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는 노란상상 그림책 51
차재혁 지음, 최은영 그림 / 노란상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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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순간은 망설임이 없었다

친구가 올린 공지글을 보고 나도 못 갈건 없겠다 싶었다.

그때 쯤이면 신경쓰던 일도 마무리가 되어 갈 것이고 어떤 결정이 나든 지금 아니면 이렇게 혼자만 훌쩍 떠날 시간이 당분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고 그동안 다들 시간을 내어 여기저기 다녔는데 나만 시간에 매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억울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일정이 다가오고 계획이 세워지는 걸 보면서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망설임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놀아본 놈이 논다고 늘 핑계뒤에 숨었던 습성이 어디 가질 않는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마침 한 차 정원이 안되니 어쩌니 하는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며 이게 기회인가 보다 발을 빼라는 말인가 보다 했지만 결론은 기차표를 예약해버렸다.

이젠 갈 수 밖에 없다.

고작 일박이일 여행조차 이렇게 갈등을 해야하다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한때는 마음 먹는 순간 발을 내디뎠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룻밤에 모래성을 쌓고 허울고 그리고 끝! 그런 일들이 허다하다.

 

막상 떠나니 별거 아니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약오를만치 자기들끼리 잘 지냈고 자기 일에 바빠 서로 연락도 안했고

안전하게 잘 아는 이들과의 익숙하지만 낯선 여행은 그냥 좋았다.

날이 추워도 좋았고 바람이 불어도 좋았고  식당이 만석이라 도로 나와야 하는 것도 '어설프고 조악한 전시물들도 좋았고 마냥 읽어내려간  문화재 해설도 좋기만 했다.

뭘 먹어도 맛있었고 뭘 해도 시간이 딱딱 맞은 건 기가 막히게 일정을 짠 친구덕이기도 했지만

어딜 나선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별 거 아니구나

이렇게 나만을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고 감정을 쓰는 일이 별거 아니구나

의외로 너무 시시했다.

이럴거.....

 

어두운 저녁을 배경으로 주인공은 서성인다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보지만 하나도 찍지 못하고 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계속 머리를 굴린다..

그런 말은 없고 그런 낌새도 없지만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창밖을 바라보고 개의 등을 쓰다듬는 주인공의 모습이 뭔가 생각이 많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건 참 익숙하고 잘 아는 모습이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나의 친구들과 달랐다.

왜 가냐고?

간다고 별 수 있냐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고...

자꾸 망설이는 마음을 뒤에서 잡아당긴다. 너의 망설임이 옳은 거야 그걸 따라야해

남자는 주인공은 여전히 그냥 있어야 겠지? 나서지 말아야겠지?

그 마음이 70%를 넘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안고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조금만 가보자 저기 골목까지만  저기 모퉁이 까지만  저기 지하철 역 입구 까지만...

망설이는 마음 주저하는 마음 이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다르게 몸은 계속 앞으로 간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보폭을 맞추고 방향을 맞추고 어긋나면서

그들은 자기가 어딜 가는지 알고 있을까?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가는게 맞는 걸까?

남자는 이젠 적당이 풀어진 망설임을 안고 지하철을 차고 갈 뿐이다.

그리고 마침 다다른 그곳

그래 오길 잘했다.   그렇지?

 

일단 움직이면 걷기 시작하면 닿는 곳이 어디든

언제나 오길 잘 했다.

좀 시간이 걸리고 험하고 많이 돌아온 길이라도 오길 잘 했다.

나도 그렇게 가길 잘 했다.

추운  관광지를 다니고 새로운 곳에서 감동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이젠 함께 모여도 그닥 수다떨 거리도 없어 멍하니 티비만 바라보고 있다가 잠이 들어도 무심하게 마음도 편하니 오길 잘했다.

 

 

어디든 망설여진다면

일단 발을 떼고 보자

신을 신고 끈을 고쳐 질근 묶고 문을 열고 나서면 된다.

그럶 반은 한 셈이다.

 

올해 한 방향을 향해 12년을 걷다가 조금 멈춰 돌아가는 길을 택한 아이에게도

일단 정했다면

아니 아직도 망설여지더라도

일단 나가서 걷고 보자. 한 발 한 발 이게 아닌데 싶은 마음이어도 그냥 걷다보면 그게 목적지가 될것이고  아무래도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면 그 뿐이다.

느린건 잘못이 아니다.

 

그림책속의 남자가 느리게 걸어서 좋았다.

그림속에서 뭔가 아직도 망설이고 생각이 많아서 더 좋았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서  그게 더 좋았다.

 

아이보다는 어른에게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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