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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내일이면 어김없이 광복절이 돌아온다. 헌데 올해 광복절은 하 수상하다. 이상한 정치인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 나오는 상황이다.
급기야 몇 주 전에는 일본의 독도 명칭 파문으로 또 한번의 홍역을 치뤘다. 해마다 당하면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치밀하게 준비한 일본에게 주먹구구식으로 끌려다니며 체결한 한일어업협정. 전문성 부재와 졸속행정으로 우리 어민과 우리 해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면서도 그 때 정책 실무자들은 아무 문잭없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이 어업협정에서 노린 것은 독도 영유권이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당했고, 이후 해마다 잠잠할 때 쯤 되면 독도문제로 한 번 찔러보는 행위에 그때 뿐의 저열한 대응만 하다 흐지부지 하기를 10년째다.
아마 일본은 내년에도 그럴것이다. 싹을 잘라버려야 되는데, 도대체 우리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매번 당하면서도, 매번 그 의중을 간파하면서도 항상 임기응변식의 대응만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장기적인 대책 플랜을 내놓을만 한데도 무슨 생각인지 전혀 그런 조치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사건 터지면 일본 대사 소환만 하면 장땡인가?!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해결력의 부재가 더 암담하게 다가오는 2008년의 광복절이다.
광복절이나 삼일절만 되면 들춰보는 책이 있다. 바로 아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이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비판서>(중앙M&B, 1999)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지식인들이 꼭 이 사람과 같은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과서 파동이나 독도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 마다, 그리고 제일한국인 문제가 들먹여질때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에 갖는 이중적 태도(일명 혼네와 다테마네)를 이 책이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지식인적인 시각에서.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었지만, 이 책은 99년 출간되어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한 몫 하긴 했지만 비판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일본인 아케하라 마모루의 원색적인 한국 비판서 이다. 물론 스콧 버거슨이 쓴 <대한민국 사용후기>처럼 방자하게 쓴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무게를 갖춘 신랄함 이랄까. 하여간 1999년의 일본인은 한국인의 어떤점을 비판하고 있는지,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적나라하게 분석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책의 맨 처음에서 이 책을 객관적으로 썼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 말미의 추천인의 추천도 상당히 객관적인 한국 비판서이니, 일독하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아울러 이 이방인이 한국을 끔찍히 생각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렇기 때문에 막자 죽을 각오까지 했단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은 상당히 '객관적이다'라는 것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읽어나가면서 작자 말대로 상당히 객관적으로 우리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잘 지적해 주었고, 추천인의 말대로 '그의 우려와 충고는 모두 나름대로의 진실에서 우러 나왔다'는 것에 꽤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책 제목처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그의 용기와 한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우리의 모순된 점들과 부조리한 면들을 직설적인 어휘로 너무도 잘 지적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적된 그의 비판들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 반드시 고쳐야만 되는 우리의 현안들 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189p-200p의 두 에피소드를 읽는 순간 배신의 철퇴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독도와 일제침략을 다룬 십여 페이지 사이에서 저자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100 여 페이지 이상을 객관성에 의해 지지를 확보한 저자는 상당히 주관적인 이 부분에서 조차도 자신의 주장은 정당하며, 자신의 주관화된 기준이 얼마나 신중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독자를 설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비판의 논조처럼 한국인도 받아들일건 받아들이라는 당당한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이 행한 한일합방은 정당한 것이고 합법적이었다는 것과 일본의 한국지배는 한국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다시말해 일본이 한국을 괴롭혔다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 땅에다 건설한 발전소와 다리들을 한국인들이 한국근대화에 사용했으면서 일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마모루씨는 이 보다 한 술 더 뜬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독도는 분명한 한국 영토로서 일본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분쟁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국제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한국인의 독도권리에 대한 최선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일본 지식인들의 의도가 있었다. 이 책에서 보다 싶이 10년 전에도 여전히 이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들은 혈안이 돼 있다. 몇 주 전 미국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항의 해서 부시 대통령이 독도 명칭을 원안대로 돌려 놓긴 했지만 독도가 분쟁지역이라고 미국에 인식시키기 위해서 일본이 얼마나 많은 로비를 하는지 추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우리땅을 세계인의 판단에 맡겨야 된단 말인가? 저자 말대로, 만에 하나 세계인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두려워서? 천만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엄연한 자기 재산을 어떤 미친놈이 자기 재산 이라고 떠들고다닌다 하여 그 미친놈에게 그 재산을 다툴 권리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자기재산을 잃는다는 것은 넌센스중의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작자 자신의 이런 군국주의적 시각을 한국 민족이 받아들여, '새로운 동반자 관계', '한일 친선'을 운운 한다는 점이다. '친선'이나 '동반자 관계'라는 말은 서로의 부채 관계를 공정히 해결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작자는 적어도 이 책이 한국 비판서인 만큼, 한일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균형된 시각을 보여줬어야 했다. 일제의 만행으로 확인된 정신대문제나 강제징용문제 그리고 문화제약탈등에서 적어도 한번쯤은 용서를 구하거나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시인했어야 했다. 또한 저자가 독도문제를 거론했을 때 진정 객관성을 중시한 사람이었다면 간도문제를 함께 다루었어야 했다. 독도와 간도는 일본제국주의와 직결되는 것으로, 일본측이 지금도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근거가 바로 일제의 한국병합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저자의 사과의 말이나 일본의 만행을 반성한 곳은 없었다. 이런 것을 도외시한 한일 동반자 관계란 일제시대 일본이 외친 '대동아 공영권', '내선일체'와 다를게 없다. 동반자 관계는 이런 것들이 해결된 이후에야 논의될 사항이다. 한일관계에서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고, 매듭을 풀어야할 장본인도 일본이지 우리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역사의식을 갖고 씌어진 이 책이 어떻게 버젖이 '한국인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일본이 군국주의 망언을 할 때마다 언론에서 난리를 치면서, 그것을 교묘히 책으로 위장하여 말하면 가만히 있는 우리의 비판의식에 화가난다.
우리의 역사의식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문제의 부분을 포함한 이 책은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외설스런 부분이 있으면 그 분량이 아무리 적더라도 칼질을 하면서 어떻게 이부분은 그냥 나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록 이 글이 가벼운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한국 비판서임은 자명하다. 비판서가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판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성토로 끝나기 쉽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결국 비판의 초점은 역사의식의 객관성과 정당성을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비판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비판의 경중과 시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 전체에 걸쳐 옳은 말을 하고 단 한 부분에서 거짓말을 한 책이 있다면 우리는 그 책을 정당하고 올바른 책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거짓말을 참인 것처럼 위장하여 독자를 설득 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그런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까?
이 책은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옳은 비판과 충고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단 10 여 페이지에 걸쳐 왜곡된 역사의식에 편승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객관성이라는 후광효과로 교묘히 위장하고 있는 僞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이 한국 비판서를 들춰 볼 때마다 나는 착잡하고 우울해진다. 일본인의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은 역사의식에 있어서 일본 문무성 교과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은 일본인으로부터 한국비판서를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본인이 얄밉게 지적한 우리의 결점들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더 화가 난다.