역시 누군가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의 일이라는 것과 그 합리성의 빈틈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떤 제도나 규칙 학문적인 논리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전부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위한연구나사람을 위한제도가결국 어딘가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없는 사람으로 없는 행위로 없는 부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늘 생각하고 의심하고 한 번 도 질문하는 자세를 다시 배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침착하고 조곤조곤한 어투로 단정하게 씌여진 글들이 좋았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책을 가득 채운 내용들도 버릴 것 없이 좋았지만 마지막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가장 좋았다

 

그러기에 이러한 연구의 결과물을 두고서 그 타당성을 다지는 데서 멈추면 안됩니다. (중략) 그와 함께 이러한 지식의 생산 과정에 대해 질문해야 이 현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그 시기에 그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졌는지 그 질문을 답하기 위한 연구들은 어느 기관의 지원을 받ㅇ아 어디에 발표되었는지 그리고 그러게 만들어진 지식은 이후 어떻게 활용되었ㄴ느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 연구의 결과물을 시공간을 초월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식이 아닌 역사적 사회적 맥락속에서 구성도니 산물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일제 강점기의 인종주의 과학은 실증적 정량적 측정이라는 측면에서 과학적인 외피를 둘렀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통치해아하는 이웃집 원주민 조선인에 비해 일본인이 인종적으로 우월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식민 지배의 합리화라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에 부합하는 근거를 수집하는 작업이었던 것이지요. 오늘날 오리가 이 연구들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86 

 

어떤 사회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그냥 주어진 역사는 없었습니다. 다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사회의 많은 부분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다고느끼기때문에그세계의ㅈㄹ서가누군가를 상처입힐 수있다고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리는 줄 모르고 던진 돌도 맞는 사람입장에서는 아프기는 매한가지지요그래서 다수자 입장에서는 과돠다고 생각되는 문제제기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소수자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생존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혹시라도 왜 그리 불편한긴장을 계속 감당해야 하느냐고 묻는 다수자인 한국인이 있다면 한반도만 벗어나면 한국인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소수자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177

 

한 걸음 더 나아가 암의 종류를 불문하고가난한  사람들이 암으로 더 많이 죽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 사망의 불평등이 명확한 한국 사회에서 그 부령등에 영향응ㄹ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암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개인의 불운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에게 '왜 가난한 사람이 더 운이 나쁜지' 되물어야 합니다.

의사가 암에 걸린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암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개인인 의사와 개인인 환자가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요하게 캐묻고 대책을 요구하지 않으면 운과 유전자와 개인의 생활습관만 부각되고 암은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당사자의 잘모으로 인해 발생한 불행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물어보지요. 한국인 사망 원인 1위인 매년 8만 명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 아마도 당신과 나를 사망ㅇ 이르게 할 이 질병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203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이나 우리가 몸으로 경험해 얻은 직관이 틀릴 수있다는 점을 기억하는일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과학의 출발점이지요. (중략)

그래서 더욱 오늘날 우리가 상시기라고 생각하는 이론이나 직접 경험했다는 이유로 확신하는 사실들 역시 우리시대의 천동설일 가능성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 생각이 틀린 것일 수있다는 비판적 사고는 인류가 과거의 상식과 맞서 싸우며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었던 거대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순간 지구는 돌고 있으니까요    316

 

 

그동안 실내 온도를 21도로 맞추었던 관리인과 과도한 용량의 수면제를 처방했던 의사는 여성을 차별하거나 아프게 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보고 배운 메뉴얼과 교과서의 내용에 충실하게 행동했을 뿐이지요. 문제는 메뉴얼과 교과서 역시 누군가의 관점에서 생산된 과거의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생산 과정에는 과거의 편견과 권력 관계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몸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지는 상식에 대해 우리가 왜 의심하고 질문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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