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 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직역하면 ‘그게 인생이지’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사는 게 그런거지’ 정도에 해당하는 불어이다. 이책의 저자가 책 한권으로 말하려는 것은 바로 그 말 한구절로 요약된다.

소노 아야코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꽤 이름이 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저명한 작가가 쓴 이책은 제목과 달리 ‘자 나는 당신에게 가르칠 대단한 지혜가 있으니 이책을 읽고 배워라’는 식의 고자세로 어떤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살다보니 사는게 그런거더라’ 이 정도 말을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책에서 저자가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키는 꿈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았다. 어릴 적 키가 작을 때 세상은 넓게 느껴진다. 무한할 것같다. 키가 커가면서 세상은 작아진다. 그러나 키가 자란 만큼 세상에서 나의 크기는 더 작아질 뿐이다. 꿈을 대가로 지불하면서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모습은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대단할 것도 없고 결점 투성이에 아주 착할 용기도 없고 아주 악해질 용기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사는 것이 편해지니까. 그래야 사는 것이 자유로워지니까.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세상을 살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이해해줄 여유를 가지게 된다. 남을 시기할 필요도 없고 미워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도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니까.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으니 그냥 흘러가는대로 놔둬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살기 편한 곳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정도이다. 별 스러울 것 없는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특별하게 그것이 지혜라고 부를 생각도 없고 자신이 뭘 특별히 가르친다는 생각도 없다. 내가 겪은 세월에서 세상은 이렇더라고 그냥 말할 뿐이다.

그리고 사는 것이 당연히 그렇듯이 저자의 느낌들은 조각조각 나뉘어 단편으로 흝어져 그냥 물리적으로 책 한권이 되어 있을 뿐이다. 위에서 말한 내용들도 한 두 페이지 짜리 단편들로 흝어진 저자의 글들을 읽은 사람의 인상일 뿐이지 저자가 어떤 주장으로서 그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책의 저자는 아주 무책임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처음 들어본 내용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나의 생각을 나의 느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야. 사는 것은 그런 것이었지 하고 자신에게 말할 용기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riendship -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은 먼 법이 없다
정현종 옮김, 메이브 빈치 글, various artists 사진 / 이레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이책에서 처음 본 덴마크 속담이다. 이책의 부제로도 사용된 이 속담만큼 이책의 내용을 잘 말해주는 말도 없을 것같다.

친구네 집이 멀지 않은 이유는 가족을 빼면 친구보다 가까운 사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란 말이 너무나 남용되고 있지만 그 말이 갖는 힘은 언제나 막강하다. 이책은 그말이 갖는 힘을 말이 아니라 100장 가까운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느끼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오로지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이책에 인용된 헬렌 켈러의 말이다.

그러므로 우정은 말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며 만질 수도 없다. 느낄 뿐이다. 그리고이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실체도 없고 그림자도 볼 수 없지만 그렇기에 소중한 우정을 느끼게 한다. 아마 이책의 사진들을 보면서 느끼는 우정이란 이책의 서문에서 말하는 것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나는 내 친구들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누군가 내게 물어봐도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인 이상 내가 보는 것은 그들의 웃는 얼굴, 내 말을 열심히 귀담아 듣는 모습, 내가 내가 좋은 소식을 전해줄 거라는 믿음,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쩐 친구는 좀 뚱뚱하고 대머리라든지 또 다른 친구는 실제 나이보다 열 살쯤 젊어 보이는 절세미인이라든지 하는 얘기를 나는 할 수 없다. 이런 얘깃거리는 우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사진집에 담긴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의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말 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것을 보이지 않게 할 만큼 내게 중요한 것은 친구 자체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라며 함께할 수 있는 친구. 세상 모든 것을 대신하는 단 한 마디인 친구 말이다.”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고 있고 그 사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벌거벗은 우정의 소중함과 소중한 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선 위에서 인용한 서문의 글보다 더 나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책의 사진들에 잡힌 해맑고 치기어린 웃음과 노인들의 달관한 여유로운 웃음을 보면서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질투가 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말이 많을 필요가 없는 이책에 대한 서평을 이책에서 처음 본 앗시리아 속담과 함께 끝내려 한다: “네 친구에 대해 들려준다면 나는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 - 아름다운 소년
저메인 그리어 지음, 문영혜, 정영문 옮김 / 새물결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책의 주제는 그레코로만 시대 이래 서양미술사의 인기소재인 소년의 나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이다.

