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파피루스로 부터 시작된 책의 역사가 아닌,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책꽂이의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또 뒤의 번역자의 해설을 보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은 책과 책꽂이 둘 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꽂이라는 것이 책 없이 독립적으로 혼자 존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책꽂이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곧 책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루마기 책에서 네모난 책으로, 사슬에 묶인 책에서 어디라도 이동이 가능한 책으로 변화하는 책의 역사는 책을 넣는 궤짝에서 사슬 달린 책꽂이, 회전식 독서대, 경사진 독서대, 선반이 있는 책꽂이로의 변화를 설명해준다. 책등, 앞마구리, 윗마구리, 아래마구리와 같은 책의 구조적 명칭을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덧붙여 책이 아니라 책꽂이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책'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는 장점도 갖게 된다. 사실 '책'의 내용만을 다룬다면 책등이니, 앞마구리니, 윗마구리니 하는 구조적 명칭이 뭐가 중요하랴?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책꽂이-아무 생각없이 보면 도저히 무슨 '공학'이라는 것이 절대로 작용했을 것 같지 않은 물건-에 관한, 또는 책 보관에 관한 시시콜콜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책등을 앞으로 뒤로 꽂는 문제부터, 책을 옆으로 쌓는 방법, 선반의 끝에 맞추어 정렬시킬것인지, 아니면 뒤에 맞추어 정렬시킬 것인지 와 같은 문제도 다루고, 유명 도서관들의 책장 배치나 책장 공학(?)-책장이 어떤 방식으로 레일을 따라서 움직이게 할 것인가?-과 같은 지극히 공학적인 문제들도 함께 다룬다.  

하지만 처음에는 책과 책꽂이에 관한 '수다'인줄 알았던 이 책의 정체가 점점 책꽂이 '공학'에 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급격히 나의 집중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물건의 모양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님, 그냥 상상하기 싫은 건가? 

그럼에도 이 모든 장점과, 또 이 모든 지루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사소한 부록은 쓸만하다. 사실 부록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시시콜콜한 문제를 지나치게 진지하고 꼼꼼하게 다룬다. 그래서 쓸모있으면서 그래서 쓸데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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