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체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준비할 수도 없고 조심할 수도 없다.

모르는 사람. 낯선 상황.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불안이었다.

내가 알지못하는 모든 것이 불안이라면 내가 아는 것은 안전한 것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

불안은 내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들이다.

알고 있지만 피하고 싶은 것

다가 올까봐 두려운 것들

그것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알지만 명확하지 않다.

대책이 없다.

아니 아니까 그것이 얼마나 아플지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두렵다.

주사가 아프다는 걸 아는 아이는 울음을 먼저 터뜨린다.

개에게 물려봤거나 쫒겨본 경험이 개 존재만으로 불안하다.

이제 불안은 그런 것들이다

모르는 것들이 아니고 아는 것들이다. 알지만 무대책인것들 그것이 불안이다.

다가오는 것을 알지만 움직일 수 없는 것

겪어서 다 아는데 또 똑같이 되풀이 될것 같은 기분

기대가 무산될거라는 예감

내가 경험하고 익혀서 아는 질서가 흩어지고 붕괴될거라는 초조감

불안은 간절함을 요구한다.

간절하게 내 예감이 다르기를 원하게 되고 이 익숙해져 몸에 익은 질서가 흩어지지 않길 바란다

불안 그것들은 수백마리의 나비가 되어 내 뱃속에서 날개짓을 한다

약도 없다.

 

      

불안은 자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불안이 이야기를 증식시키는데 그 이야기란 맥락이 어없다.

당연하다. 불안은 논리적이지 않다.

자꾸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히지기도 하고 아주 작게 쪼그라 들기도 하면서 기승전결이라는 맥락이 없다.인물은 저마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논리도 없고 맥락도 없지만 안간힘을 다해 이야기에 매달리고 부풀려간다. 이야기속에서 뭔가 안심이 된다. 이야기는 현실이 아니니까. 아니 어쩌면 현실이 이야기처럼 될 수도 있고

내가 현실과 이야기를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눈을 뜨면 현실이 있고 나의 이야기와 현실은 자꾸 어긋나고 뭔가 부조리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이야기를 버릴 수가 없다.

아는 것에서 불안이 시작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가 만들어 지지만 불안은 여전히 존재한다.

뱃속의 나비들을 어쩌면 좋을까

한꺼번에 백마리가 날아가는 소리 그 진동들

빗소리 같은 그 소리가 불안하고 미치도록 그립다.

사는 동안 불안은 계속된다.

 

<인터뷰>  그 남자의 불안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이제 꺼내고 싶어하지 않은 3년전 그 사건을 한번은 마주해야할 거 같다.

그래서 낯설지만 친절한 이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믿고 바라는 일이 진실이다. 사건과 진실 얽히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가 다시 누군가를 불안하게 한다.

전이된 불안 그 결말이 정말 통쾌한 반전이다.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진기의 작품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의 그림은 그의 연하 애인이다.

진기의 애인은 푸른 코트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다

푸른 코트를 입은 젊은 남자가 진기가 아닌 다른 나이든 여자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한다.  진기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남편의 옷장에서 푸른 코트를 발견한다.

푸른 코트는 진기 애인의 것이므로 남편이 진기의 애인이 된다.

나몰래 친구와 남편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모델과 작가가 되었다.

푸른 코트를 입은 남편을 따라가지만  정류장에서 잡은 그 남자는 낯선 사람이다.

그 낯선 사람은 푸른 코트를 입고 있다

그리고 쇼윈도우의 마네킹 역시 푸른 코트를 입고 있다.

논리적으로 틈이 없는데 모든 것은 뒤죽박죽이 된다.

a가  b라면 의당 그래야 하는데  순간 a는 c 가 되는 모순을 영재는 겪는다.

내 논리에 따른 이야기가 자꾸 어긋나고 영재는 불안하다. 남편과 진기 사이가 불안한게 아니라 나의 사고가 생각이 믿을 수가 없다.

 

< 잘못 찾아오다>  좀 서늘한 이야기

내가 이사한 집이 내 집이 아닐 수도 있다?

이사한 집으로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 그들의 황망하고 불안한 표정들

그리고 몇년전 공인중계사 시험을 준비할 때 알게 된 재희와의 만남

모든 일들이 꼬리를 물며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늘 제자리다. 결국 내가 그 집의 주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잘못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장소에 있는 나 자신의 문제라는....

 

< 내가 그렇게 늙어보입니까?>

유치원에서 노숙자와 부딪친다. 그 노숙자는 겉보기엔 60을 넘어보였는데 나와 동갑인 마흔이다

그 일 이후 나는 점점 늙어간다.

아니 나는 전혀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움칫거리이 그걸 말해준다.

뭔가 열심히 아니라고 하고 아닌 척을 하지만 점점 나는 타인이되어간다. 오히려 그렇게 믿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 전화>

핸드폰이 생긴 이후 사람들은 모두 급해졌고 참을성이 없어졌다.

언제든지 통화되고 연결될 수 있다는 편리성이  연결되지 못함을 마주하는 순간 혼란에 빠진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인데 왜 전화를 받지 않은가

사람들은 점점 성마르게 불끈거린다.

세중과 술자리에서 언쟁이 있었지만  좋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하지만 세중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술집앞에서 세중과 어떤 여자를 보고 그들의 관계를 생각하고 수정하고 또 생각한다

그런 사이 세중은 여전히 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마침내 세중의 회사앞으로 찾아가 그를 보지만 차마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세중이 급하게 택시를 타고 떠난 것을 보고 전화를 하고 마침내 통화가 되지만 결국 나온 말은 "나중에 다시 할게"

언제?

성마르고 초조하게 연결되길 기다리지만 막상 연결이 되고 나면 그 이유는 대단치 않을 경우가 많다. 단순한 안부  급하지 않은 용무  문자로 해도 그만인  상황들

그러나 그런 용건도 연결이 안되는 순간 점점 부풀어 오른다.

소설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손> 이 있고 < 오년전 이거리에서>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가 있다.

이야기는 맥락이 없다.

세벽 방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보지않고 짐작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인물이 있고

돈을 빌려서 사라진 동료를 아직도 믿고 싶은 마음이 있다.

새로온 하가 하는 말들을 믿기에는 자기가 견고하게 만들어낸 이야기를 버릴 수 없다.

내 이야기가 거짓이 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라 하더라도 마주하기는 두렵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창밖의 말소리를 5명의 아이들의 놀이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 모호하지만 현실적이다.

 

작가의 첫작품 <지극히 내성적인> 에서도 불안이 감지되었다.

그때의 불안은 알 수 없는 불안이었다면

이번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서의 불안은 알기에 두려운 불안이다.

아니다

첫 작품집과 지금 작풒집 사이 작가가 변한 것도 있겠지만

독자인 내가 변했다.

그때 나는 모르는 것들을 두려워했다면

지금 나는 알고 있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주사를 맞아 봤고 개에게 쫒겨봤고 아이들의 직언이 주는 뼈때리는 통증도 겪어봐서

나는 이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밤마다 복권이 당첨된다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하고 자꾸자꾸  이야기만 뭉게뭉게 피워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책은 독자에게 와서 다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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