미술품은 지금도 그렇지만 (아니 지금보다 더) 비싼 수집품이다. 돈과 권력을 지배하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에 미술품의 소재와 주제는 남성의 취향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취향에 맞춘 소년의 나체란 무슨 의미인가?

저자는 누드의 기본적인 의미에는 성적 대상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소년의 누드가 성적 대상일 때 그 의미로서 저자가 제시하는 첫번째는 여성의 대체품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육체적으로 자라 있지만 아직 성인은 아니기 때문에 덜 자란 소년은 여성적 아름다움을 갖는다. 아니 오히려 여성보다 더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다. 그러므로 소년들은 성인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대체품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비역질의 수동적 대상은 언제나 미소년들이었다.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더 고귀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고대 그리스에서 소년의 누드는 그런 의미였고 그레코로만의 전통을 되살린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사에서도 의미는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소년이 성적으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 경제적으로 주체가 될 수 없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성인보다 오히려 그들은 성적 능력이 더 뛰어나다. 사정한 후에도 다시 여러번 사정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기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적으로 소년을 바라본 시대에는 성적 주체로서의 소년도 당연한 것으로 인정했다.

저자는 성적으로 난잡한 이 시기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성숙한 여인들이 이 시기의 과도기적인 아름다움에 끌리는 수많은 원형적 신화와 서사시등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미술품들을 병치한다.

이상이 대충 이책이 말하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좀 스럽다고 까지 할 수 있는 이런 주제를 저자가 시시콜콜하게 장황하게 자세하게 이책에서 다루는 이유는 소년이 성적 대상이면서 주체로 이해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인상파 이전의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이책에 인용된 미술품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책에 인용된 문학작품들도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들이 허다하다.

이책의 의미는 과거의 예술품을 그 당시의 의미로 읽어내기 위한 즉 오해하지 않기 위한 상식을 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식을 알기 위해 이책을 읽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다. 200여점에 달하는 그림을 보는 재미와 과거의 역사를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의 유혹 2 - 재미있는 열세 가지 색깔 이야기
에바 헬러 지음, 이영희 옮김, 문은배 감수 / 예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이책의 전체적인 특징에 대해선 1권의 리뷰에서 언급했다. 2권에 대한 리뷰에선 몇가지 부가적인 특징을 덧붙인다.

이책의 기본적인 입장은 컬러의 물리적 특성이나 인간의 어떤 심리적, 생물학적 특성으로 부터 컬러의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빨강이 피의 색이고 불의 색이고 따듯한 색이란 물리적 특징 때문에 문화권마다 비슷한 의미가 부여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책의 기본 입장은 컬러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드는 예 한가지는 소위 베이비 컬러이다. 분홍은 여자애 하늘색은 남자애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은 역사가 짧다는 것이다. 1차대전이 끝난 이후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이전까지 빨강은 남성의 색이었고 작은 빨강인 분홍은 남자애의 색이었다. 파랑은 여성의 색이었고 작은 파랑인 하늘색은 여자애의 색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종전 이후 의복개혁이 시작된 후 세일러복이 남자아이들의 옷이 되었고 세일러복의 염색에 많이 쓰인 값싼 염료 인공 인디고가 쓰이면서 하늘색이 남자애들의 색이 되었고 상대색인 빨강의 작은 색 분홍은 여아들의 색이 되었다.

