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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분명 식사를 하고 읽었음에도 자꾸 침이 고이고 허기진 기분이었다.
먹방처럼 보고 느끼는 것과 다르게 글로 읽는 음식 이야기는 읽으며 상상하게 된다.
나의 상상으로 음식을 느낄때는 아는 맛이 더 나를 끌어당기는 법이다.
아.. 이거 나도 아는 건데 나도 먹어 본건데
그렇게 혀가 기억하고 내 몸이 기억하는 음식들을 작가 답게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맛갈나게 표현해버리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는가?
나도 어릴 적엔 고기를 다양하게 먹어보질 않았다.
유달린 입이 짧은 건 아니었는데 아마도 엄마의 입맛이 아이들의 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이 먹고 집을 떠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뭐든 먹는데서 빼는게 불리하다는 걸 알게 되고 입이 짧다는게 고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까탈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등등은 핑계이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식재료도 많았고 음식도 많았다.
순대를 먹었고 간과 다른 내장도 먹게 되고 곱창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뭐든 먹을 수 있다는 응용력에 감탄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책속의 여름 음식들은 무지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나도 면을 좋아하는데
나도 고추장물이랑 깡장을 좋아하는데
여름엔 그렇게 알싸하게 매운 양념에 푸성귀를 함께 먹어줘야 하는데
여름에 뚝뚝 떨어지는 야채값은 정말 축복이라 애호박 오이 옥수수 고추 감자를 먹지 않고는 여름을 지났다고 할 수 없는데....
올 여름엔 꼭 독하게 매운 고추를 수경을 끼고서라도 총총 썰어서 꼭 고추장물이랑 장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어야지 혼자 결심한다.
작가와 다르게 나는 물냉면을 좋아하다가 비빔냉면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메밀이 많이 섞여 씹으면 뚝뚝 끊어지는 슴슴하고 무심한 물냉면 맛이 너무너무 좋았다.
아무 맛도 아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더 컸던 시원하고 무심한 물냉면
그러다 어느 순간 매운 양념과 회가 올라간 비빔냉면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 그건 맵게 먹고 견뎌야 할 시간들을 알았을 무렵이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매운 맛은 안주로도 그만이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에 매운면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이제는 나이 먹어 아줌마들이 된 친구들과 밥을 먹다 보면 늘 나오는 말이 이렇다
누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누군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를 지나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야하는 시기가 된 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먹든 맛이 어떻든 누군가 나를 위해 (비록 돈을 받고 하는 행위일지라도) 음식을 차려내고 치워준다는데 감동하곤 한다.
평일 낮에 유명한 음식점에 아줌마들만 많다는 건 욕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맛있은 음식이라는 건 감동적이고 충분히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뭐 먹지?" 와 '오늘 뭐 해먹지?' 달랑 한글자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건 서툴더라도 즐겁다.
물론 누구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즐겁다 (즐거울 수 있다.)
그래도 전자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지만
후자는 나는 좋아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좋아했던 것 잘 먹는 것 왠지 영양의 균형을 위해 준비해야할 거 같은 것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뭐라고 잔소리나 흉을 듣지 말아야 할것들 등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즐겁고 신났던 건 작가가 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기를 위해 먹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내가 만약 혼자 사는 입장이라면 이렇게 부지런하게 계절별로 식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하고 젓갈을 담고 생선을 말리고 찌고 굽고 할까 싶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반찬을 쓸어담아 비벼서 참기름 떨어뜨리고 먹더라도 그것도 성찬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혀에는 먹고 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먹을 때는 누구나 무난하게 싫어하지 않은 음식이 선택되지만 그 음식의 맛조차 양념의 비율에 따라 식재료의 상태에 따라 기억과 경험으로 맛있다는 의미가 저마다 달라진다
게다가 책 말미의 콩가루 집안의 콩가루 이야기는 정말 백미였다.
휴식과 충전 감사와 즐김의 시간이 필요해서 생긴 명절인데 그 참뜻을 모르고 지나간다.
식구들이 모여야 하고 누군가는 죽도록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하고 누구는 먹기만 하면 되고 무얼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궁리하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노동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오로지 명절의 참뜻은 소수의 콩가루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말이 참 명쾌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준비해서 즐겁게 먹고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이라니...
나도 진정한 콩가루가 되고 싶다.
정말이지 신나게 책장을 넘기고 침을 삼키고 요리책도 아닌데 뭘 해먹을지 메모하며 읽다보면 금방 한권이 뚝딱이다.
좀 더 써줘도 되는데
하필이면 그 중국집에서 작가를 알아볼게 뭐람
늘 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의무가 되어 더 이상 신나지도 않고 왜 사람들은 하루에 세번이나 ? 먹고 살까? 알약 한개로 모든게 해결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일이 이렇게 맛깔나고 신날 수도 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사실 먹는 재미가 사는 재미의 절반일 수도 있는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잘 차려서 먹으면 좋은데..
차려놓고 보면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준비과정은 더 할 수 없이 세심하고 뭉근한 음식 이야기를 보며 나도 오늘 소박한 밥상에 소주 한병을 올리고 싶다.
음식이야기지만 작가는 죽어도 이건 안주 이야기라고
모든 음식은 안주가 가능하다는 말... 격하게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