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4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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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권으로 원서의 1권이 끝난다. 1권은 다음 권들을 위한 이야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으로서 주인공이 황제가 되는 것을 그린다. 그러나 1권이 예비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1권의 후반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예지능력을 자각하면서 이 시리즈 전체의 주제가 드러난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를 바꿀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아는 행위 자체가 미래를 만드는 변수들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예지력으로 보는 미래는 시나리오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략 시뮬레이션처럼 수많은 분기점이 있고 분기점마다 다른 미래가 예시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보는 미래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들이다. 그가 보는 미래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진로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미래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본 미래는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수많은 변수들을 압도하는 인류의 종족의지가 만들어낸 힘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주인공을 낳게 된 것 자체가 종족 의지의 결과였다. 오랜 시간과 넓은 공간으로 인류가 퍼져나가면서 종족적으로 정체된 상태가 되었고 종족 의지는 강한 유전자만 남는 활성단계로 진입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멸해갈 것이다. 주인공 자신이 그런 종족 의지를 실현하려는 무의식적 동기에 따라 실행된 유전자 계획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러한 혼란의 상태를 어떻게든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정도를 낮추거나 늦출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그가 보는 미래가 그렇듯이 미래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황제가 되는 주인공이 1권의 마직막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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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3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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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권에선 2권에서 시작된 2장이 끝난다. 2장의 내용은 하코넨과 황제의 손길에서 도망친 주인공 폴과 그의 어머니가 사막 한가운데로 도망쳐 그의 전사들이 되어줄 프레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정을 얻어 그들 안에 자리를 잡는 과정을 그린다.

2장에서 눈여겨 볼 것은 프레멘들의 독특한 문화이다. 물이 거의 없어 시체에서도 물을 재활용하고 이방인을 죽여 물을 탈취하는 그들의 절대적인 물의 부족때문에 만들어진 문화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저자가 묘사하는 프레멘 문화는 중동의 문화와 비슷하다. 물의 부족으로 즉 사막이란 환경 때문에 만들어지는 문화를 그리기 위해 저자는 중동의 문화코드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물론 가끔은 비가 오는 중동의 사막과 달리 아라키스엔 비가 오지않는다. 비, 바다, 강이란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곳이니까.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저자가 그리는 프레멘의 문화는 중동의 문화를 연상시킨다. 절대적인 생존이 우선되는 환경에서 장식이 떨어져 나가고 앙상한 뼈대를 보이는 문화. 기독교와 회교의 공격적이고 독선적인 뉘앙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흔히 외부인들이 말하는 베드윈들의 잔인성과 야만성도 보인다.

그러나 베드윈들이 스스로의 문화에 대해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농경정착민족을 경멸하듯이 프레멘들 역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이책에서 그리는 그들의 삶에는 나름의 존중해 주어야 할 품위가 느껴진다.

한가지 더 언급할 것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대모가 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신비주의적 과정이다. 이슬람의 수피 전통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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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2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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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권에서 예고된 아버지 레토 공작의 최후가 일어난다. 2권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레토 공작이 원수 하코넨 가문의 계략에 어이없이 죽게 되고 1권에서 예언된 대로 어머니와 함께 아들 폴이 사막으로 피난하는 여정이 그려진다.

1권부터 2권까지의 플롯구조는 전통적인 설화의 스타일을 따른다. 고귀한 출생 또는 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잃고 적에게 쫓겨 시련을 겪게 되고 그후 성공한다는 플롯구조이다. 고주몽 설화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너무나 뻔한 구조이고 익숙한 구조이지만 많은 대중소설에서 반복되는 이유는 그 플롯구조의 매력 때문이다. 성공이야기가 잘 팔리는 이유도 그렇다. 대개 잘 팔리는 성공담이 무일푼 맨주먹으로 성공하는 이야기인 것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러한 플롯구조를 단순하게 차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소설이 명작으로 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1권부터 2권까지 저자는 모든 고난이 예언된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1권 처음부터 그의 아버지에겐 죽음 뿐이고 아들에겐 삶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아버지의 몰락이 배신자 때문이며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도 보여준다. 추리소설 기법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지만 도대체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는 과정을 궁금하게 하는 기법.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러한 기법을 채용한 이유는 운명이란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출생이 고귀하다(방계황족)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족차원의 의식이 부여한 운명을 걷는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기법이다.

이러한 느낌은 주인공이 사막으로 도망가면서부터 예지능력을 갖게 되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의 미래를 본다. 아무 감정없이 그저 미래를 읽는다.

그러나 갑자기 그런 감각을 느끼게 된 주인공은 당황한다. 미래를 걷는 자라는 의미의 퓨쳐워커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미래를 읽는 이책의 무녀는 원래 태어날 때부터 미래를 본다. 그리고 그 미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퓨쳐워커에서 무녀는 자신이 끔찍한 미래를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은 자신의 것이기에 되찾아야 한다고 울부짓는다. 그러나 듄의 주인공에게 미래를 읽는 능력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2권에서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의 부분은 주인공이 자신의 새로운 능력을 받아들이면서 겪는 혼란을 주 내용으로 한다.