그외에도 저자는 색의 계급적 지위를 결정한 것은 염료의 가격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컬러의 사회적 결정을 보여준다. 보라색이 로마시대 황제의 색이었던 것은 원료가 되는 달팽이 수백만마리를 잡아야 한벌을 염색할 수 있었던 것에서 가격이 결정한 것이고 빛나는 순수한 빨강을 얻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비싼 아랍산 벌레를 잡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빨간 의복은 귀족의 색이 되었다. 그외에 갈색, 회색, 순수하지 않은 파랑이 천대받은 것도 염색의 문제였다고 밝힌다.

이런 입장에서 저자는 색채치료라는 것의 효과를 매우 의심스럽게 본다. 심리적 의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색의 물리적 성질과 인류 공통의 경험에서 색에 부여되는 1차적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시면서 너무나 많은 의미가 그러한 객관적 특징과는 다른 사회적 요인에 의해 우연적으로 결정된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색의 의미들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독일사람에게 설문조사를 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문제가 생겨난다.

그러나 슬픈 이유 때문에 이책의 내용은 상당부분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하다. 지금의 한국의 문화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 지난 200년동안 형성된 유럽의 문화라는 것이다. 컬러의 의미 역시 상당부분 유럽문화의 의미에 따라 생각할 정도가 된 현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뒤샹과 친구들 대가와 친구들 3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뒤샹과 그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과 책의 내용은 미묘하게 어그러진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폴락과 워홀을 다룬 저자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책의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생고기를 씹는 것같다'이다.

내용

이책의 주인공은 분명 뒤샹이다. 이책은 뒤샹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사망까지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뒤샹과 그의 주변사람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술가인 뒤샹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그 이야기들에는 당연히 뒤샹의 작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졌으며 뒤샹은 어떻게 생각했고 주변에선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면 당연히 포함될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 이야기들엔 뒤샹 당시 파리를 중심으로 유행했고 뒤샹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큐비즘과 미래주의, 다다, 초현실주의와 같은 유럽중심의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파리와 뉴욕을 오간 뒤샹의 행적을 따라 대서양 서쪽으로 모더니즘 미술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도 조명된다.

이렇게 보면 이책은 뒤샹에 포커스를 맞추어 본 20세기 초 모더니즘 미술의 풍속사라 정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책에선 뒤샹과 주변 인물들의 작품을 통해 모더니즘 미술 자체를 조명하기는 하지만 당시 미술 자체에 대한 설명이 목적은 아니다. 이책의 소재는 그런 공적인 모습보다는 뒤샹과 그 주변인물들의 사적인  생활들이다.

파리나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누가 누구와 자주 어울렸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체스를 두었으며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다든가 누구의 마누라와 눈이 맞았다든가 어떤 여자와 잤다든가 누구 누구와 동거를 했다든가 누구의 초대로 뉴욕에 갔는가 그리고 돈을 댄 것은 누구인가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아 어떤 그림을 또는 조각을 하게 되었는가 등 시시콜콜한 사생활이 이책의 소재이다.

그러한 사생활을 중심으로 놓았다는 점에서 이책은 다른 수많은 미술사 서적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바로 그 차별성이 이책의 뛰어난 점이다. 미술사 책에서 뒤샹에 대해 다룬다면 인간으로서 뒤샹은 반페이지도 안되게 다루어질 것이고 대부분은 그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들은 또는 그가 제안한 개념들은 미술사적으로 어떤 영향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텍스트 계보학이 우선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보학에선 텍스트를 우선하기에 그 텍스트를 만든 작가도 텍스트가 되어 버린다. 단지 미술사의 영향관계에서 파악될 뿐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런 작품을 만들었는가는 파악되지 않는다. 이책과 같은 류의 미술사는 그런 빈틈을 메워준다.

평가

그러나 이책의 성격은 애매하다. 날고기를 씹는 느낌이란 평은 이책이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나열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 신변잡기적 사실들을 넘어 저자가 뒤샹에서 무엇을 읽으려는 것인지 감이 안잡히게 쓰여졌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인간으로서 뒤샹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뒤샹의 내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한 인터뷰들이 인용되고 있고 그가 한 말들이 여러군데 인용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알수가 없다. 이책의 뒤샹은 어디까지나 몰래카메라로 잡힌 무표정한 뒤샹이다.

