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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정영문 옮김 / 예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한 적이 없는 곳에 대한 기행문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본 적 없는 연극의 공연 평이나, 들은 적 없는 음반의 음반 평처럼 읽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느낌이 들기는 매 한 가지다.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에 대한 감상문은 항상 공허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난 대개의 경우 그런 책들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작가의 기행문이라면, 이런 경우 얘기가 좀 달라진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그리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며, 작가 이윤기의 우상인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이라면 뭔가 달라도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 사게 된 책이다.

난 한국인이다. 월드컵이 끝난 지 세 달 정도 지난 이 마당에 갑작스럽게 '한국인' 선언(?)을 하는 것이 좀 뜬금 없긴 하지만 어쨌든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다. 혹시 아시안 게임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 하는 선언이라고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이 전혀 감동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끔씩 날 화나게 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과 카잔차키스가 '그리스'라는 서양의 작가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역자가 밝힌 것처럼 이 책 속에는 작가의 동양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상황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과 더불어 이 약간의 오해는 아주 눈에 거슬린다. 물론 이 기행문의 저자가 카잔차키스라는 대(大) 작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잔차키스가 누군가? '자유로운 영혼' 하면 '희랍인 조르바'고' '조르바' 하면 카잔차키스인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인간 영혼의 자유로움을 탐구한 작가 아닌가? 동양에 대한 몰이해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일본 여행기는 실망을 넘어서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이 글을 쓴 시기가 1938년이니까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셈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해방시키겠다는 아주 허무맹랑한 명분으로 전쟁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이다. 작가야 그리스인이니까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아시아의 해방'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긴지, 또 일본이 '조국을 위하여!' 라는 명분아래 행한 역사 왜곡이 얼마나 크나큰 범죄인지 별로 관심이 없었을 테지만 입장을 바꿔 독일과 이탈리아가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유럽을 통일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쟁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해보자. 과연 이렇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신선 놀음하듯 편하게 여행하면서 일본의 정원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시대 착오적인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카잔차키스는 인간이다.
카잔차키스도 실수한다.

이 책이 다시 한 번 증명해 준 삼단 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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