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범우희곡선 1
아더 밀러 지음, 오화섭 옮김 / 범우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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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면 너무 우아한 찬사이고, 마릴린 먼로의 연인이라면 너무 세속적인 느낌이 들지만 이러저러한 찬사들 모두가 아서밀러라는 작가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세일즈 맨의 죽음'은 '시련'과 함께 그를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은 작품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혹은 풍미하고 있는 위대한 희곡 작품들중의 하나이다. 난 20세기의 사람들이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를 생각하면서 셰익스피어와 그의 비극들을 생각하는 것 처럼 한 23세기 쯤이 되면-사람들이 그 때까지 연극을 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20세기를 생각하면서 아서 밀러와 그의 사실주의 비극들을 연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비극들 중에 첫번째는 단연코 '세일즈 맨의 죽음'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주의할 점이 있다. 대단한 감동이나 멋진 독백,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작품 속에는 셰익스피어가 그려 낸 극단적인 상황도, 섬뜩한 동기를 가진 인물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절대절명의 순간도 없다. 주인공인 윌리 로만은 평범하고 늙은 세일즈맨일 뿐이다. 그에겐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더 나은 노년을 위한 작은 소망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대상도 질투하는 대상도 없다. 물론 그가 약간 이기적이며 자신과 아들의 친구를 시기하지만 그것 때문에 파멸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동시대의 극작가들이 그려낸 인물들과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갖는 격정도 '에쿠우스'의 신비로움도 '아마데우스'의 우아함도 없다. 윌리 로만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떠돌이 세일즈 맨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사무적인 일을 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약간의 이기심과 소박한 꿈. 객지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천박한 애인이 있고 집에는 순진한 마누라가 있다. 두 아들은 장래가 보장되어 있지는 않지만 건강하다.

윌리 로만이 가지고 있는 이 모든 평범한 요소들은 현대인들이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세일즈 맨의 죽음'의 윌리 로만이 '햄릿'과 '블랑쉬'를 제치고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이유 역시 바로 이 평범함 때문이다. 윌리 로만의 이러한 평범함은 고귀한 신분이나 비범한 주인공만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아서 밀러 이전의 고전극들의 선입관을 통쾌하게 뒤집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서 밀러의 의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끝은 윌리의 죽음이 아니라 윌리의 장례식장이다.세일즈맨을 하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윌리 로만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가족들은 허탈해하고 절망한다. 비록 윌리 로만의 장례식장을 찾은 유일한 친구 '찰리'가 유족들에게 '그러나 아버지는 위대했다'라는 말로 위로하지만 여전히 장례식장은 쓸쓸하고 초라하기만 하다. 아들인 비프와 해피 역시 미래의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들의 말은 공허하고 절망적인 메아리처럼 느껴지고 두 형제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희망에 이르는 길은 좁고 험난해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가 말한 작품 의도는 고전극에 대한 도전이자 일종의 실험이라는 차원에서 해석되어야 하지만 그의 말을 바꾸어 해석하면 평범한 현대인 모두 비극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처럼 현대인 누구나 윌리 로만처럼 벼랑 끝에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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