이책을 보면 그는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호감가는 사람이었던 같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작품을 거의 만들지 않는데도 동료 예술가들에게 존중받고 대가로 존경받았으며 미술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았다. 그가 뉴욕 패러다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레디 메이드와 같은 그의 미술에 대한 개념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감을 사는 그의 성격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는지 이책에선 아무 설명이 없다. 이책이 그리는 뒤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속을 알고 없고 성격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뒤샹이다. 읽어가면서 도대체 저자가 왜 이책을 썼는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저자가 아무 의미 없이 이책을 쓴 것같지는 않다. 생고기를 씹으면 위장에 들어가 소화가 되게 마련이다. 책을 덮으면서 머리에 그려지는 뒤샹은 자유인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삶을 즐기는 자유가 아니라 너무나 가볍게 부유하는 참을 수 없는 자유이다. 뒤샹은 30이 되기도 전에 절필했다. 뉴욕으로 간 것은 화가로서 살기 싫어 새로운 땅에서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술과는 무관한 프랑스어 과외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했고 주변 사람들의 호의를 거리낌 없이 받으며 한량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별 재능도 없는 체스에 마약중독자처럼 빠져산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술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한다. 평생 마땅한 직업도 없이 떠돌면서 그는 미술가들의 공동체에서 수집가들의 네트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언제나 미술로 다시 돌아간다.

결혼을 구속이라며 거부한 그는 뉴욕으로 도피하면서 미술이란 구속에서도 자유롭고 싶었지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천상 미술가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절필을 한 것은 미술이 싫어서가 아니라 미술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워야 하는 예술가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붓을 꺽은 것은 아이디어가 고갈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창의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 하는 새로움의 창조자여야 하는 직업이 미술가여야 하게 된 것은 미술이 쓸모가 없는 '예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쓸모가 있다면 예술이라 부르지 않는다. 쓸모가 없어져 박물관과 상아탑에 모셔지면서 예술은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역사는 인상주의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인상주의는 사진기술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것이다. 사진이 생기면서 초상화로 생계를 해결하던 화가들이 밥줄을 잃게 되었다. 그때까지 미술은 예술이 아니었다. 초상화는 지금의 사진 대신이었고 궁정화가들이 그리는 역사화는 지금의 기록영화와 마찬가지였으며 미술가들은 건물을 장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밥줄인 초상화가 사라지면서 화가들은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게 되었고 결국 흑백인 사진이 할 수 없는 컬러라는 특성을 극대화하는 스타일인 인상주의가 태어난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은 결국 큐비즘에서 추상화로 가게 되는 노선을 상정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는 것으로서 미술의 쓸모가 사라지면서 미술은 쓸모가 없는 예술의 길을 걷게 되엇고 대중과 호흡하는 문화의 일부가 아니게 된 미술은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그들의 자위행위가 되어갔다.

데생 연습에 등장하는 원뿔, 육면체, 원으로 형상을 분해하는 큐비즘은 시각의 느낌을 통해 구체화되는 감각의 예술인 미술을 개념을 구현하는 이성의 미술로 바꾸었다. 뒤샹이 따라갔고 뒤샹이 걸었던 노선은 바로 감각이 아니라 이성의 대상으로 미술을 바꾸는 것이었다.

큐비즘의 논리적 연장인 추상미술이란 노선에서 미술을 다시 감각의 미술로 바꾸어놓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뒤샹이 거부감을 보인 것은 당연하다. 추상표현주의자들도 뒤샹을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뒤샹은 같은 운명을 타고난 동료들이었다. 

이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뒤샹에 대한 인상은 '자유의 불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술이 사회로부터 뿌리가 없어지면서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 때문에 존재이유가 불분명해진 것은 바로 뒤샹의 삶과 그대로 닮았다. 한번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적도 없고 가족을 부양한다든가 하는 책임있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으며 재산을 쌓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던 뿌리가 없는 삶을 살았던 뒤샹의 삶을 규정한 것은 자유이지만 뿌리가 없다는 불안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