한가지 아쉬움은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졸속으로 처리된 것같다는 것이다. 1권부터 2권까지 레토 공작이 보인 모습은 귀족의 모범이었다. 부하를 사랑할 줄 알고 백성을 사랑할 줄 알며 죽을 자리일줄 알면서도 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 아버지를 그렇게 설정한 것은 주인공 가문의 가풍으로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인데 그런 사람의 최후이면 휠씬 웅장한 비극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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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1 - 제1부 듄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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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이란 작품에 대해 들은지는 10여년이 더 되었지만 읽어볼 마음을 내는데 또 그만큼 되었다. 지금까지 망설였던 것은 아마 할일도 많고 시간도 없는데 그런 소일거리에 시간을 쓸 수 있는가였을 것이다. 번역된 분량만 해도 300페이지짜리 18권이니 큰맘먹고 도전하는 각오가 아니면 손대기 힘든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가 되면 사람도 지치고 뭔가 다른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큰맘 먹고 잡은 이 시리즈의 첫권은 기대대로였다. SF 사상 최고의 걸작이란 평가에 걸맞는 책이었다. 어릴 때 SF를 읽어본 경험으로는 SF는 범작일 때 SF라는 장르 자체가 주는 매력이상이 되지 않는다. 북미와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는 SF라는 장르는 한국으로 보면 무협이나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르의 매력은 비현실성이다.

"사람은 30이 넘으면 소설을 읽지 않게돼. 현실이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선 줄거리도 희미하지만 하일지의 데뷔작 '경마장 가는 길'에서 지금까지 기억나는 말이다. 어차피 종이장에 적는 어떤 것이든 현실을 그대로 담을 수는 없다. 한권의 책이 되려면 나름의 줄기가 있어야 되고 그 줄기가 만들어지려면 어쩔 수 없이 현실을 가지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지치기된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현실을 알게 되면 현실을 담는다는데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현실을 떠난 상상력을 즐기게 되는 것같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어른들을 위한 환상을 제공한다.

지금도 아들이 쓰고 잇는 분량을 제하고도 아버지 허버트가 쓴 6권, 번역으로 18권이 되는 이 시리즈의 도입부가 되는 이책은 바로 저자가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를 처음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책을 처음 열었을 때 우리 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공간이다. 지금으로부터 만년후의 우주로 뻗어나간 인류가 사는 세계는 지금과는 다르다. 아니 과거와 비슷하다.

공작이 있고 남작이 잇으며 서로 영지전을 하는 황제가 있는 세계. 귀족가문이 잇고 가신이 있으며 행성이 영지인 세계. 무기는 총과 칼이 공존하는 세계. 종교적인 도그마 때문에 인공지능은 전멸한 세계. 일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세계. 그러나 은하계에 걸친 우주여행이 있고 행성규모의 기후조절이 가능한 세계. 유전자조작에 의해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고 관리하는 세계. 여러가지가 시대착오적으로 섞여있어 기시감과 함께 흥미로운 이질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세계로 들어가면서 독자는 저자가 이런 상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 어쩔 수 없이 깔릴 수 밖에 없는 그 세계만의 용어들과 언어들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단어들의 의미를 찾아 책뒤의 단어장을 계속 봐야 한다. 10년도 더 전에 끝난 외국어공부를 다시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낯선 세계와 만나면서도 독자들에겐 그것이 기분좋은 흥미로운 낯섬으로 다가온다. 깊이있는 심리묘사 때문이다. 사람은 만년이 지나도 우주에 살아도 초능력을 가져도 예지능력을 가져도 어차피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니 인간은 인간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권만으로 이책이 그리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러나 1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 시리즈가 상상력을 무기로 한 장르의 힘만이 아니라 가장 뛰어난 그 장르의 걸작들이 보여주는 힘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르의 걸작들은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배경에 우리의 사고를 밀어넣어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그 세계에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잇다.  그리고 1권에서 알 수 잇는 것은 이 시리즈가 그런 걸작이 갖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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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cats
snowcat(권윤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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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라는 제목이 달린 이책은 저자와 4년동안 같이 살고 있는 동거인과의 생활에 관한 책이다. 그 동거인은 수컷 고양이이다. 저자가 그리는 고양이와의 생활은 동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개처럼 키운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개를 키워본 사람들이 알듯이 개를 키우는 것은 아기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마당에 놓아 기르기 때문에 자기 영역에 대한 주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 집안에 키우는 경우 전적으로 주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개의 경우 주인에게 아양을 떨고 끊임없이 애정을 구한다.

그러나 모든 고양이들이 그렇듯이 이책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고양이는 그러지 않는다. 대부분의 애완견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의 좁은 실내에 살면서 주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지만 이책의 고양이는 도도하다. 주인과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하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보통 귀족의 정신이 있는 애완동물이라 한다. 저자의 고양이에겐 그것이 도도함으로 나타난다. 이 고양이의 도도함은 모르는 사람이 올 때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보통 때는 고양이가 그러듯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면서 모르는 사람이 오면 흔히 하는 말로 고개를 세우고 앉아 폼을 잡는다.

저자가 통조림을 줄 때면 눈이 반짝이면서 발이 빨라질 뿐이며 저자가 놀아달라고 애원을 해야 하고 숨바꼭질을 생각해내 노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며 사료를 남기지 말라고 해도 배부르게 먹는 것은 품위 없는 행동이라 말하려는듯이 꼭 남기고 남겼던 사료는 쳐다 보지도 않으며 신선한 물을 좋아해 물가림을 심하게 하는 고양이와 저자의 관계는 마치 도도한 미녀를 쫓아다니며 구애하는 연인사이같다.

평가

이상이 이책에서 읽히는 저자와 고양이의 동거관계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많지 않은 이책의 지면에서 반은 고양이의 사진이고 나머지 반도 글보다는 만화로 채워진 이책에는 말이 많지 않다. 독자는 저자가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저자와 고양이의 관계를 느끼는 것이지 읽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보여주려는 그들 관계의 느낌은 일관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책은 가볍게 보면서 잠시 애완동물과의 따듯함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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